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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9

       

        

        

        

        

        

       “하여간 발현자들이란.”

        

        

        

        화면이 파랗다.

        

        기기 결함으로 인해 생겨난 블루스크린이나 그 외 여러가지 이유 때문이 아니라, 시설 곳곳에 물이 들어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단 두 명의 발현자밖에 남지 않은 포플러 릿지 교정 시설에서는 때아닌 수중 전투가 발생하고 있었고.

        

        수중에서 벌이는 교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날렵한 몸놀림. 물론 이들이 땅 위에서 돌아다니는 속도와 비교해보면 거의 비행기와 자동차 수준의 차이가 있었지만, 애초에 이번 파이널 챔피언십 출전자 중 잠수복조차 입지 않은 채 물 속에서 전투를 벌여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어디 있기나 하겠는가.

        

        물에 감싸이자마자 3분에 걸쳐 느릿하게 찾아오는 죽음을 기다리는 절대 다수에 비하면, 로건과 유진의 수중 교전은 실로 격하기 짝이 없었다.

        

        

        상층 시설마저 전부 바닷물에 가라앉자마자 그 둘은 너나할 것 없이 수류탄과 권총을 제외한 모든 것을 바닥에 집어던지고는 헤엄치기 시작했다. 그 이후에는 마치 전투기의 도그파이트를 연상하게 만드는 3D 전투가 시작되었다.

        

        둘 다 오른손에는 권총 한 자루만을 든 채 고작해야 몇 미터밖에 되지 않는 지근거리로 접근. 유진은 로건의 손에 든 방패를 붙잡고는 몰리에서 수류탄 두 개를 뜯어내었고, 그것을 로건에게 필사적으로 쑤셔넣는다. 반대로 로건 역시 실드를 접고는 유진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무겁고 둔한 소리가 작렬했다. 동시에 로건과 유진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 안에 있는 공기를 몽땅 토해내었다. 수류탄이 물 속에서 폭발하며 생겨난 폭압으로 인해 신체 내부가 진탕된 것이었다.

        

        실드와 HP가 동시에 깎여내려가는 진풍경 이후에도, 두 명은 남은 힘을 전부 쥐어짜내어 권총을 쏴댔다. 그러나 수류탄 폭발에 의해 왼팔을 상실하고 그나마 장기를 방어해낸 로건이 더욱 우세에 있었다.

        

        

        탄환이 피륙을 꿰뚫는 소리와 함께 유진의 몸에서 힘이 빠졌다. 천천히 지면으로 가라앉는 유진을 뒤로 한 채, 로건은 유유자적 수영하여 불과 십수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탈출정에 몸을 기댔다.

        

        촤악 하는 소리와 함께 탈출정 내의 물이 배출되더니, 마치 자이로드롭에 탄 것마냥 로건의 몸이 위로 사출되었다.

        

        

        

       “아, 로건 선수-! 유진을 물리치고 탈출정에 탑승합니다! 포플러 릿지 교정 시설의 유일한 탈출자가 되었습니다! 금요일 두 번째 경기의 최종 승자는 로건 선수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철컥!

        

        

        

       “아으, 죽겠다.”

        

       “아, 오셨어요?”

        

       “비얌 왔다, 비얌!”

        

       “북극곰과 아나콘다 수중전 잘 봤어요, 선생님!”

        

        

        

        유진이 디브리핑 룸에 도달했다.

        

        이제는 팀원들이 무어라 말해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수요일까지만 하더라도 경기가 끝난 후에도 말 그대로의 완벽초인 모습을 유지한 채 디브리핑에 임했다면, 목요일부터는 슬슬 헐렁헐렁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그 아무도 싫어하지 않았다는 점은 굳이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리고 그녀 역시도 그 사실을 아주 잘 알았기에, 방에 들어오자마자 벌러덩 침대에 누웠다. 디브리핑 룸은 가장 넓은 방을 할당받은 미카엘과 잉크, 그리고 갬빗의 플레이 룸이기도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똬리를 틀다 못해 도롱이벌레처럼 이불을 몸에 돌돌 감은 유진이 입을 열었다.

