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8

        

       

       

         

         

         

         

       <메르헨의 마법 기사> 「6막 3장, 허구지옥」 파트의 최종 보스, 허상의 리파.

         

       레벨은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낮으나, 속성을 보니 놈이 분명했다.

       

       저놈이 벌써 튀어나올 리 없었다. 6막 3장은 1학년 2학기 파트다. 리파와 싸우는 건 멀어도 한참 멀었다는 얘기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 1학년 2학기 ‘4성좌(星座)’ 파트 때, 허상의 리파는 인간으로 둔갑해 이안 페어리테일 일행의 친구가 된다. 놈이 환각, 인식 계열 마법을 사용해서 사람들의 인식을 개변해 학생으로 위장 잠입한 까닭이다.

       

       스포일러를 안 당한 플레이어라면 처음에 리파를 보고 ‘신캐네’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그러나 6막 3장에 들어서면서 허상의 리파가 마족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리파 토벌전이 시작된다. 그때 놈의 레벨은 150이다. 난이도는 끔찍했던 기억이 난다.

         

       이 정도로 스토리가 크게 뒤틀린 적은 없었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방아쇠가 되어 허상의 리파를 등장시켰다는 얘기다.

       

       허상의 리파는 진작부터 이 세상에 현현한 채 살아가던 마족이었다. 나름 지능을 갖춰가며 세상살이에 적응한 마족 중 하나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빛 속성인 이안 페어리테일을 죽여야 한다는 사명이 그에게도 임했음에도, ‘신중함’이란 걸 발휘할 수 있는 녀석이었다.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저 녀석이 조기에 나타난 이유, 그게 뭐지?

       

       

       ‘···설마?’

       

       

       조금만 머리를 굴리니 금세 추측할 수 있었다.

       

       녀석은 메르헨 아카데미의 학생회장이자 흑막인 앨리스 캐럴과 친분 관계를 맺고 있다. 동맹이라기엔 깊이가 얕고, 언제든지 서로를 배신할 수 있는 사이니까 친분 관계 쯤으로 정의 내리는 게 적합하겠지.

       

       본래 스토리에서는 마족을 처리하는 남자가 이안 페어리테일이라는 사실이 자명했다. 그래서 앨리스나 허상의 리파는 그저 이안의 행보를 지켜보기만 하면 됐다. 아무리 이안이 페어리테일 가문이라 해도, 적절한 타이밍에 함정에 빠뜨려 해치우면 됐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마족 전담 처리꾼이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은 상태. 앨리스는 나를 찾으려고 안달이 나 있을 게 분명했다. 허상의 리파도 그런 그녀의 반응을 보고 나라는 미지의 존재에게 흥미를 품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호기심을 못 이기고 지금 나선 거겠지.

       

       방해꾼은 마법학부 반 배정 평가 때 처음으로 나타났으므로 마법학부 학생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을 터.

         

       이번 대련 평가는 마법학부 1학년 학생들의 전력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방해꾼을 색출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이건 너무 빠르잖아.’

       

       

       이제 막 3막 1장 들어간 참인데, 벌써 6막 3장 최종 보스가 나오면 어쩌자고···.

       

       그래도 지금 리파의 레벨은 130에 불과하다. 1대 1로 싸워서 해치우는 건 문제없겠지만, 리파의 특기는 단순 맞짱이 아니다.

       

       괜히 리파 토벌전이 벌어지는 게 아니다. 놈과의 싸움 무대는 [허구지옥]. 나라멸망급인 8성급. 환각 계열이면서도 환각의 개념을 뛰어넘어 새로운 섭리를 갖춘 세상을 창조하는 마법.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놈만의 고유 마법이다.

       

       마나도 발산하지 않고, 오히려 주위 마나를 자기 세상으로 빨아들이는 식이라 마나 감지도 안 된다. 블랙홀이 빛을 흡수해 보이지 않듯.

       

       그 안의 절대자는 리파. 그 마법 세계는 완전한 놈의 영역이다.

         

       ‘공략법’을 모른다면 도로시 하트노바 같은 레벨 180의 거물도 [허구지옥]을 발동한 리파를 이기기 힘들다. 놈이 신적인 존재가 되는 걸 어쩌겠나.

       

       참고로 그 세계에서 죽는다는 건 정신을 의미한다. 식물인간이 된다는 의미.

       

       ‘평범한’ 공략법은, [허구지옥]에 안 걸리는 것이다.

         

         

       ‘아으, 어쩌냐.’

