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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

       한유미 교관은 유니콘을 도로 불러들였다.

       

       “경험이 많은 게 뭐 창피한 거라고 숨기고 있어?”

       “···딱히 숨긴 건 아닌데요.”

       “수백 번 한 걸 잊어먹었다는 말을 믿어달라는 건 아니지?”

       “······.”

       

       할 말이 없다.

       어지간한 금붕어가 아니고서야 자신의 동정 여부를 망각할 리 없을 테니까.

       

       탁재환 교관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옆에서 실실 웃고만 있었다.

       

       “근데 탁재환 교관님은 동정이신가 보네요?”

       “흐, 흠. 난 혼전순결 주의라서 말이다.”

       “네. 그러시군요.”

       “진짜다.”

       

       어련하시겠어요.

       

       저번에 분명 비혼 주의라고 했던 것 같은데, 혼전순결이라는 말은 앞뒤가 안 맞지 않나?

       

       수도승이야 뭐야?

       

       어이가 없긴 해도 깊게 캐묻지는 않았다.

       

       조금만 더 친했다면 농을 건넸겠지만,

       아직은 언행에 있어 주의가 필요했다.

       

       괜히 주둥이 한 번 잘못 놀렸다가 평판이 곤두박질 치면 곤란하거든.

       

       반면에 한유미 교관은 탁재환 교관하고 꽤 친분이 있는지 대놓고 실소를 터트렸다.

       

       “푸흡! 혼전순결은 무슨. 그냥 못해봤다고 해.”

       “조용히 해라.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거다.”

       “예, 예. 비혼 주의에 혼전순결인 탁재환 교관님.”

       

       한유미 교관이 일부러 존대까지 해가며 놀려대자, 얼굴이 붉어진 탁재환 교관은 재빠르게 화제를 전환시켰다.

       

       “그보다 이동은 어떻게 할 거지? 이 던전은 공간이 넓어서 도보로 탐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책임을 전가하듯이.

       굳이 나를 보면서 얘기했다.

       

       따지고 보면 내가 트롤인 상황이기는 하지만···.

       

       ‘조금 억울한데···.’

       

       성관계를 한 기억만 있을 뿐.

       나는 엄연히 동정이나 다름없다.

       지금 내 주체는 이영웅 쪽이 훨씬 크니까 말이다.

       

       ‘유니콘 자식들 보는 눈이 없네. 마음만큼은 순결하다고.’

       

       뭔가 면간을 당해 순결이 더럽혀진 기분이었다.

       

       어쨌거나 내가 초입부터 발목을 잡고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에, 이동수단은 내 쪽에서 제공하기로 했다.

       

       “제 소환수 중에서도 기동성이 좋은 녀석이 있긴 합니다.”

       

       그리 말하며 도감을 소환했다.

       

       유니콘이 없어도 분명 다른 이동수단이 있겠지만, 대충 보니까 내 소환수를 시험해보고 싶어 하는 눈치니까.

       

       ===

       ◎소환

       ★★다이어 울프

       ===

       

       

       도감작을 하기 위해 진화시켰던 다이어 울프.

       

       녀석은 리틀 워그의 진화 형태이며, 일반 워그보다 몸집이 커다란 게 특징이었다. 늑대형 마물답게 민첩도 높은 편이다.

       

       ‘두 마리 더 진화시켜야겠네. 유니콘은 내 근처에만 있어도 발작을 일으키니까···.’

       

       나는 도감 속에 보관해놓았던 마석을 사용해 다이어 울프 두 마리를 추가 생성했다. 그리고 지체 없이 전부 소환했다.

       

       검은빛이 튀어나가며 다이어 울프 세 마리가 모습을 드러내자, 한유미 교관은 팔짱을 낀 채로 영혼 없는 리액션을 내보였다.

       

       “오, 늑대.”

       

       그러면서도 다이어 울프를 꼼꼼하게 훑어본다.

       

       전투력 측정이라도 하듯.

       요리조리 움직여가며 다이어 울프를 한참 동안 관찰하던 한유미 교관이 돌연 내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으음. 얘네들 2성 마물이지? 그럼 1성 때는 무슨 마물이었어?”

       “1성 때는 리틀 워그였어요.”

       “리틀 워그면, 워그로 진화하는 게 정상 아니야?”

       “워그도 가능하고, 다이어 울프도 가능하더라고요.”

       

       같은 늑대라서 그런 건가?

       한유미 교관이 그런 혼잣말을 내뱉으며 다시 다이어 울프를 살피자, 탁재환 교관은 시간이 아깝다는 듯 그녀를 재촉했다.

       

       “우선 이동부터 하고 관찰은 나중에 해라.”

       

       그리고 맵핑 아티팩트를 꺼내 홀로그램 지도를 띄웠다.

       

       얼핏 봐도 3급 던전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공간이 넓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지도를 대여섯 번 확대하고 나서야 우리 위치를 표시하는 붉은 점이 간신히 눈에 들어올 정도였다.

       

       시야가 확 트인 광활한 초원의 끝.

       저 지평선 너머로도 한참이나 공간이 존재한다는 거겠지.

       

       “일단은 제일 가까운 이곳부터 간다.”

