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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

       그 남자는 언뜻 봐선 평범했다.

       아, 정정한다.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아름다운 외모가 돋보이긴 했다.

       조각사로 이름 높은 거장이 직접 조각했을 법한 외모였으니까.

       분위기도 냉담한 것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다른 이들도 마냥 조각으로 오해할 법했다.

         

       그래서 평범하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감탄할 외모긴 하다만, 무표정 일색인 그에게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촛불과 같은 고요함만이 느껴졌고, 사람이라면 적당히 누구나 가졌을 온기만이 있다는 의미.

         

       다른 뜻으로 존재감이 어딘지 희미하다는 뜻도 되었다.

       만약 그의 성이 라이오넬이 아니었다면 아무도 그를 어려워하지 않았을 만큼.

       

       한데….

         

       스르릉.

         

       그가 검을 뽑은 순간.

       그는 더는 존재감이 희미하지 않았으며, 촛불도 아니었다.

       서늘하다.

       주변 공기가 갑작스럽게 경직됐으며,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듯한 날카롭고도 오싹한 기세가 주변을 뒤덮는다.

         

       단지 검을 들었을 뿐인데, 그는 이미 조금 전과 완전히 다른 인간이었다.

         

       변화가 아닌 역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리리라.

         

       로엔 드미트리 드 라이오넬.

         

       그는 앞서 상대했던 어느 누구보다 남달랐다.

       그리고 이를 모두가 느꼈으며, 그의 앞에 선 이한은.

         

       ‘이 놈, 지가 회귀자인 걸 숨길 생각이 없네.’

         

       마냥 콧방귀가 나왔다.

       이건 너무 다 티가 나는 게 아닌가 싶어.

         

       스릉.

         

       롱소드, 특이한 병장기를 사용한 상대들과 달리 로엔이 든 검병은 심플한 직도에 불과했다.

       아무런 특색이 없는 검.

       그나마 순도 높은 강철을 쓴듯했지만, 일반적인 철검에 불과했다.

         

       한데 로엔이 철검을 들자 그 검은 명검으로 탈바꿈하는 듯했다.

       이한이 유독 강조했던 기세가 평범한 검에 담기자 일어난 일이었다.

       

       심상치 않은 기세.

       저러한 기세를 부르는 말이 뭐였더라….

         

       ‘귀화?’

         

       귀화(鬼火)가 피어오르는 듯하다?

         

       적절한 표현인지 알 수는 없으나, 타인이 보기엔 그러했다.

       이는 범상치 않은 기세였고. 겨우 스물 짜리 애송이가 내뿜을 기세가 아닌 전쟁터에서 10년은 구르고 구른 노련한 전사가 내뿜을 만한 것이다.

         

       그러니 상대는 겉보기로 판단해선 안 되는 자다.

       당당히 완성된 검객이라 해도 무방할 테니.

         

       아마 경험 부족한 전사의 눈엔 마냥 천재란 오해와 함께 그를 대단하게 볼 테지만.

       이한처럼 감각이 발달한 자나, 전쟁터에서 구르고 구른 병사라면 단번에 알아볼 것이다.

       저건 천재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오래 시간 끝에 완성된 검객이란 것을.

         

       ……살기가 유독 짙은.

         

       후웅, 후우웅!

         

       허나 이한은 가볍게 목검을 휘둘렀다.

       심상치 않은 기세가 그를 감싸려고 하자 반사적으로 휘두른 것이었고, 휘둘러질 때마다 바람 가르는 소리가 심상치 않았으며, 갈수록 휘둘러짐은 빨라졌다.

       어느 순간 더할 나위 없이 빨라진 목검은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고!

         

       후욱-!

         

       “-자, 시작하자.”

       “…….”

       “들어와.”

       “…지금 들어가면 베일 것 같군요.”

       “엄살은.”

         

       상대의 기세가 쏟아지기도 전에 찢겨졌다.

         

       로엔을 비롯한 생도들은 목도했다.

