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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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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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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무장 창고에 방치되어있던 목검이 허공을 가르고 날 선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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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좀 더 팔을 높이 들어! ]
    “흐읍!”
    [ 호흡은 규칙적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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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뜨거운 열기가 물씬 풍기는 연무장, 노아는 몇 번이고 검을 휘두른 후 얼굴에 달라붙은 밝은 갈색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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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탁하게 가라앉아있던 에메랄드빛 녹안이 영롱하게 반짝거렸다. 줄리아나는 그런 그녀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만족스럽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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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직 멀었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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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거 아닌 것처럼 말하고 있었지만 줄리아나는 노아의 재능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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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고, 보통 사람들이 배우는데 한 달 걸릴 기술을 고작 몇시간 안에 배워버린다. 하늘에서 내린 재능이라 말해도 부족함이 없는 실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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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 또한 자신이 강해지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 탓에 더욱 조바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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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빨리 강해져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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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면 모를까, 손끝에 달콤한 과실이 닿을락 말락 한 상황이다. 재능 넘치는 몸을 더 혹사하게 되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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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가 평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면 제대로 된 실력을 쌓기도 전에 몸져누웠겠지만, 노아의 눈부신 재능은 몸을 혹사할수록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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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때문에 노아는 날이 갈수록 훈련에 중독된 사람처럼 몸을 단련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희망으로 아름답게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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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노아와 달리 음울한 기운을 풍기는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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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으,흐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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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먼지가 쌓인 손님방 옷장 안에 몸을 웅크린 채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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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니 나 아파, 언니 나 아파, 언니 나 아파, 언니 나 아파, 언니 나 아파, 언니 나 아파, 언니 나 아파, 언니 나 아파, 언니 나 아파, 언니 나 아파,언니 나 아파, 언니 나 아파, 언니 나 아파, 언니 나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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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 나 아프다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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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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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명을 내지르며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두피가 아플 정도로 힘이 꽉 들어간 손이 제 눈가를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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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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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동색에 가까운 진한 갈색 머리카락이 뿌리 부분부터 새카맣게 물들어 머리의 절반이 검게 변해있었다. 호박색에 가까웠던 눈동자도 깨끗한 물에 탁한 물이 섞이는 것처럼 서서히 보라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독한 흑마법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몸에 이상 반응까지 생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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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윽…엄마,엄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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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는 눈을 질끈 감은 채 눈물을 터뜨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피아의 엄마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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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아, 동생을 지켜주렴. 넌 강한 아이니까 분명 할 수 있을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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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정한 목소리와 부드러운 웃음이 눈앞에 그려졌다. 피아가 입꼬리를 파들파들 떨며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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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엄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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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는 그 나이대 아이처럼 엉엉 울며 선명하게 떠오르는 환상을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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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네가 살아있는 거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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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밝던 배경이 지옥처럼 붉게 물들고 다정하게 웃고 있던 엄마가 무서운 표정으로 피아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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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분명! 동생을! 지키라고! 했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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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끄흐흑! 잘못,잘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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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는 끝없는 두려움에 몸을 덜덜 떨며 용서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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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죽었어야지’라는 말이 돌림 노래처럼 귓가에 웅웅 울려 퍼졌다. 피아의 눈가가 검게 죽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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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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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는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편안함을 안겨주었던 리안을 떠올렸다. 그를 떠올리면서도 찾아가지 못하는 건, 고집과 마법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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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동생의 목소리가 리안과 함께 있으면 사그라드는 걸까? 리안이 착한 사람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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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가 리안에게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생각이 그런 쪽으로 흘러갔겠지만, 그녀는 리안을 ‘가식적인 연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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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스럽게 생각이 부정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도반이 건 흑마법은 부정적인 감정을 더욱 증폭하고 마법이 해체되는 곳을 기피하게 만들었다. 그런 이유로 피아는 리안을 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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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이게 전부 그 녀석 탓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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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는 끝을 알 수 없는 두려움을 전부 리안에게 넘겨버렸다. 그렇게 해야만 그녀는 숨을 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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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맞아, 언니 전부 그 녀석 때문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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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의 정신이 일정 수준 이상 무너져 논리적인 생각을 이어가지 못하자, 그녀의 동생이 다른 말을 속삭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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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부 그 하얀머리 노예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거야. 그러니까 그 녀석을 치워버리자. }
    ‘치,치우다니?’
    { 다시는 언니를 괴롭힐 수 없도록 여기서 쫓아내는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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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가 조금이라도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꾼 동생의 말에 기이함을 느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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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녀의 정신은 벼랑 끝에 몰려있는 상태였다. 이대로 두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 정도로 피아는 죄악감에 짓눌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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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를 지은 사람이 죄책감을 느낄 땐 본능적으로 피해자에게 잘해주려고 한다. 속죄를 통해 자신의 마음이 편해지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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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 또한 그런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아득한 죄악감에 짓눌려 마치 환청의 노예가 된 것처럼 맹목적으로 그 말을 따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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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내가 어떻게 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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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섭게 증오를 뱉어내던 동생이 나긋한 목소리로 해야 할 일을 하나둘 알려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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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끼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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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는 옷장을 빠져나와 비틀거리며 방을 나왔다. 