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우터가 제시한 금액을 본 나는 코웃음을 내뱉었다.
“부족한데요.”
“……그게 무슨-.”
나는 그가 내민 스마트폰에 찍힌 숫자를 확인했다.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거의 8자리에 준하는 금액. 일개 연구원에게 갖다 바치기엔 지나치리 만치 많은 금액이기는 했지만…….
‘에게, 고작 이 정도?’
내가 평소 레갈리아에게서 받는 금액에 비하자면 터무니 없이 적은 금액일 뿐이었다. 물론 레갈리아가 주는 금액은 단순히 연구원으로서 주는 금액이 아닌, 악의 조직 간부이며 과학자이자 아마도 이 세상 유일한 지구인으로서 주는 금액이겠지만 어쨌건.
뮤가 제시한 금액이 내가 기존에 받는 금액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적은 금액이라는 건 바뀌지 않는다.
“─그게 말이 됩니까?”
그리고 그 사실을 뮤 또한 받아들이지 못 했는지, 그는 태양빛에 반짝이는 안경을 치켜세우며 반문했다. 그가 제시한 금액 또한 상식선에서 낼 수 있는 최고 금액이기는 했다.
내가 받고 있는 금액이 비상식의 영역에 발을 걸치고 있어서 문제였지.
뮤는 믿을 수 없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주장하듯 열변을 토했다.
“제가 제시한 금액은 전세계 어딜 가도 받을 수 없는 수준의 연봉입니다. 에이트 씨가 스스로 회사를 차려서 그 기업이 성공하지 않는 한 벌어들일 수 없는 수준이지요. 그런데 그게 부족하다? 이블스에서는 그보다 더 큰 금액을 당신에게 바치고 있다는 겁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럴 리가. 물론 당신이 만들어낸 회로나 반중력 장치는 대단하지만─ 동시에 너무나 대단한 보물이지요. 당신이 홀로 독립해서 사업을 펼친다고 한들 지켜낼 수 없는 기술이라고요. 당신도 그 사실을 알고 있으니 이블스에 속해 있는 것 아닌가요? 그러니 이블스에게서 받는 금액도 그보다 못 한 수준일 텐데……!”
“제가 뭐 통장을 보여드릴 수도 없고…… 믿고 싶지 않다면 믿지 않으시면 됩니다. 아무튼 제시하신 금액이 너무 부족해서 고민이고 뭐고 생각도 안 드는 수준이네요.”
“……후회하실 겁니다.”
뮤는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기 할 말만 하고 떠나는 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헛웃음 날리며 따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도 가죠. 재수 옴 붙었네.”
“엉? 어어…… 그보다 에이트? 너 그렇게 많이 받니?”
“……노코멘트할게요.”
“우와아…… 역시 기술자는 다르구나- 에이트, 나랑 결혼할래?”
“돈 보고 달라붙는 사람은 좀.”
“아아- 아쉽네.”
비라가 내 월급 통장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가운데, 발차기가 막혔을 때부터 안절부절못하던 레비탄이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비라, 에이트. 미안. 나 가볼 곳이 생겨서.”
“네? 예. 조심히 가세요.”
그리 한 마디 남긴 레비탄은 잽싸게 어디론가 사라졌다. 갑자기 떠나는 그녀를 의아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던 와중에 뒤늦게 놀란 비라가 꺄악- 비명을 내질렀다.
갑자기 왜 그러나 몰라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비라가 저 멀리 레비탄이 떠난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레, 레비땅이- 사투리 없이 말했어!”
“……예?”
“왜! 잘 생각해봐! 앙앙거리는 게 아니라 표준어로 말했잖아!”
그녀의 말을 들은 나는 레비탄이 떠나기 전 평범하게 말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리고 비라 못지 않은 충격에 빠졌다.
‘그럼 지금까지 그 말투를 일부러 내고 있었단 말이야?’
믿기 힘든 진실과 마주한 나는 비라와 똑같이 멍한 표정으로 레비탄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멀쩡하게 말할 수 있었으면서 왜 그러고 다녔나 의아할 뿐이다…….
* * *
스카우트에 실패한 뮤는 골목길에서 담배를 꼬나문 채 퍽퍽 한숨을 내뱉고 있었다. 보스께서 내린 명령에 실패했단 부담감이 그의 두 어깨를 짓눌렀다.
그렇게 한참 담배를 피우고 있을 무렵, 레비탄이 슬쩍- 그가 있는 뒷골목에 모습을 드러냈다. 토끼 귀 달린 레비탄의 모습을 본 뮤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정말로 왔군.”
