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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9

        

         “으… 으으…… 제가 잘못했어요. 징계위에 올라가도 되니까 제발, 제발 감봉만은…!”

         

         앞뒤, 양옆으로 마구 휘둘러지는 꼴이 애처롭다.

         

         한 쪽 팔은 소파 등받이 부분을 붙잡고 반면, 나머지 빈 손은 애타게 허공을 휘저으며 꿈속의 누군가에게 최선을 다해 용서를 구하고 있었는데.

         

         슬쩍 봐도 어떻게 다시 관찰해도, 무슨 지독한 악몽을 꾸는 게 틀림없어 보이는… 스타일이 좀 수수하다 해도 딱히 불쌍하게 여길 외향적 요소는 없거늘 어딘가 애처로운 여자.

         매니저 베서니는 무의식 중에도 열심히 버둥거리다가, 소파에서 거의 굴러 떨어질 뻔한 걸 받쳐주는 금속제 로봇의 단단한 손아귀의 감촉을 느끼고 나서야 겨우 퍼뜩 깨어났다.

         

         “……?”

         

         깜빡깜빡.

         눈꺼풀이 어리둥절한 두 눈의 시야를 거듭 갱신하며 조금이라도 빨리 정신을 차리라 재촉한다.

         

         지나친 혈류 가속으로 갑자기 의식을 잃은 탓에 긴급 종료되었던 사이버웨어가 자가진단 부팅을 시작하며 한창 이런저런 정보들을 표시하고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이렇게 개운하게 잤던 게 꽤 먼 일처럼 다가온 그녀의 뇌는 기다릴 여유가 없다는 듯 다급하게 상황 파악에 나섰다.

         

         나는 누구? 비록 ‘내버려두면 방송국 어딘가에서 굶어 죽을 것 같아서’라는 서글픈 이유였지만. 어쨌거나 메모리얼 타임즈 스타 아나운서의 전속 매니저 자리를 꿰찬 당당한 능력녀(?) 사회인, 베서니.

         

         여긴 어디? 천장 무늬나 주변 가구를 보니… 상급 대기실, 그것도 비싼 스타일링 장비와 메이크업 어시스트 윈도우가 깔려 있는 몇 없는 방 중 하나.

         

         어쩌다가? 아마… 머리가 당장 선명하게 기억해내길 열렬히 거부하고 있지만 자기가 굉장히 큰 사고를 치고 쓰러져서. 그것도 커버가 불가능한 수준으로.

         

         묘하게 상쾌한데 지금은 몇 시? 원래는 한창 근무 중인 오전 업무 시간, 그것도 에린 언니 따라 뉴스 룸에 들어가서 아침 정규 라이브를 함께 모니터링 하고 있어야했는데나는이제막일어났네미쳤나봐아이고맙소사엄마진짜미안해.

         

         “……흐으에에엑?!?”

         

         감봉을 넘어 업무태만으로 인한 비정규직 전환이나 해고라는 무시무시한 단어가 떠오르자마자 튕기듯이 몸을 일으킨 그녀가 비명을 내질렀다.

         

         진짜 좆 됐… 잠깐, 그건 너무 간 표현이고 역대급으로 조졌다! 뭐가 다른지는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운데 아무튼!

         

         일단 내 물건부터! 최대한 빨리 다 챙겨서 내려가야 하는데… 핸드백은 어디 있지?

         아니, 그보다도 데스크에 제출해야 했을 서류가 안 보이는 게 문젠데. 심지어 오늘 출근길에 긁은 도시락 영수증마저 경리님이 받아줄 시간이 한참 지나서 으아아아…!

         

         하지만 다행히, 살아있는 사람이라곤 한 명밖에 없는 방이었지만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 같던 그녀의 패닉 상태를 진정시켜줄 인재가 곁에 있긴 있었으니.

         

         – 개인 소지품이라면 여기 있습니다 미스 베서니. 잠버릇이 상당히 활발하셔서 부득이하게 탁자가 아니라, 거울 앞쪽으로 멀찍이 치워 놨었습니다. 그리고 여타 서류는 에린 아나운서님이 직접 들고 가시며 아예 이 참에 푹 쉬고 내려오라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

         

         “어, 어!? 네… 그 감사합니다…?”