       이한의 목검이 바닥에 남긴 자국을.

       닿지도 않았는데, 목검이 내뿜는 풍압에 의해 할퀴어진 것 같은 흙바닥을 보며 생도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제야 새삼 깨닫는다.

         

       저 사람은 강하다고.

         

       그리고 이러한 사실이.

         

       “가겠습니다.”

         

       로엔을 미소 짓게 만들었다.

         

       더할 나위 없이 멋진,

         

       광소(狂笑)였다.

         

       * * *

         

       먼저 움직인 것은 로엔이었다.

         

       후욱-!

         

       훅, 하고 치고 들어오는 검은 곧장 그의 눈을 노리고 들어오고 있었다.

       망설임 없는 찌르기였고, 위험천만하기 그지없다.

       허나 이한은 이를.

         

       “누굴 맹인으로 만들 셈이냐?”

       “위협도 아니었지 않습니까?”

         

       캉!

         

       눈조차 깜빡이지 않고 유유히 피해내는 동시에 내리찍듯 목검을 휘둘렀다.

       이를 재빨리 막아내는 로엔이었지만, 로엔은 충격을 모두 흘려보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팔이 찡하고 울렸고, 그는 한 걸음 물러서며 물었다.

         

       “…외부가 아닌 내부에다 흐름을 넣으셨군요.”

       “요즘 연습하는 기술이지. 쓸 만한 것 같아?”

       “무척이나 위협스럽습니다.”

       “아직 실전에서 쓰기엔 부족하긴 한데, 애송이들한테 쓰기엔 적절하더라고.”

       “다행이군요, 애송이가 아니라.”

         

       내가중수법이 가미된 일격이었으나 로엔에겐 통하지 않았다.

       체내의 흐름을 일순 강화시켜 받아내는 것으로 이한이 침투시킨 흐름이 그다지 통하지 않은 것이었다.

       다만.

         

       “힘이 정말 좋으시군요.”

       “내 장점이지.”

         

       압도적인 완력이 남긴 충격마저 와해시킬 순 없는 노릇이었다.

         

       쾅!

         

       상대의 몸이 경직된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이한이 발걸음을 내밀자, 그의 압도적 각력 앞에 땅바닥이 패였다.

       힘찬 발걸음은 곧 압력을 선사하는 바.

         

       쿠우웅!

         

       이한의 목검이 정확히 로엔의 검을 쳤고, 로엔은 목검을 쳐내는 동시에 베어낼 셈이었으나…!

         

       챙…!

         

       “…….”

         

       목검은 베이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목검은 철검 못지않은 강도를 보이며 날카로운 검마저 버텨냈다.

         

       로엔은 이게 뭔가 싶어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훽, 하고 만들어지는 검영은 세 번.

       순식간에 세 번의 검격을 뻗었으나, 이번에도.

         

       챙챙!

         

       막혔다.

       그것도 허무하게.

       그리고 도리어 로엔은 제 손바닥이 아픈 것을 느꼈다.

       이게 무언가?

         

       ‘바위를 때린 느낌이다.’

         

       바위에다 칼질을 하는 느낌.

       아니, 마냥 느낌이 아니라, 정녕 바위가 맞는 것 같다.

       이게 무슨 조화인가 싶다.

         

       그리고 의문이 가득한 생도에게 이한은 나름 교관으로써의 의무를 다해주듯 입을 열었다.

         

       “난 투기법에 대해 잘 몰라.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지만, 아무래도 비전이란 이유로 가르침도 인색한 게 투기법이란 놈이니까. 하지만 내 몸속 체내의 ‘힘’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는 알지.”

       “…무슨.”

       “힘이란 건 단순히 무거운 걸 드는 힘을 말하는 게 아니야. 뼈와 심줄, 근육을 총체로 한 것을 통틀어서 힘이라고 부르지. 그리고 그러한 힘을 적절히 사용하는 수법을 보고 난 경(勁)이라고 한다. ‘굳세게 하는 법’이란 뜻이지.”