       

         

       놈은 인간을 갖고 노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다.

       

       아마 방해꾼을 색출해내면 이 듀크관 자체를 [허구지옥]에 가둬 죽음의 게임을 벌일 것이다. 이안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겠지.

         

       그렇다면 난 지금부터 뭘 해야 하는가.

       

       

       “하! 하늘에 대고 기도라도 하는 것이냐? 안타깝군! 여기선 하늘이 안 보이니 말이다!”

       

       

       끄하하하학! 하고 박장대소하다가 사레들려 켁켁, 헛기침하는 트리스탄.

       

       나는 고개를 내려 그를 쳐다보았다.

       

       여기서 마음 편하게 대련이나 하고 있을 처지가 아니었다. 아, 당장에 이 상황도 마음 편한 상황이 아니라 위기 상황이구나.

       

       어찌 됐건, 빨리 옥상에 올라가 봐야 한다. 하지만 다짜고짜 기권하고 옥상으로 달려가는 짓은 할 수 없었다.

       

       아까 페르난도 교수가 말했듯, 수상한 낌새를 보이는 자는 대기 중인 시험 감독관들이 제압하게 되어 있다.

         

       대련 평가는 학생들끼리 싸우는 걸 장려하는 분위기인 만큼, 학생들끼리 전의를 불태우다 아드레날린이 콸콸 분비된 나머지 불상사를 일으키는 경우가 간혹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발 행동을 한 자는 제재를 당하고, 왜 규칙을 안 따르고 그런 행동을 벌였는지 추궁 당해야 한다. 그렇게 될 경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장담할 수 없다.

       

       대련이 끝나고 피드백까지 들어야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대련 시작 후 1분 동안은 항복 불가다. 곧바로 항복하고 나갈 수도 없다.

       

       항복하려고 작정해도, 그 1분 동안 트리스탄의 마법이 나를 만신창이로 만들 것이다. 나를 죽일 듯이 패려고 작정한 듯 보이니까.

         

       그리고 내가 트리스탄에게 당해 버리면 허상의 리파를 해치우러 갈 수 없게 된다.

       

       

       ‘지금 바로 리파를 향해 전의를 품는다면?’

       

       

       [멸악자] 특성이 발동돼서 강해지겠지만.

       

       앨리스 캐럴에게 대놓고 들킬 작정이 아니라면 학생들 앞에서 그런 무식한 짓은 자제하는 편이 좋다.

       

       아무리 수행평가나 시험이 비밀리에 부쳐지더라도, 학생들의 입소문까진 막을 수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가장 최선의 선택지가 있었다.

       

       나는 결정을 내리고서, 똑바로 트리스탄을 노려보았다.

       

       

       “수단은 무제한. 1분 동안은 항복 금지다. 그럼, 상대에게 예를 갖추고 대련에 임하도록. 준비! ···대련 시작!”

       

       

       심판이 주의사항을 알려 준 뒤, 소리치며 뒤로 빠지고.

       

       트리스탄과의 대련이 시작되었다.

       

       

       “끄흐흐흐! 이때를 기다렸다! 네놈의 그 볼품없는 낯짝을 내 마법으로 사정 없이 난자할 수 있는 이때를!”

       

       

       저놈이 뭐라 지껄이든 무시하고.

       

       집중하자.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레벨, 마법의 위력. 전부 저놈이 나보다 훨씬 우세하니까. 합을 주고받기 시작하면 무조건 나는 개떡이 될 거다.

       

       순수 마법으로 내 현재 실력을 측정하는 건 다음 대련으로 미루자.

         

       지금은 그저 신중하게, 신속하게 이 상황을 헤쳐 나가는 데 집중하자.

         

       나는 손가락에 얼음 마나를 휘감고서, 트리스탄을 향해 내뿜었다.

       

       

       

       * * *

       

       

       

       반 배정 평가 때의 기억은 고통스럽게 트리스탄을 옥죄어 왔다.

       

       마력량 고작 E급, 그 어떤 특별한 구석도 없는 평민.

       

       그의 보잘것없는 전술에 당하고, 무슨 연유에서인지 카야 아스트레앙에게 당하기까지 했다.

       

       트리스탄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항상 떠받들여져온 인생이었다.

       

       자신은 특별하니까. 이 명문 메르헨 아카데미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했을 정도로, 자신은 유능한 인간이니까!

       

       그러니··· 그런 자신이 고작 E급 평민 따위한테 진다는 건 말이 안 됐다.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것이다.

