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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루시는 성검의 선택을 받아서 강해진 게 아니었다.

         

        성검의 선택을 받을만큼 강한 거였다.

         

        도약 한 번에 일대를 뒤집어 놓을 정도로 강한 그녀지만, 그렇다고 해서 온갖 방향으로 뿔뿔히 도망치는 패거리들을 단번에 해치울 수는 없었다.

         

        가장 멀리 달아난 놈부터 다리를 후려쳐 부러뜨린다.

         

         

        “끄엑!”

         

         

        무기가 없는 탓에 부러뜨린 놈을 잡아 다음 녀석한테 집어 던져 쓰러뜨리고 그렇게 한놈한놈 일단 제자리에 나자빠지게 하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바닥에 얼굴부터 떨어진 놈이 고개를 드는 순간,

         

        키이이이잉-!

         

        절대로 사람이 낼 수 없는, 공기가 찢기는 소리와 함께 인간도 찢긴다.

         

         

        “자, 잠깐…!”

         

         

        항복 따위 받지 않는다.

         

        린이 다 죽이라고 했으니까.

         

        루시는 살육기계처럼 린이 준 임무를 충실히 이행할 뿐이었다.

         

         

        “네가 마지막이네?”

         

        “히이이이익!”

         

        “마지막이니까 선택권 줄게.”

         

         

        루시는 두 팔을 벌려 흔들어 보였다.

         

         

        “손으로 해줄까 ,발로 해줄까?”

         

         

        암시장 잔당놈도 마지막답게 패기를 부렸다.

         

         

        “그, 그럼 가슴….”

         

        “지랄하네.”

         

         

        가차없는 싸커킥이 상반신을 터뜨렸다.

         

        어쩔 수 없이 여기저기 튄 피를 털어내며 루시는 혀를 찼다.

         

        린에게 이런 비릿한 냄새를 맡게 할 수는 없는데.

         

        빚지는 건 싫지만 래빈에게 목욕 준비를 부탁해야될 수도 있었다.

         

        그건 나중의 일.

         

        루시는 활짝 웃으며 뒤로 빙글 돌았다.

         

         

        “린! 다 처리했어!”

         

        휘잉~.

         

        가벽으로 이루어진 내부에 왠지 바람이 분다.

         

        공터 같은 곳에 린은 당연히 없었다.

         

         

        “어?”

         

         

        너무 멀리 나왔다.

         

        들짐승처럼 도망가는 등짝만 보고 추격한 탓이었다.

         

        그말인즉슨,

         

         

        “린을 남겨놓고 왔어…!”

         

         

        등줄기에 서늘함이 달린다.

         

        다급하게 그가 있던 곳으로 돌진한다.

         

        문을 박차고 들어간 공간에서 린은 세 명에게 둘러싸여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민간인임에도 불구하고 린은 상당히 선전하고 있었다.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내지른 훅에 패거리 한놈이 턱을 맞고 쓰러졌다.

         

        다음으로 달려드는 놈을 작은 방패로 밀어붙여 넘어뜨린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방패로 가려진 시야의 사각에서 튀어나온 놈이 휘두른 단도가 린의 뺨을 스쳤다.

         

        스칵-!

         

         

        “잡았다!”

         

         

        아찔함으로 굳어버린 틈을 타 뒤에서 끌어안은 놈팽이는 린의 목덜미에 날붙이를 들이댔다.

         

         

        “어이쿠! 마침 오셨구만! 보이지? 움직이면 놈은 죽는다.”

         

        “젠장! 모조리 당한 모양인데 이제 어째야 한담?”

         

        “이러나 저러나 뒤질 가능성만 높아.”

         

         

        서로 소근거리던 세 놈은 한마음 한뜻으로 킬킬거렸다.

         

         

        “죽을 때 죽더라도 저년 젖탱이는 주무르면서 죽으련다.”

         

        “좋아! 남자답게 가자고!”

         

         

        그러나 그 어떤 말도 루시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크게 뜬 눈은 오로지 린의 뺨에 난 상처에 고정되어 있었다.

         

         

        “린이 다쳤어…?”

         

         

        나 때문에?

         

        멋진 모습 보여주겠다고 최우선 보호 대상을 놓고 튀어나간 탓에?

         

        꽉 쥔 주먹 안으로 제 손톱이 파고 들었다.

         

         

        “루시 진정해.”

         

         

        울상인 것과 다르게 눈에 분노와 광기가 깃드는 걸 눈치챈 린이 차분하게 일렀지만 루시는 폭주를 막을 수 없었다.

         

        팔다리가 없을 시절부터 자신을 위해 희생하던 린.

         

        아니 팔다리가 없어지던 날부터 자신을 위해 헌신해오던 린.

         

        그런 그를 한 번 잃어 놓고서도 이런 실수를?

