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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

       “…그래서요. 제가 막 땅에 처박히려는데, 갑자기 데우스가 나타나서는 이렇게 막 저를 안아주는데! 세상에, 저도 모르게 ‘으엑.’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버렸지 뭐에요?!”

       “그랬군요.”

       “후배님이 루시엘 선배님한테 달려간 후에야 알았어요. 아, 나 방금 엄청 이상한 소리 내뱉은 거 같은데?! 으아아앙! 하고요!!”

       “대충 상상이 가네요.”

        “그래도요. 그, 기분은 좀 좋았어요. 후, 후배님이 좋다는 건 아니고요! 남자 품이 그렇게 듬직하다는 걸 깨달아서 좋다는 거예요!”

       

         

       ―재잘재잘

         

       요람의 2인 병실. 그 안에서 네페르티는 벌써 한 시간째 떠들고 있는 중이었다.

         

       지치지도 않는다. 오히려 가면 갈수록 수다의 양이 더 많아지는 느낌이다.

       어쩌면 콰당은 그녀의 저 재잘거림을 적절한 때에 끊어주는 방지턱일지도 모른다.

       

       그런 수다를, 옆자리에 있던 루시엘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 받아주고 있었다.

       

         

       “부끄러웠겠어요.”

       “조금은요. 아무튼. 정말 대단했어요. 후배님이 하도 멀리 떨어지라고 신신당부를 해서, 다른 파견대 데리고서 거리를 벌리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요.”

       “….”

        “하지만 선배님은 가장 마지막까지 계셨으니, 그래도 가장 많이 보셨지 않나요?”

        “….”

        “선배님?”

         

       

       고개를 돌려보니, 루시엘은 멍한 얼굴로 창문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딱히 무언가를 눈에 담은 건 아니다. 그냥. 하늘과, 구름과, 그 아래 요람을 바라볼 뿐이다.

         

       

       “루시엘 선배님!”

       “…아, 네. 불렀나요. 회장?”

        “윽. 혹시 이거 저 혼자 너무 떠들었다고 타박하시려는 의도는 아니죠?”

        “회장 혼자 조금 과하게 재잘거리긴 했어요.”

       

         

       엣. 네페르티가 급히 부채를 들고선 슬그머니 제 입을 가린다.

       그래도 손이 움찔거리는 게 여전히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모양이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걸까요.”

       

         

       다시금 열린 네페르티의 입에선, 전보다는 확연히 가라앉은 목소리가 나왔다.

       

         

       “씰스톤이 파손되어서.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아서. 그래서 게이트가 발현되는 거야 많이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로 많이 생성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어요.”

        “음….”

       “거기에 제국 전역에서 팔백 개가 넘는 게이트 발현까지. 이건, 정말이지….”

       “나 또한 후배님과 같아요. 굉장히 불안하고, 못내 궁금하고.”

         

       

       씰스톤의 영향력이 없는 곳에 게이트가 나오는 것. 정상이다.

       씰스톤이 망가져 게이트가 발현되는 것. 그것 또한 정상이다.

         

       하지만 그 게이트가 이렇게 폭발적인 숫자로 늘어난 것이나.

       이제껏 상대하던 몬스터가 아니라 전혀 뜻밖의 존재가 나온 것.

         

       

       ‘이것들은 모두, 절대로 정상이라고 볼 수 없는 부분들.’

       

         

       ―꾸욱

         

       루시엘은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어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

         

       

       며칠 전 조우했던. 타오르는 뿔과 새빨간 육체를 지녔던 존재가 떠오른다.

       제국의 미래를 책임질 자신과 다른 이들을 하등생물이라 부르던 놈.

       하지만 그만한 자격이 있었다. 실제로, 그 존재는 엄청나게 강했다.

         

       그 더러운 입을 다물게 할 정타 한 번 제대로 가하지 못했다.

       무리가 갈 정도로 이능을 끌어냈으나 베인 상처나 만드는 것에 불과했다.

       

       중과부적 수준이 아니었다. 아예 닿을 수가 없다고 보는 게 맞았다.

       

         

       ‘분해.’

         

       

       자신의 검이 부러진 느낌이다. 자신의 낭만이 바스러진 듯하다.

         

       이제까지 한 번도 스스로의 능력에 대해서 확신을 잃었던 적이 없는데.

