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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

       -야 이 미친 새끼야아아아아아!!!

       

       호통이 날아왔다. 나는 서서히 걷히기 시작하는 백색 공간 속에서 코를 후볐다.

       

       "예? 왜요?"

       -네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른 줄 아느냐?!

       "저, 저…라 언니…"

       -입 닥쳐라! 멍청한 년아!

       "하으읏…"

       

       나는 당당했다.

       

       "뜯을 수 있는 건 다 뜯으라면서요?"

       -정도가 있지! 네놈은 선도 없는 것이냐?! 그래도 명색이 신을 섬기는 사제인데 뭐? 다른 신의 흔적을 받아?!

       "제, 제가 설명…!"

       -네년은 닥치래도!

       "흐아앙."

       

       나는 울음이 터기 직전인 나가를 감쌌다.

       

       "우리 나가님한테 왜 그래요?"

       -우, 우리 나가님? 아…아…혈압…혈압이…

       "자, 자하드…"

       

       그녀가 꼼지락거리며 내 몸에 달라붙었다. 그래. 그래라.

       넌 이제 내 것이니 더 달라붙어도 된단다.

       

       "라님. 그러지 말고 저 멀리 가서 대화 좀 하죠."

       -여긴 네 정신세계다! 더 갈 곳은 무슨!

       "에이.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잖아요. 나가님.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요. 라님 화 좀 가라앉히고 올게요."

       "모, 몸조심…"

       

       나는 그녀에게서 멀어졌다.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나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라의 호통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이 미친놈아!

       "다 듣고 있으니까 데시벨 좀 낮춰주세요!"

       -네놈이 날 우습게 여긴 건 그래! 일단 넘어가자! 네놈이 저지른 게 무엇을 뜻하는지 너는 하나도 모르고 있다!

       "뭘 뜻하는데요?"

       

       화르륵거리며 앞에서 불꽃이 튀었다. 거대한 칠판이 탁하고 놓이더니, 그 앞에서 불타는 분필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그림을 덧대어 설명해주시다니. 친절하셔라.

       

       -네놈의 몸은 내가 직접 만든 오로지 태양신의 힘으로 빗어낸 육체다!

       "성능이 좀 좋긴 하더라고요."

       -그게 다가 아니다! 내가 직접 만든 육체에, 얼마나 많은 성흔이 담겨있는지 아느냐?!

       "손등에 하나 있던 게 다던데."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네 몸 전체가 내 성흔으로 뒤덮인 거나 마찬가지란 말이다! 널 위해서 최대한 시스템이라는 것을 만들어내고…그 위에 세상을 끼워 맞추고…얼마나 지랄을 해댔는데…

       

       분필이 부들부들 떨었다.

       

       -이 새끼가 바람을 피워?!

       "유능한 남자를 아무도 잡아둘 수는 없는 편."

       -이 개새끼! 그냥 여기서 죽어라! 감히 날 창피를 주다니! 뭐?! 한 신의 사도가 두 명의 신을 섬겨?! 이게 다른 신의 입에 들어가면 존나 싸다고 소문난단 말이다!

       "얻을 거 다 얻으라면서요."

       -뱀 신을 얻으라고 말 한 적은 없다아아아아아아아!!!!

       

       씩씩거리던 분필이 축 늘어졌다.

       

       -내가 왜…내가 왜 하필 너 같은걸…

       "뚝해요. 뚝."

       -개새끼…나쁜 새끼…거기다가 네 몸에 그게 얼마나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지 아느냐? 그건 말 그대로 인과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전례가 없는 일에는 모두 이유가 있다. 그게 어마어마한 부작용을 이끌고 오던…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결과로 이끌던…항상 파멸만이 가득 차 있다는 말이다.

       

       분필이 휙 날아왔다.

       

       -몸에 이상은 없느냐?

       "시스템에 이상한 설명이 적혀 있긴 했어요."

       -…뭐라고 적혀있더냐?

       "라님은 못 봐요?"

       -그것까지 하면 세상이 비틀려서 나는 수치화된 세상을 네게 보여준 것만으로 만족했다. 나까지 시스템에 손을 대면 모든 게 망가진다.

       "그렇구나. 그냥 별말은 아니고, 종족이 ???가 되거나 일부 신체가 뒤틀린다던가의 표현…"

       -…….

       

       불꽃이 화륵 일어났다. 다급히 내 몸 여기저기를 더듬었다.

       

       -터지기 직전의 폭탄이다.

       "제 몸이요?"

       -그래. 네 몸이 말이다! 이 빌어먹을 것아! 다른 성력은 반발하기 마련이다! 나가 그 개년이 말하지 않았더냐?!

       "안 말해주던데요?"

