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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9

       일반적으로 화장은 시체를 소각한 후 남은 뼛가루를 단지에 봉안하는 식으로 치러졌다. 그러나 흑사병이 창궐하던 시절에는 한정된 물자로 쏟아지는 시체들을 처리하기 위해 새로운 화장 방식이 도입되었다. 바로 시체의 살만 태운 후 남은 두개골과 뼈는 지하에 안치하는 것이었다.

         

       뼈를 가루로 만드는 데는 1000도 이상의 고온이 필요하지만, 살만 태우는 데는 700도로도 충분했다. 고작 300도 차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전자의 온도를 얻기 위해서 드는 연료는 후자의 몇 배나 되었다. 카타콤은 그런 이유로 형성된 것이다.

         

       탄생 배경을 봐도 그렇고 그것이 있는 위치를 봐도 그렇고 카타콤은 어비스와 연결되기 쉬운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안치된 유골들은 모두 사제들이 장례를 치뤄준 데다가 성당 지하라는 입지 덕분에 카타콤은 가장 깊숙한 구역에서도 마귀나 악령이 출몰하는 일이 좀처럼 없었다.

         

       찰리가 학생 시절에 이곳을 아지트 삼아 놀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 해도 이곳이 정서에 안정적인 장소는 결코 아니었다. 층층이 쌓인 해골과 뼈는 그 존재만으로 시각적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아까부터 이 인골의 미로에서는 어울리지 않게 화기애애한 말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그 목소리의 주인들은 바로 찰리와 엘라였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처음에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엘라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튀어나온 그를 경계했고, 찰리는 그녀를 어떻게 대해야 결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녀 앞에 나타났다.

         

       분위기를 바꾼 것은 두 사람이 키우는 동물들이었다. 비둘기와 쥐와 원숭이는 주인들의 복잡한 사정은 관심없다는 듯 서로를 껴안고 바닥을 뒹굴며 격하게 반가움을 표현했다.

       두 사람은 그 모습을 보고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자신들도 저랬는데.

         

       두 사람은 서로에게 던지려던 질문은 잠시 치워뒀다. 대신 그들은 예전처럼 웃으면서 안부를 주고받았다. 그들은 그동안 있었던 일을 얘기했지만, 교묘하게도 고향에 대한 언급은 피해갔다.

         

       “그 장애물은 기발하더라. 어떻게 생각해낸 거야?”

       “아, 그거? 우리가 사막 행상인들 주머니를 털던 시절을 떠올리면서 만들었지.”

       “어? 정말 생각해보니 그때 그거네. 망보는 애들 있고, 소란 피우는 애들 있고, 우리가 슬쩍 하러 나서고. 흐음……특히 그 부분이 딱 똑같아.”

       “어떤 부분?”

       “실패하면 종아리가 남아나지 않는 거.”

         

       엘라의 말에 찰리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우리 그때 무척 혼났었지.”

       “그래서 이 퍼즐은 친구들에게는 뭐라고 설명했어? 다른 건 다 ‘이건 우리 고향에서’라는 식으로 말했다며? 이건 밝히기 좀 부끄러운데. 시골 서커스 학교 애들은 기술을 좀도둑질에 쓴다고 생각할 거 아냐.”

         

       찰리는 그녀가 품에 안고 있는 푸른 털의 원숭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당연히 이 녀석을 구출하는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는 숨겼지. 특히 몽둥이를 들고 달려오는 사부님에 대한 건 입도 뻥긋 안 했어. 그리고 도둑질 정도는 괜찮아. 마술이나 곡예를 배우다 보면 다들 어릴 때 그런 장난을 많이 친다고 하더라고. 엘리트 학교라고 다르지 않았어.”

       “우우까까!”

         

       원숭이는 뭐가 즐거운지 엘라의 뒤통수를 끌어안고 그녀의 정수리에 대고 얼굴을 비벼댔다. 엘라는 싱긋 웃으며 녀석의 배를 간질여 주었다.

         

       “파랑숭이는 여전히 어리광쟁이네.”

         

       그녀가 원숭이에게 붙인 이름을 듣고 찰리는 볼멘 목소리로 말했다.

         

       “몬테크리스토라니까.”

