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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9

    <279 – 승선티켓>

     

    티토소가는 금박이 씌워진 승선티켓을 만지작거렸다.

     

    “이거 말이죠. 배에 탈 때 티켓은 왜 주신 걸까요? 기념품이라거나?”

    “뭐든 간에 이유가 있겠죠. 일단 잃어버리지 마세요. 곤란해질 예감이 드니까.”

     

    아카디아는 좋지 않은 예감을 느꼈다.

    해상국가 피렌체 왕국 출신인 그녀는 배의 가치에 대해 다른 학생들보다는 정확히 알고 있다.

    이 크루즈선의 규모는 커도 너무 컸다.

    백 명 남짓한 학생들을 위해 사용하기에는 지나치게 커다랄 정도로.

     

    “아카디아 님은 전혀 즐기지 않으시네요. 모처럼 근사한 배에 탔는데!”

    “티토. 오고가며 목격한 승무원이 몇이나 되는지 헤아려본 적 있나요?”

    “전혀요?”

    “이백 명이 넘었어요.”

    “우와. 정말 많네요!”

    “저희가 머무르던 갑판에서만요.”

    “…여기 배, 갑판 말고도 엄청 넓지 않아요?”

    “이제 아시겠나요?”

     

    이유 없이 큰 투자를 하는 호인은 없다.

    적어도 상대가 재단이라면 더더욱.

     

    “이들은 지금 투자를 하고 있어요. 저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과분한 투자를. 그리고 거물들은 이런 투자금을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회수할 자신이 있죠.”

    “…저 이 배가 조금 무서워지기 시작했어요.”

    “이제 보이시나요? 제가 이 크루즈선의 시설을 함부로 이용하지 않고 있는 이유를.”

     

    잔뜩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 연신 끄덕이는 티토소가.

    포식자를 피해 덜덜 떠는 소동물처럼 웅크린 꼴이 불쌍하기는 했지만 신중함을 모르는 티토소가에게는 이 정도로 겁을 주는 편이 낫다.

    티토소가를 단단히 겁주고 조명 아래에서 티켓을 빤히 살펴보던 아카디아의 눈이 가느다래졌다.

     

    “티토. 승선티켓을 잠시 보여줄 수 있나요?”

    “여기요…”

    “역시 제 예상이 맞았군요.”

    “티켓에 뭔가 있는 건가요?”

    “숫자가 변했어요.”

    “네?”

    “티켓넘버. 탑승객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한 식별번호. 보통이라면 절대로 변해선 안 될 숫자가 제멋대로 변하는 승선티켓이 보통이라고 생각하나요?”

    “절대로 아니죠!”

    “아무래도 오크노디를 한번 찾아가야겠어요.”

     

    이대로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가는 속수무책으로 감당 못할 사태에 휘말릴 것 같다.

    아카디아는 그런 불길함을 감지했다.

     

    “아라. 인기 많은 영애님이네♡”

    “…매스각키 황녀전하.”

    “이거 볼래~?”

     

    매스각키가 어디선가 가져온 총 모양의 무언가를 쥐고 버튼을 달칵 눌렀다.

    투두두두두.

    맹렬한 기세로 총구에서 사출되는 지폐들을 보며 티토소가의 눈이 똥그래졌다.

     

    “우와아아! 돈이 막 나와요!”

    “킥킥. 머니 건이라고 부르는 거야♡ 재밌는 장난감이지~?”

    “…설마 진짜 돈은 아니겠죠?”

    “진짜 맞던데~? 이걸로 칵테일도 마셨는걸♡”

     

    아카디아의 불길한 예감이 한층 더 커졌다.

     

    “실례가 안 된다면 승선티켓을 볼 수 있을까요?”

    “흐음~? 승선티켓에 뭔가 있어~?”

    “보여주신다면 정보를 공유해드리죠.”

    “그럼 보여줄까♡”

    “화, 황녀님. 변방 출신에게 그렇게 선뜻 물건을 내어주는 것은…”

    “체다~?”

    “예, 황녀님.”

    “까불지 마♡”

     

    황녀의 한 마디에 체다 포테이토피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입을 닫았다.

    정말 범상치 않은 포스를 지닌 황녀님이었다.

     

    “황녀님.”

    “매스각키로 불러도 된대두~?”