       -그 멍청한 년이! 휘하 신도에게 발정해대던 걸 보고 골이 비었다는 걸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라가 잠시 침묵했다.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이 없다. 넌 죽는다.

       "예?"

       -두 가지가 섞였으니,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 어쩌면 내일 터질 수도 있고, 그 다음 날 터질 수도 있다. 인간의 껍질이 전부 깨어지고, 지상 최악의 성력 덩어리 괴물이 될 수도 있겠지.

       "에이. 설마 거기까지는."

       -반발하는 성력을 고작 인간의 그릇으로 막을 수 있을 줄 알았더냐? 내가 예상한 건 뱀신의 성물쯤이었는데…이 망할 녀석이 사도라는 직책까지 달고 와서는…

       "…그런 거라면 좀 곤란한데."

       

       나는 머리를 굴렸다. 터지기 직전의 성력이라. 내 몸 안에서 다른 두 종류의 성력이 끊임없이 싸우면서 폭발하고 있다는 거지?

       

       근데 마냥 그런 쪽으로 생각하기에는 발을 붙잡는 문구가 있었다. 모든 정보를 수치화해서 보여주는 시스템이라면, 거짓말은 안 했을 텐데.

       

       "몸 안에서 핵폭탄이 매일 터지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래! 피폭이다! 멍청한 놈아! 전쟁은 그 땅 또한 더럽힌다! 전쟁을 겪은 대지는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손상되는 게 보통이란 말이다!

       "하지만 뒤섞였다고 나오던데요."

       -그게 거기서 거…아니. 잠시만. 뭐? 뒤섞여?

       

       불꽃이 다시 한 번 내 몸에 손을 댔다.

       

       -…잠깐. 이게 무슨.

       "무슨 일이에요?"

       -성력의 변질…처음 보는 성력의 덩어리…이건…작지만 어쩌면 반신의 그릇이 될지도 모르는…생각해보니…애초에 이 녀석의 육체는 인간이 아닌 내가 빗어낸 성흔 그 자체…

       

       불꽃이 새파랗게 질렸다.

       

       -네놈…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것이냐?

       "저도 모르는데요."

       -이, 일단 묻어두어라! 내가 조금 더 생각을 해보아야 할 거 같으니! 다행히 금방 터지지는 않을 거 같구나! 이건 조금 더 연구가 필요하겠군…

       

       불꽃이 내 팔을 붙잡았다. 어디선가 생겨난 채혈기가 내 피를 쪽 빨아갔다.

       

       "아야."

       -한동안 바빠질 테니 아마 연락은 못 받을 거라 생각한다. 도움이 필요하면 나가에게 물어라. 그 년은 비교적 할 일이 적은 년이니.

       "좀 쓸쓸해지겠네요."

       -네놈 탓이지 않더냐!

       

       불꽃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쓱 불꽃의 끝 부분을 붙잡았다.

       

       "저기요. 라님."

       -또 뭐냐!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건, 라님인 거 아시죠?

       -……

       "이 육체도 라님이 만들어 준 거고, 거기다가 서로만 알고 있는 비밀을 속닥거린 사이고, 이곳에서의 제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 신이니.

       

       나는 불꽃을 쓰다듬었다.

       

       "라님은 제게 있어 가장 소중한 신이에요."

       -…이 새끼가.

       

       불꽃이 화륵 타올랐다.

       

       -괜히 더 화나네. 바람둥이 새끼가! 좀 처맞아라!

       "악! 악!"

       -내가 진짜…하필이면 저런 인간을 왜…

       

       불꽃이 사라졌다. 나는 공간에 대고 외쳤다.

       

       "라님! 제가 많이 아껴요!"

       -입 닥쳐라! 망할 놈아!

       

       

       

       

       . . .

       

       

       

       "자하드?"

       

       누군가 내 어깨를 흔들고 있었다. 나는 눈을 번쩍 떴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변은 얼음으로 가득차 있었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 건가. 몸이 영 찌푸둥했다. 내가 모르는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몸은…여전하군.

       

       하지만 뭔가 달라졌다. 손등을 보았다. 태양신의 성흔이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왠지 다른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거 같기도 했다.

       

       "너 괜찮아?"

       "누나. 이거 볼래요?"

       "응?"

       

       손등을 쓱 내밀었다. 손등의 성흔이 소용돌이치더니, 이내 성흔의 형태가 바뀌기 시작했다.

       태양을 닮았던 문양이 뱀을 가리키는 문양으로.

       

       "…어?"

       

       이자벨라의 멍한 소리에 나는 성력을 슬그머니 일으켰다. 태양이 아닌, 검은 그림자를 닮은 사한 기운이 발끝을 맴돌기 시작했다.

       

       "진짜 되네."

       "이, 이게 무슨."

