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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

        

         비산한 핏방울이 허공을 수놓는다.

         벗겨진 마스크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더니 중력을 거스르지 못하고 바닥을 나뒹군다.

         

         오늘 하루동안 피와 시체를 너무 많이 봐서 충분히 무감각 해졌다고 생각한 정신이 헤집어진다.

         비수가 박힌 것처럼 가슴팍이 뜨겁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살아남기 위해 바로 라이플을 뽑아서 응사하는 게 맞다. 그렇지만 내 손은 이미 호레이쇼를 따라 오멘의 등을 잡아 끌고 있었다.

         

         “오멘—!!”

         

         “이 씨발 상도덕도 없는 미친 또라이들…!!”

         

         드가가가각—!!

         타당!! 탕…!!

         

         내 같잖은 힘이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는 모르겠다.

         쿵! 하고 쓰러진 오멘의 몸을 쏟아지는 총격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질질 끌어서라도 계단 밑으로 옮긴다. 권총만 내민 채로 응사하던 도미노도 일단 변절한 제압팀이 더 쫓아올 기색이 없자 몸을 낮춘 채로 대기.

         

         “후우… 후아…. 흐읍!”

         

         찌이익…!

         

         그 잠깐사이에 어깻죽지에 박힌 총알을 그는 망설임없이 잭나이프를 꺼내 제거해 버렸다. 흐른 피와 들이마신 약의 부작용 때문인지 벽에 기대고 앉아 있는데도 다리 쪽의 떨림이 보였다.

         

         “야이 새끼들아!! 좀 보고 쏴라, 보고!”

         “그래서 오멘이랑 녹턴만 쏘지 않았습니까? 어차피 데어데블이나 해커가 가지고 있을 게 뻔한데….”

         “그건 모르는 일이니까 피부만 쏘란거지…!! 진짜 여기서 다 죽고 싶냐?!”

         

         위쪽에서 놈들이 떠들거나 말거나, 당장의 안전을 확보한 우리는 쓰러진 오멘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천장을 향해 드러누운 그의 복부를 더듬는다.

         그가 가리고 있던 상처 근처로 갈수록 손에 끈적한 액체가 묻어났다. 아까 까지만 해도 이렇게 흥건하지는 않았는데…… 꼴에 용병이라고 정확하게 상처부위를 헤집어 놨다.

         

         두려움을 무릎 쓰고 시선을 조금 올리자, 근육질 흉부가 천천히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보였다. 아직 숨이 붙어있다…!

         

         “오멘!! 내 말 들려?! 살아있는 거지!”

         

         “………머리가 더럽게 아프군.”

         

         “…!!”

         

         과음한 다음날 아침, 숙취가 거슬리는 아버지 마냥 묵직한 대답에 기뻐한 것도 잠시. 그의 얼굴은…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미 입은 상처를 벌리는 데는 성공했어도, 저거노트 시술로 강화된 두개골을 뚫기는 무리였던 듯 이마와 머리 곳곳에는 찌그러진 탄환이 파묻혀 있는 게 보였다,

         볼도 깊숙하게 찢어져서 입을 열지 않아도 치아가 드러났고, 무너진 코로 숨쉬기가 버거운지 색색거리는 숨이 자꾸만 흘러나왔다.

         

         하지만… 가장 큰 상처는 따로 있었다.

         

         “……앞이 잘 안 보이는군. 저 새끼들이 불도 껐나…?”

         

         “…….”

         

         호레이쇼가 입술을 깨물었다. 안 그럴 수가 없었다.

         오멘의 날카로운 두 눈이 있어야할 자리에선… 새빨간 핏물과 살점만이 양옆으로 흘러내리고 있었으니까.