“……왜 불렀죠?”
“말이 짧구나. 그 토끼 귀를 보아하니 L-시리즈 중 하나인가?”
후우- 뮤는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물었다. 그 이름을 들은 레비탄은 몸을 움찔거리며 뮤를 노려보았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름.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그녀의 뇌를 헤집어놓기 시작했다.
“이제 그런 이름으로는…….”
“아아, 시끄럽네. 기워 만든 짐승 주제에- 네가 여기에 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아직도 모르겠냐?”
뮤는 그리 말하면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레비탄은 자신의 뇌를 희롱당하는 기분을 받기 시작했다. 질척거리는 촉수가 제 뇌를 선명하게 핥는 듯한 이 기분…… 유전자 단위로 새겨진 명령 체계가 그녀를 통제했다.
“운이 좋아. 그 건방진 과학자 놈을 어떻게 하면 손에 넣을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그 애송이랑 친해보이는 짐승이 있을 줄이야.”
“나, 나는─.”
“가라. 짐승년아. 가서 에이트를 데려와. Z 시로. 우리 오메가 인더스트리로.”
안 돼.
차마 그리 말할 수 없었다.
거부는 그녀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지 않았다.
결국, 레비탄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경례했다.
“……예, 알겠습니다.”
이 순간 그녀의 영혼이 죽었다.
남은 건 레비탄의 껍데기를 뒤집어 쓴 인형에 불과했다.
* * *
다음 날.
휴가날에도 출근한 레비탄은 어제와 같은 말투로 인사했다.
“안뇽안뇽-! 방가방가! 하이영!”
“레비땅! 돌아왔구나!”
“우웅-? 레비땅은 무슨 소린지 모르겠엉!”
비라가 원래 말투로 돌아온 그녀를 반갑게 맞이하는 가운데, 레비탄은 자연스레 내 옆으로 다가왔다. 소파 위에 앉아 있는 내 허벅지 위로 제 다리를 걸친 레비탄은 발로 제 팔뚝을 툭툭 건드리며 입을 열었다.
“에이트- 오늘도 놀라가장. 어제 약속했잖아?”
“……아니, 전 약속까진 안 했는데.”
“왜 그랭-! 비라도 좋징? 같이 놀러가는 겅!”
“나야 찬성이지!”
두 인싸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가운데, 나는 이 상황을 벗어나고자 그녀가 곤란해할 법한 이야기를 굳이 입에 담았다.
“─그보다 레비탄 씨.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어젱-?”
“예. 갑자기 사라졌던 거…….”
“레비땅이라고 안 불러주면 안 알려줄거양-!”
“……비라 씨, 대신 부탁드려요.”
“에이트가 안 해주면 안 됑!”
이 인간, 토끼 수인답게 빠져나가는 거 하나는 선수였다. 나는 레비땅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았을 때 생기는 수치심과 그녀가 어제 뭘 했는지 궁금해서 생기는 호기심 + 그녀와 외출해서 생기는 귀찮음 중 어느것이 더 커다란지 고민했다.
당연히도 전자가 훨씬 더 커다랬고,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 아래 입을 닫고 소파에서 일어섰다.
“자, 데이트나 갈까요?”
“꺄앙-! 에이트 과감행! 미녀 둘을 데리고 데이트 할 셈이야? 그건 안 댕!”
“아, 그러면 데이트는 취소. 본부에서 노가리나 까죠.”
“그것도 안 됑! 나랑 비라, 둘 중 한 사람을 골랑!”
“그럼 비라 씨. 우리 본부에서 쉬죠.”
“에엥-!?”
레비탄이 어떻게 자신을 놓고 비라를 고를 수 있느냐고 항의하는 가운데, 나갈 수 없게 된 비라도 퍽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둘이 어쩔 것인가? 내가 안 나가겠다는데. 결국 레비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말했다.
“이양- 에이트, 그렇게 안 봤는데 엄청난 난봉꾼이었엉… 어쩔 수 없징! 오늘은 착한 레비땅이 용서해줄게!”
“아니, 안 나갈 거라니까요-.”
“비라양! 차 준비해! 나가장!”
“오케이-!”
레비탄의 말에 비라는 잽싸게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레비탄은 거부하는 내 허릿춤을 붙잡고 들어올렸다. 수인 특유의 괴력이 나를 들어올리니 무능력자에 불과한 나는 아무런 저항도 못 하고 납치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지하 주차장으로 끌려간 뒤 미리 준비된 차량에 태워진 나는 한숨을 내쉬며 운전석에 앉은 레비탄에게 물었다.
