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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

       어제 미궁을 다녀왔으니 오늘은 쉬는 날. 그런 이유로 요정과 은화를 나와 향한 곳은 바로….

       

       딸랑-

       

       “안녕하세요! 하루 만에 다시 왔어요!”

       

       “어머? 이렇게 빨리 볼 줄은 몰랐네요.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나요 요나 씨? 혹시…무슨 문제가 생겼다거나?”

       

       이제야 눈치챘나? 그건 내가 저지른 짓이다(X)

       반갑고 걱정된다(O)

       

       “문제는 없어요. 오히려 좋은 일만 있었죠. 전부 이브 씨에게 받은 목걸이 덕분이려나요?”

       

       “그렇다면 다행이죠. 하지만 명심하세요. 행운과 악운은 종이 한 장 차이랍니다.”

       

       다음엔 반드시 죽인다(X)

       다행이다(O)

       

       “괜찮아요. 이브 씨가 해주신 말은 전부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그나저나 지금 영업 중인 거 맞죠? 너무 이른 시간에 온 게 아닌지 조금 걱정되네요.”

       

       쇼파 위에서 뒤엉켜 잠든 레몬과 애플. 아직도 푹 잠든 둘의 모습에 그리 묻자, 이브의 미소가 한층 더 진해졌다.

       

       “영업시간은 맞아요. 다만, 이렇게 이른 시간에 누가 찾아온 적은 처음이라…이거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네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군(X)

       진짜 부끄럽다(O)

       

       “에이. 제가 일찍 찾아온 건 사실이니 너무 그러지 말아 주세요.”

       

       고개를 휘휘 젓고는 앉을 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이 좁은 가게에 앉을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 상황.

       

       하기야. 자리가 없어 레몬과 애플이 같은 쇼파에 누워 잠든 것 아닌가.

       

       이를 눈치챈 이브가 느긋한 움직임으로 가게를 정리하던 걸 멈추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침 때가 됐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나요?”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똑똑히 지켜봐라(X)

       해도 떴으니 쌍둥이 엘프를 깨우겠다(O)

       

       “이브 씨가 번거롭게 그럴 필요 없어요. 그냥 이렇게 하면 그만이잖아요?”

       

       씨익 웃으며 널브러진 레몬과 애플을 그대로 깔고 앉았다.

       

       “누, 누구임까!”

       “적습임까?”

       

       내 엉덩이에 배를 눌린 레몬과 애플이 헛소리를 하며 잠에서 깼다. 눈빛이 흐릿한 것이 아직 제정신은 아닌 것 같지만.

       

       “적이라뇨. 말이 심하시네요. 저처럼 귀여운 적이 어디 있나요?”

       

       “…헉! 적보다 무서운 게 있슴다!”

       “왜 여기 있는검까…?”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잠이 확 깼는지 또렷해지는 눈동자.

       

       레몬이 진심으로 식겁한 것처럼 바동댔고, 애플은 조심스레 내 의중을 물었다.

       

       어째 레몬은 레모네이드를 지린 이후로 나만 보면 과민 반응하는 것 같단 말이지.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레몬의 긴 머리를 대충 긁어모았다. 그리고는 먼지떨이로 휘두르듯 두 쌍둥이 엘프의 얼굴을 톡톡 두드렸다.

       

       “얍얍.”

       

       “가, 간지럽슴다.”

       “레몬의 머리 냄새가 기분 나쁨다….”

       

       허우적대면서도 차마 나를 밀어내지 못하는 레몬과 애플. 둘의 모습에 낄낄 웃으며 말했다.

       

       “잠깐 볼 일이 있어서 왔는데 자리가 없어서 앉아있었는데…싫었나요?”

       

       “아님다! 엉덩이 감촉이 선명하게 느껴져서 오히려 좋슴다!”

       “…레몬. 너무 솔직하게 말하면 안 되는 검다.”

       

       “아하하! 그 정도는 괜찮아요. 제 방석이 되는 값이라고 치죠 뭐.”

       

       “역시 요나는 통이 커서 좋슴다.”

       “레몬이 기분 나쁘지 않은 검까…?”

