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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

       

       

       

       

       

       

       

       

       

       《이리 와. 엘든.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네가 내게 해줬던 얘기잖아?》

       

       《하하하! 넌 지금부터 그냥 당하는 거야.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어때? 너도 맞으니까 아프지? 도망칠 생각하지마. 우린 하늘이 맺어준 부.부.잖아?》

       

       벌떡!

       

       이것이 오늘 아침 기상의 요약본이다.

       십자가로 봉인해둔 저주 편지의 효과가 제법 굉장했던 모양이다.

       스쳐갔을 뿐인데도 이런 악몽이 꿔진 걸 보면.

       물론 말도 안 되는 헛꿈이지만, 탈주 의지를 다시금 불타오르게 만들기엔 충분한 꿈이었다.

       여주인공과 나의 결혼 확률은 0에 수렴했으며 가만히만 있어도 탈주로는 시원히 열릴 테지만 말이다.

       

       “어우.”

       

       어쨌든, 섬뜩한 아침이다.

       창가에 서서 어젯밤 예토전생 방지 봉인을 해두었던 자리를 보며 한차례 어깨를 떤 후, 평가전 준비를 시작했다.

       

       개운히 씻고 나와선 서재의 소파에 드러눕듯 앉았다.

       탁자에 다리를 꼬으며 올렸다.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책을 펼쳤다.

       히죽거리며 읽었다.

       

       이것이 기권자의 평가전 준비였다.

       하등 부질없는 평가전을 위해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건 신성한 기권을 욕보이는 일이다.

       적당히 비위를 맞춰주는 척하며, 적당히 임해주면 그만인 노릇.

       

       그렇게, 평가전 출발까지 탐독의 시간을 가지며 여유로운 아침을 보내고 있었고 노크소리에 어느새 출발 시간이 임박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똑똑.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 들어와.”

       

       노집사 렌들러께서 늦장부리는 후보께 출발을 독촉하기 위해 왔을 터다.

       예상대로 렌들러가 문을 열고 들어와 고개를 조아렸다.

       

       “공자님.”

       “기다리고 있었어. 가지.”

       “손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뭐?”

       “평가전 출발 전에 꼭 전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더군요.”

       

       아침댓바람부터 누굴까.

       렌들러가 건네준 털가죽 코트를 걸치며 물었다.

       

       “아침객께선 누구던가?”

       

       한데, 울보 노집사께서 또 다시 흐뭇함과 뭉클함, 감동 따위를 섞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감격에 겨운 눈동자를 촉촉히 적시며.

       

       “…또 또.”

       “소인, 공자님을 모신 이래 오늘이 가장 기쁜 아침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거냐.”

       

       가문인 이외엔 별채의 출입이 엄금되었고, 오직 혼약대전 주최측만이 출입이 가능했기에, 르미앙이나 겔우드는 아닐 것이다.

       하물며 그들의 방문이 노집사께 ‘기쁜 아침’이 될 리 없었다.

       렌들러가 뭉클한 눈으로 코 밑을 슥슥 닦으며 말했다.

       

       “공자님을 모신 이래, 신분을 묻는 질문에 공자님의 ‘친구’라 소개하는 이는 처음 뵙는군요. 소인, 오늘 너무도 기쁘답니다.”

       

       …기쁠 일이 많으셔서 좋겠소. 영감.

       앞으로도 이러한 일이 더러 생길 듯 한데, 노년에 행복사당하시지 않게 적당히 나쁜 짓도 해야 하지 않나, 싶다.

       

       “친구?”

       “아주 귀엽고 어여쁜 아가씨더군요.”

       “…아가씨?”

       

       귀엽고 어여쁜 아가씨라.

       그런 이는 대공성에 즐비했지만, 나를 찾아올 이 중에서 꼽자면 당연 아리엘뿐이었다.

       금발의 롤빵머리 영애님, 아리엘은 객관적으로 보아도 귀엽고 어여뻤으나, 문제는 이 시간이면 도서관에 있어야 할 그녀였다.

