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8

       

       저번에 아이린이 말 했다.

       

       가지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고.

       

       살펴보니 드문드문 시들어가는 잎사귀들이 보였다.

       

       “이 정도의 신가물인데…”

       

       내가 알던 당산나무의 규격을 아득히 초과해 버렸다.

       

       큰신이 들어가도 자리가 넉넉할지경이다.

       

       정말로 잎사귀가 시들 만한 나무가 아니었다.

       

       “로메넬님, 세계수가 어느 순간 의지를 전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맞습니다.”

       

       당산나무에서 반응이 없다면 이유는 하나다.

       

       나무에 깃들어야 할 신이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

       

       이 나무가 세계수의 육신이라고 했으니 엘프들도 이게 그릇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수님을 뵌적이 있나요?”

       

       “그 존재만을 느낄 뿐. 직접 뵙지는 못했습니다.”

       

       “존재를 느껴요…? 언제가 마지막이죠?”

       

       이 세계수라 불리는 나무.

       

       아무리 살펴봐도 신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는다.

       

       신묘한 흔적들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지금은 텅 비어 있는 그릇이다.

       

       로메넬이 나를 바라봤다.

       

       그런데 그 표정이 이상했다.

       

       왜 그런 걸 물어보냐는 얼굴이었다.

       

       “세계수께서는 지금도 육신에 머물러 계십니다. 안식을 취하고 있을 뿐이지요.”

       

       “….”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내가 모르는 엘프들만의 감각인가?

       

       비어 있어서 아무것도 못 느낀 줄 알았는데?

       

       많은 의문들이 머릿속에 자리했다.

       

       또다시 찝찝함이 밀려왔다.

       

       이건 단순히 기분이 이상한 게 아니다.

       

       무당으로서의 직감이다.

       

       “설마…”

       

       대표적인 신가물로 무당을 뽑을 수가 있다.

       

       내림굿을 통해 신을 받을 때를 보면 잡귀가 그 자리에 들어 앉는 경우가 있다.

       

       이때 몸주신도 아니면서 몸에 눌러앉은 잡귀들을 허주라고 부른다.

       

       상당히 까다로운 것이라 허주굿이라는 걸 통해 스승들이 대신 잡귀를 쫓아내주고는 한다.

       

       어쩌면···.

       

       “신성한 기운이 흐르는 나무에 잡귀가 앉는다고?”

       

       순간 머릿속으로 그동안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네크로맨서들의 저주.

       

       예지몽.

       

       아이린에게서 보았던 시커먼 것.

       

       모든 것들이 딱딱 맞아떨어졌다.

       

       그때 보았던 시커먼 것은 보통 흉악한 놈이 아니었다.

       

       “이상하다 했더니…”

       

       세계수에 시커먼놈이 숨어 있을 거라 예상하고 왔지만 그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무에 허주로 자리 잡고 숨은 것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집 속에 몸을 숨긴 범죄자를 찾기란 쉽지가 않으니까. 

       

       “이거 보통일이 아니겠는데…”

       

       딱 봐도 신성한 나무이며, 무려 엘프의 신이 머무는 나무다.

       

       여기에 자리를 잡으려면 보통 악귀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하물며 내 눈에도 보이지가 않으니···.

       

       슬쩍 눈을 돌려 로메넬을 쳐다보았다.

       

       “….”

       

       “….왜 그러시나요?”

       

       “세계수에 가장 가깝다고 하셨죠?”

       

       로메넬의 그릇은 그 본체가 이 나무다.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무에 허주가 씌였다면 로메넬도 위험했다.

       

       “잠깐 움직이지 말고 있으세요.”

       

       내 모든 행동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저 나무 안에서 음흉하게 말이다.

       

       “잡귀새끼가 어딜…”

       

       영기를 퍼뜨리며 방울을 손에 쥐었다.

       

       눈을 내리 감았다.

       

       언제 현혹될지 모르는 이 눈은 지금 필요가 없다.

       

       딸랑 –

       

       방울이 흔들리며 익숙한 파장을 만들어 냈다.

       

       머리에 모인 영기들이 방울을 따라서 진동했다.

       

       딸랑 –

       

       “….”

       

       무언가 이상하다.

       

       정신이 너무나 맑았다.

       

       “어째서…”

       

       강신이 된 느낌이 아니었다.

       

       다시금 방울을 흔들며 신령님을 찾아봤지만 내 몸에 깃드는 건 없었다.

