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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

   

    기에 스스로의 별을 새긴다….

   

    서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그건가? 심기체가 어쩌고 정기신이 어쩌고.”

    “맞아. 정기신精氣神. 그러니까 강기는 기氣에 신神이 깃들었다 할 수 있는 거지.”

    “뭐?”

    “에휴.”

   

    이론은 어렵다. 이론 같은 거 몰라도 잘 쓰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서준이 툴툴대자 춘봉이 눈높이 맞춤 교육을 실시했다.

   

    “네가 쓰는 내공에 심상이 깃든다고. 그게 별의 형태로 나타나는 거고.”

    “아하. 그러면 그렇게 말하면 되지 왜 굳이 어렵게 말하는 거임?”

    “몰라 나도.”

   

    춘봉이 고개를 저었다.

   

    원래 한 분야의 전문가들은 말을 어렵게 쓰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도 지들은 다 알아듣는다 이거지 뭐.

   

    그런 그녀를 빤히 바라보던 서준이 물었다.

   

    “근데 있잖아. 그 마물.”

    “갑주귀?”

    “어. 걔. 원래 그런 놈이 아무데서나 막 튀어나오고 그러냐?”

   

    그 정도면 거의 천재지변 아닌가? 옆집 수돗물이 넘쳐서 생긴 해일이 우리 집을 부수면 그런 느낌일 것 같다.

   

    “그러겠냐? 그랬으면 인구가 절반은 줄었을걸?”

    “그치? 하긴. 말이 안 되긴 해.”

    “근데 이제는 모르지. 일단 어제는 튀어나왔잖아.”

    “뭣.”

   

    사실 이거 무협이 아니라 아포칼립스였나?

   

    “그러면 원래 마물들은 어디서 사는데?”

    “음…. 보통 사람 사는 데는 잘 없지. 어지간한 동네는 무림인들이 치우니까.”

    “그럼 여기는? 청하문 이 새끼들 농땡이 쳤나?”

    “그건 진짜 모르겠네. 애초에 갑주귀 정도 되는 마물이 인간들이 사는 지역까지 몰래 내려오는 게 말이 안 되는데.”

    “흐음, 여기가 마물들 서식지랑 가까운가?”

    “아니. 섬서가 좆밥으로 보이냐?”

   

    섬서? 서준의 눈이 번뜩 뜨였다.

   

    “화산파 있는 그 섬서?”

    “어, 맞아. 화산파는 어떻게 또 아네.”

    “유명하지, 화산파.”

    “근데 씨발 신검금가를 모른다고?”

   

    춘봉이가 긁혔다. 근데 이건 진짜 억울하다.

   

    “아니! 우리 동네 사람들한테 물어봐! 화산파는 알아도 신검금가는 모른다니까?”

    “어, 알았어. 알았다고.”

    “아니…!”

   

    진짜 억울하네.

   

   

    *

   

   

    삐진 춘봉이를 잠시 방치하고 방을 슬쩍 빠져나왔다.

   

    원래 이런 건 시간 텀을 좀 두고 사과해야 잘 먹힌다.

   

    “어디….”

   

    서준은 청하문 내부를 어슬렁거리다 문주전 앞에 섰다.

   

    딱히 지키는 사람은 없었다. 자신감인지, 이런 시골 문파에서 딱히 호위까지 둘 필요는 없다는 건지.

   

    자신이 신경 쓸 바는 아니었기에 문주전의 문을 두드렸다.

   

    “계세요?”

    “들어오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청하문주가 검을 닦고 있었다.

   

    나이 좀 지긋하신 어르신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천으로 검을 닦고 있으니 확실히 뽀대가 난다. 이게 무협이지.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요.”

    “편히 말하게.”

    “청하문쯤 되면 가지고 있는 영약이 있겠죠?”

    “있지. 그리 상급의 물건은 아니지만.”

    “혹시 달라고 하면 주시나요?”

    “필요한가?”

   

    문주가 검의 손질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심유한 눈이 서준을 바라본다. 잠시 그 시선을 똑바로 마주하던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런가.”

   

    문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검을 정리하고는 서준을 지나쳐 문주전을 나섰다.

   

    “따라오게.”

   

   

    *

   

   

    문주의 뒤를 따라가니 건물이 하나 나왔다.

   

    ‘의약당.’

