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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

       “다음 주면 방학이네! 모두 1학기 고생했어!”

         

       파스텔은 양손을 옆구리에 대고 엘리와 더스틴을 바라봤다.

         

       “방학 계획은 잘 세웠어? 연구 수석으로서 조언을 해주자면 성실한 노력이 결과를 만드는 거야. 멜리사도 인정했듯이!”

         

       헤헤.

         

       “크래프트, 당신은 우아해요.”

         

       맞아맞아.

         

       난 우아한 백조야.

         

       “방학을 그냥 보내지 말고 너희도 열심히 해봐! 다음 연구 수석을 할지 누가 알겠어? 물론 다음도 나지만!”

       “하긴 네가 이미지 관리를 포기하고 그렇게 열중하는 모습은 처음이었어.”

         

       엘리가 생각하다가 수긍했다.

         

       “평소 학생회 일을 일부러 안 하는 건 크래프트의 기풍이라는 건 알았지만, 막상 하면 정말 엄청나구나. 논문 한 부를 그 짧은 시간에 써올 수준인 줄은 몰랐어.”

         

       크래프트의 기풍?

         

       파스텔은 고개를 갸웃했다.

         

       배신과 분열 말하는 건가?

         

       허억.

         

       파스텔, 사악?

         

       “이미지 관리가 무슨 소리야?”

         

       더스틴이 의아해했다.

         

       엘리가 여자애의 겉모습에 홀린 한심한 남자애를 보는 시선으로 더스틴을 흘겨봤다.

         

       “넌 들어도 몰라.”

       “엘리, 친구끼리 그러면 안 되지! 더스틴은 남 수발드는데 재능이 있을 뿐이지 바보는 아니야!”

         

       더스틴의 표정이 복잡미묘해졌다.

         

       “바보가 아닌 더스틴! 내가 설명해 줄게!”

         

       파스텔은 스스로를 가리켰다.

         

       “지금 나는 관리가 된 파스텔이야! 봐봐! 머릿결도 찰랑하고 피부도 촉촉하잖아!”

         

       악마님이 아침마다 관리해 주거든.

         

       “하지만 논문을 쓸 때는 어땠어? 시일이 촉박해서 관리도 제대로 못 하고 다녔잖아! 머리는 푸석푸석하고 피부엔 생기가 없고 눈동자는 탁했지! 마치 대학원생처럼!”

         

       으아아.

         

       파스텔은 혼자 놀라워했다.

         

       대학원생이래……!

         

       대학원생 파스텔……!

         

       다른 의미긴 해도 교수의 논문을 작성하느라 생기가 없었으니 정말 대학원생 상태였다.

         

       “벚꽃 파스텔이 벚꽃 아님 파스텔로 돌아다닌 거야!”

         

       허억.

         

       벚꽃 아님 파스텔……!

         

       파스텔은 손을 떨었다.

         

       덜덜덜.

         

       “관리를 하고 안 하고는 이만큼이나 차이가 나는 거였어! 난 다시는 벚꽃 아님 파스텔이 되지 않을 테야!”

         

       으아아.

         

       “아! 여유가 없어서 생긴 외견 차이를 이미지 관리라 말한 거구나. 난 또 뭐라고. 이해했어.”

         

       더스틴이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가 여자애의 순진한 척하는 연기에 홀려서 말 몇 마디에 속아 넘어가는 한심한 남자애를 보는 시선으로 더스틴을 흘겨봤다.

         

       잉.

         

       엘리는 그냥 더스틴과 상성이 안 맞나봐.

         

       하긴 친구끼리라도 그럴 순 있지!

         

       이해심 많은 난 충분히 이해해!

         

       파스텔은 학생회 일원과 방학 전 작별 인사를 마친 뒤 바쁘게 움직였다.

         

       모든 친구와 작별 인사를 나누려면 며칠은 써야 한다. 방학까지 일주일 남았지만 빨리빨리 움직여야 일정 내에 끝낼 수 있었다.

         

       마주치는 모든 친구와 작별 인사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안녕! 안녕!”

         

       친구가 많은 것도 탈이야.

         

       인기인만 겪는 고충이라고 할까.

         

       물론 여기 친구들은 왠지 모르게 파스텔 자신과 사적으론 깊게 안 어울려 주긴 한다. 마치 멜리사처럼.

         

       인사도 웃으며 받아주고 친구라고 인정도 해주는데 정작 깊은 대화는 나누기 꺼린다고 해야 하나?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니 멀리서 예쁜 것만 보겠다는 태도가 팍팍 느껴진다.

         

       파스텔 좋아하지만 친해지긴 꺼림칙해 빔~.

         

       으아아.

         

       광선 빔 눈부셔어.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아이돌이 된 기분이다.

         

       “앗! 레너드! 안녀엉!”

         

       1학년 기숙사 앞에서 부하들과 뭔가를 살펴보던 레너드가 돌아봤다.

         

       “뭐야, 웬일이야.”