         

         틀림없이 가게를 이용하거나 대중 교통을 탈 때마다 흔히 들리는 전자 안내음일진대, 굉장히 문장 구성 및 어휘가 유창하고 또 은근히 사람을 놀리는 듯한 악센트도 분명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아니나다를까, 문외한이 봐도 값비싼 부품을 사용하는지 각기 배율이 다른 스캐너 렌즈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웬 무인 드로이드가 자신을 반겨주었다.

         

         …아니지, 출처를 모르는 웬 드로이드는 절대 아니다.

         

         분명 자신이 인형 같다며 연신 피부를 찌르고, 볼때기를 잡아 늘린 그 모델인 줄 알았던 재벌가 아가씨의 근처에 서있던 외부 반입 로봇이구나. 아하.

         

         어… 그렇다는 건 이제 설마 겨우 정신 차린 자신을 질질 끌고가서 손해 배상 절차에 대해 안내하고, 전자 계약서를 쓰게 만들고, 자기 급여 통장에 빨대를 꽂아서 매달 일정 금액을 차압하는 과정만 남은 건가?

         

         나, 아직 임플란트 할부도 다 안 끝났는데…? 적어도 고정 금액 납부가 아니라 비율 납입 방식으로 해주시면 안 될까요? 네??

         

         – ……대체 무슨 오해를 하고 계시기에 표정을 그렇게 자주 바뀌시는 건지 모르겠으나, 저는 단순히 귀하를 간호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대기 중이었습니다만. –

         

         “저… 정말요!?”

         

         밑도 끝도 없는 비관의 늪에 혼자 빠진 베서니의 반응을 ‘평균적인 여성 회사원 성격’으로 분류해서 저장 겸 분석을 하던 제로가 기가 찬 것처럼 오해를 정정해주었다.

         

         언젠가 생체형 안드로이드 모델도 수중에 넣고 나서, 아나스타샤를 보필하는데 표면적으로 두를 자연스러운 인격 모형을 빚는데 쓸 표본 중 하나로 삼으려 했던 걸 재고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며.

         

         반면 베서니는 역시 어중간한 중간 관리자와는 달리 진짜 높으신 분들은 베푸는 아량이 남다르다며 새삼 감동하고 있었다.

         

         저기 보도부 경리님은 영수증 제출이 2분만 늦어도 왜 그 시간대 건 정리 다 끝났는데 이걸 이제야 가져오냐며 죽일듯이 노려봐서 근처에 가기도 너무 무서운데 말이다.

         

         …물론 보통 일주일에 두 번을 늦는 자신의 죄도 꽤 크긴 하겠지만! 원래 현장 말단의 일이라는 건 교통 체증처럼 위에서 밀리면 한도 끝도 없이 늘어지는 법인데 너무하지 않나.

         

         거기에 로봇의 대응이 유연하고 부드러운 것도 좀 보라.

         

         과연, 부자들은 밥 먹는데 쓰는 포크 하나조차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더니 이런 일개 드로이드에 인스톨하는 인공지능마저 세련된 집사 같은 녀석으로 집어넣는 모양이다.

         

         방송국에 있는 경비 드로이드의 내용물은 사원증 검사에 불응한 직원 팔이 부러지는 안전 사고가 작년 500건쯤 누적된 이래 대대적으로 교체되어서 숫제 빈 깡통이나 다름없는데… 정말 신기하다.

         

         이 정도면 모르긴 몰라도 저기 주조정실에 있는 방송국 메인터넌스 총괄 AI랑 비슷한 레벨이 아닐까?

         

         “저기, …드로이드 씨?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데 일단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 저는 그럼 이만 가봐도 아무 문제없이 괜찮은 건가요?”

         

         – 제 호칭은 미스터 틴캔이라 불러 주시면 충분합니다. 해당 호칭을 신뢰하시는데 문제가 있으실 것 같다면 제로라고 칭하셔도 무방하다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현재 방송국 전체가 공격받고 있는 상황이므로 함부로 외출하시는 건 절대 추천 드릴 수가 없군요. –

         

         뭐야, 기계류 별명이 깡통인 건 그냥 여기도 마찬가지였냐고요.

         

         얼떨떨한 감상과는 별개로 그래도 나른한 잠기운을 떨쳐내고 얼추 재부팅에 성공한 그녀의 머리는 새로 들어온 단어들을 매섭게 곱씹고 있었다.