       

       “뭐, 어제 이브 씨에게 받은 걸로 둘에 대한 원한은 퉁쳤으니까요. 그리고 레몬은 원래 기분 나빴으니 그러려니 하는 거죠.”

       

       “처, 천사가 있슴다….”

       “정신 차리는 검다 레몬. 어제의 일을 벌써 잊은 검까? 천사의 탈을 쓴 괴물이 분명함다.”

       

       잔뜩 감동받은 표정의 레몬과 그런 레몬을 타박하며 무례한 소리를 내는 애플. 누가 괴물이라는 거람.

       

       다물고 있으라는 의미를 담아 허벅지로 애플을 꾹꾹 눌러주자 금방 얌전해졌다.

       

       그렇게 방석과의 합의를 마친 뒤, 한결 편한 자세로 몸을 늘어뜨리고 있던 것도 잠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이브가 평소보다 위압감 넘치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꽤 친해 보이시네요?”

       

       그게 네 약점이구나(X)

       부러우니까 나한테도 해줘라(O)

       

       슬슬 고장 나기 시작한 뇌내 번역기를 대충 흘려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던전에서는 알몸을 보기도 했으니까요. 레몬 같은 경우에는 더 심한 일도 있었던 터라…이제와서 이 정도쯤이야. 라는 느낌이려나요?”

       

       “아하?”

       

       납득했다(X)

       그래서 나한테는 언제 해줌?(O)

       

       뇌내 번역기가 미쳐 날뛰는 게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하고 있자니 이브 쪽에서 먼저 본론을 꺼냈다.

       

       “그나저나 오늘을 어쩐 일로 찾아오신 건가요 요나 씨? 럭키 스트라이크의 부작용 관련이 아니라면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만….”

       

       “당연히 이브 씨를 보러 왔죠! …라고 말하고 싶지만 실은 뭐 좀 봐달라고 하려고 왔어요.”

       

       품에서 유니콘의 뿔을 꺼냈다. 분명 주머니 속에 있을 때는 잠잠하던 것이 내 손이 닿자 밝게 빛나기 시작한다.

       

       “이게 뭐냐면….”

       

       “유니콘의 뿔?!”

       

       “오. 역시 이브 씨. 보기만 해도 아시나 보네요.”

       

       “유니콘의 뿔이 이렇게 밝게 빛날 줄이야….”

       

       굉장히 흥미롭다(X)

       와! 동정!(O)

       

       어쩐지 뿔이 아니라 내 몸을 훑는 것 같은 이브의 시선. 그 간질간질한 느낌에 실실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연히 얻게 됐는데. 이걸 어디에 쓰는 게 좋을까요?”

       

       “이미 멸종했다고 알려진 유니콘의 뿔을 우연히 얻었다고요…? 아니, 그 부분은 깊게 파고들지 않겠습니다.”

       

       거짓말하지 마라(X)

       와! 동정!(O)

       

       “어…그냥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저 유니콘이 멸종한 줄도 모르고 있었거든요.”

       

       “간단한 일이에요. 유니콘은 처녀를 애호하는 생물. 헌데, 멸신전쟁의 여파로 필멸자들의 정조관념과 성욕이 뒤틀렸죠. 처녀의 가치가 떨어지며 유니콘의 개체수도 줄어든 거예요.”

       

       이걸 몰라? 진짜로?(X)

       와! 동정!(O)

       

       “흐응. 그렇게 멸종했다는 건가요?”

       

       “아뇨. 그 정도라면 어찌어찌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요. 관념이 뒤틀리며 유니콘의 특성도 뒤틀렸다는 게 문제였죠.”

       

       뭐하는 녀석이지?(X)

       와! 동정!(O)

       

       뇌내 번역기와 이브. 둘 중 하나는 완전히 고장난 채로 이어지는 설명.

       

       요약하자면, 유니콘도 남녀역전 빔을 맞고 처녀 대신 동정을 좋아하게 됐지만 몸은 여전히 처녀성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 탓에 비처녀에게 닿으면 피를 토하며 죽거나 바이콘으로 타락하는 것은 물론, 비동정에게 닿아도 똑같이 죽거나 타락한 탓에 개체수가 급감했다고 한다. 지금은 아예 멸종했고.