       “방학 전에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러 왔지!”

       “여기 네 친구 없어. 그냥 가라.”

         

       파스텔은 레너드의 말을 상큼히 무시했다.

         

       “친구친구들 안녕! 방학 준비 잘했어?”

         

       레너드의 부하 겸 파스텔의 친구친구들이 호응해 줬다.

         

       역시 친구친구들이야!

         

       레너드의 말쯤은 무시하지!

         

       “이것들아! 너네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내 체면이 뭐가 돼! 나랑 얘 중에 누가 더 중요한지 모르는 거냐?!”

         

       잉.

         

       “당연히 나 아니야? 우린 친구친구니까! 무려 친구보다 글자가 두 배 많잖아!”

         

       두 배야, 두 배!

         

       오예.

         

       레너드가 황당해했다.

         

       “뭐 그딴 어이없는 소리를. 너 진짜 뻔뻔한 거 알고 있냐?”

       “응!”

         

       파스텔은 쾌히 긍정했다.

         

       “와 씨, 진짜 뻔뻔하네?!”

         

       레너드의 말문이 막혔다.

         

       “뻔뻔한 파스텔이에요~.”

         

       하지만 친구친구는 많죠~.

         

       아하하.

         

       파스텔은 혼자 웃다가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친구친구들 뭐 하고 있었어?”

         

       레너드가 한숨을 쉬었다.

         

       “웬 고학년이 내 구역에 뭘 설치하길래 살펴보는 중이었지.”

         

       설치?

         

       큼지막한 사각형 나무 장치였다.

         

       “뭐야 이게?”

       “모르니까 살피는 거지. 너도 모르겠냐?”

       “한 번 볼게.”

         

       파스텔은 진지한 얼굴로 나무 장치를 살폈다. 큰 상자 크기와 모양이지만 겉과 속에 톱니바퀴가 언뜻 보였다.

         

       잉.

         

       “뭔지 알 거 같냐?”

         

       레너드가 연구 수석에게 은근한 기대를 담고 물어왔다. 친구친구들의 기대 섞인 시선도 뒤따랐다.

         

       후후.

         

       “물론 알지!”

         

       파스텔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빠르게 마검을 건드렸다.

         

       악마님! 악마님!

         

       전혀 모르겠어요!

         

       으아아.

         

       연구 수석의 명예가……!

         

       악마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사출장치군.』

         

       파스텔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사출장치야!”

         

       훗.

         

       “오오!”

         

       레너드와 친구친구들이 감탄했다.

         

       “한 번에 알아내다니!

       “역시 연구 수석이야!”

         

       헤헤.

         

       레너드가 장치를 바라봤다.

         

       “사출장치인가. 뭐에 쓰는지 알아?”

       “물론 알지!”

         

       파스텔은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그리고 사출장치를 살펴봤다. 큰 나무 상자 모양에 톱니바퀴가 언뜻언뜻 보이고.

         

       “아하!”

         

       빠르게 마검을 건드렸다.

         

       악마님! 악마님!

         

       전혀 모르겠어요!

         

       으아아.

         

       『사출하는 건 소형 열기구 같은데.』

         

       파스텔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소형 열기구!”

         

       훗.

         

       “오오! 연구 수석! 연구 수석!”

         

       레너드가 팔짱을 끼고 미간을 찌푸렸다.

         

       “소형 열기구라고? 남의 구역에 무슨 의도지? 넌 이것도 알겠지?”

       “물론!”

         

       똑똑한 파스텔은 배움이 빠르다.

         

       이젠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바로 마검을 두두두.

         

       악마님! 악마님!

         

       으아아.

         

       『……보통은 이벤트용이다. 열기구 아래에 글을 적은 천을 매달아 놓고 사출시키는 거지.』

       “이벤트용이야!”

         

       훗.

         

       “오오!”

       『극단적인 활용은, 가스 살포 정도겠군. 보이는 구조로는 이쪽이 더 가능성 높은가.』

       “그리고 가스 살포! 이쪽이 더 가능성 높아!”

         

       훗.

         

       “오오! 오……?”

         

       감탄하던 친구친구들이 멈칫했다.

         

       뇌를 거치지 않고 말하던 파스텔도 멈칫했다.

         

       오잉.

         

       모두가 사출장치를 내려봤다.

         

       정적이 흘렀다.

         

       저편에서 새로운 친구친구가 달려왔다.

         

       “대장! 웬 고학년이 우리 구역에 수상한 걸 설치하고 갔어! 뭐야? 여기도 있네?”

         

       오이잉.

         

       『아닐 수도 있지만 테러 가능성이 높다. 대담한 행동이군. 세력 홍보도 겸하려는 건가.』

         

       테러?

         

       “으아아!”

         

       파스텔은 머리를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혼란과 감정을 몰아서 쏟아내듯이 머리를 헤집다가 멈추고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천천히 정색했다.

         

       나 학생회야, 학생회.

         

       비상시 컨트롤타워.