         

         방송국이 공격받아? 이게 무슨 질 나쁜 농담이지.

         

         …잠깐만, 진짜 사이버웨어에 사내 긴급 메시지가 잔뜩 와있네? 혹시 꿈? 아니면 몰래 카메라??

         

         연예인 몇몇이 촬영 중에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후로 우리 예능국에서 그쪽 장르 프로그램 촬영은 영구 금지당했을 텐데.

         

         그러니 홀로 거듭하는 고민이 더욱 깊어지기 전에, 더 많은 정보를 얻고자 사내 게시판에 들어간 베서니가 지금 최고 시청률을 찍은 아침 뉴스를 비롯해 자기 담당 아나운서이자 가족이나 다름없는 에린 스컬리가 인질로 잡힌 상태라는 걸 알게 된 건 일종의 필연이 아니었을까?

         

         [ 들으라, 시민들이여. 폐쇄 도시라는 선례가 버젓이 있는데 겨우 발각되지 않으면 그만인 느슨한 인공지능 개발 규제 법령으로 연구를 제한하는 걸로, 엘리시움이나 엑사테크 같은 대기업들이 가져올 인류의 재앙을 막을 순 없다.

         

         놈들은 이미 안에서부터 인공지능에게 지배당하고 있다! 우리는 바깥으로 나온 그들의 첨병 중 하나로부터 지구와 인류 문명을 다시 한 번 초토화시킬 운석이 다가오고 있음을 확인……. 진짜 미안한데, 너네 머저리들은 기껏 이런 주장을 펼치면서 화면에 띄울 보충 자료도 안 가져왔냐? 응?? ]

         

         [ 진짜 씨발, 스컬리 이 미친 년은 얌전히 대본만 좀 처읽으라니까 왜 자꾸 잘하다 옆길로 빠져!! 그냥 계속 그 톤으로 쭉 읽으라고!! 으아아악!!! ]

         

         당사자야 성실히 협조하면서도, 동시에 방송을 좆으로 알고 찾아온 테러리스트들에 아슬아슬하게 지랄한다는 기예를 여전히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었지만.

         

         가까운 사람일수록 안 좋은 가능성을 더 걱정하기 마련이라고, 베서니의 눈에는 아무래도 거칠게 붙잡혔던 티가 나는 머릿결과 얼굴에 번진 핏자국이 더 크게 들어왔다.

         

         지랄맞은 방송국 생활을 벌써 10년 가까이 같이 헤쳐 나온 그녀가 위험하다.

         우리 언니, 어쩌다 종이에 손이라도 베이면 6초 이내로 연고를 발라줘야 간신히 화를 참는데 이마가 저렇게 깊게 찢어진 상태로 따끔거리는데 일하는 게 얼마나 거슬릴까.

         

         “저, 저 죄송한데 당장 급하게 좀 저기 가봐야겠어요! 좀 비켜주세요!!”

         

         – ……. –

         

         테러리스트의 정확한 위치와 규모도 불명이라는 마당에 무사히 거기까지 어떻게 도착할지.

         자기가 도착해도 인질 숫자에 +1이 되는 것 외에 어떤 추가 영향이 있는지 어떤 식으로도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마음을 이미 먹은 것 같은 베서니의 태도에 제로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왜? 해당 기기의 상황 대응에 할당하는 메모리와 연산 장치를 플라자에 위치한 중앙 시스템으로 변경하느라.

         

         얘기가 괜히 이렇게 복잡해질라, 이래서 차라리 그녀가 계속 기절해 있었으면 편했겠으나.

         

         또 한편으로는 아무리 주인의 배려이자 명령이라 해도, 현재 즉각 전력화가 가능한 드로이드 객체 두 기 중 하나를 이 상황에 놀려 두는 게 내심 자원 낭비라 생각했던 제로는… 이게 그리 나쁜 제안이 아니라 여겼다.

         

         심도 스캐닝 기능 때문에 무거운 고용량 배터리를 장착하긴 했어도 애당초 아나스타샤의 경호 목적으로 운용하던 드로이드가 무장이 가벼울 리 없지 않은가?