       "나가님을 뵙고 왔는데, 생각보다 절 마음에 들어 하시더라고요."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이자벨라에게 생긋 웃어주었다.

       

       "절 사도로 임명하신다고 하시던데요? 물론 태양신을 섬기는 것도 여전하지만. 누나만 알고 있어요."

       

       이자벨라가 그대로 졸도했다.

       

       

       

       . . .

       

       

       

       

       "이런 현상은…본 적이 없어."

       

       유일하게 비밀을 공유한 이자벨라가 침울하게 말했다.

       

       "나가님이 직접 사도를 뽑았는데…그게 하필이면 태양신교 사제라니. 태양신은 뭐라 하시는데?"

       "제가 유능하다고 좋아하시던데요?"

       

       물론 입에 거품을 물었다.

       

       "신들은 아득히 우리 위에 서 계신 분들. 하지만 인간은 결국 신을 본떠 만든 레플리카에 불과하다고 해. 아무리 유능하다고 해도, 그들을 따라잡을 수는 없지. 그런데 너는 그런 분들에게서 유능함을 인정받았을 정도니…"

       

       그녀가 성호를 그었다.

       

       "이것 또한 나가님의 가르침일 거야. 자하드. 내가 널 가르치겠어. 선택은 네 몫이지만, 네게 성흔이 나타난 이상, 뱀 교단의 가르침을 들을 자격이 있어."

       "저야 좋죠."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있다.

       베이그니스한테 언제 삼켜질지 모르는 빈 공동 속에서, 나는 이자벨라와 수련을 할 수 있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땅굴 속에서 단둘이서.

       

       물론 이단심문관들과 라다토크에게서 의심을 받기도 했다.

       

       "요즘 들어 뱀 교단과 너무 자주 붙어있던데."

       "형제. 혹시 사악한 생각을 품는 건…"

       "말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타락할 수 있습니다. 형제님."

       

       튀어 나오는 목소리는 게딱지 하나면 조용해졌다.

       

       "형제도 생각이 있는 거겠지."

       "이렇게 경건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건, 형제가 타고난 태양신교라는 증거."

       "의심해서 미안하군."

       "한 그릇만 더 줄 수 있겠습니까. 형제님."

       

       따분하게 홀로 시간을 보내던 때와 달리, 배울 게 확실히 생기자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이자벨라는 딱딱한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내가 수련을 하다 다치면 곧바로 달려와 치유 성법을 퍼부어댔다.

       

       "자, 자하드 괜찮아? 역시 조금 시간을 늦추는 게…"

       

       다소 딱딱하던 자세도 어느 정도 수그러들었다. 이제는 완전히 진짜 누나에 가까울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되려 더 엄격한 훈련을 요구했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한참은 빗겨나갔지만, 독과 어둠 성법에 대해서 배울 기회였으니.

       

       "조금 더 저를 채찍질하고 싶어요. 누나."

       

       나는 쓰러져도 곧바로 일어섰다.

       

       "나가님의 가르침이라 생각하면, 하나도 힘들지 않은 걸요."

       "…너란 아이는 정말."

       -자하드…귀여워요…

       

       라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빈자리는 이제 나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굴을 맞대지 않고 있을 뿐인데, 그녀의 성격은 약간 달라져 있는 듯했다. 그 뭐랄까.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방구석 오타쿠가 자기 장르에 헉헉거리는 느낌.

       

       -귀여워…내 신도 귀여워…저 땀방울…어깨 핥고 싶다…

       

       막상 만나면 쭈글 되던 신이 왜 저래.

       

       그렇게 이십 일이 넘고, 삼십 일이 넘게 지나갔다. 아직도 느릿느릿 삼키던 베이그니스의 움직임이 어느 순간 뚝 멈췄다.

       

       자연스럽게 마주 앉아 짐짝에 섞여 있던 카드로 놀고 있던 뱀 교단과 이단심문관들이 흠칫했다.

       

       "뭐지?"

       "드디어 뭔가…"

       

       바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끔찍한 냄새가 균열 사이로 뒤섞여 올라왔다.

       

       베이그니스의 입속.

       

       스테이지 3가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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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성기사가 성물을 독차지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 world where magic reigns supreme and the influence of gods wanes, a young boy finds himself unexpectedly thrust into the role of an acolyte in the declining Sun God’s Temple. Blessed with the divine stigma of the Sun God, he must navigate the temple’s internal politics, the hostility of his fellow acolytes, and the challenges that come with his newfound powers.

As he delves deeper into the mysteries of the temple, he discovers hidden secrets and powerful artifacts that could change the course of his destiny. With the guidance of an enigmatic senior acolyte and the unwavering faith in his own abilities, he sets out to prove his worth and carve his own path in a world that has all but forgotten the true power of the div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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