    “이쪽의 승선넘버는 1의 자리로 시작하지 않았나요?”

     

    아카디아가 가리킨 승선넘버를 보며 매스각키 황녀는 산뜻하게 대답했다.

     

    “몰라♡”

    “자기 티켓인데도요?”

    “그런 거 몰라도 딱히 상관없는걸~?”

     

    하기야 제국황녀에게 승선티켓 따위, 없어도 재발급받으면 그만인 물건이었다.

    그게 평범한 티켓이었다면.

    아카디아의 태도에서 무언가를 느낀 황녀는 때마침 지나가는 승무원을 불러 세웠다.

     

    “거기 직원~?”

    “부르셨습니까, 손님.”

    “승선티켓을 재발급 받고 싶은데~”

     

    승무원은 아카디아의 손에 들린 그녀의 티켓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미 티켓을 소지하고 계신다면 가진 티켓을 소중히 다루시는 것을 권장해드립니다.”

    “저기~ 티켓이 없으면 무슨 일이 벌어져~?”

    “손님의 자격을 상실하며 저희 크루즈선의 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없게 됩니다.”

     

    매스각키 황녀의 입가에 머니건보다 재미난 장난감을 찾았다는 미소가 감돌았다.

     

    “재단도 꽤 놀 줄 아는 곳이네♡”

     

    직원을 돌려보낸 매스각키 황녀가 아카디아에게서 티켓을 가져가며 물었다.

     

    “그쪽 거랑은 뭐가 달라~?”

    “숫자의 자릿수부터가 다릅니다. 제 생각이 맞다면 이 숫자는 배에서의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필요한 재화, 아카데미의 포인트에 대응되는 수치입니다.”

     

    그 말을 들은 매스각키 황녀가 티켓을 빤히 들여다보면서 머니건의 버튼을 눌렀다.

     

    툭.

     

    지폐 몇 장이 사출되자 승선넘버가 룰렛처럼 빙빙 돌아가며 수치가 내려갔다.

     

    [아카디아, No.00100015]

    [매스각키, No.00008743]

     

    매스각키 황녀의 얼굴에 방실방실 떠올라있던 웃음이 눈에 띄게 경직되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굉장히 위험한 짓을 저질렀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 *

     

     

    “뭔가 줄지 않았어?”

    “뭐가?”

    “배에 탄 학생들.”

     

    파라솔 아래에서 햇볕을 즐기던 로지니의 말에 모래더미에 들어가 뒹굴던 샌드쿠커가 고개를 들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꽤나 많던 학생들이 듬성듬성해지기는 했다.

     

    “배 구경이라도 갔나보지. 이렇게나 큰 배니까.”

    “그런가. 날씨도 어두워지고 슬슬 들어갈까 하는데, 넌 어때?”

    “광합성을 즐길 수 없으면 선창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지. 같이 가.”

     

    샤워부스에서 모래와 소금기를 쫙 빼고 선내로 들어온 학생들.

    저마다 오락실이나 단련실 등 흥미가 가는 곳으로 흩어지는 학생들 사이에서 로지니와 샌드쿠커는 같은 곳으로 향했다.

    휴식을 즐긴 끝에 마법사가 갈 곳이라면 역시…

     

    “보드게임이지.”

    “보드게임이네.”

     

    휴게실로 향한 두 사람은 트럼프카드를 들었다.

    규칙도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보드게임과 달리, 룰도 간단하고 가지고 놀기도 쉬운 트럼프카드.

    한참 카드놀이를 하던 두 사람의 눈에 급히 복도를 뛰어다니는 학생이 보였다.

     

    “예의 없기는.”

    “아카데미라면 분명 벌점 감이었지.”

     

    성별의 차이를 떠나 품위 없는 동급생의 흉을 보며 고상한 카드놀이를 즐기는데 선박 어디선가 폭음이 한 차례 울렸다.

     

    “앗.”

    “바보.”

     

    카드를 놓친 샌드쿠커가 테이블 밑으로 고개를 집어넣었다.

    바닥에 떨어진 카드를 주워든 그가 깜짝 놀라 머리를 들었다가 쿵 하고 테이블에 박았다.

     

    “진짜 바보야?”