         

         시신경이 완전히 망가졌다면 에나마의 최고급 재생치료 서비스를 받지 않는 이상 단순한 치료 캡슐이나 혈청으로는 눈을 되찾기 힘들었다. 그리고 크레딧을 버는 족족 개조시술이나 장비에 재투자했을 이들에게 억 단위 크레딧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렇다면 결국 호텔에서 마주했던 그 흡족한 시선. 싸울 때 보여줬던 일렁거리는 눈. 딱딱하고 붙임성 없는 척하면서도 보여준 내면의 빛은 영원히 사라진 것이다.

         저거노트 시술을 받으면 과거의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육체로 태어나게 된다. 거의 몸의 모든 부분을 재구성해서 성장시키는 거니까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유일하게 그대로 남는 부분이 바로 눈이었을 텐데… 그걸 빼앗긴 그의 기분은….

         

         “…나중에 내가 끝내주는 의안으로 맞춰 줄게. 투시능력은 어때, 응…?”

         

         “……차라리 장님으로 사는 게 낫겠군. …쿨럭! 네놈이 갔던 시술소에 데려갈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

         

         이 상황에서도 농담할 기운이 남아있는 둘에게 나는 그저 감탄했다.

         한 때 느꼈던 죽음의 문턱 앞에서 나는 잠시나마 포기하고 눈을 감았었다. 반대로 죽기 직전까지 남을 원망하는 무법자도 죽여봤고, 목숨 구걸하는 축생의 최후도 지하에서 봤었다.

         

         …이게 이들의 강함이다. 살아가는데 어떤 장애물이 닥쳐와도 피하지 않고 마주할 각오. 내가 품었던 절박함과는 근원이 다른 빛남. 가장 암울한 환경에서 빚어진 진주.

         

         우우웅…!

         

         나지막한 진동과 함께, 호레이쇼의 임플란트가 다시 발광하기 시작했다.

         그래,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7번가로 향했던 제압팀이 가장 강한 화력과 빠른 일처리를 보여주긴 했어도 이쪽의 전력 또한 만만치 않다. 더군다나 밖에는 회수팀이 가져올 보물단지를 기다리고 있을 파라다이스도 있으니 시간은 우리 편이다…!

         

         쾅!!

         

         데어데블이 튀어 올랐다.

         방관자로 남을 생각 따위는 없는 나도 도미노처럼 울퉁불퉁한 계단에 엎드린 채, 끝자락에 라이플 총구를 거치했다. 이 새끼들이 무슨 작정인지는 몰라도, 메가 코프를 상대로 뒤통수를 치려 한 대가는 끔찍할 것이다.

         

         – 여기는 귀환중인 회수팀!! 지금……! –

         

         “그건 절대 안 되지…!!”

         

         졸렬하게 탄도방패를 앞세워 포위망을 유지하던 적들의 대장이 옆에 있던 상자를 자랑스럽게 우리 쪽으로 걷어찼다. 그 손에는 불길하게 생긴 기폭 장치가 쥐어져 있었으니.

         데어데블의 녹광이 가득했던 지하실에 다른 광원이 추가되었다. 거기서 나타난 건… 위험할 수준의 스파크를 휘감은 기다란 코일과 거기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여러 부품들.

         

         ““!!””

         

         구조요청을 마치려던 나나 적을 분쇄하려던 호레이쇼보다 문명에 재앙을 일으키는 빨간 스위치가 먼저 눌러졌다.

         

         딸깍…!

         ………————!!

         

         “씹…!!”

         

         벌이 날갯짓하는 소리와 함께 천지가 무너진다.

         새하얀 빛과 동시에 바닥에 달라붙어 있던 내 몸을 밑으로 날려버리는 충격파가 발해졌다.

         

         낙법을 취하고 싶어도 이렇게 계단에서 굴러 떨어질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

         손으로 머리라도 가리려 했으나 관자놀이가 모서리에 부딪히면서 시야는 암전. 금속음이 울리는 걸 보면 놓친 라이플도 주인과 같이 굴러 떨어진 것 같다.

         

         EMP(Electro Magnetic Pulse : 강력 전자기 파장)… 진짜로…?