        

        

        

       “어차피 다음 판이 마지막인데, 디브리핑 꼭 해야 할까요?”

        

       “와, 근무태만 레전드.”

        

       “제가 디브리핑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마지막 경기를 대차게 말아먹을 건 아니잖아요. 그렇죠?”

        

        

        

        물론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어느샌가 침대 옆에 걸터앉은 다이스가 이불을 걷고 유진의 등짝을 찰싹 때리는 것으로 상황은 진압되었다. 그리하여 다시 프로페셔널함을 되찾은 비얌은 리모콘을 받아들고는 다른 이들의 플레이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 가장 첫 번째로는, 생각보다도 빠르게 아웃된 다이스의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원인이 짐작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럼 그렇죠.”

        

        

        

        평소에 매번 TOP 10 안에는 들던 다이스가 갑자기 17위로 등수를 마감했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그녀를 꺾어버리고는 해당 등수에 못을 박아버린 당사자가 있을 수밖에 없단 소리. 유진은 두 번째 판에서 다이스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으므로 범인은 단 한 명 뿐.

        

        그리고 다이스의 마지막 3분을 재생했을 때, 유진은 드물게도 큭큭거리며 덧붙였다.

        

        

        

       “방으로 오기 전에 로렌티나가 그러더라구요. 금발머리가 너무 기믹에만 의존하는 것 같으니, 가서 따끔하게 혼내라고 그러길래 무슨 소린가 했더니.”

        

       “으에….”

        

        

        

        그 상어 아가씨 말이구나….

        

        오직 다이스만이 알아듣는 소리였다. 당연하게도 그녀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침대에 퍼져버렸고.

        

        기믹에 너무 의존한다는 말이 딱히 틀린 말도 아니긴 했으나, 그럴 수밖에 없는 것도 맞았다. 당사자 역시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문제였고. 물론 EMP 펄스가 게이트를 고장내버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다르게 말하면, 일종의 외통수였다. 기믹의 힘을 빌리지 않고 정면에서 맞서면 이길 자신이 없고, 그렇다고 기믹을 빌리는 방법은 로건 역시도 진즉에 알고 있을 터. 이기는 방법이 하나밖에 없는데 적도 그 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상당히 힘들었다.

        

        결국 함정을 더 철저하게 파는 것 정도가 적당한 해답이 아닐까.

        

        

        …물론,

        

        

        

       “다음 판이 마지막 경기라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그리고 내년부터는 저와 로건이 없죠.”

        

       “어….”

        

        

        

        이걸 기뻐해야만 하는지, 말아야만 하는지 모르겠는 표정이 된 네 명의 인원이었다.

        

        로건은 몰라도 어쨌든 유진은 여전히 한국 대표팀의 정신적인 지주이자 굳건한 반석이었다. 남이 잘하면 자신도 따라 잘하게 되듯이, 그리고 남이 흔들리면 자신도 흔들리게 되듯이, 그녀는 대표팀의 중심을 단단하게 붙잡고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다른 이들이 평정심을 유지하게 해줬으니까.

        

        그리고 이것으로, 유진은 대표 선수들에게도 공식적인 은퇴 의사를 밝힌 것이었다. 그에 어쩐지 어깨가 무거워지는 듯한 느낌이 다이스를 비롯한 이들을 짓눌렀다.

        

        물론 파이널 챔피언십이 끝나더라도 유진은 여력이 닿는 한 얼마든지 스크림 및 커리큘럼을 지도해줄 예정이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호의였으니.

        

        

        

       “게다가 이번 년도에서 보여준 플레이 때문에라도, 내년에는 다들 스킬을 심도깊게 연구해서 나올 확률이 높겠죠. 섣불리 안주했다가는 본전도 찾지 못할 거예요.”

        

       “뭐, 그래도 다음 년도에 출전하는 유저들의 스킬 커리큘럼이 전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거라는 보장은 없잖아요?”

        

       “그것까진 부정 못하겠네요.”

        

        

        

        당장 유진은 한국 대표팀을 가르치기 위해 이카루스 기어 내에 존재하는 전투 데이터까지 뒤져가며 당시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효율적인 방법만을 에센스로 가공하여 투약하였고, 대표 선수들이 배운 것은 무수한 시행착오를 통해 추출된 최선의 커리큘럼이었으니.

