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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

       “교장님! 교장님! 난리가 났습니다!”

       

       아카데미 행정실장이 다급하게 교장실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왔다.

       

       “전투수석교수가… 응?”

       

       서류가 산처럼 쌓인 교장실 책상에 아무도 없다.

       

       이상하다. 늘 머리를 싸매고 한숨을 푹푹 쉬고 있어야 할 교장님이 어디로 사라진 거지? 지금 급하게 보고할 건이 있는데!

       

       “혹시 교장님 본 사람 없어?”

       

       그러나 행정실 직원들도 모두 모르는 눈치. 아니면 강의 현장지도라도 나가셨나? 지금 점심시간인데.

       

       본청을 나선 행정실장은 바로 뒤의 강의동으로 달려갔다.

       

       “혹시 교장님이 여기 오셨습니까?”

       

       지나가는 교수 한 명을 붙잡고 물었지만 그런 적 없단다. 이상하다?!

       

       교수의 말마따나 강의동 전체를 다 확인했지만 교장님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설마 전투학과의 야외실습장에?

       

       “행정실장님? 거기서 뭐하고 계세요?”

       

       대체 이 넓은 아카데미의 어느 실습장부터 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전투학과 리나 교수가 지나가다 묻는다.

       

       손에는 카페의 디저트가 담긴 봉지를 든 채였다.

       

       “교장님께 급히 보고드릴 건이 있는데 안 보이셔서 찾는 중입니다.”

       “아, 교장님이요? 카페에 가보세요. 거기 계세요.”

       “카페에 계신다고요? 감사합니다!”

       

       리나 교수를 지나친 행정실장은 빠른 걸음으로 상점가에 있는 디저트 카페로 향했다.

       

       마침 점심 시간이라 카페 앞은 학생들로 북적북적.

       

       행정실장은 그 틈바구니에서 키르린 교장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 키르린 교장은 딸기 생크림 케이크 한 판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와구와구 먹고 있는 중.

       

       

       

       

       

       

       

       “교장님! 뭐하세요!?”

       

       행정실장이 소리치자 키르린 교장이 두 귀를 토끼처럼 바짝 세우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뭐가?”

       “지금 한가하게 케이크가 드실 때가 아닙니다!”

       “그럼 점심시간에 뭘 해야 하는데…?”

       “디안 수석교수가 말들을 구해왔어요!”

       “정말이야?!”

       

       키르린 교장이 포크를 내려 놓고 벌떡 일어나 행정실장을 따라 달렸다.

       

       그들이 향한 곳은 아카데미 전투승마실습장 옆에 위치한 마굿간.

       

       마굿간 앞 넓은 방목장의 커다란 차원문에서 말들이 줄줄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조심조심…! 놀라지 않게 차례로 이쪽으로…!”

       

       전투승마 애나 교수의 감독하에 전투학과 조교들이 고삐를 끌며 차례로 마굿간에 말을 집어 넣었다.

       

       “교장님. 어서 오세요.”

       

       팔짱을 끼고 그 모든 것을 보고 있던 디안 교수가 키르린을 발견하고는 인사를 건넸다.

       

       “이게 다 뭐야…?”

       “혹시 말을 처음 보세요?”

       

       디안의 농담에도 키르린은 웃을 상황이 아니었다. 눈앞에 보고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디안이 전투마의 소요를 제기했을 때 키르린은 군단 퇴역 전투마를 언급했다.

       

       충분히 훈련을 받은 퇴역 전투마를 싼값에 데려온다면 학생들 배우기도 좋고 예산도 아낄 수 있고 길들일 소요도 줄일 수 있고.

       

       그러나 디안은 그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 반박했다.

       

       모든 게 다 갖춰진 군단 기병대라면 모를까 현장의 요원들은 별의별 상황을 마주해야만 한다.

       

       말을 잘 타는 것도 중요하지만 탈 말을 구하는 것 역시 중요. 그래서 말 탈취부터 도축까지 말에 대한 모든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이유로 디안은 몇 마리의 퇴역 전투마만 구매하고 나머지 소요는 모두 길들이지 않은 야생마로 채우기로 했다.

       

       승마에 익숙치 않은 학생들은 데리고 있는 조랑말과 퇴역 전투마로 기본부터 다지고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한 학생들은 야생마를 타는 법을 배우는 식으로 차등을 두자는 것.

       

       만약 야생마를 제대로 탈 수만 있다면 어디서든 아무 말이나 확보할 수 있으리라는 게 디안의 주장.

       

       그러면서 자기가 며칠 안으로 품질 좋은 야생마들을 데리고 올 테니 그리 알고 있으라고 호언장담을 했던 것이다.