       

       물론, 과거에 채집해 둔 유니콘의 뿔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아주 고가에 거래되고 있어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 보니 유니콘의 뿔을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네요. 심지어 이렇게 빛나는 뿔이라니.”

       

       너무너무 놀랍다(X)

       와! 동정!(O)

       

       “그냥 처녀나 동정의 손에 닿으면 빛나는 건 줄 알았는데, 밝기에도 차이가 있나 보네요.”

       

       “놀랍게도 유니콘은 죽어서도 처녀, 동정을 가리거든요. 따라서 이미 떨어진 뿔이라도 운송 중에 비처녀와 비동정의 손을 여러 번 타면 빛이 점점 탁해지고 깃든 힘도 약해진답니다. 제 나이가 적은 게 아닌데 이만한 뿔은 처음이네요.”

       

       귀한 재료다(X)

       와! 동정!(O)

       

       “이야…진짜 특이한 취향이네요. 유니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밑을 내려다보았다. 기분 나쁜 표정으로 나와 뿔을 바라보며 헤실거리는 레몬과 애플을 향해 물었다.

       

       “둘은 처녀인가요?”

       

       “아, 아님다! 제가 엘프치고 어리긴 하지만 그래도 살아온 세월이….”

       “레몬은 처녀임다.”

       “애플?! 뭘 폭로하고 자빠진 검까!”

       “그리고 저도 처녀임다.”

       

       고개를 마구 휘저으며 부정하는 레몬과, 담담하게 사실은 이렇습니다를 시전하는 애플.

       

       이건 애플의 말이 맞는 것 같네. 하기야. 그만큼 첫 경험의 기대가 컸으니 게일의 미남계에 홀랑 넘어간 거겠지.

       

       씻고 올 테니 먼저 벗고 준비하라는 말에, 진짜 던전에서 알몸으로 대기하다가 다른 약탈자들에게 제압당했다고 했던가.

       

       한번 꽃뱀…아니, 부랄이 덜렁거리니 방울뱀인가. 아무튼 남자에게 제대로 데였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열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둘.

       

       그 꿋꿋한 태도에 방긋 웃으며 유니콘의 뿔을 차례로 가져다 댔다.

       

       “에잇 에잇.”

       

       레몬과 애플에게 닿을 때마다 뿔의 빛이 한층 더 강해진다.

       

       수치스러움에 죽고 싶어 하는 레몬과 한숨만 푸욱 내쉬는 애플. 그 둘을 향해 엄격 근엄 진지한 표정으로 선고했다.

       

       “믿겠다. 너희는 처녀가 맞군.”

       

       “끼야아아악! 아, 아님다! 저는 경험 풍부한 어른 여성임다!”

       “레몬…그럴수록 더 추해지는 법임다.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함다.”

       

       호들갑 떠는 둘의 모습에 히히 웃다가 이번에는 이브 쪽을 향해 뿔을 건넸다.

       

       “이브 씨는 어떠신가요?”

       

       “…후후. 어떨 것 같나요?”

       

       감히 내 과거를 캐내려 하는가(X)

       이 나이 먹고 처녀인 걸 들키고 싶지 않아(O)

       

       드디어 좀 정상적으로 돌아온 뇌내 번역기. 은밀하게 몸을 뒤로 빼는 이브를 향해 기습적으로 뿔을 뻗었다.

       

       툭.

       

       유니콘의 뿔이 이브의 손등에 닿는 순간. 가게 전체가 환한 빛에 휩싸였다.

       

       화아아아악-!!

       

       순간 눈이 멀어버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막대한 광량. 졸지에 1,000년 묵은 처녀임을 증명한 이브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언제나 여유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이브이기에 상당히 보기 드문 풍경.

       

       스턴에 걸린 것처럼 굳어있는 이브를 향해 활짝 웃었다.

       

       “와! 처녀!”

       

       “…….”

