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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9

   심문관이 여기에 오고 있다는 문구를 본 순간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것이었다.

   

   왜? 왜 걔네들이 여기에 오는 건데?

   

   걔네들이 버로우 가문에 방문할 이유가 없잖아.

   

   교회의 심문관이라는 것은 교회에서 사용하는 해결사들이다.

   

   이단에 대한 탄압을 기원으로 하는 심문관들은 양지에서 이루어지지 못하는 여러 더러운 일들을 수행하지.

   

   겉으로 드러나선 안 될 일들을 수행하는 자들답게 교회에 대한 충성이 깊은 자들만이 얻을 수 있는 직위였지만 지금은 약간 다르다.

   

   충성심이 깊은 자들을 심문관으로 임명하는 게 아니라 애초부터 교회에서 충성심이 깊은 자들을 키워서 심문관을 만들어 내거든.

   

   별 이상할 건 없지. 지금의 교회는 성녀조차도 직접 만들어 내는 녀석들이니까.

   

   어쨌든. 이 녀석들이 보내지는 경우는 대부분 더러운 일을 수행할 때뿐이다.

   

   협력자가 영원한 침묵을 지킬 수 있도록 도움을 주거나 다소 튀어나온 의견을 가진 이를 조용하게 만들거나 혹은 그 명칭의 기원처럼 이단을 심문할 때에나 움직이는 녀석들이란 말이다.

   

   그런 녀석들이 왜 버로우 영지에 오는 거지?

   

   버로우 가문의 이상을 교회 측에서 파악하지 못했음은 분명해.

   

   교회의 주교인 요한과 교회에 여러 연줄을 지닌 이사벨이 교차해서 검증한 사안이니까.

   

   그러니만큼 교회에서 이 영지에 관심을 가질 이유는 아무것도 없을 텐데 대체 왜.

   

   아니. 아냐.

   

   이유는 나중에 생각해도 괜찮아.

   

   내가 고민해야 할 건 심문관의 출현에 어떻게 대응할지야.

   

   심문관이 버로우 영지에 도달하게 된다면 곤란해지는 것이 한 둘이 아니다.

   

   우선 내 정체를 들킨다는 것부터가 문제다.

   

   난 아직 교회의 세력에 대항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지 못 했어.

   

   이런 상황에서 내가 사도라는 걸 들키게 된다면 언젠가 할배가 말했던 것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겠지.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버로우 영지에서 있었던 일이 들키게 되면 무슨 희생이 생겨날지 몰라.

   

   거기에 어쩌면 날 도와주었을 뿐인 페이비와 요한에게 피해가 갈 가능성도 충분히 있어.

   

   아아아. 젠장. 머리 아파!

   

   <여아야. 무슨 일이더냐.>

   ‘…좀 좋지 않은 일이 생겨서요.’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할배가 침음성을 흘렸다.

   

   <귀찮게 됐구나.>

   ‘진짜로요.’

   

   죽을 위기를 넘겼는데 또 다시 위기가 찾아오는 게 말이냐고!

   

   더 짜증나는 건 이게 악신에 의해 생긴 위기가 아니라는 거야!

   

   대체 왜 주신의 사도인 내가 주신 교회의 사람들을 두려워해야 하는 건데!?

   

   역사상 최초로 생겨난 주신의 사도면 어화둥둥 해주면서 받들어 모셔야 하는 거 아냐?!

   

   이게 다 개허접 무능 쓰레기 주신 때문이야!

   

   넌 대체 왜 주신이란 놈이 자기 신도들 관리도 제대로 못 하는 거야?!

   

   네가 그러고도 신이냐! 네 의지와 반대되는 행동을 하면 어떤 식으로든 제제를 가해야 할 거 아냐!

   

   설마 싶어서 물어보는 건데 다 늙어빠져서 퀘퀘한 냄새나는 틀딱 할배들한테 말 걸기 싫단 이유 때문은 아니지?!