       “별명이라고 생각해. 그렇지, 파랑숭이야?”

       “까아깍!”

         

       몬테는 그녀가 붙여준 이름이 마음에 든다는 듯 마구 고개를 끄덕여댔다.

         

       “내가 붙여준 이름이 더 좋지 않아, 몬테?”

         

       찰리의 질문에 원숭이는 쩍 하품하는 시늉을 하며 질문을 못 들은 척했다. 찰리는 그 모습을 보고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레카체프에 들아가서 가장 열심히 공부한 과목이 길들이기였는데도 불구하고 동물과의 친화력은 엘라의 발끝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런데 부엉둥이는 어디 갔어?”

         

       지금까지 평소의 자신을 잘 연기하던 그가 처음으로 표정에 동요가 생겼다. 그는 잠시 천장을 바라보더니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떠났어.”

       “뭐?”

         

       되묻는 엘라의 얼굴에는 불안한 빛이 나타났다.

       떠났다는 건 설마…….

         

       찰리는 재빨리 표정을 다시 고쳤다. 그들 사이의 즐거운 분위기는 조금 있으면 끝날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오래 즐기고 싶었다. 그는 짐짓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웬 암컷 부엉이랑 눈이 맞더니 떠나버렸어.”

         

       그의 말에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었던 엘라는 곧 웃음을 터트렸다.

         

       “세상에 그런 일이 진짜 있구나! 너무 실망하지는 마. 새들은 포유류와 달리 자기가 자란 둥지를 자주 버리곤 하니까. 음, 그럼 우리 구돌이도 장가보내 줘야 하나? 그냥 암컷 한 마리 더 들여서 키우면 될 것 같은데…….”

         

       그녀의 말에 찰리가 짐짓 정색하며 말했다.

         

       “그러면 구돌이가 불쌍해지잖아.”

       “엥? 구돌이가 왜?”

       “시어머니랑 며느리 사이에 끼어 살아야 하니까.”

         

       엘라는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두 사람은 시집살이에 대한 농담 몇 가지를 교환한 다음 시합에서 비겁한 수작을 부린 지몬 마기어에 대한 화제로 넘어갔다.

         

       “그는 정말 뻔뻔하고 파렴치한 작자야.”

         

       엘라는 찰리가 누군가에 대해 그렇게까지 혐오감을 표하는 것은 처음 봤다. 아마 자신이 설계한 게임을 협잡의 장으로 만든 것에 대해 화가 난 모양이었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던 두 사람의 대화를 중단시킨 것은 석굴 입구에서 들려온 종소리였다.

         

       그것을 들은 찰리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와 계속 이렇게 있고 싶었는데…….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신들의 목적은 복수였으니까.

       그는 원숭이에게 손님을 마중나가게 했다.

         

       “우끼이이!”

         

       엘라의 몸에서 내려온 녀석은 해골과 뼈로 이루어진 기둥을 타고 넘더니 어둠 저편으로 사라졌다.

         

       “파랑숭이는 어디 보낸 거야?”

       “곧 알게 될 거야. 자, 우린 이쪽으로 가자.”

         

       찰리의 입에는 여전히 다정한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목소리에서는 아까와 달리 싸늘함이 느껴졌다. 엘라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미뤄 두었던 의문이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찰리는 왜 이곳에 나타난 걸까? 왜 날 여기로 데려온 거지?

       궁금했지만 그녀는 그 질문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그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두려웠기 때문이다.

         

       두 사람 말없이 걷기만 했다. 방금까지 즐거운 대화가 오갔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둘 사이에는 긴장감이 흘러넘쳤다.

       그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찰리였다.

         

       “네 단장은 실력이 얼마나 뛰어나지?”

         

       뜬금없는 그의 질문에 엘라는 멈칫했다가 되물었다.

         

       “무슨 실력?”

       “곡예 기술. 직접 몸 쓰는 쪽으로.”

       “뛰어나지. 로드 판타스틱과도 재주를 한 번 겨뤘는데 동수를 이뤘었어.”