흑마법으로 인해 그녀의 기척이 매우 희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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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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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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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간은 서늘한 복도를 산책하듯 걸어가며 중얼거려보지만 마음이 편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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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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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실험체라는 말에 눈이 돌아간 미아는 곧바로 노예 시장으로 달려갔다. 거대한 노예 시장은 물론 작은 노예 시장까지 돌아다녀 봤지만 아이리스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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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은 곧, 이미 팔려나갔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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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괘,괘,괜찮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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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말하면서도 다리가 덜덜 떨리고 있다. 미아를 통하는 방법 말고는 아이리스를 만나는 방법이 딱히 없었기에, 밀도 높은 고구마를 삼킨 것처럼 목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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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복도 중간에 머리카락을 움켜쥔 채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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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아아아! 방법이 없어! 방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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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으로 비명을 내지르며 눈물을 폭포수처럼 콸콸 흘려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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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원작이 있고 인과율이라는 게 있는데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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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 외면을 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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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째서 오딜은 도망간 거야! 내가 잘 해줬잖아! 좋은 거 먹이고 좋은 옷도 입혀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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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도 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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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여기서 실험체 노예로 쭉 살까?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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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에 순응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몇 단계의 감정 변화를 겪고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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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아아! 주인공이 내 눈앞에 떨어지게 해주세요! 아니면 어디로든 통하는 문으로 날 주인공에게 보내줘!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아이리스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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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세계 주민들은 절망할 때 희망 사항을 열심히 외치며 운다. 그리고 금방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다. 내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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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응, 식사 준비나 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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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외쳤던 그 말이 이루어질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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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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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익,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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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 오늘도 굉장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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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바느질을 하며 검을 휘두르는 노아를 구경하고 있었다. 검을 잡은 지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허공을 날아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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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캬 -. 완전 왕자님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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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무술 영화 속 주인공처럼 검을 휘두를 때마다 노아의 짧은 갈색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동화 속 왕자님을 떠올리게 하는 눈동자는 미래에 수많은 여성을 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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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 옆에 들러리겠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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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르륵, 눈가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건 눈물이 아니다. 비가 내리고 있는 거다. 여긴 실내 연무장이지만 아무튼 내 말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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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볍게 얼굴을 털어내 눈물을 훔치고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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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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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눈물을 흘리는 사이 쉬는 시간이라도 된 건지 줄리아나가 다가와 내가 바느질하고 있는 걸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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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형 만들고 있어.”
    [ 이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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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의 옷을 대충 수선해준 후 받은 바늘과 실로 헤져서 사용하기 힘든 옷을 모아 귀여운 인형을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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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내 옆에 놓인 성인 남자 주먹만 한 인형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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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 생각보다 그럴 듯한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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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형은 양말 인형과 비슷한 형태로 바게트 반만한 몸통에 눈과 코, 입이 수놓아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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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정도는 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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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으로 으쓱거리며 순식간에 인형을 찍어냈다. 그러자 줄리아나가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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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니, 이렇게 많이 만들 필요가 있어? ]
    “처음에는 요즘 기운이 없어 보이는 피아에게 줄 만한 인형을 만들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한 명만 주면 아이들이 아쉬워할 것 같아서 애들 거 다 만들고 있어. 줄리아나껀 이거.”
    [ 내,내 것도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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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내가 들어 올린 인형을 바라보았다. 다른 인형과 똑같이 깨 같은 눈동자와 작은 입, 코를 가지고 있었지만 머리 스타일이 줄리아나와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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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거 잡을 수 없잖….어? 이거 왜 잡혀? ]
    “그야 유령이니까.”
    [ 아니, 유령이니까 못 잡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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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나는 몇 번 씩씩거리다가 이내 쉬는 시간이 끝난 듯 검을 휘두르는 노아를 보곤 휙 날아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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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휴..아이리스를 찾는 것도 문제지만 피아도 문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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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들어 나를 슬슬 피해 다니는 피아를 떠올렸다. 멀리서 마주칠 때마다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로 봐선 무슨 일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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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지로 만나면 안 되겠지. 릴리 말로는 대화를 해보면 괜찮아 보인다고 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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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내가 싫어서 그런 거라면 피해주는 게 맞았다. 개그 세계에도 잘 생기지 못한 것만 보면 비위가 상한다던 여학생이 내 앞에서 헛구역질하는 일이 있었던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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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싫으면 피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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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다시 얼굴 위로 물줄기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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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이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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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인형까지 완성한 후 품에 인형을 가득 안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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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들 침대에 가져다두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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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인형을 배달하기 위해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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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납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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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익명님 후원 감사합니다! 연재 열심히 하겠습니다!