         

         해당 환자를 적극 간호(Care)하라는 명령도 성실히 따르고, 호위 병력도 다시 원래대로 증강하고.

         

         전투에 완전 문외한으로 보이는 일반인을 에스코트하는 만큼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조건이 있어도 꽤 괜찮은 액션이 되리라는 계산이 섰다.

         

         …철컥!!

         

         – 그렇다면 마침 ‘저쪽’에서도 급히 뉴스 룸으로 향하고 계시니 중간 포인트에서 합류하면 되겠군요. 제가 신호하긴 전까지는 절대 함부로 복도 모서리를 돌지만 않으시면 됩니다. –

         

         “네? 네에??”

         

         어벙하게 되물으면서도 상황이 급박한만큼 그녀는 앞서 나가는 드로이드의 등 뒤편에 냉큼 따라붙었다.

         

         헌데 그냥 비키는 게 아니라 목적지까지 호위를 해 주신다고?

         

         친절은 정말 감사한데… 이러면 그냥 제로 씨에게 고맙다고 하면 되는 걸까, 아니면 그 아나스타샤 아가씨에게 감사장을 적어서 송부해야 맞는 걸까. …기껏 용서받아 놓고 재차 바보같이 얼굴 들이밀면 사서 매 맞는 결과가 되지는 않을까?

         

         베서니가 처음 맞닥트리는 복잡 미묘한 상황에 있어서 사회인이 취해야 할 대처에 지독한 딜레마를 겪고 있거나 말거나.

         

         척척 길을 인도하기 시작한 제로는 정말 방송국 특유의 소란스러움 싹 사라진 을씨년스러운 복도를 거침없이, 때로는 조심스럽게 주파해 나갔다.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코너에서 가만히 있는다던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버튼을 누르지 않고 물끄러미 정지하는 층을 확인하다가 계단을 통해 한 층 정도 내려간다던가.

         

         인공지능이야 입력된 수칙과 데이터에 따라 일정하게 행동한다지만, 이 엄청 능숙하고 프로페셔널한 전문가스러운 동행 로봇의 존재는 굉장히 믿음직스러웠다.

         

         그렇지만 또 테러리스트의 그림자도 안 보이는 걸 보면 그냥 혼자 아무런 대책 없이 뛰쳐나갔어도 어찌저찌 가까스로 뉴스 룸 언저리에 도달했을 것 같기도 하고….

         

         

         “…어이, 팔라딘님이 여기 위층은 내려오는 것만 틀어막고 굳이 우리가 직접 올라갈 필요는 없다고 하셨어. 까먹었냐? 이럴 거면 아까 연락이 끊긴 애들 쪽으로 가 보는 게.”

         “하~ 너야말로 진짜 아무것도 모르냐? 연예인 대기실은 대부분 고층에 있다니까?? 어차피 지원팀이 외부 접근을 막고 있으니 우리 둘쯤은 포교문 낭독 내로 잠깐 즐기고 와도 안 늦어!”

         

         

         “힉……!!”

         – …실례하겠습니다. –

         

         감히 시건방진 생각을 했던 게 잘못이었을까.

         방금 그들이 타고 내려온 보조 승강기를 이용하려는 듯 누군가가 떠드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모습을 어떻게 보기도 전에, 제로가 그녀를 잡고 가까운 비품 창고 안으로 뛰어들어서 실체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얘기하는 내용만 얼핏 들어도 호의적인 누군가나, 자신처럼 공지를 무시하고 나온 방송국 직원이라는 상상은 도저히 들지 않았다.

         

         묵직한 발소리와는 또 따로 절그럭거리는 소음이 연상시키는 건 역시 다수의 총기.

         

         따라서 이때까지만 해도 베서니는 두근거리는 가슴팍을 부여잡고, 조용히 해달라며 집게손가락을 세우는 제로의 제스처를 이렇게 여겼다.

         

         ‘아, 위험한 놈들이 오니까 여기서 잠깐 숨어있다가 나가는 걸로 무사히 넘기려나 보다.’ 라고.

         

         하지만 불행히도 제로의 경호 철칙은 일반적인 경우와는 좀 괴리가 심했다.

         

         일반적인 인공지능이 도출할 최선의 수는 절대 아니었으나. 모시는 이에게 불편을 강요하고, 어디 구차하게 숨게 만드느니 자신이 적극적으로 위협의 근원을 제거하면 될 노릇이 아닌가?