   

    건물의 현판에 그런 글씨가 크게 적혀있었다.

   

    ‘괜히 뿌듯하네.’

   

    이제 나도 한자 좀 읽는다.

   

    사실 전에도 알던 한자들인 것 같긴 하지만 아무튼 그렇다.

   

    “당주, 안에 있는가.”

    “문주님?”

   

    그리 큰 건물은 아니었던지라 문주의 목소리에 중년인 하나가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청하단의 여분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 예. 남아있습니다만.”

    “하나 내주게.”

    “예에?”

   

    의약당주의 눈썹이 휘었다.

   

    그는 서준을 한 번 훑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쓰읍…. 알겠습니다.”

   

    당주가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서준은 문주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번 물어본 거였는데 진짜 주시게요?”

    “얘기는 들었네. 운이에게 가르침을 주었다지.”

   

    기가 흐르는 대로 두면 성취가 있을 거라는 조언이었나?

   

    가벼운 조언 한 마디가 영약으로 돌아올 줄은 몰랐다.

   

    “별거 아니었는데….”

    “누군가에겐 가벼운 일이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을 수 있지. 자네의 한 마디에 운이가 깨달음을 얻었으니 영약 한둘쯤 내어주는 건 대단한 일도 아닐세.”

   

    서준이 입을 꾹 다물었다.

   

    가만히 문주를 바라보던 그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됐네. 하던 대로 하게.”

    “와 정말요?”

    “…조금 더 고민 해보지.”

   

   

    *

   

   

    문주에게서 청하단을 받아든 서준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으음-.”

   

    목함의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아보니 청아한 향이 몸속을 훑고가는 듯하다.

    지난번에 춘봉이에게 먹였던 흑목단보다 상쾌한 느낌이 강했다. 

   

    “이 정도면…. 그래도 완치는 힘드려나.”

   

    한숨을 내쉰 서준이 청하단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마른 풀들이 잔뜩 섞인 갈색 덩어리. 이 별거 아닌 단약에 깃든 기가 사람을 살린다.

   

    ‘알면 알수록 어렵네.’

   

    과연 기라는 것은 무엇인가.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깊은 수렁에 빠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뭐 어때.”

   

    언젠가는 깨닫겠지. 

   

    목함의 뚜껑을 닫은 서준이 숙소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이, 춘봉이. 아직도 삐져있나?”

    “삐진 적 없거든.”

    “어이구 우리 춘봉이가 잔뜩 뿔이 났네.”

   

    잔뜩 부풀어 평소보다 배는 통통한 볼살을 꾹꾹 누르니 춘봉이가 눈을 부라렸다.

   

    “하지 마라.”

    “에이, 왜 그래. 우리 춘봉이 주려고 오빠가 또 좋은 거 하나 받아왔어.”

   

    목함을 내밀자 춘봉이의 눈썹이 움찔거린다.

   

    그녀는 잠시 목함을 빤히 바라보더니, 볼을 긁적이며 서준의 얼굴을 흘끗거렸다.

   

    “…진짜 괜찮은데. 나 이제 거의 다 나았어.”

    “낫기는 무슨.”

    “진짜래도. 저번에도 내가 먹었잖아. 이번에는 니가 먹어.”

    “씁!”

   

    강제로 먹일 듯 목함을 들이밀자 춘봉이가 입술을 삐죽였다.

   

    “네가 더 강해져서 다른 영약 구하면 되잖아.”

    “그때가 언제일 줄 알고.”

    “뭐…. 오래 걸리겠냐?”

    “그건 아닐 것 같긴 해.”

   

    어떻게 잘 구르다 보면 영약 한두 개쯤은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서준은 자신의 수준을 얼추 알았다.

   

    아무렇게나 설치고 다니기에는 위험하지만, 어지간한 동네에서는 적수가 없는 경지.

   

    쉽게 오른 것 같지만 사실 절정이라는 경지는 결코 얕볼 만한 경지가 아니었다.

   

    “근데 있잖아.”

    “응?”

    “빈틈…!”

   

    서준이 빛살처럼 출수해 목함을 열고 청하단을 집어들었다.

   

    춘봉이 반응했다. 눈을 번뜩인 그녀가 바닥을 손으로 쳐 그 반동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딜…!”