       

       소소한 복수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와! 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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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

EP.28





       어제 미궁을 다녀왔으니 오늘은 쉬는 날. 그런 이유로 요정과 은화를 나와 향한 곳은 바로….


       


       딸랑-


       


       “안녕하세요! 하루 만에 다시 왔어요!”


       


       “어머? 이렇게 빨리 볼 줄은 몰랐네요.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나요 요나 씨? 혹시…무슨 문제가 생겼다거나?”


       


       이제야 눈치챘나? 그건 내가 저지른 짓이다(X)


       반갑고 걱정된다(O)


       


       “문제는 없어요. 오히려 좋은 일만 있었죠. 전부 이브 씨에게 받은 목걸이 덕분이려나요?”


       


       “그렇다면 다행이죠. 하지만 명심하세요. 행운과 악운은 종이 한 장 차이랍니다.”


       


       다음엔 반드시 죽인다(X)


       다행이다(O)


       


       “괜찮아요. 이브 씨가 해주신 말은 전부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그나저나 지금 영업 중인 거 맞죠? 너무 이른 시간에 온 게 아닌지 조금 걱정되네요.”


       


       쇼파 위에서 뒤엉켜 잠든 레몬과 애플. 아직도 푹 잠든 둘의 모습에 그리 묻자, 이브의 미소가 한층 더 진해졌다.


       


       “영업시간은 맞아요. 다만, 이렇게 이른 시간에 누가 찾아온 적은 처음이라…이거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네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군(X)


       진짜 부끄럽다(O)


       


       “에이. 제가 일찍 찾아온 건 사실이니 너무 그러지 말아 주세요.”


       


       고개를 휘휘 젓고는 앉을 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이 좁은 가게에 앉을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 상황.


       


       하기야. 자리가 없어 레몬과 애플이 같은 쇼파에 누워 잠든 것 아닌가.


       


       이를 눈치챈 이브가 느긋한 움직임으로 가게를 정리하던 걸 멈추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침 때가 됐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나요?”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똑똑히 지켜봐라(X)


       해도 떴으니 쌍둥이 엘프를 깨우겠다(O)


       


       “이브 씨가 번거롭게 그럴 필요 없어요. 그냥 이렇게 하면 그만이잖아요?”


       


       씨익 웃으며 널브러진 레몬과 애플을 그대로 깔고 앉았다.


       


       “누, 누구임까!”


       “적습임까?”


       


       내 엉덩이에 배를 눌린 레몬과 애플이 헛소리를 하며 잠에서 깼다. 눈빛이 흐릿한 것이 아직 제정신은 아닌 것 같지만.


       


       “적이라뇨. 말이 심하시네요. 저처럼 귀여운 적이 어디 있나요?”


       


       “…헉! 적보다 무서운 게 있슴다!”


       “왜 여기 있는검까…?”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잠이 확 깼는지 또렷해지는 눈동자.


       


       레몬이 진심으로 식겁한 것처럼 바동댔고, 애플은 조심스레 내 의중을 물었다.


       


       어째 레몬은 레모네이드를 지린 이후로 나만 보면 과민 반응하는 것 같단 말이지.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레몬의 긴 머리를 대충 긁어모았다. 그리고는 먼지떨이로 휘두르듯 두 쌍둥이 엘프의 얼굴을 톡톡 두드렸다.


       


       “얍얍.”


       


       “가, 간지럽슴다.”


       “레몬의 머리 냄새가 기분 나쁨다….”


       


       허우적대면서도 차마 나를 밀어내지 못하는 레몬과 애플. 둘의 모습에 낄낄 웃으며 말했다.


       


       “잠깐 볼 일이 있어서 왔는데 자리가 없어서 앉아있었는데…싫었나요?”


       


       “아님다! 엉덩이 감촉이 선명하게 느껴져서 오히려 좋슴다!”


       “…레몬. 너무 솔직하게 말하면 안 되는 검다.”


       


       “아하하! 그 정도는 괜찮아요. 제 방석이 되는 값이라고 치죠 뭐.”


       


       “역시 요나는 통이 커서 좋슴다.”