         

         변수에 항상 ‘아나스타샤의 기분’이나, ‘아나스타샤의 수고로움’을 포함하는 제로의 경우엔 대개 적극성이 남다르게 발현한 결과로 이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

         

         위에서 저것들을 상대해야 할 다른 사람들에 대한 걱정으로 베서니의 죄책감이 치솟은 건… 상당히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에?’

         

         턱.

         

         꺼내진 총구가 닫힌 문짝에 수직으로 밀착.

         인간처럼 전신의 근육이 곤두서듯 각 관절부에 압력이 차오르는 게 공기를 타고 전해지고.

         흡사 건너편 공간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드로이드의 눈에 안광이 번뜩이는 걸로 준비는 끝났다.

         

         형상화된 죽음이 아가리를 벌리고 기다리는 광경을 이렇게 가까이서 볼 기회가 그녀의 생애 언제 또 있었을까?

         

         마음껏 활개치는 새로운 환경에서 스스로를 영원한 포식자라 착각한 피식자가 멍청하게 걸어 들어오기까지 3…… 2…… 1….

         

         투쾅—!!

         으드득!!!

         

         “아?”

         

         한껏 긴장한 스탠바이 상태에서 어느 순간 갑자기 녹화가 시작되듯이.

         미리 큐 사인을 받지 못한 배우는 단말마조차 지르지 못하고 추레하게 죽어 나갔다.

         

         방아쇠가 당겨지고 문짝 한가운데가 터져 나가고.

         

         머리와 몸을 잇는 얇은 연결 부위가 도려지듯 대구경 탄환에 잘려 나간 탓에, 비스듬히 허공을 회전하는 동료의 얼굴을 멍하니 보던 생존자가 구멍에서 튀어나온 강철 팔에 잡히기까지 약 0.8초.

         

         가상 세계에서 몇천 번이고 싸워봤기에 이 사태를 일찌감치 내다본 누군가의 예측처럼.

         

         야심찬 계획의 첫걸음을 성공한 아르카디아 결사대는 목숨을 버릴 준비야 되어있을지 몰라도, 방송국에 어딘가에서 뜬금없이 마주치기엔 지나치게 높은 레벨의 적과 싸울 준비는 되어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게 가지 말자니까.”

         

         볼품없는 유언을 남기고 퍼석!

         해저드 슈트 곳곳에 문 파편이 박힌 남자는 간신히 상황을 인지하자마자, 무자비한 손아귀 압력을 견디지 못한 채 반투명한 안면부에 시뻘건 무언가를 흩뿌리며 침묵했다.

         

         다행히 슈트가 외부 압력에는 뛰어난 인장 강도를 지니고 있어 내용물이 빠져나오진 않았지만… 가끔 딥 웹에서 송신되는 질 나쁜 영상보다 훨씬 생생한 광경을 직관한 베서니의 이성은 자연스럽게 대혼란에 빠졌다.

         

         져서 험한 꼴을 당하는 것보단 무조건 이기는 게 낫지만… 어라?

         검정, 주황, 어디 빨간 건 피고, 하얀 건 뼈와 척수액. 노란 건 옷조각이랑 골수…… 사람이란 건 자세히 나누면 꽤 색깔이 다양하구나. 와아.

         

         – 클리어, 안일한 잔챙이였군요. 계속 이동하겠습니다. –

         “………엄마아.”

         

         – 미스 베서니? –

         

         그러니 혼이 나간 채로 병아리처럼 무서운 보호자 겸 살인 로봇을 따라 움직인 그녀가. 약 3분 뒤에 겨우 아나스타샤 일행과 합류하자마자 울면서 달라붙은 건, 오히려 잘 참았다고 칭찬해줘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음, 아님 말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일반인 감성을 아직 학습 중인 제로 어린이.

    면목 없이 또 지각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사람 입에서 짐승 울음소리가 나오는 컨디션으론 연재 일을 지키는 것도 영 쉽지 않다고 감히 핑계를 중얼거려 보겠습니다 흑흑.

    에피소드를 마무리하고 편안히 쉬고 싶은 만큼 열심히 쓰고 있다는 점만 믿어 주십시오! 예….

    항상 재밌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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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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