       끝의 끝까지 간다면 능히 이 낭만도 찬란한 별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저 시커먼 무저갱의 진짜 어둠을 대면하니 그 빛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캄캄하다. 답답하다. 길을, 잃은 것 같다.

       

         

       ‘나의 검이, 전혀 닿지 못했어. 상대는… 너무 멀었고.’

       

         

       ―으득

         

       이토록 깊고 처절한 패배감은 정말 처음이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가슴에서 천불이 치솟는다.

       열기로 인해 머리가 마비되고 눈에서 피가 흘러내릴 것 같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의 이 약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해봤자 이렇게 패배를 되짚고 또 곱씹는 한심한 짓이 전부다.

       바보같이. 수석이니 파견대 대장이니 하는 알량한 것에 취해서…

       

         

       ―툭툭

         

       고개를 돌려본다. 부채 하나가 자신의 손등을 두드리고 있다.

       

         

       “선배님. 아니, 황녀 전하. 저도, 이 네페르티도. 마찬가지랍니다.”

       “….”

        “분합니다. 너무 분해요. 나름 저 자신을 제법 괜찮은 능력자라 여기고 있었는데. 언젠가 졸업하면 선배님들의 빈자리를 멋지게 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아무 것도 못 해서요.”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네페르티는 루시엘을 보며 미소를 짓는다.

       

         

       “그러니까. 더 노력해야죠. 다음에 그놈을 만나면… 아. 아니지. 그놈은 후배님이 진작 처리했죠? 그러면 그 비슷한 녀석들을 만났을 때 제대로 한 방 먹일 수 있도록 말이죠!”

       “….”

        “그러니까. 지금은 그저 훌훌 털고 일어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촤악!

       

         

       “어떤가요. 학생을 위로하는 진정한 학생회장다웠나요? 호호호홋!”

       “…네. 후배님. 이제 본인 침대로 돌아가면서 넘어지지만 않으면 참 좋―”

       

         

       늦었다. 아니,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깩!”

       

         

       보란 듯이 대차게 엉덩방아를 한 번 찧은 후.

       낑낑거리며 일어나선 본인의 침대로 돌아가는 네페르티였다.

       그 모습에 루시엘도 결국엔 우울함을 걷어내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자신은 물론, 저 네페르티조차 지독한 패배감을 느끼게 한 거대한 적.

       그런 존재를 무슨 샌드백 두들기듯 주먹으로 단죄한 사내가 떠오른다.

         

       꿈을 꾸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면, 동화를 보는 줄 알았다.

       …아니지. 동화라고 하기엔 좀 무리가 있다. 그것은, 그래.

       

         

       ‘전설. 혹은, 신화.’

       

         

       어릴 적부터 제국의 수많은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누구는 검으로. 누구는 마법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강자들.

       그들의 이야기가 마치 바로 앞에서 펼쳐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섬광처럼 치솟아 벼락처럼 내리꽂던 그 찬연한 위용이라든가.

       싸움의 끝에 적의 시체 위에 앉아 여명을 맞이하는 모습은 그저 경탄스러울 뿐이었다.

       무엇보다 기억에 선명히 남는 것은 탄탄하기 짝이 없던 근육 가득한 상체….

       

         

       “―가 아니라아앗!!”

       “선배님?!”

       “아, 아니에요! 후배님! 나 진짜 아니야!”

        “그러니까 뭐가 아니라는 건데요?!”

       

         

       옆에서 네페르티가 뭐라고 말하든, 루시엘은 열심히 고개를 내저었다.

       절대로, 절대로 자신은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절대로 조각 같은 남자의 몸….

       

         

       “꺄아아악!”

       

       

       그대로 이불 위에 풀썩, 하고 루시엘이 얼굴을 처박는다.

       

         

       “흐, 흐아아…!”

         

       

       얼굴이 화끈거린다. 갑자기,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왜 자꾸 떠오르지? 왜 멈추지 않고, 후배님의 모습이 아른거리는 거야?

         

       

       쓰러지려던 자신을 붙잡아주던. 자신에게 맡기라며 앞서 나아가던.

       당신의 낭만이 있듯 나 또한 나만의 낭만이 있다며.

         

       그는 그만의 별빛을 따라 나아갔다. 한 걸음, 한 걸음.

       종국에는 정말로, 한 편의 전설과 같이 승리를 거두었다!

         

       

       절대로 무너지지 않으리라. 나의 싸움 앞에서.