        

        아마 그 격차를 메우려면 적잖아 2년은 우습게 걸릴 것이었다. 그 무엇도 아닌 사람의 목숨을 갈아가며 완성시킨 전투 교범이었으므로.

        

        어쩐지 디브리핑보다는 훗날을 도모하기 위한 포부 다지기에 더욱 가까워진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 역시도 사실이었다. 당장 다음 경기가 끝나면 유진은 더 이상 이들을 책임질 이유가 없었고, 코치라는 직위 역시도 상실할 터였으니까.

        

        그렇기에 유진은 평소와는 다른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덧붙였다.

        

        

        

       “하지만, 결코 안주하지 마세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가르친 것들을 더더욱 발전시켜나갈 때야말로 가치가 있는 거니까요. 안주는 퇴보의 다른 표현입니다.”

        

        

        

        그녀는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와 선물을 이들에게 동시에 안겼다.

        

        입이 재차 열렸다.

        

       

        

       “다들 내년에는 단 한 명도 빠짐없이 TOP 10 안에 들길 바라고, 다이스는…한 번쯤 에이펙스 프레데터라는 이명을 달아봐야 하지 않겠어요?”

        

        

        

        에이펙스 프레데터.

        

        포식자의 정점.

        

        이 세상에서 단 한 명만이 소유 가능한 칭호. 파이널 챔피언십에서 1등을 달성하는 순간, 현실에서의 영예 뿐만이 아니라 인게임에서 사용 가능한 무지막지하게 휘황찬란한 인식표와 어깨 패치, 계급장, 총기 위장을 영구히 수여받는다.

        

        프로게이머이기 전에 한 명의 유저로서 탐이 나지 않을 수가 없는 수집 요소.

        

        다이스는 그 말을 듣고는 킥킥대며 말을 이었다.

        

        

        

       “확실한 건, 이번 년도에 유진 씨가 받을 것보다 내년에 제가 받을 1등 인식표랑 패치가 더 예쁠 거예요.”

        

       “과연 어떨까요. 내후년 1월 1일에 한 번 비교해보도록 합시다.”

        

        

        

        그와 동시에 유진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비단 다이스 뿐만이 아니라, 여러분들도 얼마든지 저에게 자랑하러 올 수 있으면 좋겠네요.”

        

        

        

        짝.

        

        한 번 박수를 친 그녀가 덧붙였다.

        

        

        

       “비록 조금 이르긴 하지만, 모두들. 여태까지 제 커리큘럼을 무사히 따라오셔서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모두가 원하는 결과를 충분히 얻어갔고, 설령 나중에 다크 존을 그만 하더라도 오늘의 결과가 족히 40년 후에도 추억할 수 있는 인생의 영광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충분한 진심을 담아, 유진은 허리를 꾸벅 숙였다.

        

        그와 동시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울려퍼졌고, 유진은 그제야 허리를 편 다음 다이스에게 손짓했다. 금요일의 마지막 경기, 그리고 파이널 챔피언십의 마지막 경기가 시작되기까지 고작해야 3분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

        

        

        

       “이따가 하모니 경기도 있으니 보고 싶은 분들은 남으시고, 먼저 갈 분은 호텔로 가면 됩니다. 그리고 토요일에는 헨리가 주최하는 이번 년도의 마지막 파티가 있으니, 다들 근처에서 실컷 쇼핑하다 오세요.”

        

        

        

        쓔웅.

        

        그와 동시에 유진은 다이스를 택티컬-보쌈해갔고, 오직 남은 세 명만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입을 열 뿐이었다.

        

        

        

       “…헨리?”

        

        

        

        물론 헨리가 누군지에 대한 기억이 팝업하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리라.

        

        파이널 챔피언십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었다.

        

        

        

        

        

        

        

        

        

        

        

        

        

        

        

        

        

        

       “무려 2주에 달하는 파이널 챔피언십의 마지막 날, 그리고 그 마지막 경기가 드디어 막을 올립니다! 과연 마지막 경기를 통해 본선의 막을 내릴 사람은 과연 누구인지! 지금부터 그 결과가 30분에 걸쳐 공개됩니다!”