       “레몬이 기분 나쁘지 않은 검까…?”


       


       “뭐, 어제 이브 씨에게 받은 걸로 둘에 대한 원한은 퉁쳤으니까요. 그리고 레몬은 원래 기분 나빴으니 그러려니 하는 거죠.”


       


       “처, 천사가 있슴다….”


       “정신 차리는 검다 레몬. 어제의 일을 벌써 잊은 검까? 천사의 탈을 쓴 괴물이 분명함다.”


       


       잔뜩 감동받은 표정의 레몬과 그런 레몬을 타박하며 무례한 소리를 내는 애플. 누가 괴물이라는 거람.


       


       다물고 있으라는 의미를 담아 허벅지로 애플을 꾹꾹 눌러주자 금방 얌전해졌다.


       


       그렇게 방석과의 합의를 마친 뒤, 한결 편한 자세로 몸을 늘어뜨리고 있던 것도 잠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이브가 평소보다 위압감 넘치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꽤 친해 보이시네요?”


       


       그게 네 약점이구나(X)


       부러우니까 나한테도 해줘라(O)


       


       슬슬 고장 나기 시작한 뇌내 번역기를 대충 흘려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던전에서는 알몸을 보기도 했으니까요. 레몬 같은 경우에는 더 심한 일도 있었던 터라…이제와서 이 정도쯤이야. 라는 느낌이려나요?”


       


       “아하?”


       


       납득했다(X)


       그래서 나한테는 언제 해줌?(O)


       


       뇌내 번역기가 미쳐 날뛰는 게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하고 있자니 이브 쪽에서 먼저 본론을 꺼냈다.


       


       “그나저나 오늘을 어쩐 일로 찾아오신 건가요 요나 씨? 럭키 스트라이크의 부작용 관련이 아니라면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만….”


       


       “당연히 이브 씨를 보러 왔죠! …라고 말하고 싶지만 실은 뭐 좀 봐달라고 하려고 왔어요.”


       


       품에서 유니콘의 뿔을 꺼냈다. 분명 주머니 속에 있을 때는 잠잠하던 것이 내 손이 닿자 밝게 빛나기 시작한다.


       


       “이게 뭐냐면….”


       


       “유니콘의 뿔?!”


       


       “오. 역시 이브 씨. 보기만 해도 아시나 보네요.”


       


       “유니콘의 뿔이 이렇게 밝게 빛날 줄이야….”


       


       굉장히 흥미롭다(X)


       와! 동정!(O)


       


       어쩐지 뿔이 아니라 내 몸을 훑는 것 같은 이브의 시선. 그 간질간질한 느낌에 실실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연히 얻게 됐는데. 이걸 어디에 쓰는 게 좋을까요?”


       


       “이미 멸종했다고 알려진 유니콘의 뿔을 우연히 얻었다고요…? 아니, 그 부분은 깊게 파고들지 않겠습니다.”


       


       거짓말하지 마라(X)


       와! 동정!(O)


       


       “어…그냥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저 유니콘이 멸종한 줄도 모르고 있었거든요.”


       


       “간단한 일이에요. 유니콘은 처녀를 애호하는 생물. 헌데, 멸신전쟁의 여파로 필멸자들의 정조관념과 성욕이 뒤틀렸죠. 처녀의 가치가 떨어지며 유니콘의 개체수도 줄어든 거예요.”


       


       이걸 몰라? 진짜로?(X)


       와! 동정!(O)


       


       “흐응. 그렇게 멸종했다는 건가요?”


       


       “아뇨. 그 정도라면 어찌어찌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요. 관념이 뒤틀리며 유니콘의 특성도 뒤틀렸다는 게 문제였죠.”


       


       뭐하는 녀석이지?(X)


       와! 동정!(O)


       


       뇌내 번역기와 이브. 둘 중 하나는 완전히 고장난 채로 이어지는 설명.


       


       요약하자면, 유니콘도 남녀역전 빔을 맞고 처녀 대신 동정을 좋아하게 됐지만 몸은 여전히 처녀성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 탓에 비처녀에게 닿으면 피를 토하며 죽거나 바이콘으로 타락하는 것은 물론, 비동정에게 닿아도 똑같이 죽거나 타락한 탓에 개체수가 급감했다고 한다. 지금은 아예 멸종했고.