   

   페도 로리콘 변태 새끼의 자존심이 그런 할배들이랑 연관되는 걸 거부하는 거라면 나 진짜로 화낼 거야!

   

   내가 목숨을 걸고 네 본성을 이 세상에 퍼트리고 말 거라고!

   

   <여아야. 듣고 있느냐?>

   ‘…네? 뭐라 그러셨어요?’

   <하아. 이 일은 너만의 문제가 아니지 않으냐. 일단 바깥으로 나가 다른 이들에게 알리는 게 우선이라 본다만.>

   

   할배의 말은 분명 옳은 말이었다.

   

   이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더욱이 방안에 대해 고민할 때도 혼자보다는 여럿이서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 낫겠지.

   

   창을 닫고서 몸을 일으킨 나는 오른 손에 메이스를 쥐고서 나크라드의 뒤통수를 살폈다.

   

   “이제 만족을… 뭐냐! 시키는 대로 다 했지 않나! 잠시! 멈!….”

   

   이렇게 때리면 대충 기절하겠지?

   

   *

   

   루시가 던전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 페이비는 그 앞에 무릎 꿇은 채 계속해서 기도를 올렸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 주신께 루시를 지켜 달라 부탁하는 것밖에 없었기에.

   

   무언가를 먹거나 마시라는 권유도. 쉬라는 권유도. 다른 그 모든 것도 무시하고서 자리를 지켰다.

   

   이제는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조차 알 수 없던 그 때에.

   

   던전의 문 너머에서 따스한 기운이 흘러 나왔다.

   

   그를 피부로 느끼자마자 페이비가 다급히 눈을 뜬다.

   

   거기에 서 있는 것은 분명 루시였다.

   

   찰랑거리던 붉은 색 머리카락은 피가 묻어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고.

   

   머리에서 흐른 피가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있었으며.

   

   입고 있는 갑옷은 여기저기가 찌그러져 원 상태를 찾기도 어려웠지만.

   

   던전의 입구 앞에 서 있는 것은 분명.

   

   루시였다.

   

   그녀는 어깨에 메고 온 두 인형을 짐짝마냥 바닥에 내던지고는 페이비와 눈을 마주하더니 씨익 웃음을 지었다.

   

   “뭐야. 허접 성녀. 날…”

   “영애님!”

   

   페이비는 그 미소를 보자마자 루시에게 달려들어선 그녀를 껴안았다.

   

   루시가 피범벅이라 자신의 옷이 더러워 질 수 있음은 신경 쓰지 않았다. 벅차오르는 마음이 너무도 커서 그런 걸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세요?!”

   “아니.”

   “별 것 아니라더니 한참이나 돌아오질 않으셔서!”

   “잠.”

   “아아! 정말!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영…”

   “야! 돼지 성녀! 부담스러우니까 좀 떨어져 줄래?!”

   

   루시가 한바탕 소리를 내지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페이비는 자신이 얼마나 무례한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방금 전까지 악신의 사도와 싸우다 오신 분께 이 무슨 실례를!

   

   “죄송합니다! 영애님!”

   “…하아. 그건 됐고. 다른 허접들은 어디에 있어?”

   “다른 분들은…”

   “뭔데? 고용주님? 급한 일이야?”

   

   페이비가 답을 하려고 할 때에 갑자기 뒤 편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카리아. 루시를 따르는 정보원이 문 너머에서 얼굴을 내민 것이다.

   

   “응. 아줌마의 혼기만큼 급한 일이야.”

   “…내 혼기는 딱히 안 급하거든?!”

   

   비수에 찔린 듯 목소리를 높이는 카리아와 아무튼 됐으니 사람들을 모아오라 이야기하는 루시의 가운데에서.

   

   대화에 끼어들지 못한 페이비는 슬며시 고개를 돌려 루시가 데리고 온 이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한 쪽은 자칼 버로우.

   

   버로우 가문의 공자이자 타키리의 사도가 내민 유혹에 넘어가버렸으나 루시에 의해 한 번의 기회를 더 얻게 된 사람.