        

        

        

        파이널 챔피언십 마지막 경기가 시작된다.

        

        본래라면 그 어떠한 대화도 허용되지 않는 수송기 내부였지만, 매 년마다 시행되는 파이널 챔피언십, 그 마지막 날의 마지막 경기는 말 그대로의 예외였다. 모두가 웃으면서 다가올 신년에 대한 축하를 보내고, 한 해를 잘 마무리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유진! 유진 선수! 끝나고 사인 좀 부탁드립니다!”

        

       “다 꺼져! 내가 먼저야!”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도 태반이었다.

        

        바로 옆에 앉은 다이스가 킬킬대며 ‘경기 끝나고 바쁘겠네요’ 하고 중얼거리는 사이, 그녀는 미니맵을 팝업시켰다. 수송기의 비행 루트와 화산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하나둘씩 비슷한 과정을 시행했다.

        

        맵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유진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루트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 사실상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맵 기믹이라는 변수 역시 이러한 거대한 논리 도출 과정에 끼어 택틱이라는 이름의 기계를 돌리기 시작했다.

        

        아타카이아 화산섬. 그 지하에는 상당히 넓은 공간과 통로가 있다. 섬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과도하게 많아짐에 따라 지상 뿐만이 아니라 지하까지 개발한 것에 가까웠지만, 이는 킬존 역할을 하는 용암이 흐르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공간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지하 시설을 컨트롤하는 관제실에서 용암의 흐름을 통제함으로서 킬존을 사람이 유도하는 것도 가능하단 소리.

        

        

        과연 이것을 어떻게 활용할까.

        

        그것이 그녀의 무수한 고민 중 하나였다.

        

        

        

       “또 뒤숭숭한 생각 하고 있으시죠?”

        

       “….”

        

        

        

        물론 뒤숭숭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뒤숭숭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들어냈으며, 다이스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해치가 열리고 모두가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물론 티밍 등을 방지하기 위해 개인이 원할 때 뛰어내릴 수는 없었으며, 다시 말해 이는 철저한 랜덤 타이밍에 기반을 두었다. 요컨대 실시간으로 점프하는 유저들은 자기가 원해서 뛰어내리는 게 아니란 소리.

        

        그 와중 유진의 몸 역시도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하부 해치를 밟고 뛰어내리자마자 바람소리만이 귀를 감싼다. 고도계가 팽팽 돌아가더니 낙하산을 펼치기에 적합한 고도가 되자 펑 하는 소리를 내며 이를 펼쳤고,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여기는….”

        

        

        

        유진은 인적이 드문 한 작은 동네에 내렸다.

        

        본래라면 식료품을 비롯한 다양한 물품을 팔던 작은 마켓에서는 총기가 쏟아져나왔고, 얼마 전과는 다르게 그녀는 초반을 버티기에는 충분한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스파이크가 달린 해머를 루팅하여 다용도 주머니에 처박는 그 순간, 바깥에서부터 무지막지한 충격파와 함께 굉음이 터져나왔다.

        

        

        

       ───!!!

        

        

        

        화산이 폭발하며 용암이 줄줄 흘러내렸다. 분화구에서부터 매캐한 연기가 뿜어지는 가운데 화산탄이 맵의 곳곳을 강타한다. 화산섬 맵의 킬존이 본격적으로 작동을 시작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해안가와 맞닿아있는 곳은 극심한 지각변동으로 인해 외곽부터 천천히 무너져 가라앉는다. 이 또한 킬존이었다.

        

        안타깝게도 유진이 내린 곳은 맵의 외진 곳, 다르게 말하면 킬존과 생각보다 가까운 지점이란 의미였다. 따라서 그녀는 다음 웨이포인트를 정하기도 전에 먼저 차량을 찾아 올라탈 수밖에 없었다.

        

        

        공기가 찢어지며 들리는 불길한 파공성이 저 멀리서부터 사방팔방에서부터 들려온다. 누가 들어도 소리를 식별 가능할 즈음에는 이미 대형 화산탄이 피할 수 없을 만큼 가까이 다가온 시점이었다.