노아가 열심히 수련하는 이유 -> 리안을 지키려고 -> 리안 뺏기.

솜씻너가 되어라 노아!

노아와 피아 외모 묘사를 넣어야지,넣어야지 하다가 놓쳐버렸습니다.
지금이라도 넣어서 다행입니다. ;0;

노아,미아,피아 이름이 헷갈리시다는 분들이 많아서 조만간 해결해보겠습니다.
노아만 기억하고 계셔도 무방합니다.
(피아, 미아 안죽여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D다음화 보기

“합,핫!”

연무장 창고에 방치되어있던 목검이 허공을 가르고 날 선 소리를 냈다.

[ 좀 더 팔을 높이 들어! ]

“흐읍!”

[ 호흡은 규칙적으로! ]

오늘도 뜨거운 열기가 물씬 풍기는 연무장, 노아는 몇 번이고 검을 휘두른 후 얼굴에 달라붙은 밝은 갈색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겼다.

항상 탁하게 가라앉아있던 에메랄드빛 녹안이 영롱하게 반짝거렸다. 줄리아나는 그런 그녀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만족스럽게 웃었다.

[ 아직 멀었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겠어. ]

별거 아닌 것처럼 말하고 있었지만 줄리아나는 노아의 재능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고, 보통 사람들이 배우는데 한 달 걸릴 기술을 고작 몇시간 안에 배워버린다. 하늘에서 내린 재능이라 말해도 부족함이 없는 실력이었다.

노아 또한 자신이 강해지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 탓에 더욱 조바심이 들었다.

‘더 빨리 강해져야 해.’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면 모를까, 손끝에 달콤한 과실이 닿을락 말락 한 상황이다. 재능 넘치는 몸을 더 혹사하게 되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노아가 평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면 제대로 된 실력을 쌓기도 전에 몸져누웠겠지만, 노아의 눈부신 재능은 몸을 혹사할수록 강해졌다.

그 때문에 노아는 날이 갈수록 훈련에 중독된 사람처럼 몸을 단련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희망으로 아름답게 반짝거렸다.

그런 노아와 달리 음울한 기운을 풍기는 사람이 있었다.

“흐으,흐으…”

피아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먼지가 쌓인 손님방 옷장 안에 몸을 웅크린 채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 언니 나 아파, 언니 나 아파, 언니 나 아파, 언니 나 아파, 언니 나 아파, 언니 나 아파, 언니 나 아파, 언니 나 아파, 언니 나 아파, 언니 나 아파,언니 나 아파, 언니 나 아파, 언니 나 아파, 언니 나 아파,

언니 나 아프다니까?! }
언니 나 아프다니까?!

“꺄악..!”

비명을 내지르며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두피가 아플 정도로 힘이 꽉 들어간 손이 제 눈가를 가렸다.

“아 -…아아..”

고동색에 가까운 진한 갈색 머리카락이 뿌리 부분부터 새카맣게 물들어 머리의 절반이 검게 변해있었다. 호박색에 가까웠던 눈동자도 깨끗한 물에 탁한 물이 섞이는 것처럼 서서히 보라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독한 흑마법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몸에 이상 반응까지 생기고 있었다.