       

       탁재환 교관이 가리킨 위치도 비교적 가까운 것이지, 초입에서부터 한참 떨어진 곳이었다.

       

       이 정도면 작은 섬 하나 크기는 되겠네 진짜.

       

       물론 그만큼 여러 종류의 마물이 서식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3급 던전이니만큼, 오늘은 파편 수급에 초점을 맞추도록 해라.”

       

       탁재환 교관이 다이어 울프에 올라타며 말했다.

       

       오늘의 주목적은 마석 수급이 아닌 파편 수급이라는 얘기였다. 3급 던전은 보스와 우두머리를 빼면 죄다 1성 마물만 배치되어 있으니까.

       

       현재 1성 마석이 넉넉한 내게 있어서도, 이 던전에서는 파편이 우선순위가 맞았다.

       

       ‘2성 마석은 따로 챙겨주신다고 했지···. 진짜 얻어먹기만 하네.’

       

       4성 마물로도 진화시킬 수 있는지 궁금하다는 이유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금액이 금액인지라 처음에는 정중하게 사양했다.

       

       부담 갖지 말라는 탁재환 교관의 말에 결국에는 못 이기는 척 수락했지만 말이다.

       

       ‘······개이득.’

       

       양심이 미친 듯이 찔리긴 해도···.

       탁재환 교관은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이라 불릴 정도로 알아주는 갑부니까 이 정도는 받아도 되겠지.

       

       전부 스승의 은혜라고 생각하며 나도 다이어 울프에 올라탔다.

       

       

       

       

       

       *

       

       *

       

       *

       

       

       

       

       

       “소환수라 그런가, 던전 다이어 울프들이랑 비교하면 속도는 봐줄만하네. 날지 못한다는 게 흠이지만.”

       

       초원을 치달리는 다이어 울프 위에서 한유미 교관이 전방 주시를 소홀히 한 채 내쪽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아니 당신 유니콘도 못 날잖아.

       

       어이가 없어서 반박했지만,

       

       “늑대가 날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닐까요?”

       “아! 바람 좋다!”

       

       한유미 교관은 바람 소리에 막혀 못 들은 척, 다시 전방을 주시했다.

       

       ‘뭔가 이 사람도 정상은 아닌 것 같네.’

       

       그렇게 이십 분을 더 이동하고 나서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후. 이 던전은 나중에 처분하든가 해야지.”

       

       불평을 늘어트리며 다이어 울프에서 내린 탁재환 교관은 마물들이 집중 분포해 있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서둘러 파편이나 챙기고 다음 지역으로 이동하지.”

       “알겠습니다.”

       

       첫 파편 수급의 희생양은 포이즌 포그.

       

       독주머니를 달고 다니는 개구리 형태의 마물이다.

       

       그리고 독이라는 특성 덕분에 1성 마물 중에서도 중급으로 분류되고 있다.

       

       물론 맹독은 사용하지 못한다.

       포이즌 포그가 뿜어내는 독의 효력은 하급 마물답게 지극히 미약한 수준이니까.

       

       내가 맞으면 위험할 수도 있지만 소환수들의 내구 능력치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소환. 깨비.”

       

       나는 현재 소환수 중에서 사냥 속도가 제일 발군인 깨비를 소환했다.

       

       ─키이!

       

       초원의 들판을 지르밟으며 모습을 드러낸 깨비.

       

       ─키이···!

       

       깨비는 낯선 환경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나한테 총총 다가와 꼭 들러붙었다.

       

       깨비가 낯가림이 심하긴 하지.

       사냥할 때는 폭군이나 다름없는데 말이야.

       

       한유미 교관은 이번에 꽤 흥미가 돋았는지 눈을 빛냈다.

       

       “그건 무슨 마물이야?”

       “일각 난쟁이라고, 난쟁이 진화 형태예요.”

       

       깨비의 출렁이는 가슴을 본 한유미 교관은 흠칫 놀라며 헛기침을 삼켰다.

       

       그러더니 미묘한 표정으로 나와 깨비를 번갈아보며 물었다.

       

       “설마, 아니지?”

       “네? 뭐가요?”

       “···아니야. 그럴 리가 없지. 사람이라면, 음.”

       

       왜 저래?

       

       나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깨비에게 명령을 내렸다.

       

       ─키이!!!

       

       목표를 포착한 깨비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적만 지정해주면 아주 호승심이 미쳐 날뛰는구나.

       

       깨비는 배트를 꽉 쥐고 재빠르게 포이즌 포그에게 달려들었다.

       

       ㅡ꾸륵?

       

       포이즌 포그가 접근을 눈치채고 눈알을 굴리기 무섭게,

       

       빠악!

       

       깨비의 방망이질에 녀석의 눈알이 총알처럼 튀어나갔다.

       

       동족이 당하자 모든 포이즌 포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깨비에게 쏠렸다.

       

       ㅡ꾸륵!

       ㅡ꾸르륵!

       

       놈들은 사시처럼 눈알을 굴려대며 턱에 달린 독주머니를 한껏 부풀렸다.

       

       ㅡ퉤에엣!

       

       마치 가래침을 뱉듯.