       “…….”

       “또 다른 이름으로 금강(金剛)이라 이름 붙였다. 체내의 힘을 몸만이 아닌, 도구에도 전하는 방식이지. 그리고 그게 가능하면.”

         

       쾅!

         

       “이런 것도 되더군.”

         

       다시금 검날과 맞닿았으나 이번에도 목검은 베이지 않았으며, 마치 쇠몽둥이라도 되는 것 마냥 로엔을 튕겨냈다.

         

       만약 로엔이 충격을 줄이지 않았다면 볼품없이 나뒹굴었으리라.

       허나 로엔은 자신의 몸이 잠시간 허공에 부유한 것보다 이한이 선보이는 기술이.

       체계적인 건 아무것도 배운 게 없으면서 감각과 본능을 통해 펼쳐내는 ‘그만의 투기법’을 보며 경악했다.

       

       “…제가 머리가 부족하단 생각을 해본 적이 없지만, 교관님께서 보여주시는 건 하나같이 이해하기 역부족인 것밖에 없군요.”

       “흐흐, 내가 설명하는 실력이 없어서 그래. 난 기술을 익힐 때 이론이 아니라 실전이랑 감각으로 익힌 게 대부분이거든.”

       “……그걸 보고 보통은 천재라고 합니다만.”

       “기분 좋은 말이네.”

         

       허나 이한은 저 발언을 부정한다.

       이런 건 재능보단 상상력에 영역이니까.

       전생에 무수하게 읽었던 ‘정보’가 그에게 창의력을 주었고, 그 창의력을 토대로 끄집어낼 수 있는 걸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듣기엔 좋네.’

         

       * * *

         

       …생도들은 숨이 멎을 듯한 표정으로 이한과 로엔의 대결을 보았다.

         

       지금까지 서른 합.

         

       누군가의 검이 먼저 그들에게 닿는 일도 없이, 검이 부딪치고 부딪치길 반복한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검투(劍鬪).

         

       이를 보며 몇몇 이들은 질투하고 시기한다.

       같은 동년배의 사내가 저토록 강하다는 것에.

       또한 불합리할 정도의 재능을 마주한 벽에 의해 분해하는 것이다.

         

       허나 몇몇 이들은.

         

       “교관의 목검, 이제 한계다.”

       “로엔 공자도 마찬가지군.”

       “…괴물 같으니, 목검으로 철검을 깨버리려고 하는구먼.”

         

       그들과 자신들의 수준을 가늠하며, 어찌 뛰어넘을지를 계산하기도 하였다.

         

       “…와아, 이래서 싸움 구경을 하는구나.”

         

       [아린아, 감상이 그게 다야?]

         

       “으음, 화려하다?”

         

       […아린아, 어디 가서 마법사라고 하지 마. 나 너무 창피해.]

         

       “뭐래.”

         

       …마냥 아무 생각없이 순수한 눈으로 관람하는 관객도 있었지만.

         

       허나 대결은 언제까지고 이어질 수 없는 법.

       이미 두 사람의 검에는 한계가 왔다.

         

       그렇기에 이한은 마지막 일합을.

         

       “마지막은 진지하게 해보지 그래?”

       “…무슨 뜻입니까?”

       “진심을 보이라고. 물론 지금도 대단하긴 한데, 더 있잖아. 진짜를 보여줬으면 좋겠네.”

       “…….”

         

       숨기고 있는 것을 꺼내라.

       이러한 발언에 로엔이 처음으로 움찔거렸다.

         

       “처음엔 몰랐는데, 갈수록 뭔가가 느껴진단 말이지.”

         

       분명 로엔은 강했다.

       지금껏 상대했던 생도들 중 누구보다 노련했고, 수 싸움과 투기법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더 없이 만족스러운 상대다.

         

       …한데 찜찜했다.

         

       놀의 육감이 알려주는 걸까?

       아니면 그동안 전장에서 겪은 경험의 산물일까.

         

       그는 분명.