“흐윽…엄마,엄마아…”

피아는 눈을 질끈 감은 채 눈물을 터뜨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피아의 엄마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 피아, 동생을 지켜주렴. 넌 강한 아이니까 분명 할 수 있을 거야. }

다정한 목소리와 부드러운 웃음이 눈앞에 그려졌다. 피아가 입꼬리를 파들파들 떨며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엄,엄마아..”

피아는 그 나이대 아이처럼 엉엉 울며 선명하게 떠오르는 환상을 향해 달려갔다.

{ 왜 네가 살아있는 거니? }
왜 네가 살아있는 거니?

밝던 배경이 지옥처럼 붉게 물들고 다정하게 웃고 있던 엄마가 무서운 표정으로 피아를 노려보았다.

{ 내가! 분명! 동생을! 지키라고! 했잖아!! }
내가! 분명! 동생을! 지키라고! 했잖아!!

“끄흐흑! 잘못,잘못했어요..”

피아는 끝없는 두려움에 몸을 덜덜 떨며 용서를 빌었다.

‘네가 죽었어야지’라는 말이 돌림 노래처럼 귓가에 웅웅 울려 퍼졌다. 피아의 눈가가 검게 죽어가기 시작했다.

‘리안..’

피아는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편안함을 안겨주었던 리안을 떠올렸다. 그를 떠올리면서도 찾아가지 못하는 건, 고집과 마법 때문이었다.

왜 동생의 목소리가 리안과 함께 있으면 사그라드는 걸까? 리안이 착한 사람이라서?

피아가 리안에게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생각이 그런 쪽으로 흘러갔겠지만, 그녀는 리안을 ‘가식적인 연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생각이 부정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도반이 건 흑마법은 부정적인 감정을 더욱 증폭하고 마법이 해체되는 곳을 기피하게 만들었다. 그런 이유로 피아는 리안을 피하게 되었다.

‘이게…이게 전부 그 녀석 탓이야.’

피아는 끝을 알 수 없는 두려움을 전부 리안에게 넘겨버렸다. 그렇게 해야만 그녀는 숨을 쉴 수 있었다.

{ 맞아, 언니 전부 그 녀석 때문이야. }

피아의 정신이 일정 수준 이상 무너져 논리적인 생각을 이어가지 못하자, 그녀의 동생이 다른 말을 속삭이기 시작했다.

{ 전부 그 하얀머리 노예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거야. 그러니까 그 녀석을 치워버리자. }

‘치,치우다니?’

{ 다시는 언니를 괴롭힐 수 없도록 여기서 쫓아내는 거야. }

피아가 조금이라도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꾼 동생의 말에 기이함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정신은 벼랑 끝에 몰려있는 상태였다. 이대로 두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 정도로 피아는 죄악감에 짓눌려있었다.

죄를 지은 사람이 죄책감을 느낄 땐 본능적으로 피해자에게 잘해주려고 한다. 속죄를 통해 자신의 마음이 편해지려는 것이다.

피아 또한 그런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아득한 죄악감에 짓눌려 마치 환청의 노예가 된 것처럼 맹목적으로 그 말을 따르기 시작했다.

“내가…내가 어떻게 하면 돼?”

무섭게 증오를 뱉어내던 동생이 나긋한 목소리로 해야 할 일을 하나둘 알려주기 시작했다.

끼익 -.

피아는 옷장을 빠져나와 비틀거리며 방을 나왔다. 흑마법으로 인해 그녀의 기척이 매우 희미해졌다.

***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약간은 서늘한 복도를 산책하듯 걸어가며 중얼거려보지만 마음이 편해지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새로운 실험체라는 말에 눈이 돌아간 미아는 곧바로 노예 시장으로 달려갔다. 거대한 노예 시장은 물론 작은 노예 시장까지 돌아다녀 봤지만 아이리스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 말은 곧, 이미 팔려나갔다는 소리다.

‘괘,괘,괜찮을거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다리가 덜덜 떨리고 있다. 미아를 통하는 방법 말고는 아이리스를 만나는 방법이 딱히 없었기에, 밀도 높은 고구마를 삼킨 것처럼 목이 막혔다.

결국 복도 중간에 머리카락을 움켜쥔 채 무릎을 꿇었다.

‘크아아아! 방법이 없어! 방법이!’