       더군다나 내가 기권자임을 아는 아리엘이 의미 없는 응원을 전하러 왔을 리도 없는 노릇.

       그에 의문을 품은 채, 렌들러와 함께 별채의 출입구로 향했고.

       

       “아리엘?”

       

       과 조우할 수 있었다.

        

       “아, 엘든!”

       

       활짝 웃으며 쪼르르 달려오는 아리엘.

       어제 대여했던 책을 품에 안고 있는 걸로 봐선 도서관엔 들리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도서관에 있어야 할 그녀가 ‘평가전 출발 전에 꼭 전해야 할 말이 있다’며 이 시간에 방문한 걸까.

       

       “무슨 일이야? 독서광께서 도서관도 마다할 정도면 대단한 이야깃거리인가 본데.”

       “응! 엄청 대단한 이야기야.”

       

       히죽히죽.

       미소를 참지 못 하는 얼굴을 보아하니 비보는 아닌 듯 한데….

       

       “귀, 귀.”

       

       귀를 달라며 손짓하는 아리엘에, 상체를 숙이며 귀를 내주었고,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은밀히 전한 그 이야깃거리는 아침의 악몽을 친히 재현해주는 것이었다.

       

       “어젯밤에 에린시아 만났는데, 사실 제 3 대공녀님께서 너와 결혼하길 희망하신대. 그러니 기권하지 말고 사력을 다해달래.”

       

       …

       …

       

       …

       

       …

       …

       

       음.

       

       굉장히 섬뜩한 아침이로다.

       

       

       

       **

       

       

       

       “화이팅-! 엘든!”

       

       “몸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불끈 쥔 주먹을 힘차게 들어올리며 해맑게 저주를 퍼붓는 아리엘과, 그런 그녀와 나를 번갈아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렌들러의 배웅을 받으며 마차에 올랐다.

       착각에 착각이 꼬리를 무는 아침이 따로 없다.

       

       ‘그나저나… 여주인공께서 동분서주하고 계신가보군.’

       

       기권자의 참전 의지를 위해 골머리를 싸매고 있을 르미앙이 눈에 선했다.

       마음에도 없을 고백 쪽지로 독려를, 야밤에 에린시아로서 아리엘을 직접 찾아가 회유와 응원을 전해 달라는 전언까지.

       이준우란 다른 차원의 외계인이 빙의되었다는 걸 알릴 방법이 없으며, 외려 기만한다며 역풍이나 받을 게 뻔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지금의 상황을 즐기며 회피와 방관하는 것뿐이었다.

       

       지금처럼.

       

       [몬스터 요리 백과사전]을 읽으며 말이다.

       

       “호오, 드레이크 꼬리무침이라… 레이첼? 혹시 먹어본 적 있나?”

       

       평가전이 열릴 북쪽 설산으로 향하는 마차 안엔 레이첼이 함께 타고 있었다.

       드레이크 꼬리무침, 이름만 들어도 군침이 돌아 미칠 지경이다. 

       그에 대리만족을 위해서 레이첼에게 물었다.

       어릴적부터 몬스터 요리를 즐겨 먹었고, 수련을 위해 왕국 이곳저곳을 떠돌았던 그녀라면 드레이크 꼬리무침도 먹어보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을 품으며 말이다.

       

       “네.”

       

       오오!

       

       “그렇다면 그 맛이 어떠한지 알려주겠나?”

       “맛있었습니다.”

       “…….”

       

       그래.

       무뚝뚝이 스승께 감칠난 맛표현을 기대한 제자가 잘못이지.

       역시, 이 백과사전에 있는 모든 요리를 직접 먹어보는 수밖에 없을 듯싶다.

       그리 생각하곤 다시 백과사전을 읽기 시작했고, 레이첼의 물음에 다시 고개를 들어야 했다.

       

       “그런데 식도락 여행을 위해 구태여 수련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귀찮아진 거냐.”