         

        이건 죄악이다.

         

         

        “용서 못해.”

         

         

        네놈들도, 나 자신도.

         

         

        “죽음으로 갚아.”

         

         

        심상치 않은 기색에 패거리는 뒷걸음쳤다.

         

         

        “이 미친년이! 동료를 죽이고 싶은… 크헤헥!”

         

         

        퍼-엉!

         

        기묘했다.

         

        목에 날붙이를 대고 있던 남자는 루시가 제자리에서 날린 권격으로 상반신이 터져나갔다.

         

        린에게도 핏물이 튀었다.

         

         

        “히익, 흐아아아아아아!!”

         

         

        참지 못한 나머지 두 명은 뒤도 안 돌아보고 뛰었다.

         

        그러나 아무리 뛰고 뛰어도 두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린과 루시에게는 그렇게 보였지만 도망자들은 열심히 골목을 따라 나아가는 것으로만 느껴졌다.

         

         

        “우습죠? 감히 린 씨에게 상처를 입히고 곱게 살아돌아갈 생각을 하다니.”

         

         

        작지만 또렷이 들렸다.

         

        마치 안개 속에서 나타난 것처럼 흐려진 시야 속에서 정보관 아도라가 걸어나왔다.

         

        걸음걸이만으로 린은 그녀가 전과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제서야 제대로 그녀를 훑어본다.

         

        일자 회색 앞머리에 칼단발.

         

        주황빛 눈동자색에 루시만큼, 아니 루시보다 더 하얀 피부.

         

        작지 않게 봉긋하게 솟은 가슴 실루엣.

         

        그러나 이런 호감형 외모에도 린을 꺼림칙하게 만드는 광기가 깃든 눈빛.

         

         

        “너 정말 그냥 도적 맞아?”

         

         

        위화감을 느낀 루시가 묻자 아도라는 빙긋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용사 당신은 정말 무능하기 짝이 없군요.”

         

        “뭐라고?”

         

         

        부드러운 손짓이 허공을 휘젓는다.

         

        그 손짓에 주위의 모든 구조물들이 마치 연기인 것처럼, 먼지인 것처럼 바스라지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건물과 벽이 사라지자 암시장에 있던 모든 이들이 혼란스러워 하며 주위를 살폈다.

         

         

        “흐어어어억…!”

         

         

        루시에게서 도망가려던 두 남자는 자신들 앞에 나타난 늑대형 마수에 다시 주저앉았다.

         

        신기루처럼 사라진 것들 중에는 마수를 가둬 놓았던 우리도 있었다.

         

        돌연변이까지 각성해 거대해진 마수 3마리는 곧장 냄새를 맡고 가까이 있던 도망자들을 보며 으르렁거렸다.

         

         

        “도, 도망쳐야 해!”

         

        “어디로?!”

         

         

        앞은 마수, 뒤는 루시.

         

        진퇴양난임에도 패거리는 팔다리를 허우적거렸다.

         

        어떻게 해서든, 어디로든 달아나고자 하는 마음에 힘껏 발버둥쳤지만 처음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제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제기랄!”

         

        크르르르르-!!

         

        “아, 안 돼-!”

         

        단말마조차 남기지 못하고 두 사람은 상반신을 뜯겼다.

         

        턱없이 모자란 먹이를 순식간에 해치운 마수들은 이내 가장 가까이에 있던 린에게 시선을 돌렸다.

         

        세로로 찢어진 눈깔에 긴장하면서도 린은 작은 방패를 단단히 붙들어 맸다.

         

        인간보다도 더 익숙한 게 마수와의 전투라 다행이었다.

         

         

        “린!”

         

         

        다급하게 마력을 모아 도약하려는 루시.

         

        그러나 그녀보다 앞서서 나선 이가 있었다.

         

         

        “걱정 마세요.”

         

         

        아도라가 다시 손짓을 하자 마수들은 서로에게 이빨을 드러내며 침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당신에게 손대지 않게 할 거에요.”

         

        “…넌 도대체 누구지?”

         

         

        아아, 린이 직접 나에 대해 물어봐줬어.

         

        순수한 기쁨이 가슴 속에서부터 차오른다.

         

         

        “저는 아도라.”

         

         

        마수 한 마리가 덥썩 다른 놈의 목덜미를 문다.

         

        그리고 남은 한 마리가 목덜미를 문 놈의 머리를 으깨서 먹어버렸다.

         

         

        “끝없는 반복 속에서 우리를 미래로 이끌어 줄 이를 기다려왔어요.”

         

         

        으적으적

         

        최후에 승리한 마수는 남은 동족을 남김없이 살점이 붙은 뼈째로, 내장째로 씹어먹었다.