         

       솔선수범해야 할 자리였다.

         

       떨리는 손을 비벼 진정시켰다.

         

       “레너드, 애들 기숙사 내부로 대피시키고 무기 챙겨! 난 이거 확인해 볼 테니 당장 움직여!”

         

       단호한 명령에 레너드가 움찔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이것들아! 학생회 명령 들었지? 당장 움직여! 당장!”

         

       발소리가 우르르 울렸다.

         

       혼자 남은 파스텔은 장치를 살펴봤다.

         

       “부셔도 되죠?”

       『구조상 폭발물은 아니다.』

         

       잡고 뜯자 부서지며 내부가 드러났다.

         

       천으로 만든 소형 열기구와 작은 마법 장치. 가스용인 듯한 약물 병도 있었다.

         

       『색을 보아하니 마비향이군. 즉각적이진 않지만 효과적이다.』

       “당장 교수진에 알리죠.”

       『그럴 필요 없어. 이 정도로 대담한 행동이라면 이미 들켰다.』

         

       그 말대로 아카데미 전체에 경적이 울렸다. 침입 경보다.

         

       사출장치를 힘으로 망가트리고 파스텔은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우왕좌왕하는 애들이 보였다.

         

       “기숙사로 들어가! 기숙사로!”

         

       인솔하자 큰 혼란 없이 대피시킬 수 있었다.

         

       무장한 레너드와 그 무리가 달려왔다.

         

       “학생회, 이제 뭘 하면 되지?”

       “그거야 테러의 목적에 따라 다른데…….”

         

       파스텔은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직후 폭발음이 연달아 들렸다. 소형 열기구들이 떠오르고 알록달록한 연기를 내뿜었다. 연기는 공기보다 무거운지 지면에 깔리며 퍼지기 시작했다.

         

       『바람을 타고 날아올 거다. 여기도 안전하진 않아.』

         

       어디선가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혼란용으로 짐승을 풀었나.

         

       “일단 기숙사 건물로 들어가!”

       “안 싸우고?”

       “공성전이 가능한데 야전을 할 필요는 없잖아! 농성이 맞아! 들어가자! 어서어서!”

         

       대담한 레너드의 등을 밀었다.

         

       파스텔은 기숙사 내부로 들어와 대문을 닫았다. 잠금장치를 살펴봤다. 자물쇠가 튼튼해 보였다.

         

       “좋아. 기숙사는 그럭저럭 안전하겠어. 레너드, 창문 침입에 주의하며 농성하도록 해. 특별히 기숙사를 공격할 이유가 없으니 공략하기 어렵다는 인상만 주면 안전할 거야.”

       “알겠어. 다들 들었지?! 1층 창문 개수 세고 인원 분배해! 가구로 막을 수 있는 곳은 막고 아닌 곳은 경계할 거다! 남는 인원은 뒷문과 비밀통로 확인해!”

         

       레너드가 부하들을 지휘했다. 혼란이 가라앉고 대처가 빠르게 이루어졌다.

         

       잘하네.

         

       안심했다.

         

       파스텔은 그걸 보다가 대문을 열었다. 바람이 들어오고 분홍 머리가 휘날렸다. 시선이 쏠렸다.

         

       “레너드! 난 이만 갈게. 여기 지휘를 부탁해. 지금처럼만 하면 돼.”

       “뭐?”

         

       고개를 돌린 레너드가 눈을 크게 떴다.

         

       “너 혼자 간다고?!”

       “응, 학생회니까.”

       “그럼 다 같이 가야-”

         

       짐승 소리가 들렸다. 마비 연기를 뚫고 굶주린 늑대가 달려들었다.

         

       파스텔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한 걸음 걸었다. 늑대가 옷자락을 스치고 검격이 번뜩였다. 피보라가 일었다.

            

       핏물이 대문을 물들였다. 소녀가 늑대 사체를 문밖으로 걷어찼다. 바닥에 핏자국이 남았다.

         

       “레너드, 대장 놀이를 하는 건 좋아. 그렇다면 자리에 맞는 책임도 다하도록 해.”

         

       분홍 머릿결을 타고 핏물이 흘렀다.

         

       “감정을 가라앉히고 이성을 되찾아. 의견을 수렴하고 최선을 다해.”

         

       소녀가 레너드를 직시했다.

         

       “할 수 있지?”

         

       주먹을 내밀었다.

         

       레너드가 머뭇거렸다.

         

       잠시 뒤 주먹이 맞부딪혔다.

         

       파스텔은 웃고 안전지대를 떠났다.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소녀는 인간을 벗어난 신체로 마비 연기를 뚫고 한동안 걸었다. 기숙사에서 보이지 않을 위치에서 걸음을 멈췄다.

         

       갑자기 머리를 부여잡았다.

         

       으아아.

         

       학생회 괜히 가입했어……!

         

       사지로 걸어가야 하는 파스텔……!

         

       인생 너무 어려워 파스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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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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