       

       대신에 흐릿한 장면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봐 왔던 것보다 훨씬 흐릿했다.

       

       시커먼 것이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단지 그 장면 뿐이었지만 너무나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지금 강신하게 되면 신격을 느낀 저것이 더 깊게 숨어들 것이라는 걸.

       

       “…곤란하게 됐네.”

       

       강신을 하는 즉시 저놈을 끌어낼 수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나에겐 아직 그럴 능력이 부족했다.

       

       아직 애동제자의 티를 벗지도 못한 내가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는 건, 신령님의 도움 없이 저놈의 실체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

       

       “….”

       

       실체만 확인하면 다시 강신을 하여 굿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대상도 없이 굿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몸에 힘을 빼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후우….”

       

       다시금 영안에 집중했다.

       

       확실히 이 나무에는 신성한 기운이 흐른다.

       

       그것은 로메넬 또한 마찬가지다.

       

       이걸로는 부족했다. 

       

       조금 더 깊이.

       

       더 깊은 곳을 봐야 한다.

       

       로메넬의 그릇이 느껴졌다.

       

       나무에 비하면 아주 작은 조각이다.

       

       연결된 기운을 따라 세계수의 안을 살폈다.

       

       역시나 그곳에서도 아무런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내 주위의 모든 곳을 이 잡듯 뒤졌지만 아무런 흔적을 찾지 못했다.

       

       이마가 뻐근해져 왔지만 다시 한번 주변을 살폈다.

       

       “….”

       

       또다시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한계였다.

       

       영기가 모조리 소진 되었고, 영안의 감각을 유지하기도 벅찼다.

       

       육체의 눈을 빌어 앞을 본다면 수월 하겠지만, 당산나무에 앉을 정도의 악귀라면 오히려 현혹되기 쉽다.

       

       “내일 다시 오죠.”

       

       눈을 뜨자마자 파라몬 영감의 걱정이 가득 담긴 얼굴이 보였다.

       

       “…자네 괜찮은가?”

       

       “한 것도 없는데요 뭘…”

       

       “저번 처럼 굿이라는 걸로 한 번에 잡을 수는 없는겐가?”

       

       “대상이 불확실해요. 지금 굿을 해봤자 목적지를 잃고 떠돌기만 할 거예요.”

       

       어째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

       

       오늘로 사흘째가 되는 날이다.

       

       실마리라면 잡았다.

       

       계속된 주시 끝에 겨우 잡아낸 흔적이었다.

       

       그리고 예지몽을 몇 번이나 돌아보며 그 뜻을 살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무슨 일이 벌어져도 절대 저를 건드리시면 안 됩니다.”

       

       나름의 계획을 세웠다.

       

       조금 위험할 것 같지만 이것이라면 저 놈의 정체는 물론 뽕까지 뽑아낼 수 있을 것이다.

       

       “…무슨 일이라도 말인가?”

       

       “예. 한스라면 몰라도 영감님들은 악귀에 씌일 수도 있어요. 그러면 재앙이예요. 재앙.”

       

       파라몬 영감은 뭔가 불만인 듯했지만 순순히 물러났다.

       

       “로메넬님. 시작하시죠.”

       

       로메넬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바닥에 앉았다.

       

       다행이라면 로메넬의 태도가 상당히 협조적이라는 것이다.

       

       하이 엘프라서 권위적일거라 생각했지만, 그런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로메넬이 말 하기로는 세계수가 나를 불렀으니 나에게 모든 답이 있을 것이라 한다.

       

       그 덕분인지 모든 엘프들이 나에게 호의적이었다.

       

       과할 정도로.

       

       “후우…”

       

       다시 마음을 가라앉혔다.

       

       “….”

       

       차가운 방울의 감촉이 손에 느껴지며 주변이 훤히 느껴지기 시작했다.

       

       로메인의 영혼에 있는 조그만 흔적이 세계수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을 따라 올라가며 세계수 전체를 살폈다.

       

       파릇파릇한 잎사귀 사이로 생기를 잃은 잎사귀들이 보였다.

       

       이것들은 나무에서 떨어져 나와야 정상이지만 끈덕지게도 달라붙어 있었다.

       

       내가 발견한 실마리가 바로 이것이다.

       

       세계수의 안은 허주가 자리를 잡았다.

       

       저 잎사귀가 떨어지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다.

       

       세계수로 보이기 위한 위장이었다.

       

       그곳으로 온 신경을 집중했다.

       

       “…..”

       

       로메넬과 같은 흔적이었다.