         

        끔찍한 참상을 눈앞에 두고도 암시장의 수많은 사람들은 누구도 움직일 수 없었다.

         

        제자리에서 허우적거릴 뿐.

         

        루시조차도 아도라의 알 수 없는 술책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수천, 수만, 수억 번의 기약 없는 반복에 지치고 자아를 잃어갈 즈음에 당신이 나타났죠.”

         

         

        크르르르르르륵!!!!

         

        동족을 모조리 먹어치운 마수의 고개가 기괴하게 꺾였다.

         

        사시나무처럼 떠는 것 같으면서도 조금씩 움직이는 모양새가 마치 렉에 걸린 듯 했다.

         

        진동이 심해질수록 마수의 몸집은 더 커져갔다.

         

        동시에 털색은 진한 핏빛을 머금고 부풀어 올랐다.

         

        저게 어떤 징조인지 린도 루시도 잘 알고 있었다.

         

         

        “저건…!”

         

         

        기겁하는 린.

         

        그에게 아도라가 더 다가섰다.

         

         

        “당신은 우리의 유일한 구원.”

         

        “린에게서 떨어져!”

         

         

        드디어, 루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력을 끌어올려 강제로 그녀를 붙잡는 격리 공간째로 이동하는 용사.

         

        그럼에도 아도라의 시선은 린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당신은 우리가 고대하던 반쪽.”

         

        “닥쳐!!!”

         

         

        평소 린에게 하던 말들에서 살짝만 비틀어낸 속삭임.

         

        루시는 소리를 있는대로 지르며 전진했다.

         

        저년의 입을 막아야만 했다.

         

        감히, 린에게…!

         

        나의…

         

         

        “하지만 당신은 나만의 린.”

         

        “…이 개간년아아아아아아아-!!!!!!!”

         

         

        붉은 금빛의 마력이 솟구친다.

         

        전신에 마력을 휘감고 아도라에게 달려들려는 루시.

         

         

        “그쪽이 아니야!”

         

         

        린이 간신히 용사의 이성을 붙잡는다.

         

         

        “루시! 함정이야! 아도라가 아니라 마수를 제거…!”

         

         

        아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거대한 덩치에 맞지 않게 얇고 높은 하울링.

         

        어딘가 소름 돋게 만드는 가느다란 울음소리.

         

        아우우우우우-!!!!!

         

        그리고 이에 화답하듯 연달아 울리는 작은 하울링들.

         

        어느새 각성해버린 유니크 돌연변이 마수의 ‘무리 소환’ 스킬이 시전되고 말았다.

         

         

        “끝까지 자신밖에 모르는군요, 루시에나 에스텔.”

         

         

        아도라는 용사를 향한 혐오감을 숨기지 않았다.

         

         

        “자기 멋대로 린을 혼자 놔두고 끝까지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도 않고, 그리고… 그리고…!”

         

         

        진심으로 분노하며 떨리는 목소리가 루시에나를 다그쳤다.

         

         

        “린의 뺨에 상처까지 나게 하다니!!”

         

         

        커튼을 젖히듯이 두 팔이 공간을 가르자 주변은 완전히 허물어져 내렸다.

         

        암시장은 한순간에 넓기만 한 공터로 변해버렸다.

         

        루시는 자신을 가두고 있던 격리 공간이 해제되었음을 알았다.

         

        그건 암시장에 있던 모든 이들에게도 해당되었다.

         

         

        “더는 볼 일 없어요. 린은 제가 데려갑니다.”

         

         

        그 말을 내뱉고나자 아도라는 일순 세상이 멈췄다고 착각했다.

         

        초점이 사라진 용사의 두 눈을 본 순간 그렇게 느꼈다.

         

         

        “누구 마음대로?”

         

         

        붉은 금빛 마력이 소용돌이쳤다.

         

         

        “내 유일한 아군, 최고의 동료, 나의 린이야.”

         

        “그렇다면 증명해보시지. 네가 린을 지킬 수 있다는 거 말야.”

         

         

        아도라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녀의 몸이 연기로 변해 위로 솟구쳤다.

         

        연기는 유니크 돌연변이 마수의 코로 흘러 들어갔고, 마수는 있는대로 인상을 쓰며 울부짖었다.

         

        아우우우우우우우-!!!!!!!

         

         

        “전원 전투 준비!”

         

         

        어디선가 래빈의 외침이 들렸다.

         

        그 외침에 기다렸다는듯이  루시에게 수백의 늑대 마수들이 달려들었다.

         

         

         

         

         

       


           


He Became the Only Ally of the Abandoned Warrior

He Became the Only Ally of the Abandoned Warrior

Abandoned Hero's Only Ally, 버림받은 용사의 유일한 아군이 되었다.
Score 6.8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saved the Warrior who used to ignore and bully me and now she is obsessed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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