“……그래. 어디로 갈 거예요?”
“비밀이양!”
“아니, 그런 것도 말 안 해줘요?”
“엄청 좋은 곳!”
수인이 좋다고 말하는 걸 보면 동물원이려나…… 그리 생각하던 나는 한숨을 내쉬며 차량이 이동하는 걸 얌전히 지켜보았다.
레비탄이 운전하는 차량은 언뜻 과격하다 싶으리 만치 재빠르게 도시를 빠져나갔다. 간다고 한 곳이 도시 외곽에 있나 보다. 그리 생각할 때쯤이었다.
싱글벙글 웃으며 창문 바깥을 바라보던 비라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가기 시작했다. 표정 굳힌 그녀는 내게 슬쩍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이게 뭔가 싶어 그녀를 바라보자, 비라는 제 스마트폰을 툭툭 가리켰다.
[뭔가 이상해. 도망친다.]
“예? 그게 무슨─.”
비라가 무언가 하기도 전에, 갑작스레 가속한 차량이 어딘가에 쏘옥-! 들어갔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비라가 기겁하며 크게 소리쳤다.
“─레비탄! 배신한 거냐!”
“……으응. 미안행. 정말로. 나도 절대 이러고 싶어서 이런 게─.”
쿠우웅-!
차량이 마구 흔들린다. 마치 무언가에 부딪친 것마냥.
충격에 놀란 비라가 기겁하며 나를 끌어안고, 그 짧은 충격에 의해 의식을 잃었던 나는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리자 사방이 탁 트인 사막이 나를 반겼다. 대체 얼마나 기절한 건지. 방금 전까지는 도시 외각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놀라울 따름이다.
“깼어?”
“……비라 씨?”
“그래. 절대 내 품에서 벗어나지 마. 벗어나는 순간 못 지키니까.”
비라의 말을 들은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엔 짐승대가리를 한 수인들이 이쪽을 노려보며 서 있었다. 그리 선 수인들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이 걸어나왔다.
어제 나를 스카우트하려다가 실패한 뮤였다.
“─반갑습니다. 에이트 씨.”
“……당신은.”
“제가 후회하게 될 거라고 말씀드렸죠?”
그리 말하며 다시금 안경을 치켜 올린 뮤는 내게 다시 한 번 제안했다.
“그러나 저희 오메가 인더스트리는 자비로운 기업. 지금이라도 저희 기업으로 오신다면─.”
“에잇-.”
피이잉-!
시계에 장착된 일회용 레이저가 그대로 쏘아져 뮤의 얼굴을 후려쳤다. 레이저에 얻어맞은 뮤는 놀랍게도 얼굴 피부가 조금 벗겨졌을 뿐 멀쩡하게 서 있었다.
저거 갈름 배때지도 뚫었던 건데…….
놀라기도 잠시, 피를 뚝뚝 흘리던 뮤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나를 노려보았다.
“……말로 하면 안 되겠군요.”
“말로 안 하면 어쩔건데? 너희가 우리 비라 배리어 뚫을 수 있을 거 같아?”
“에, 에이트? 그렇게 도발하면 조금 곤란한데…… 우리 지금 적진 한복판에-.”
“후, 후후- 그렇죠. 그쪽의 호위는 저희도 퍽 곤란한 능력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알아서 나오도록 해야겠죠.”
딱- 뮤가 손가락을 튕기자 우리를 배신하고 이곳까지 끌고 온 레비탄이 앞으로 걸어나왔다. 뒤이어 십자가에 묶인 그녀는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눈빛으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만 보고서도 무언가 사정이 있었음을 예상할 수 있었다.
“─당신이 그곳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이 여자를 고문하겠습니다. 나름 당신과 친한 동료였으니 그런 모습을 보는 건 슬프겠죠?”
뮤는 그리 말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주변에 선 수인들이 기다렸다는 듯 날붙이 따위를 들고 레비탄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그리 달려가는 수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잠깐!”
“후후, 말리고 싶다면 거기서 당장 나오…….”
“머리는 남겨줄 거지?”
“……예? 아니, 그야 뭐- 죽일 생각은 아니니까요.”
“그럼 됐어.”
내 말을 들은 뮤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건 무척이나 중요했다.
머리가 있고 없고는 그만큼 큰 차이가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