       

       도대체 서른 마리 남짓한 야생마를 어떻게 데려올 것이며 또 그것들을 길들이는 건 어떻게 할 것인지 여러 가지 의문이 많았는데….

       

       “이거 어디서 어떻게 데려온 거야…?”

       “브룬 고원의 야생마들입니다. 나이틀리더러 우두머리 말을 제압하게 했어요.”

       “나이틀리가…? 아직 졸업도 안 한 아카데미 학생이 야생마를 길들였다고…?”

       

       도무지 믿을 수 없었지만 당장 눈앞에서 말들이 줄줄이 들어오고 있는데 또 믿지 않을 수도 없고.

       

       “저 말이 진짜야, 오렌디?”

       “그럼 거짓말이겠습니까, 교장님?”

       

       오렌디가 흥분해서 외쳤다.

       

       “순간도약으로 말의 등에 떨어진 나이틀리가 밧줄 하나에 의지해서 이렇게저렇게 해서 우두머리의 체력을 방전시켰습니다!”

       “그걸 혼자서 했단 말이야…?”

       “디안 교수가 옆에서 같이 달리며 격려하고 떨어지려는 것을 몇 번 잡아주기는 했지만요.”

       “그래도 대단하네, 나이틀리 학생.”

       

       그러며 키르린은 땅이 꺼지다 못해 지하로 파고 들어갈 정도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 인간이 야생마에 다짜고짜 공작의 딸을 태웠단 말이야…? 그러다 떨어지면 최소 중상인데!

       

       목검으로 때렸다고 아카데미에 들이닥쳤는데 자칫 죽을 수도 있는 일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하지만 키르린은 예전 종합전투훈련장에서처럼 디안에게 강하게 따질 수가 없었다.

       

       왜냐면 이미 디안은 지금껏 세운 업적만으로도 아카데미 내에서 그 위치가 너무도 확고했기 때문.

       

       이쯤에서 황성의 추천서를 등에 업고 ‘출몰’한 디안이 지금까지 세운 사소한 업적을 알아보자.

       

       1. 키르린이 몸 사리느라 한대한 전투학과를 뒤집어 엎어 실전 위주로 개편함

       

       2. 아카데미에 적대적이던 대귀족 톨루즈 공작을 얼굴 보자마자 아군으로 태세전환 시킴

       

       3. 절대 다시 받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교단 사제를 반나절만에 무려 신탁사제로 데려옴

       

       4. 황성 눈밖에 날까 외면했던 상점가 조성을 무려 황성의 적극지지를 받으며 실현시킴

       

       5. 고분고분해진 야생마 서른 마리를 동화(銅貨) 한 닢 안 쓰고 어디서 갑자기 구해옴

       

       어지간한 아카데미가 총력으로 추진할 사업들을 디안은 모두 혼자서 해치웠다.

       

       그러니 ‘한낱’ 교장 따위인 키르린이 디안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상황이 아닌 것.

       

       그리고 그것보다 더 큰 것은 디안에 대한 키르린의 감정.

       

       이미 키르린은 톨루즈 공작이 호탕하게 웃으며 아카데미를 떠난 시점부터 디안에게 상당 부분 의지를 하고 있었다.

       

       이 인간이라면 나를 살려줄 수 있어. 내가 해임당해 일족의 숲으로 돌아가는 끔찍한 미래에서 구해줄 수 있어.

       

       그 감정이 이후 일련의 사건들로 점점 커졌고 급기야 키르린은 아예 디안에게 교장 자리를 내어주고 자신은 일개 과목교수로 내려갈 생각을 구체화하는 중.

       

       그렇게 된다면 황성에서는 눈엣가시 키르린 대신 능력 있는 디안이 교장이 되니 좋고 키르린은 일족의 숲으로 돌아가지 않으면서도 명색이 아카데미 교수라도 하고 있으니 아버지가 실망하지 않아 좋고 디안은 높은 자리에 올라가니 좋고.

       

       물론 아버지가 교장에서 교수로 직급이 내려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황성에서 이러이러한 유능한 인재가 있어 대대적으로 보직교체를 해서 어쩔 수 없었다라고 하면 괜찮지 않을까?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안전장치‘로 염두에 둔 것이 있기는 하다.

       

       그것은 바로 결….

       

       “교장님? 뭐 드시다 오셨어요?”

       “뭐?”

       “입가에 뭘 그렇게 묻히고 다니세요?

       

       그때 디안이 갑자기 손을 뻗어 키르린의 입가를 건드렸다.

       

       “뭐야, 생크림인가?”

       

       디안의 손에 묻은 것은 아까 와구와구 먹어대던 디저트 카페 케이크의 생크림.

       

       “얼굴이 검정이라 흰색이 유난히 잘 보이네요.”