       

       이번 기회에 그 잘못된 걸 바로잡고 아이작에게 확실히 새겨둘 셈이었다.

       

       너 같은 E급 평민 따위는 내 발끝에도 미칠 수 없다고. 반 배정 평가 때는 아주 잠깐 방심했던 것뿐이라고.

       

       

       드드드드드드득!!

         

       

       「빙벽(氷壁) (얼음 속성, ★4)」

         

         

       삽시간에 지면에서 솟구쳐 오르는 얼음의 벽. 사방에서 트리스탄을 가둔다.

         

       눈속임인가. 트리스탄은 마나를 날카로운 형태로 흘려보내 허공에 연녹빛 검기를 새겼다.

         

         

       「풍검(風劍) (바람 속성, ★3)」

         

         

       사사사사삭!

         

         

       밀도 높은 바람은 마치 케이크 자르듯 가볍게 얼음 벽을 베어냈다.

         

       눈 깜짝할 새에 수 개의 빗금이 생겨난 얼음 벽은 무력하게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3성급 마법이 4성급, 그것도 방어 마법을 단숨에 베어내는 모습을 보고 학생들은 ‘역시나’ 하고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마법의 위력을 의미하는 [원소 화력]. 상위권 우등생인 트리스탄의 그것이 최하위권 열등생인 아이작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니까.

        

       

       “호오.”

       

       

       이미 자기 마법이 처참하게 박살 날 걸 알고 있었다는 듯, 얼음 벽이 무너져 내릴 때 아이작은 다음 수를 내던진 상태였다.

         

       ‘가공 안개’. 마도구로부터 흘러나온 희뿌연 안개가 경기장을 감싸고 있었다.

         

         

       「냉기 발산 (얼음 속성, ★1)」

         

         

       안개가 더욱 짙어졌다. 아이작이 흘려보낸 냉기가 가공 안개를 냉각시켜 이류안개로 만든 까닭이었다.

       

         

       「싸락눈 (얼음 속성, ★2)」

         

         

       안개 속에서 아이작이 대련 평가를 위해 익혀두었던 마법, [싸락눈]이 경기장을 사정 없이 두들기며 소리를 분산시켰다.

         

       공중에 작은 고드름을 대량으로 만들어 우박 떨어지듯 바닥에 떨어뜨리는 마법이었다.

         

       목적은 뻔했다. 자신이 어디 있는지 소리로 파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리라.

         

       

       “또냐. 네놈은 고작 이따위 장난밖에 칠 줄 모르는 건가?”

       

       

       그래, 고작 이 정도일 뿐인 거지. E급 평민이란!

       

       트리스탄은 가소롭다는 듯이 입가에 조소를 띠었다. 이제는 저 E급 평민이 귀여울 지경이다.

       

       반 배정 평가 이후로 트리스탄은 마법 단련에 힘써 왔다. 지금은 방어 마법도 수준급으로 구사하는 게 가능해졌을 정도.

       

       

       “겁쟁이처럼 숨어 다니기나 하고 말이지.”

       

         

       목적은 또 머리인가.

         

       얕보이다니. 한번 당했던 전술에 두 번이나 당할 것 같으냐!

       

       

       “한심하구나!”

       

       

       트리스탄은 오른팔을 위로 뻗어 바람 마법을 구사했다.

       

       그 오른손 위로 연녹빛 마법진이 구현되고, 바람 마나가 격렬하게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새로이 구축된 회오리 방어막은 짙은 안개를 흡수해 갔다.

       

       

       「풍벽(風壁) (바람 속성, ★4)」

       

       

       휘이이이이이!

       

       스으으으으으!

       

       

       “하! 나 트리스탄 험프레이는 매 순간 강해지고 있다고!”

       

       

       안개가 걷혀가고, [싸락눈]이 회오리에 흡수되어갔다.

       

       짧은 시간, 안개를 걷어내고 제 모습을 드러낸 경기장.

         

       곧 트리스탄에게로 달려가고 있던 아이작의 모습 또한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는 달려가면서 양손가락을 맞대고, 양손 사이에 틈을 만들어 얼음 마나를 모으고 있었다.

       

       

       ‘허, 무슨 운동 신경이…?!’

       

       

       거의 코앞.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트리스탄은 얼른 뒤로 후퇴하려 했으나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찰나의 순간, 눈만 슬쩍 내려 확인해 보니 신발 밑창이 얼어 있었다.

       

       신발뿐만이 아니었다. 경기장 전체가 얼음장이었다.