       


       물론, 과거에 채집해 둔 유니콘의 뿔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아주 고가에 거래되고 있어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 보니 유니콘의 뿔을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네요. 심지어 이렇게 빛나는 뿔이라니.”


       


       너무너무 놀랍다(X)


       와! 동정!(O)


       


       “그냥 처녀나 동정의 손에 닿으면 빛나는 건 줄 알았는데, 밝기에도 차이가 있나 보네요.”


       


       “놀랍게도 유니콘은 죽어서도 처녀, 동정을 가리거든요. 따라서 이미 떨어진 뿔이라도 운송 중에 비처녀와 비동정의 손을 여러 번 타면 빛이 점점 탁해지고 깃든 힘도 약해진답니다. 제 나이가 적은 게 아닌데 이만한 뿔은 처음이네요.”


       


       귀한 재료다(X)


       와! 동정!(O)


       


       “이야…진짜 특이한 취향이네요. 유니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밑을 내려다보았다. 기분 나쁜 표정으로 나와 뿔을 바라보며 헤실거리는 레몬과 애플을 향해 물었다.


       


       “둘은 처녀인가요?”


       


       “아, 아님다! 제가 엘프치고 어리긴 하지만 그래도 살아온 세월이….”


       “레몬은 처녀임다.”


       “애플?! 뭘 폭로하고 자빠진 검까!”


       “그리고 저도 처녀임다.”


       


       고개를 마구 휘저으며 부정하는 레몬과, 담담하게 사실은 이렇습니다를 시전하는 애플.


       


       이건 애플의 말이 맞는 것 같네. 하기야. 그만큼 첫 경험의 기대가 컸으니 게일의 미남계에 홀랑 넘어간 거겠지.


       


       씻고 올 테니 먼저 벗고 준비하라는 말에, 진짜 던전에서 알몸으로 대기하다가 다른 약탈자들에게 제압당했다고 했던가.


       


       한번 꽃뱀…아니, 부랄이 덜렁거리니 방울뱀인가. 아무튼 남자에게 제대로 데였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열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둘.


       


       그 꿋꿋한 태도에 방긋 웃으며 유니콘의 뿔을 차례로 가져다 댔다.


       


       “에잇 에잇.”


       


       레몬과 애플에게 닿을 때마다 뿔의 빛이 한층 더 강해진다.


       


       수치스러움에 죽고 싶어 하는 레몬과 한숨만 푸욱 내쉬는 애플. 그 둘을 향해 엄격 근엄 진지한 표정으로 선고했다.


       


       “믿겠다. 너희는 처녀가 맞군.”


       


       “끼야아아악! 아, 아님다! 저는 경험 풍부한 어른 여성임다!”


       “레몬…그럴수록 더 추해지는 법임다.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함다.”


       


       호들갑 떠는 둘의 모습에 히히 웃다가 이번에는 이브 쪽을 향해 뿔을 건넸다.


       


       “이브 씨는 어떠신가요?”


       


       “…후후. 어떨 것 같나요?”


       


       감히 내 과거를 캐내려 하는가(X)


       이 나이 먹고 처녀인 걸 들키고 싶지 않아(O)


       


       드디어 좀 정상적으로 돌아온 뇌내 번역기. 은밀하게 몸을 뒤로 빼는 이브를 향해 기습적으로 뿔을 뻗었다.


       


       툭.


       


       유니콘의 뿔이 이브의 손등에 닿는 순간. 가게 전체가 환한 빛에 휩싸였다.


       


       화아아아악-!!


       


       순간 눈이 멀어버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막대한 광량. 졸지에 1,000년 묵은 처녀임을 증명한 이브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언제나 여유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이브이기에 상당히 보기 드문 풍경.


       


       스턴에 걸린 것처럼 굳어있는 이브를 향해 활짝 웃었다.


       


       “와! 처녀!”


       


       “…….”


       


       소소한 복수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와! 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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