         이 미친 새끼들이 통신채널 틀어막겠다고 초가삼간을 태워…?! 이런 짓을 하면 차폐 대책이 안 돼있는 전자장비들은 전부 타버려서 그야말로 난리가 날 텐데….

         

         “윽?!”

         

         내 얼굴을 향해 후레쉬… 아니, 용병들의 총에 달린 전술 조명이 비춰졌다.

         머리를 부딪친 충격으로 인해 시야가 깜깜해진 줄 알았더니, 지하통로의 조명이 전부 나가서 착각했던 거였다.

         

         빠각!!

         

         “커헉…!”

         

         “!! 도미노!”

         

         위쪽 층계에 간신히 매달려 있던 도미노가 군홧발에 차여서 내 옆으로 떨어졌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그 행패를 보고 권총을 뽑아 들려 했는데… 이미 촘촘하게 겨눠진 총구에 나는 손을 홀스터 근처에서 천천히 손을 치웠다.

         

         오멘은 중상, 도미노도 거의 전투불능. 그래도 아직은…!

         ……잠깐, 호레이쇼는?

         

         누구보다 사납게 움직이던 그가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자 마찬가지로 이 밑까지 떨어진 녹색 인영이 보였다.

         망자들을 집어삼키는 심연처럼, 시신이 안치되는 관처럼 어두운 통로에 그는 누워있었다.

         

         “아….”

         

         전자기 펄스에 직격 당한 내부회로는 발생한 전류에 의해 물리적으로 타버린다.

         그럼 몸 주요부위에 임플란트를 도배해 놓은 인간은 과연 어떻게 될까? 하물며 급소나 다름없는 뇌 근처에 회로까지 있다면…?

         

         “…….”

         

         곧 무너질 잿더미처럼 그을린 상태로, 호레이쇼는 움찔움찔 경련하고 있었다.

         중간에 손톱으로 바닥을 긁는 걸 보니… 불행 중 다행이다. 머리칼 자체가 탄화 되었는지 첨단으로부터 가루가 조금씩 떨어졌지만, 어쨌거나 살아있었다.

         

         그리고… 살아있으면 기회도 있다.

         

         “메가 코프를 엿 먹이고 대체 어떻게 살아가려고…?”

         

         “…회수팀 해커 씨가 능력은 있는데 눈치는 없네. 당연히 다른 메가 코프를 위해 일하는거 아니겠어? 에나마 코퍼레이션에서는 데이터 가격을 억 단위로 부른 데다가 폭탄까지 지원해줬지. 배포부터가 다르지 않나?”

         

         성공을 확신한 듯 쓰러진 회수팀을 살피던 용병에게 말을 걸자 어처구니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근시안적인 새끼들. 파라다이스 사가 십억 크레딧은 족히 박았을 작전에, 겨우 폭탄 하나와 공수표로 재를 뿌려보려는 심보를 저렇게 포장하다니.

         

         “…당신들, 통신을 차단했어도 어차피 우리가 돌아가기전에 통제선 바깥으로 나가면 파라다이스한테 다 죽어. ……뭐, 데이터를 잘 가지고 돌아가도 실험용 쥐 신세겠지만.”

         

         “……예쁘장한 섹스로이드처럼 생긴 주제에 말이 꽤 맵네. 시간이 없는 게 참 아쉬워…!”

         

         겨눠진 위협은 그대로인 채 용병의 손이 당당하게 내밀어졌다.

         

         “메모리 카드. 파라다이스에서 준비한 건데 당연히 멀쩡하겠지? 빨리 찾아서 내놔.”

         

         “하…! 건네 주면 죽일 게 뻔한데 내가 왜….”

         

         탕!!

         

         “그륵…!!”

         

         “!!”

         

         건틀릿에 맞은 총알이 운 좋게 아무도 없는 곳으로 튕겨 나갔다. 하지만 그 작은 충격에도 오멘은 피가래 끓는 소리를 흘렸다.