   

   다른 한 쪽은.

   

   “풉?!… 콜록! 콜록!”

   

   악신의 사도를 마주한 페이비는 너무도 놀란 나머지 사래가 들려서 몇 번이나 헛기침을 했다.

   

   저게. 저게 도대체 무슨.

   

   어느새 페이비의 뒤로 다가온 카리아는 페이비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주면서 루시에게 따지듯 물었다.

   

   “고용주님. 저건 대체 뭔 꼴이야?”

   “내가 이 변태 멀대의 생각을 어떻게 알아?”

   “…이게 개인적인 취향이라고? 진짜?”

   

   카리아는 바닥에 널부러진 나크라드를 살피다 못 볼 꼴을 봤다는 듯 고개를 저으면서 방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방 안에 침묵이 자리했다.

   

   페이비는 방금 전 실수 때문에 루시의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고.

   

   루시는 뭔가 생각할 것이 있는 지 미간을 찌푸린 채 바닥을 내려다보고만 있었으니까.

   

   으으. 멍청한 페이비. 왜 당신은 기뻐야 할 재회의 순간까지 실수를 반복하는 건가요.

   

   덕분에 영애께 핀잔만 들었잖아요.

   

   하아. 돼지 성녀라니.

   

   …그러고 보면 영애는 다소 과장되게 이야기를 할지라도 없는 말을 하진 않을 텐데.

   

   어라. 저 혹시 살이.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어디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이 칼! 아가씨가 너무 걱정이 되어서!”

   

   페이비의 생각을 끊은 건 미친 듯한 달음박질과 함께 등장한 칼이었다.

   

   방에 들어오기 무섭게 온갖 호들갑을 떨던 그는 결국 짜증이 난 루시에 의해 진압 당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알새틴이 모습을 드러냈고.

   

   요한이 조용한 걸음으로 방에 자리했으며.

   

   숲의 주인과 공간술사가 그 뒤를 이었다.

   

   “프레테 그 변태는 할 걸 끝내고 온대.”

   

   그리고 마지막으로 카리아까지 모습을 드러냈을 때 루시가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허접 주신을 모시는 척 하는 쓰레기들의 개가 여기로 오고 있어.”

   

   *

   

   “진짜… 인지는 물어볼 필요 없겠네.”

   

   제일 먼저 목소리를 낸 건 카리아였다. 사람의 의중을 읽을 줄 아는 그녀는 내 말이 진실이란 걸 알아차리곤 한숨과 함께 요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주교님. 지금 버로우 영지 상황을 심문관이 본다면 어떻게 됩니까?”

   “흐음.”

   

   내 말을 의심하지 않는 건 요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미 내 말이 사실이라 판단내린 듯 바로 카리아의 물음에 답해 주었다.

   

   “타리키의 흔적을 못 찾아낼 리는 없습니다. 그럼 교회에 알리지 않고 행동을 한 저희를 추궁할 테죠.”

   “성가시게 되겠네요.”

   “그 이상일 겁니다.”

   “회유는?”

   “불가능합니다. 제압도 마찬가지. 심문관들을 상대로 승리할 순 있겠지만 놓치는 이가 나올 겁니다.”

   “하아. 그러면.”

   “저기.”

   

   빠르게 진행되는 대화의 와중에 페이비가 목소리를 내자 방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녀를 향한다.

   

   그 시선들이 부담될 법도 하거늘 페이비는 여느 때처럼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남아서 증언할게요. 그럼 버로우 공작가를 무고한 피해자로 만들 수 있고. 영애께 화살이 가는 일도 없을…”

   

   ‘안 돼요.’

   “안 돼. 허접 성녀.”

   

   “안 됩니다. 성녀님.”

   “그거 별로야. 성녀님.”

   

   페이비가 제안을 내밀기 무섭게 나와 요한. 카리아 셋이 함께 고개를 내저었다.

   

   “왜…왜죠?”

   “우선 성녀님께서 혼자 처리하기엔 일의 규모가 너무 크단 게 문제입니다.”