   

    서준이 손을 뻗었다. 얕게나마 배운 금나수의 수법으로 춘봉의 소매를 잡았다.

   

    하지만 기에 대해서라면 모를까, 무공 자체는 춘봉이 한 수 위다.

   

    그녀 역시 잡힌 손으로 서준의 소매를 잡았다. 노리던 바다.

   

    서준 역시 순수 체술로 춘봉을 이길 생각은 없었다.

   

    “잡았다 요놈!”

   

    서로 잡은 팔을 잡아당겨 춘봉이를 품에 안았다.

   

    “무, 뭣…!”

   

    당황한 춘봉이가 팔다리를 바동거린다. 외통수다. 

   

    “니가 뭘 할 수 있는데!”

   

    진심으로 때리면 벗어날 수 있겠지만 금춘봉이 그럴 수 있을 리가 없다.

   

    춘봉을 꽉 끌어안은 서준이 그녀의 입술에 청하단을 밀어붙였다.

   

    “입 안 여냐? 영약 부서진다? 이거 부서지면 효과 다 날아가는 거 알지?”

    “으브브븝!”

    “어허, 좋은 말로 할 때 여세요!”

    “브부븝!”

    “쓰읍!”

   

    서준의 눈빛을 본 춘봉은 직감했다. 이 새끼는 영약을 부수고도 남을 새끼다.

   

    포기한 춘봉이 입을 열었다.

   

    속이 쓰릴 정도의 미안함 위로 청량한 영약의 기운이 흘러들어온다.

   

    “가부좌 틀고, 가만히 있어.”

   

    따스한 그의 목소리에 따르며 눈을 감았다.

   

    ‘…바보.’

   

    사람만 좋아서는.

   

   

    *

    

   

    이전과 같이 음양반전의 수법으로 춘봉의 절맥을 치료한 서준이 숙소 밖으로 나왔다.

   

    “하아….”

   

    춘봉이는 영약의 흡수를 끝마치고 잠들었다. 

   

    서준은 제 손을 내려다보다 주먹을 꽉 쥐었다.

   

    “이게 되네.”

   

    새로운 시도였는데 운이 좋았다. 

    아니, 실력이지. 나 아니면 누가 이런 게 된다고.

   

    속이 든든해진 듯한 기분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춘봉이의 절맥을 치료하면서 새어나오는 음기. 또다시 반전시켜 양기로 만들기는 애매한 그것을 자신이 흡수했다.

    

    혼원신공은 편식하지 않고 음기를 야무지게 흡수했고, 그 결과 서준 역시 어느 정도 내공의 증진이 있었다.

   

    “이게 바로 일석이조지.”

   

    마당에 선 서준이 내공을 운용했다. 혼원신공의 탁한 내공이 그의 혈도를 타고 자유롭게 흐르기 시작했다.

   

    ‘보통 영약을 백 프로 흡수하지는 못 한다는데, 그 옆에서 흘러나오는 것만 받아먹어도 개이득 아닌가?’

   

    문득 영약 먹는다는 사람 있으면 옆에 붙어있어볼까 생각해봤지만, 춘봉이 말고는 허락해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 포기했다.

   

    아무튼 지금 당장은 쓸데없는 생각이다.

   

    서준은 미뤄두었던 과제를 꺼내드는 대학생의 심정으로 어젯밤의 전투를 복기했다.

   

    ‘갑주귀의 호신공.’

   

    물론 갑주 자체의 방어력도 있으니 맨살로는 어찌될지 모르겠지만 익혀둬서 나쁠 건 없다.

   

    내공을 기억해둔 흐름에 따라 인도하는 서준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대학생과 자신의 차이점이 있다면 과제는 좆같지만 무공은 재밌다는 것.

   

    하룻밤이 빠르게도 지나갔다.

   

   

    *

   

   

    다음날 아침.

   

    서준의 억장이 무너졌다.

   

    “아, 안 돼애애애애…!!!”

   

    하품을 하며 걸어나오는 춘봉이의 볼살이, 미세하게 빠져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비공개로 후원해주신 독자님, 감사합니다!
재밌게 읽어주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검성 님 후원 감사합니다!
1..?

*

저는 진중하고 젠틀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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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무공 뭐 별거 없더라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fell into a phony martial world. But they say martial arts are so hard? Hmm… is that all there is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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