       

       생기를 잃은 잎사귀들이 유난히 많이 달린 그곳.

       

       가장 큰 가지중에 하나.

       

       이곳이다.

       

       가지 안에서 생기를 몸에 두르고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것도 나를 느낀 것일까.

       

       거대한 탐욕이 느껴졌다.

       

       같은 신가물인 내 몸을 탐내는 것이겠지.

       

       그리고 시커먼 것의 형체를 확인하는 순간.

       

       나는 벌떡 몸을 일으키며 눈을 떴다.

       

       “이런…!!!”

       

       지금까지 보아왔던 세계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놈이 자리를 잡은 가지 밑으로 무언가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축 늘어진 몸.

       

       초점을 잃은 눈동자.

       

       목이 매달린 엘프들이었다.

       

       순간, 그들의 팔이 움직이며 나를 향해 들려졌다.

       

       곧게 펴진 손가락이 일제히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 새끼가…”

       

       전형적인 악귀의 수법이다.

       

       마음을 자극해 가장 공포스러운 장면을 보여주는 짓.

       

       산자를 희롱하는 악귀의 장난질이었다.

       

       “하아….”

       

       머리가 어지럽고 손끝이 떨려왔다.

       

       하지만 아직이다.

       

       놈의 실체를 제대로 확인해야 한다.

       

       “….”

       

       몸에 퍼져 있던 모든 영기들을 가라앉혔다.

       

       나를 노리는 놈의 손길이 닿기 쉽도록.

       

       가지에 매달린 엘프의 입에서 피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온갖 형상들이 눈앞을 지나 다녔다.

       

       허상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너무나도 현실적인 모습이었다.

       

       점점 놈의 기운이 나에게 다가오며 정신이 흐릿해졌다.

       

       내 귓가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리스….!”

       

       “괜찮은가?”

       

       “크리스님!”

       

       영감들의 목소리 같기도하고 한스의 목소리 같기도 했다.

       

       흐려진 의식 때문에 이게 환상인지 진짜인지 구분이 잘되지 않았다.

       

       지금 저들이 나를 방해 해서는 안 된다.

       

       움직이지 않는 입을 열어서 간신히 목소리를 토해냈다.

       

       “절대…건들지 마…”

       

       이제 조금만 더 하면 저것이 내 몸을 탐하며 스며 들 것이다.

       

       시커먼 것들이 살펴보듯 나를 감싸고 있는게 느껴졌으니까.

       

       “하아…하아….”

       

       몸이 떨려왔지만 그대로 내버려 뒀다.

       

       약하디약한 모습에 방심 할 수 있도록.

       

       방울을 잡은 손에만 힘을 유지했다.

       

       그리고 검은 기운이 나를 감싸는 순간.

       

       내 몸이 떠오르며 큰 가지로 끌려갔다.

       

       무언가 내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커헉…!”

       

       방금 봤던 엘프들처럼 몸이 늘어졌다.

       

       검은 것이 내 몸 안을 휘젓자 피가 울컥 토해졌다.

       

       “우욱….!!”

       

       내가 꿈에서 본 장면이었다.

       

       몇 번이나 되 짚으며 생각했던.

       

       나는 나에게 들어온 시커먼것과 드디어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 새끼들… 도대체 뭘 만들어 놓은 거야?”

       

       이건 귀신 같은 영혼과 달랐다.

       

       살욕, 광기, 원망 이런 것들이 모두 합쳐져 있었다.

       

       사념들이 모여 귀신 같은 형체를 만들어 냈다고 해야 할까?

       

       잡귀도 악귀도 아닌 무언가였다.

       

       “대가리는 달려 있냐?”

       

       나는 방울을 휘둘러 내 목을 감고 있는 기운을 후려쳤다.

       

       영기를 가득 담아서.

       

       꽈앙 –

       

       방울을 흔들며 영기를 퍼뜨렸다.

       

       딸랑 –

       

       딸랑 –

       

       강신을 느낀 이놈이 다시 몸을 숨기며 사라졌다.

       

       하지만 이제는 소용없다.

       

       불러내면 되니까.

       

       재차 방울을 흔들려는 순간 시야가 흐트러지며 바닥이 보였다.

       

       “…..”

       

       너무 무리를 한 것일까.

       

       나를 향해 달려오는 사람들을 보며 눈 앞이 컴컴해졌다.

       

       “마수 하나만…. 살아있는 걸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e check love fortune, career fortune, financial fortune, compatibility, physiognomy, and points of interes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