         

       ‘더 있는 것 같은데.’

         

       지금 그가 내보인 건 평균에 불과하다.

       분명 뭔가가 더 있다.

       이러한 생각과 함께 로엔에게 가진 것을 토해내라고 하니, 그가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다.

         

       그는 내심 만족했다.

       자신의 생각이 맞은 것에 대해 기쁜 것도 있지만, 대결의 마침표를 제대로 찍고 싶었기에.

       어차피 부러질 검.

       이토록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보다 확실하게 하는 게 더 흥분되지 않는가.

         

       화룡점정.

       이한은 이 대결의 끝이 둘 모두에게 후련한 결과가 되어주길 바라였다.

         

       아마 우리의 감시대상 1호도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하는 소소한 기대감이…-.

         

       “-아니요, 포기하겠습니다.”

       “…응?”

       “과열이 심해지는 것 같아 더는 안 될 것 같군요.”

       “…….”

         

       …기대감은 기대감일 뿐, 아무래도 자기 혼자 헛생각을 했나 보다.

         

       로엔이 멋들어진 미소를 머금고 주위를 가리켰다.

         

       “이번 대련의 원래 의의는 교관님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에게 교관님을 인정하게 하기 위한 행위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목적이 모두 이루었으니 대결은 무의미하지 않겠습니까? 저 또한 이제 슬슬 멈추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이놈 보게?”

         

       생긴 거랑 다르게 영악한 짓을 하지 않은가?

       그가 얼척 없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안타깝게도.

         

       “발타르 아재와의 만남 이벤트가 기대되진 않고?”

       “죄송하지만 저는 발타르 경과의 만남보다 교관님의 가르침이 더욱 기대되는군요.”

       “…그렇게 성실해보이진 않는데.”

       “겉보기로 사람을 판별하시면 안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할 말 없게 하네.”

         

       모처럼 기대한 빅 이벤트가 한없이 허무하게 끝남에 반박할 구석이 없었고, 결국 이한은 목검을 내려놨다.

         

       더 싸우기 싫다는 놈에게 강요할 만큼 그가 막돼먹은 놈이 되지 못했기에.

         

       다만.

         

       ‘아 씨, 무조건 더 있는 것 같은데.’

         

       (추정)회귀자 숨기고 있을 수법이 아직도 무궁무진하다는 걸 감안했을 때 아쉬운 결말이 아닐 수 없다.

         

       “…으음.”

         

       이한은 시무룩했다.

         

       *

       *

       *

         

       ‘…위험할 뻔했군.’

         

       로엔은 자기 자신에게 놀랐다.

         

       설마 자신에게 아직도 이런 마음이 남아 있었단 말인가.

         

       ‘호승심이라니, 젊은 몸의 호승심이란 무섭군.’

         

       이미 그런 건 잿더미의 먼지처럼 소각되었다 여겼거늘, 아직도 이러한 감정이 남아 있었는가.

         

       ‘흐, 이러한 순수한 싸움이 오랜만이라 그런지도 모르겠군.’

         

       순수한 투쟁.

       아니, 상대방이 내뿜는 깨끗한 승부욕.

       이를 마주하고 있자니 젊은 날의 치기가 떠오른다.

         

       현재의 젊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로엔만이 기억하는 ‘젊은 날’의 추억.

       그날을 떠올리는 것이지.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막아야 할 테지.’

         

       그러한 비극을, 참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번에야말로 죽여주마.’

         

       그는 자신이 죽여야 할 사냥감을 상기했다.

         

       ‘아이시스 이레인 드 팬드래건. 네년의 목구멍에 기필코 칼을 박아주마.’

         

       그때야말로 그의 원수가 갚아지는 날일 테니.

         

       로엔은 새삼스러운 각오를 다졌다.

         

       목적을 이루기 전까지 자신에게 청춘이란 사치란 것 마냥.

         

       그렇게 그는 자신의 본성을 억눌렀다.

         

         

       언젠가 찾아올 복수의 그날을 위하여.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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