       

       

       「얼음 생성 (얼음 속성, ★1)」

       

       

       ‘어느 틈에?!’

       

       

       아이작이 일으킨 ‘가공 안개’는 물 속성. 그의 [원소 화력]은 보잘것없더라도, 원소 간의 조합 효과를 높여주는 [원소 시너지]는 무시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는 경기장을 두껍게 얼려 트리스탄의 발을 묶는 게 충분히 가능했다.

       

       어느새 아이작의 손안에 얼음 마나가 온화하게 응축되었다. 연푸른빛 마법진이 생성되고, 그의 손을 뒤따라온다.

       

       아이작은 그 마나 덩어리를 오른손에 쥐고, 트리스탄을 향해 뻗었다.

       

       

       “쉽게 당해줄 것 같으냐!!”

       

       

       저 마법의 정체가 뭔지는 몰라도, 얌전히 당해줄 만큼 트리스탄 자신은 아량이 넓지 않았다.

       

       오늘은 아이작이 먼지 나도록 얻어맞는 날. 자신의 회포를 푸는 날이 되리라.

       

       트리스탄은 회오리 방어막 [풍벽]을 풀고, 단숨에 바람 마나를 휘감은 왼팔을 휘둘렀다.

         

       동시에 아이작이 움켜쥔 연푸른빛 마나가 트리스탄을 향해 폭발했다.

         

         

       「빙결 폭발 (얼음 속성, ★5)」

       

       「돌개바람 (바람 속성, ★4)」

         

         

       콰아아아아!!

         

       휘우우우우!!

         

       

       “끄학!”

       

       

       트리스탄의 외마디 비명.

         

       빙결의 폭발적인 범람이 그를 덮쳐 들었으나.

         

       [돌개바람] 탓에 순식간에 형성됐던 빙괴가 깨지고, 큼직한 얼음 조각들이 허공에 비산했다. 그러나 폭발의 충격은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강한 풍압이 일었다. 그 영향으로 아이작의 몸은 공처럼 뒤로 튕겨 나갔다.

       

       바닥을 한번 뒹굴고는 별 무리 없이 일어나는 아이작.

         

         

       “후우.”

         

         

       트리스탄의 마법에 직접적으로 닿지 않았기에 마법으로 인한 피해는 없었다.

       

       [빙결 폭발]과 [돌개바람]의 격돌로 생겨난 풍압 때문에 거대한 주먹으로 복부를 얻어맞은 듯한 통증만 잠깐 들었을 뿐.

       

       

       “어떻게?”

       “뭐야? 내가 저 학생 정보를 잘못 읽었나?”

       

         

       심사관들의 두 눈에 당혹감이 깃들었다.

         

       마력량 E급으로 책정됐던 D 클래스의 학생이, 대부분의 1학년생은 아직 쓰지 못하는 5성급 마법을 사용했다.

         

       심사관들은 아이작이 정말로 E급이 맞는지, 자신이 잘못 기억하고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한번 책상에 놓인 서류를 읽으며 그의 정보를 살피기 시작했다.

          

       놀란 건 대련을 관람하던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가만가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방금 뭐였어…?”

        “5성급 마법이었지, 방금…?”

       “아이작이 5성 마법을? 마력량 E급이잖아, 쟤…!”

         

         

       아이작을 중심으로 떠들썩해지기 시작한 분위기. 트리스탄으로선 몹시 못마땅한 상황이었다.

         

       그의 교복은 수많은 가시에 찔리기라도 한 것처럼 넝마가 되어 있었고, 몸 군데군데에는 동상과 피멍이 자리 잡은 채였다.

         

       그나마 [돌개바람]과 [기초 보호 마법]으로 [빙결 폭발]의 충격이 완화된 게 그 모양이었다.

         

         

       “끄흐억….”

         

         

       그는 고통에 신음하며 휘청거리다가, 다시 자세를 바로 잡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이작을 노려보았다.

         

       동시에 [풍검]을 발동해 자기 발밑을 묶고 있던 얼음을 지면째로 박살 내고.

         

       [돌개바람]과 충돌했던 탓에 조각조각 부서져 버린 빙괴 잔해들을 콱 짓밟았다. 그의 분노는 그 한 발짝만으로 충분히 표현되었다.

         

       잔잔해진 냉기가 흐르고 있는 가운데, 그는 강한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바람 생성 (바람 속성, ★1)」

         

         

       트리스탄의 분노를 표상하듯 매섭게 경기장을 휘감기 시작하는 연녹빛 바람.