   “의심을 살 테고 뒤 편에서 조사가 이어지겠지. 그럼 귀찮아져.”

   

   직접 말하진 않겠지만 설령 페이비의 제안이 받아들여진다 하더라도 문제다.

   

   거짓된 성녀가 악신의 사도를 알아차리고 그걸 쓰러트렸다는 일을 교회에서 반기지 않을 테니까.

   

   도구에 자아가 생기려 할 때 녀석들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그럼 제가 앞으로 나서죠!”

   

   연속된 반박에 페이비가 어찌할 줄을 몰라하고 있을 때 문이 벌컥 열렸다.

   

   미와 변태의. 아니 미와 예술의 여신을 모시는 사도가 뒤늦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제가 이 일의 주도자가 된다면 아무 문제 없지 않겠습니까.”

   “…사도께서요?”

   

   페이비의 물음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준 녀석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방 한 가운데로 나섰다.

   

   “전 실제로 여신께 말씀을 듣고 이 곳에 온 것이니 어떻게 알았냐는 물음은 무용합니다. 또한 여태까지 쌓아온 실적이 있는만큼 제가 모든 걸 처리했다 해도 의심하지 않을 겁니다. 버로우 가문의 무고를 주장하는 것은 물론 저희 교단의 힘을 이용해 주신 교회의 개입을 막는 것도 가능하겠죠.”

   

   녀석이 하는 말에는 틀린 구석이 없었다.

   

   이 놈이 전면에 나선다면 많은 문제가 해결 돼.

   

   더욱이 중요한 것은 이 놈은 주신 교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단 것이다.

   

   심문관이라 하여도 다른 신을 모시는 사도에게 강하게 나설 수는 없으니 이 녀석이 뻔뻔하게 나서면 뒤로 물러나야 할 테지.

   

   “무엇 때문에 이 일을 교회에 들키고 싶지 않아하는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게 제일 깔끔하지 않습니까?”

   

   이게 진짜로 날 보자마자 달려들던 그 변태야?

   

   온갖 괴악한 소리를 지껄여서 날 경악시켰던 변태 새끼가 이렇게 논리정연하게 말을 할 수가 있다고?

   

   짐승이 사람 목소리를 내는 게 너무도 놀라워 경악을 하던 그 때에 카리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수고를 해준다면 그게 제일이긴 한데. 무슨 꿍꿍이야?”

   

   응? 꿍꿍이?

   

   “목숨을 구해주신 보은을 갚는 것이죠.”

   “헛소리 하지 마. 지금 네 앞에 있는 게 누군지 잊었어?”

   

   카리아는 상대의 몸동작으로 의중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그 능력은 내 속마음마저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지.

   

   그런 카리아가 날 선 목소리를 낸다는 건.

   

   뭐야. 이 녀석 그냥 감사를 드러내는 게 아니었어? 노리는 구석이 있었던 거라고?

   

   …아니. 아니 잠시만. 이 변태 새끼가 노리는 구석이라면 설마.

   

   “빨리 말해. 이 변태 새끼야. 시간 없으니까.”

   “음. 그것이 말입니다. 리나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들은 것입니다만 알른 영애께서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숲의 주인께 상을 주기로 했다 들었습니다.”

   

   야.

   

   얼빠여우.

   

   이 미친 년아!

   

   믿고 맡겨 놨더니 그런 걸 자랑하고 있었던 거냐!

   

   분노를 숨기지 않고 녀석을 노려보았더니 얼빠여우가 어색하게 시선을 피했다.

   

   했구나! 진짜로 말했구나! 이 답도 없는 변태 여우가!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저 녀석에게 달려 들어서 메이스를 휘두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아직은 그럴 수 없었다.

   

   여신의 사도가 말을 끝마치지 않았기에.

   

   “그 광경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영애께서 그를 허락해 주신다면 이 프레테. 무어라도 하겠습니다.”

   

   …

   

   하아.

   

   씨발 인생 진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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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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