속으로 비명을 내지르며 눈물을 폭포수처럼 콸콸 흘려댔다.

‘그래도 원작이 있고 인과율이라는 게 있는데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

현실 외면을 해보고.

‘어째서 오딜은 도망간 거야! 내가 잘 해줬잖아! 좋은 거 먹이고 좋은 옷도 입혀줬는데!’

분노도 하다가.

‘그냥 여기서 실험체 노예로 쭉 살까?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한데?’

현실에 순응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몇 단계의 감정 변화를 겪고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으아아! 주인공이 내 눈앞에 떨어지게 해주세요! 아니면 어디로든 통하는 문으로 날 주인공에게 보내줘!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아이리스으…!”

개그 세계 주민들은 절망할 때 희망 사항을 열심히 외치며 운다. 그리고 금방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다. 내가 그렇다.

“크응, 식사 준비나 하러 가자.”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외쳤던 그 말이 이루어질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

휘익,후욱!

“이야, 오늘도 굉장하네.”

나는 바느질을 하며 검을 휘두르는 노아를 구경하고 있었다. 검을 잡은 지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허공을 날아다니고 있다.

‘캬 -. 완전 왕자님이네.’

화려한 무술 영화 속 주인공처럼 검을 휘두를 때마다 노아의 짧은 갈색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동화 속 왕자님을 떠올리게 하는 눈동자는 미래에 수많은 여성을 울릴 것이다.

‘나는 그 옆에 들러리겠네. 응..’

주르륵, 눈가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건 눈물이 아니다. 비가 내리고 있는 거다. 여긴 실내 연무장이지만 아무튼 내 말이 맞다.

가볍게 얼굴을 털어내 눈물을 훔치고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

내가 눈물을 흘리는 사이 쉬는 시간이라도 된 건지 줄리아나가 다가와 내가 바느질하고 있는 걸 바라보았다.

“인형 만들고 있어.”

[ 이게? ]

미아의 옷을 대충 수선해준 후 받은 바늘과 실로 헤져서 사용하기 힘든 옷을 모아 귀여운 인형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내 옆에 놓인 성인 남자 주먹만 한 인형을 보여주었다.

[ 오, 생각보다 그럴 듯한데? ]

인형은 양말 인형과 비슷한 형태로 바게트 반만한 몸통에 눈과 코, 입이 수놓아져 있었다.

‘이 정도는 껌이지.’

속으로 으쓱거리며 순식간에 인형을 찍어냈다. 그러자 줄리아나가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다.

[ 아니, 이렇게 많이 만들 필요가 있어? ]

“처음에는 요즘 기운이 없어 보이는 피아에게 줄 만한 인형을 만들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한 명만 주면 아이들이 아쉬워할 것 같아서 애들 거 다 만들고 있어. 줄리아나껀 이거.”

[ 내,내 것도 있어? ]

줄리아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내가 들어 올린 인형을 바라보았다. 다른 인형과 똑같이 깨 같은 눈동자와 작은 입, 코를 가지고 있었지만 머리 스타일이 줄리아나와 비슷했다.

[ 이거 잡을 수 없잖….어? 이거 왜 잡혀? ]

“그야 유령이니까.”

[ 아니, 유령이니까 못 잡지! ]

줄리아나는 몇 번 씩씩거리다가 이내 쉬는 시간이 끝난 듯 검을 휘두르는 노아를 보곤 휙 날아가 버렸다.

“에휴..아이리스를 찾는 것도 문제지만 피아도 문제네.”

최근 들어 나를 슬슬 피해 다니는 피아를 떠올렸다. 멀리서 마주칠 때마다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로 봐선 무슨 일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억지로 만나면 안 되겠지. 릴리 말로는 대화를 해보면 괜찮아 보인다고 했었고.’

만약 내가 싫어서 그런 거라면 피해주는 게 맞았다. 개그 세계에도 잘 생기지 못한 것만 보면 비위가 상한다던 여학생이 내 앞에서 헛구역질하는 일이 있었던 적도 있었다.

‘싫으면 피해줘야지.’

또다시 얼굴 위로 물줄기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음,이제 끝!”

마지막 인형까지 완성한 후 품에 인형을 가득 안아 들었다.

“애들 침대에 가져다두면 되겠지?”

나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인형을 배달하기 위해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 납치되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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