       그의 뒷모습은 마치 그리 외치고 있는 듯했다!

         

       

       ―두근두근

         

       

       “으으으….”

         

       

       이상해. 이런 건, 이런 건 스승님의 검을 본 이후로 처음인데.

       심장이 두근거려서 미칠 것 같아. 온몸이 다 화끈거려.

       

         

       “….”

       

         

       한편, 그런 루시엘을 쳐다보던 네페르티는.

         

       

       ‘어떻게 하지? 생각보다 충격이 크신 모양인데….’

       

         

       루시엘의 수준이 거의 요람의 교사에 다다른 정도라곤 하지만.

       요람의 모든 학생들이 ‘황녀’ 가 아닌 ‘능력자’ 로서 동경한다지만.

       결국 그녀가 한 명의 학생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당장 그녀의 곁에 있던 스미스 선생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절대로 루시엘이 부족해서 패한 것이 아니다.

       그냥 패할 만한 상대와 조우했을 뿐이다.

         

       

       “선배님. 괜찮다니까요? 정말로 괜찮아요!”

        “내, 내가 안 괜찮아서 그래요…!”

        “아니! 정말로! 아무도 뭐라고 안 한다니까요?!”

        “분명 뭐라고 할걸요?!”

         

       

       외설스럽게 자꾸 데우스의 그 탄탄한 상체만 떠오르는데 뭐라고 할 수밖에 없어!

       선생님도 어쩌지 못한 상대인데 패했다고 그러는 건 스스로에게 안 좋아요!

         

       

       ―똑똑

         

       

       “앗. 선배님. 잠시 조용히. 누가 왔어요. 흠흠. 누구신가요?”

       “접니다. 데우스. 그, 병문안 왔습니다만.”

       

       

       

       오. 이번에도 눈치 없이 안 오는 줄 알았는데!

       선배님! 우리 데우스 후배님이 병문안을 왔다네요!

       

       환하게 웃으며 루시엘 쪽으로 고개를 돌린 네페르티는.

       

         

       “…선배님?”

         

       

       갑자기 이불을 뒤집어쓰고 침대에 눕는 루시엘을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이, 일단 들어와요!”

       

         

       네페르티의 허락에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내는 데우스.

       저 덩치에 맞지 않게 조심하고 있으니 뭔가 묘하게 웃기다.

       

         

       “…어.”

         

       

       네페르티에게 가볍게 묵례를 하던 데우스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린다.

       그러더니 목소리를 최대한 낮춰서는 소곤거린다.

         

       

       “회장님. 그. 혹시 제가 잘못 찾아온 겁니까?”

       “아. 그게.”

         

       

       흘끗 고개를 돌려 루시엘이 누워있던 침대를 바라본다.

         

       조금 전만 해도 멀쩡히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자는 척이다.

       이불까지 뒤집어쓴 게 ‘나 언급도 하지 마!’ 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 선배님이. 아직… 피곤이 다 안 가신 모양이네요.”

        “그러면 나중에 다시.”

        “아뇨. 괜찮아요. 뭘 두 번이나 오고가요! 이리 앉아요!”

         

       

       저러곤 있어도 귀는 열고 계시겠지. 아, 몰라요! 선배님!

         

       

       “의외네요. 내가 옆에 없어서 병문안은 생각도 안 할 줄 알았는데.”

        “퇴실하면 당장 병문안 왜 안 왔냐고 할 것 같아서 헐레벌떡 왔습니다.”

        “그런 것치곤 좀 많이 늦었는데요?”

        “죄송합니다. 그, 요즘 요람 내부가 정신이 없어서.”

       

         

       소곤소곤. 무슨 밀담이라도 나누듯 조용하게 오고가는 대화소리.

         

       

       “….”

       

         

       그 옆에서 루시엘은 귀는 활짝 열어둔 채 그 말들을 엿듣고 있었다.

       

       또 다시 병문안을 왔다는 후배님에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헤엄치는새 님! 후원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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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viving in a Genre I Mistook as a Munchkin

Surviving in a Genre I Mistook as a Munchkin

Overpowered in the Wrong Genre 장르 착각에서 먼치킨으로 살아남기
Score 3.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found myself in an apocalypse novel with no dreams or hope. And because of that, I trained and trained to become stronger in order to survive. “Wait, hold on a minute.” But, one day, I realized I had mistaken the genre of the novel I had transmigrated in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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