         

         “이건 협상이 아니야. 너는 그럴 위치도 안 되고.”

         

         “…….”

         

         사고가 공회전 하고 입안에 비릿한 쓴맛이 맴돈다.

         활로가 안 보인다. 이번에는 내가, 그나마 멀쩡한 내가 뭔가를 해야 하는 순간인데 무수한 오답지만 유령처럼 부유한다.

         

         …언제 훔쳐온 건지 푸른 주사기를 몰래 꺼내든 도미노와 눈이 마주쳤다. 부정의 의미를 담아 눈을 깜빡여 주었다. 만신창이인 환자가 뭘 하겠다고….

         

         까드드득!!

         

         “나는…! 이런 경사스러운 날에 뒤지려고 살아오지 않았다고…!!”

         

         바보 같은 환자가 또 있었다.

         손톱이 깨지거나 말거나, 악에 받친 호레이쇼가 억지로 바닥을 긁으며 몸을 뒤집었다.

         

         “…데어데블. 좆 같은 임플란트나 마구 박아 대더니 꼴 좋군. 옐로우 출신 떨거지들이 어디서 시험적인 시술 좀 받았다고 나대니까 이렇게 되는 거다…!”

         

         “지랄은! 그러는 니는 시민권 색깔이 밥 먹여줘서 이중계약이나 하고 앉았냐…?!”

         

         총구가 빙 돌아 자신을 향했는데도 그는 당당하게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절반은 기계로 이루어진 놈이 EMP에 쳐맞고도 살았으면 운 좋은 줄 알아야지 지가 불사신인줄 아는 모양이다.

         

         더 시간을 끌면 이들은 그냥 모두를 죽이고 시체를 수색할 것이다.

         적들이 원하는 건 더스크의 데이터, 내가 바라는 건… 회수팀의 생존.

         

         ……하.

         호레이쇼… 분명 기브 앤 테이크라고 했지…? 저울의 균형이 맞지 않다니 어쩔 수 없다. 처음부터 내가 내밀 수 있는 물건은 정해져 있었다. …남이 짜 놓은 판에 순순히 승복하는 건 내 방식도 아니었고.

         

         동물한테도 배울 점은 있다더니, 내가 실천하게 될 줄이야.

         

         떨리는 손을 재킷 안쪽으로 집어넣는다. 방아쇠를 당기려던 변절자들도 내 행동을 보고 움직임을 멈췄다.

         마지못해 꺼내든 메모리 카드를 보고 놈들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한 걸음, 두 걸음. 찬란한 미래를 보장해줄 선물에 시선이 쏠린 사이 데이터를 전송한다.

         불안하게 손과 다리를 떨다가… 바로 지금…!!

         

         “아…!!”

         

         “?! 이 얼빠진 미친 년이—!!”

         

         손에서 예쁘게 미끄러진 메모리 카드가 바닥에 떨어지고, 헛디딘 워커화가 무참하게 밟아서 부숴버린다. 코앞까지 다가왔던 억 단위의 크레딧이 산산조각나는 광경에 모두가 경악한다.

         

         철컥…!

         

         그 사이, 뽑아 든 피스메이커를 내 머리에 가져다 대자 이게 무슨 짓이냐는 듯 얼빠진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무기를 꺼낸 시점에서 총 한 두발 정도는 맞을 줄 알았는데 시작이 좋다.

         

         “……이제 추출한 데이터는 내 머릿속에만 있으니까, 나도 같이 데려가. 대신… 이 세 명은 살려주는 조건으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기적인 자애. 결과는 슬플 수도 있지만 저는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두 편 쓰려다가 실패해서 애매하게 잘렸습니다. 죄송합니다…!
    게다가 댓글창에 날카로운 지적과 추리가 난무해서 너무 무섭습니다! 재밌고 진지하게 읽어주시는 데다 댓글, 추천까지 매번 너무 많이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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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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