         

       그녀의 말을 들은 찰리는 작게 코웃음을 쳤다. 그는 원더스타인에게 그 정도 실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이곳에 와서 본 원더스타인은 가짜 대본으로 세상을 속이려 들거나 여자애들을 데리고 희롱하거나 시험 전에 갑자기 아프다는 핑계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등 등 비열한 모략꾼으로서의 모습이 전부였다.

         

       찰리는 빈정거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아, 그래? 그가 몸이 멀쩡했으면 탐색 팀에 나왔을까?”

       “물론이지. 그럼 나와 최고의 콤비를 보여줬을걸? 1시간 안에 게임을 터트렸을 거야.”

         

       찰리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최고의 콤비라고? 내가 만든 게임을 터트려?

       그의 입술이 비틀리며 적의에 가득 찬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런 실력자라면 휠체어에 탄 상태로도 대단하겠지? 시험해보고 싶은걸.”

       “뭐를?”

         

       찰리는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봤다. 그의 입에는 여태껏 볼 수 없었던 잔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과연 네 단장은 내가 설치한 함정과 장애물을 뚫고 여기까지 올 수 있을까?”

         

         

       ***

         

         

       학교를 나온 찰리의 동료들은 원더스타인을 데리고 골목 안쪽의 하수도 입구를 통해 지하로 내려갔다.

       그들은 원더스타인을 비교적 정중하게 대했다. 거친 길이 나오면 휠체어의 속력도 조정해주고, 단차가 큰 길이 나오면 그를 휠체어째로 번쩍 들어서 옮겨주기도 했다. 그들은 찰리와 달리 원더스타인에게는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찰리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친구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원더스타인을 악당으로 몰아세우기에는 근거가 너무 모자랐다. 더군다나 그 이야기를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것 자체가 너무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찰리는 원더스타인을 엘라를 진실을 말하도록 압박하는 인질로 쓸 거라는 식으로 친구들을 설득했다. 그들은 상관도 없는 사람을 끌어들이기 싫어했지만, 찰리가 워낙 강력히 주장한 탓에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왜 엘라 양을 납치한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

       “혹시 제게 원한이 있나요?”

       “…….”

         

       원더스타인은 이들이 누군지 도통 짐작할 수 없었다. TTT에 등장했던 인물도 아니었고, 자신에게 원한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에게 필요한 말 외에는 절대 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정보를 얻는 것을 포기하고 전투 준비에 더 집중했다.

         

       그들은 하수도를 통과해 카타콤으로 들어섰다. 백골들이 벽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광경은 원더스타인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들이 그곳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푸른색 털의 원숭이가 그들을 마중 나왔다.

         

       “우리 안내는 여기까지요.”

       “이제부터는 원숭이를 따라가세요.”

         

       그들의 계획은 이랬다. 원더스타인을 함정의 방으로 밀어 넣고, 엘라에게 그걸 보여주며 그를 살리고 싶으면 그날 있었던 진실을 털어놓으라고 협박하는 것이었다. 원래 무작정 엘라를 붙잡아다 심문할 예정이었었는데, 찰리의 주장에 따라 계획을 수정한 것이다.

         

       그들은 휠체어 하나도 겨우겨우 끄는 남자를 함정들이 득실한 곳에 밀어 넣는 것이 맞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왜 굳이 이런 방법을 써야 하는지 모르겠어.”

       “나도. 엘라가 정말로 마을 사람들을 학살한 범인이라면 이런 협박이 통할 리 없잖아?”

       “몰라. 일단 찰리의 말을 믿어보자. 우리 리더니까.”

       “그래. 알아서 잘 조정하겠지, 뭐.”

         

       그들은 원더스타인이 원숭이를 따라 석굴 안쪽으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뒤 찰리와 엘라가 있는 곳으로 이동할 준비를 했다.

         

       그때, 그들은 뒤에서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분명 그들이 내려온 길을 따라 내려오는 것이었다. 거기다 한 명의 것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꼬리가 달라붙은 것 같은데.”

       “쳇, 너무 느긋하게 왔어. 휠체어를 미는 게 아니라 그냥 닥치고 자루에 쑤셔 넣고 달렸어야 하는 건데.”

       “그랬으면 입구에서 붙잡혔겠지.”

         

       4명은 싸움을 준비했다.

       잠시 후, 석굴의 입구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 역시 4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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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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