       “안전한 이동이 목적이라면 용병을 고용하시는 게 수월하시리란 생각에 드리는 질문입니다.”

       

       물론 이동의 목적이라면 구태여 수련을 할 필요는 없다.

       쇠퇴한 백작가일지라도 식도락 여행에 필요한 자금은 충분했고, 그걸로 용병을 고용해 안전한 여행길 도모하면 그만이니까.

       그렇게 안전히 이동해 각 도시의 특미를 즐기면 그만이겠지만, 내게 식도락 여행은 그런 단순하며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중세판타지물에 빠질 수 없는 [모험]과 [낭만]이 첨가된 식도락 여행이었고, 식재료의 신선도 보존이 취약한 중세시대에서 최상의 신선도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었다.

       그렇기에, 차창 너머로 드넓게 펼쳐진 설경을 바라보며 대답해 주었다.

       

       “제아무리 맛집이라 할지라도, 바다로 나가 내 손으로 직접 잡은 물고기를 썰어먹는 맛은 당해내지 못 하는 법이지.”

       “…몬스터를 직접 사냥하시겠다는 겁니까?”

       “그럼. 갓 잡은 몬스터만큼 신선한 식재료는 없는 법이니까.”

       “맛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시겠다는 거군요.”

       

       Exactly.

       핑거스냅을 튕기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하오나, 공자님께서 요리를 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만.”

       “굉장히 날카로운 지적이로군.”

       “….”

       

       그 점에 대해선 고민 중이었다.

       전문가를 초빙할지, 아니면 현대의 기억을 살려 직접 요리를 해볼지 말이다.

       가진 것 없는 고독한 청년에게 배달 음식은 사치였고, 식비를 아끼기 위해 온갖 조미료로 간신히 맛을 낸 요리로 끼니를 떼웠던 기억을 말이다.

       그것을 접목해볼까, 했지만 역시나 무리가 있었다.

       현대의 조미료를 구할 수 없을 뿐더러, 조리도구와 기술이 빈약한 이곳에선 그 맛을 흉내내기 힘들었다.

       현대의 기억과 방식은 무의미한 것이다.

       

       직접 요리를 배울까 싶었지만, 맛있는 탐독과 빡빡한 훈련으로 하루를 쪼개어 쓰는 누렁이에겐 시간이 부족했다.

       요리 실력이란 게 하루 아침에 뚝딱 완성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노집사장께 전문가 초빙을 알아보라 일러두었으니 조만간 소식이 들려올 터다.

       

       그렇기에, 우선은 한수 접어두기로 했다.

       

       끼익.

       

       눈부신 설원 위를 달리던 마차가 멈춘 까닭이다.

       원작의 무료분 마지막 화수에 나왔던 평가전.

       원작에서 묘사되었던 평가전은 표면적으론 ‘사냥대회’였지만, 이상하게도 여주인공은 ‘술래잡기’라 칭했었다.

       이유에 대해선 나오지 않았고, 무료편수 마지막이었던 터라 뒷내용을 읽지 못 했었다.

       

       무엇이 되었든 걱정할 필요도, 긴장할 필요도 없겠지만 궁금하긴 했다.

       사냥대회의 이면이 술래잡기인 이유가.

       

       “그럼 저는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그래.”

       

       레이첼의 배웅을 받으며 마차에서 내렸고, 그러한 호기심을 가진 채 설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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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migrated Into A Tragic Romance Fantasy

Transmigrated Into A Tragic Romance Fantasy

후피집물의 후회캐가 되었습니다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was curious about what a female-oriented tragic romantic fantasy was like, so I skimmed through only the free chapters. And then… “…Ha.” I found myself transmigrated into one of the main male characters, destined for tears of regret, exhaustion, and obsession. So, the first thing that had to be done was… “I, Elden Raphelion, hereby declare my withdrawal from the competition for the betrothal of the Third Northern Duchess.” To escape this trage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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