       연한 초록빛의 눅눅한 액체를 거침없이 내뿜는 포이즌 포그들.

       

       맞아도 별 타격은 없겠지만, 더러운 걸 싫어하는 깨비는 눈에 신경을 집중하고 기민한 발놀림으로 모두 피해냈다.

       

       그렇게 회피를 마침과 동시에 땅을 박차고 튀어나가며 다른 포이즌 포그의 머리통을 있는 힘껏 후려쳤다.

       

       퍼엉!

       

       이번에는 풍선이 터지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와! 멋지다! 난쟁이 파이팅!”

       

       무슨 마물 도륙 관람쇼라도 보러 온 것처럼 한유미 교관이 응원을 보내자,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깨비가 더욱 공격에 박차를 가했다.

       

       그런데 왠지 깨비의 몸놀림이 더 가벼워진 느낌.

       

       ‘···아니, 느낌이 아니라 확실히 빨라졌는데?’

       

       더해서 배트를 휘두르는 일격에 담긴 힘도 눈에 띌 정도로 상승했다.

       

       멍청한 표정으로 깨비를 쳐다보고 있자, 한유미 교관이 팔꿈치로 나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뭐해? 응원 안 하고?”

       “네?”

       “저런 타입의 소환수는 응원하면 사기가 올라가서 강해지는 거 몰라?”

       

       우리 깨비를 언제 봤다고 무슨 타입인 줄 안다는 걸까.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자 한유미 교관이 말을 덧붙였다.

       

       “자기 주인한테 의존이 심하고 지능이 낮은 소환수. 저 난쟁이가 딱 그런 타입이잖아? 대게 저런 부류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강해서 칭찬 섞인 응원을 던져주면 사기가 팍팍 상승한다고. 쉽게 말해서 단순하다는 거지.”

       “···그래요? 처음 아는 사실이네요.”

       

       마냥 철없는 행동이었는 줄 알았는데 그런 뜻깊은 의미가 있었다니···.

       

       교관은 교관이라는 건가?

       

       조금은 존경스럽다는 눈빛을 보내줘도 될 것 같다.

       

       “역시 썩어도 전 아카데미 교관님이시네요.”

       “썩긴 누가 썩어? 죽을래?”

       “아. 안 좋은 뜻이 아니라 속담이에요. 값어치 있는 물건은 흠집이 나더라도 본래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속담. 그만큼 교관님의 본질 자체가 대단하다는 칭찬이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그래···?”

       

       휴. 순간 말실수해서 큰일 날뻔했네.

       

       사실은 비아냥거리는 뉘앙스로 말한 게 맞다.

       

       아직 예전 이현성의 잔재가 조금 남아있어서 그런지 본능적으로 막말을 내뱉었다.

       

       ‘저번에도 몇 번 이랬는데, 자나 깨나 주둥이 조심해야겠네.’

       

       조심스레 한유미 교관을 곁눈질해보니, 임기응변이 잘 먹혔는지 화가 나 보이진 않았다.

       

       그리고 의외로 칭찬에는 약한 모양이다.

       

       머리를 긁적이며 눈을 피하는 걸 보면 말이지.

       

       “흠! 뭐, 나도 저 난쟁이랑 비슷한 타입의 소환수가 있어서 아는 것뿐이야.”

       

       한유미 교관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사실 소환수가 아니라 자신이 깨비랑 같은 타입인 건 아닐까?

       

       그런 합리적 의심을 하고 있을 때.

       

       “벌써 끝났군. 그럼 다음 지역으로 이동하지.”

       

       탁재환 교관이 눈짓으로 깨비가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포이즌 포그의 뇌가 푸른 초원을 뒹굴고, 독주머니에 담겨있던 독이 사방으로 튀어 그 뇌를 녹이고 있는 참혹한 광경.

       

       밖이었으면 뒤처리에 꽤나 애먹었을만한 아수라장의 흔적이었다.

       

       물론 이곳은 던전이며, 마물들도 실체화된 녀석들이 아니라 자연스레 마석만 남기고 소멸했다.

       

       그리고,

       

       ◎파편

       ·

       ·

       ·

       [★포이즌 포그 x55]

       

       파편도 전부 깔끔하게 들어왔다.

       

       평탄하구만.

       

       ─키이이!

       “우리 깨비, 수고했어!”

       

       역할을 완벽히 소화해낸 깨비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내 품에 뛰어들었다.

       

       진짜 보면 볼수록 귀엽다니까?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주자 깨비는 황홀하다는 듯 거친 숨소리를 흘렸다.

       

       “···마물박이.”

       

       깨비와 내가 서로 껴안고 있는 장면을 보고 한유미 교관이 작게 무어라 중얼거린 것 같은데 들리지는 않았다.

       

       나한테 한 말인가 싶어 되물었지만,

       

       “네? 뭐라고 하셨나요?”

       “아니야. 빨리 다음 지역으로 가자.”

       

       별로 중요한 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다음 지역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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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cademy’s Only Monster Summoner

The Academy’s Only Monster Summoner

아카데미 유일급 마물 소환사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possessed a madman in the novel who confessed to the heroines and was dump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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