        

        덩그러니 서있는 펜션과 오피스텔, 그 외 수많은 건물과 도로, 산과 들을 포함한 모든 곳들에 적잖아 몇 번씩 떨어지는 원거리-자연재해. 유진은 어느 차량이 더 괜찮을지를 고민할 시간조차 없이 시동을 걸었고, 버기 한 대가 세찬 굉음을 내뿜으며 도로를 달렸다.

        

        하지만 화산만이 이 맵의 유일한 위험은 아니었다.

        

        

        

       ───투두두두!

        

        

        

       “…이런.”

        

        

        

        사람이 두 번째 위험 요소였다.

        

        위에 중기관총까지 올라간 무장 차량 한 대가 유진을 쫓아오기 시작했다.

        

        차량의 크기나 속도 자체는 버기가 조금 더 좋았지만 저쪽에는 거리라는 변수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는 총이 있었다. 끝도 없이 쏘아지는 총알 중 한 발만 잘못 맞아도 차량은 기동불능 상태가 될 수 있었으며, 이는 몇 발만 맞아도 내구도가 뚝뚝 떨어지는 버기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유진은 이미 어떻게든 차량을 살려보려는 노력을 진즉에 포기했기 때문이었다 – 그 순간 버기의 문짝이 떨어져나가고, 바퀴가 터진다. 삽시간에 속도가 줄어들며 조향 자체가 불가능하게 변하는 사이, 유진은 자신을 뒤따르는 차량과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빠르게가 아니라, 조금씩.

        

        지금부터 할 일은 곡예에 가까웠기에, 상대속도가 너무 떨어지면 그 역시 곤란했다.

        

        

        

       -카가각!

        

        

        

        마치 술에 거나하게 취한 사람이 비틀거리는 것마냥 점차 속도가 하락하는 버기.

        

        그것이 어느 시점이 되자 급격히 느려지더니, 차량의 속도는 곤두박질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순식간에 감속한다. 뒤따르던 차량의 범퍼가 버기와 부딪히며 앞부분이 찌그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이미 유진은 버기에서 뛰쳐나온 지 오래였다.

        

        후행하던 차량 앞유리에 가득히 비친 것은 뱀의 인영이었다.

        

        

        

       “우와악!”

        

        

        

        콰직!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앞유리 전체에 금이 간다.

        

        날카로운 스파이크가 일격에 유리를 꿰뚫는 가운데, 몇 번이고 망치질이 시작된다 – 유진은 앞으로 튀어나온 중기관총의 총구를 왼손으로 단단히 붙잡아 지지대로 삼은 채 유리를 두들기고 있는 것이었다.

        

        운전 중인 유저가 몸에 배인 근육기억을 토대로 황급히 권총을 뽑아들었을 때는 이미 유리에 주먹이 몇 개나 들어갈 정도의 거대한 구멍이 난 상태였고, 유진은 그 안으로 가지고 있는 모든 투척무기를 까던졌다.

        

        섬광탄이 폭발하는 순간 유저가 무력화되었고, 두 개의 수류탄이 폭발한 순간 차량의 조향 기능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그 순간 유진은 보닛에서 화염이 피어오르는 무장 차량의 속도를 어림짐작하고는 그대로 뛰어내렸다.

        

        그러나 몇 바퀴나 구른 끝에 너덜너덜한 몸으로 완전히 감속한 유진과는 다르게 차량은 다른 운명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손잡이가 완전히 박살난 차량은 결국 담벼락을 들이받았고, 그것이 끝이었다.

        

        대략 십수 미터 밖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유진이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저래서야 파밍도 못하겠네.”

        

        

        

        그녀는 몸을 돌려 그 광경을 무시하고 건물단지를 목표로 삼아 이동했다.

        

        마치 유언이라도 남기듯, 담벼락을 들이받은 차량이 장렬히 화염과 파편을 내뿜으며 터지는 모습이 유진이 겪은 첫 교전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운전자를 죽이는 법

    그것은 앞유리를 깨부수고 폭탄을 까면 된다

    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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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귀환했지만, 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Just the fact that I came back couldn’t be the end of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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