       

       디안은 낄낄 웃으며 손에 묻은 생크림을 혀로 핥아 먹었다.

       

       “으음, 맛있어. 이거 상점가 디저트 카페 거죠? 역시 여기 케이크가 맛있… 교장님!”

       

       극심한 현기증에 휘청이며 쓰러지려는 키르린을 디안이 황급히 붙잡았다.

       

       “왜 그러세요?”

       “너 때문에…. 앗?!”

       

       정신이 없는 와중에 순간 자신이 말실수를 한 것을 깨달은 키르린은 다급하게 입을 다물다 혀를 깨물 뻔했다.

       

       “흐음, 교장님.”

       

       키르린을 안은 디안이 의심스러운 눈을 가늘게 뜨고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뭐, 뭐가…?!”

       

       키르린은 행여나 디안이 그것의 꼬투리를 잡고 늘어질까 심장이 쿵쾅대고 귀가 파닥이기 시작했다.

       

       디안의 날숨이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 여기서 속내를 들켰다간 감당할 수 없게 되어 버려! 거기다 주변에는 다른 교수와 조교들도 있는데!

       

       “케이크 얼마나 드셨어요?”

       “으응?”

       

       그러나 디안의 입에서 나온 것은 그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무슨 소리야…?”

       “케이크, 혼자 얼마나 드신 거냐고요. 설마 한 판 싹 드신 건 아니죠?”

       “그, 그건 아니고 절반 정도를….”

       “그러니까 이러는 거예요.”

       

       디안이 웃으며 키르린의 콧등을 손가락으로 살짝 밀었다.

       

       “그 달디단 것을 혼자 반 판이나 해치웠으니 급격하게 혈당이 올라가서 참을 수 없는 졸음이 쏟아진 거라고요.”

       “혈당이 뭔데…?”

       “핏속에 섞인 설탕 같은 거요. 단 것을 많이 먹으면 그 비중이 일시적으로 치솟아요.”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참고할게….”

       “그럼 이제 스스로 일어서세요.”

       

       그제서야 키르린은 아직도 자신이 비스듬하게 디안의 팔에 안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석교수니이이임!”

       

       그때 저기서 리나 교수가 디저트가 가득 담긴 봉지를 들고 이쪽으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간식을 사왔어요! 드시고 하세요!”

       

       침투교수답게 엄청난 속도로 쇄도한 리나 교수가 디안의 팔에 팔짱을 와락 끼면서 키르린은 호에엥 반대쪽으로 튕겨져 나갔다.

       

       “이것 좀 보세요. 조각케이크랑 휘낭시에랑 마들렌이랑 또 커피도 있고…. ”

       “어? 간식이다!”

       리나 교수가 디안에게 봉지를 열어 보이며 재잘대자 오렌디 교수가 화색이 만연해서 달려왔다.

       

       “애나 교수님! 빨리 오세요! 리나 교수님께서 간식을 사오셨어요!”

       “이야, 이거 맛있겠다. 다들 쉬었다 하자고!”

       

       디저트의 난입으로 교수들이 북적북적한 현장에서 소외된 키르린은 멀뚱멀뚱 서서 즐거워 하는 디안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역시 디안이 교장에 어울려. 나는 최대한 빨리 내려오는 게 맞아.

       

       그런데… 내가 교수로 내려가겠다고 하면 2황녀님께서 그 제안을 곧이곧대로 수용하실까?

       

       그 동안의 앙금 때문에 옳다됐다 하고 바로 나를 내치시는 건 아닐지…?

       

       아무래도 ‘두 번째 안전장치‘가 필요하겠어.

       

       지금까지는 해임당하는 게 무서워 어지간하면 일을 벌이지 않고 몸을 사려 왔지만 지금은 디안이 뒤에서 받쳐주고 있다.

       

       아직 교장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업적을 쌓도록 하자.

       

       그러면 나중에 교수로 내려가고자 할 때 2황녀님께서도 냉혹하게 나를 내치시지는 못하실 거야.

       

       최소한 교수로 두고 써먹을 정도는 되겠다고 여기시게끔 내 가치를 올리는 거지.

       

       디안은 나를 지켜주겠다고 했고 지금까지 그 약속을 지켜왔으니 아마 앞으로 내가 이것저것 하더라도 든든한 아군이 되줄 거다.

       

       지금이 적기다. 놓쳐서는 안 돼.

       

       좋아, 키르린!!

       

       디안을 믿고 과감하게 해보는 거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내일 00:05 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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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Quietly 은퇴한 조력캐는 조용히 살고 싶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causing chaos with my knowledge of the original work, I assisted the protagonist.

I successfully completed the story and now planned to retire and live peacefully.

However, it seems the protagonist still needs my help.

An academy professor? That’s nothing much.

But why is the state of the academy so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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