         

       이어, 그가 양쪽으로 뻗은 양손에 회오리가 일기 시작했다.

         

         

       “E급 평민 따위가… 또 이 몸에 상처를…!”

       “또 방심하냐, 트리스탄아.”

       “……?”

         

         

       트리스탄이 격앙된 감정으로 경계 태세를 접고 공격 태세만을 취한 그때.

         

       아이작은 허리 뒤로 감춰두었던 왼손을 살며시 주먹 쥐었다.

       

       얼음 마나가 흐르고 있던 왼손에서 마나의 흐름이 뚝 끊겼다.

         

         

       「얼음 생성 (얼음 속성, ★1)」

         

         

       어느새 트리스탄 머리 위에 생겨나 있던 큼직한 얼음덩이가 추락하고.

         

         

       퍼억!

         

         

       “끄헉!”

         

         

       얼음덩이는 트리스탄의 머리에 정통으로 부딪쳤다.

         

       깜짝 놀란 몇몇 여학생들이 내지른 외마디 비명 소리 속에서.

         

       그대로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는 얼음덩이와 함께, 트리스탄은 휘청거리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머리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얼굴은 피부색과 붉은 혈액 색깔로 반반이 되었다.

         

         

       “아, 으그으으으…!!”

         

         

       까득까득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갈며 일어나는 트리스탄.

         

         

       “으아아아악!!”

         

         

       그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 입은 피해는 반 배정 평가 때와는 달랐다. [기초 보호 마법]을 온몸에 씌워둔 덕분에 떨어지는 얼음덩이에 정수리가 직격 당했어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다. 아주 잠깐, 기절할 뻔했을 뿐.

         

       그는 부들부들 떨면서 가까스로 일어나고는, 다시 머리 위로 오른팔을 쭉 뻗었다.

         

       이중, 삼중으로 구현되기 시작한 연녹빛 마법진. 트리스탄이 흔히 자기 힘을 ‘강, 대, 한 마나’라고 일컬었던가.

         

       거친 바람이 위협적으로 휘몰아쳤다. 누구라도 당했다간 뼈도 못 추릴, 그가 평소 이르듯 ‘강대한’ 마나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아이작에게 승기 따윈 없었다. 피칠갑이 된 허영심 많은 금발 귀족의 분노를 그대로 받아 내야 할 터.

         

         

       “이제 끝이냐? 오냐, 내 차례구나. 기필코 네놈을, 여기서 죽여주마아!!”

         

         

       분노란 각성의 촉매체라고 하던가. 분노를 자양분 삼아 누구라도 짓눌릴 것 같은 묵직한 마나를 발산하는 트리스탄.

         

       학생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연신 마른 침을 삼키고 있었다. 단순히 지켜보고 있었을 뿐임에도 그 마나에 압도될 것 같았기에.

         

       더 이상 아이작에게 승기 따윈 없었다. 이제부터 트리스탄의 마법이 아이작을 사정 없이 난도질하리라.

         

         

       “그래, 항복.”

         

         

       …싸움이 이어진다면 말이다.

         

       아이작은 무덤덤하게 양팔을 위로 슬쩍 들며 말했다. 대련 시작 후 정확히 1분이 경과한 때였다.

         

       그 사실은 심사관들 머리 위에 있는 벽시계를 보면 확인할 수 있었다.

         

         

       “…어?”

         

         

       절대로 들어선 안 될 말을 들은 것처럼.

         

       트리스탄의 표정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하도 당황한 탓에 집중이 깨져 그의 바람 마법이 풀리고, 마법진이 사그라졌다.

         

         

       “아이작 학생…? 항복하면 저희한테 피드백 받을 기회조차 잃는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나요…?”

       “네, 심사관 님. 상대가 너무 강해서요. 염치 불구하고 항복하겠습니다.”

         

         

       ‘안 돼…!’

         

         

       그런 말하지 마!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인데…!

       

       졌지만 잘 싸웠다는 듯이 개운한 표정 짓지 말라고!

       

       

       “내가 졌어. 좋은 승부였다.”

       

       

       아이작은 ‘너를 인정한다’는 느낌의 표정을 지은 채 트리스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고는 그 자리를 떠나갔다.

         

       트리스탄의 시간이 멈추는 순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늒비님 10코인 후원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AWBDLH,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
Score 8.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possessed the weakest character in my favorite game’s Hell Mode. I want to survive, but the way the main character is being controlled is atrocious. It can’t be helped. I have to stop the bad ending myself.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