    “으윽…”

     

    머리를 쥐어싸매면서도 샌드쿠커는 어쩐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줄곧 의식하지 못했지만 그의 맞은편에 있던 로지니는 몸매에 자신감이 넘치는 수영복 차림에 가운 하나만 걸친 채 의자에 다리를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한데 모은 다리가 비스듬하게 기울어지며 종아리와 허벅지의 살이 눌린 부위가 눈을 현혹했다.

     

    “배, 배가 흔들려서 잘 잡히지가 않아.”

    “역시 바보네.”

     

    정말 바보일지도.

    도대체 나는 뭘 하고 있는 거람.

    괜한 자괴감이 든 샌드쿠커가 테이블을 짚고 밖으로 나오려는데 머리 위에서 무언가가 팔랑팔랑 손등으로 떨어졌다.

     

    “카드를 얼마나 떨어뜨린 거야?”

    “내 거가 아니야. 테이블 밑에 있었어.”

     

    샌드쿠커가 주운 카드를 테이블에 올렸다.

    로지니가 호기심을 보였다.

     

    “타짜가 숨겨둔 카드?”

    “원카드에 쓸 트럼프카드에 이런 터무니없는 단위가 적혀있을 리가 없잖아.”

     

    [+10000]

     

    이게 도대체 뭘까.

    마법사의 학구심으로 카드를 만지작거리던 로지니가 응? 하고 눈을 깜빡였다.

     

    [+9000]

     

    숫자가 줄었다.

    내가 방금 뭘 했지?

    카드를 만지작거리다가 승선카드를 담아둔 지갑에 담을 수 있나 잠깐 카드를 겹쳐 댔을 뿐인데.

    다시금 카드를 겹치니 숫자가 8000으로 줄었다.

    설마 하며 꺼내든 승선카드.

    두 카드를 겹치자 숫자가 더욱 줄었다.

    반대로 승선카드의 승선넘버는 명백하게 숫자가 늘어나있었다.

     

    [로지니, No.00102915]

     

    “샌드. 승선카드에 그거 대봐.“

     

    마찬가지로 실시간으로 숫자가 늘어나는 샌드쿠커의 승선넘버.

    두 사람은 깨달았다.

    이거, 단순한 승선넘버가 아니구나.

     

    “화폐일까?”

    “분명 포인트 비슷한 거겠지.”

    “어쩔 거야, 로지니?”

    “무조건 모으고 봐야지. 포인트 많아서 손해 본 적 없잖아.”

     

    포인트가 숨겨질 만한 곳을 열심히 찾고 다니니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포인트카드가 계속 발견됐다.

    소화전 속에서 +5000포인트가 나오고 신발장에서 +50포인트가 나오는가하면 불을 끈 방의 천장에 야광점수로 +10000포인트가 발견되기도 했다.

     

    “시설 이용료로 나가는 걸까?”

    “아마도.”

    “특실이라고 좋다고 쓰러 가던 애들도 있지 않았어?”

    “많았지. 우리는 짐이 가벼워서 방 먼저 안 잡고 갑판에서 놀아서 다행이었고.”

     

    그래도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포인트가 다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 걸까?”

    “생각해서 뭐해. 교관한테 물어보듯이 승무원한테 물어보면 알겠지.”

     

    적색마탑의 마법사 아니랄까 봐 화끈하게 승무원에게 걸어가서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는 로지니.

    승무원은 예의바르게 웃으며 대답했다.

     

    “추가 소모한 포인트를 징수 받습니다.”

    “어떻게요?”

    “징수메뉴판에서 항목을 선택합니다. 1000포인트를 내고 미리 메뉴판을 열람하시겠습니까?”

     

    호기심을 견디지 못한 샌드쿠커가 뒤에서 말했다.

     

    “반띵하자.”

    “반반으로 살게요.”

     

    징수메뉴판을 펼친 샌드쿠커와 로지니.

    두 사람의 손이 우뚝 멈췄다.

     

    ━━━

    채혈 1ml 당 10포인트

    홀서빙 1시간당 100포인트

    손가락 관절 부러뜨리기 1회당 100포인트

    이빨 뽑기 개당 1000포인트

    재단장학금 받기 10만 포인트

    정략결혼하기 100만 포인트

    ━━━

     

    즐거운 놀이기분이 싹 사라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와이히엠하이 재단은 위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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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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