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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0

       아카샤를 감방에서 꺼내기 위해 고군분투한 결과.

       

       구속됐다.

       

       “테르야, 구하러 와 줬구나.”

       “아니, 나도 잡혔어.”

       

       정령들에게 ‘에테르=아카샤’ 논리를 설파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나라에서 이걸 인정해 줘야 아카샤가 풀릴 텐데.

       

       참 유감스럽게도, 정령의 진술은 법적 효력이 없다면서 무시해 버렸다.

       

       그러는 사이에 나에게까지 구속영장이 발부됐고.

       

       – 당신을 세계수 방화 혐의로 체포합니다.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고, 질문 시 변호인에게 대신 발언하게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본격적인 재판이 시행되기 전까지 아카샤와 같은 방에서 놀고먹는 신세가 되었다.

       

       “빡대가리들, 진짜.”

       

       마왕군이 코앞까지 왔는데 잘하는 짓이다.

       

       “테르, 나 이제 못 참겠어.”

       “가만히 있어.”

       “이건 금안에 대한 차별이야. 너랑 나랑 눈동자가 이러니까 괜히 트집 잡아서 가둬 놓은 거라고.”

       

       아카샤 말도 어느 정도는 맞다.

       

       엘프는 평균적으로 인간보다 오래 산다. 한 200살, 300살 먹은 노인들도 버젓이 살아있겠지.

       

       그런 사람들은 선민의식이 굉장히 커서 금안족을 별다른 이유 없이 싫어하기도 한다.

       

       게다가 대대손손 꼰대 마인드가 장착되어 있는 하이엘프까지.

       

       진짜 통탄할 노릇이다.

       

       – 이건 말도 안 돼요!

       

       철창 너머로 새된 목소리가 들려온다.

       

       자세히 들어보니 한두 명이 아니었다. 몇 명이 구치소 사람을 상대로 항의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제 친구는 아무런 죄가 없어요.”

       “맞아요. 선생님을 풀어 줘요!”

       

       익히 알고 있는 목소리.

       

       침대에 마주 보고 누워 있었던 우리는 허겁지겁 일어나 철창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그곳에는 로테와 유피엘을 필두로 나를 석방해 달라고 아우성치는 학생 무리가 있었다.

       

       “피어바인의 이름을 걸고 부탁할게요. 두 사람을 석방해 주세요.”

       “죄송하지만 저에겐 그럴 권리가….”

       “그러면 높은 사람을 불러오세요.”

       “…….”

       

       아무리 그래도 말단 공무원을 상대로 저러고 있냐.

       

       “옳지, 더 조져버려.”

       

       쩔쩔매는 공무원을 본 아카샤가 통쾌하게 웃었다.

       

       “조용히 해, 카샤.”

       “하지만 테르, 너도 알잖아. 우리가 밖에 나가지 않으면 이놈들은 전멸이야. 우리도 배신했다는 걸 마왕이 알면 끝장이고.”

       

       나라고 그 생각을 못 한 건 아니다.

       

       지금 마왕군으로 돌아간다? 죽는다.

       

       그렇다고 여기 가만히 있는다? 죽는다.

       

       죽지 않고 살아남는 방법은 오직 두 가지.

       

       내가 다시 타락하여 이 세계를 통째로 구워버리거나, 인간과 엘프의 편에 서서 마왕을 저지하거나.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나가서 연구단을 꾸리고 싶었으나,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작전을 조금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해서 철창을 부수고 탈출하는 대신, 보다 유한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경비─!!”

       

       크게 외치자, 로테 일행에게 시달리고 있던 공무원이 헐레벌떡 다가왔다.

       

       “…부르셨습니까?”

       

       그래도 절멸급 마수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걸 아시네. 존대를 다 해 주시고.

       

       “저기 보이는 친구들에게 전해 주세요. 우리가 여기를 나갈 때를 대비해서, 행정부에 미리 건의 하나 해 달라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인상을 팍 구겨버리는 경비.

       

       이런 표정을 지을 것이라 예상했다. 나는 씩 웃으며 철창을 붙잡고 있던 손에 천천히 힘을 주었다.

       

       드드드득.

       

       강철로 만들어진 철창 두 개가 엿가락처럼 휘며 벌어진다. 동시에 경비의 눈동자도 500원짜리 동전처럼 큼지막해졌다.

       

       “부탁드립니다.”

       

       나는 다시 한번 정중하게 부탁했다. 아리따운 미소녀 스마일은 덤이다.

       

       “하, 하겠습니다.”

       “좋아요.”

       

       나 협상 개잘해.

       

       “별다른 건 없어요. 저기 저 친구들에게 행정부로 가서 이런 이야기를 해 달라고 말해주세요. 제가 나가면 대규모 연구단을 꾸릴 건데, 100억 엘랑 정도의 예산을 주문한다고.”

       “……?”

       

       멍청한 표정을 짓는 공무원.

       

       무슨 말인지 이해 못하는 건 당연하다. 절멸급 마수가 대뜸 자신에게 ‘너네 세금 샘물처럼 펑펑 쓸 거야’라고 선언한 꼴이었으니까.

       

       아마 이놈 머릿속에선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고 있겠지.

       

       “저, 그건.”

       “싫으면 말고.”

       

       드드드드드드드득.

       

       “…금방 전달하겠습니다!”

       

       다시 로테가 있는 쪽으로 튀어가는 공무원.

       

       다급한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실실 웃었다.

       

       이제 어떤 답변이 돌아오나 보자.

       

       그렇게 구속되어 있는 동안, 새로운 소통 창구를 만든 나는 여러 가지 최신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그중에는 내 여론이 날이 가면 갈수록 나빠진다는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Q. 상천 에테르의 구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 검찰이 올바른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 : 31%]

       [2. 성급한 결정이었지만 반대하진 않는다 : 26%]

       [3. 당연히 했어야 할 조치였다 : 40%]

       

       개새끼들.

       

       다 본 신문 기사는 고이 접어서 학으로 만들었다. 어디까지나 심신의 안정을 위해서였다.

       

       이렇게 종이학을 접으니까 내 모교가 떠오르는구나. 누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갤 들어, 흐르지 못하게 또 활짝 웃어….

       

       아, 오늘 점심 뭐지.

       

       그렇게 아무 생각 대잔치를 벌이던 중, 예의 공무원이 다가와 소식을 전했다.

       

       “오, 빨리 왔네요. 제 제자들이 뭐라고 해요?”

       “그, 행정부에게 의견을 전달했지만…….”

       “전달했지만 뭐요.”

       

       경비는 내 눈치를 슬금슬금 보더니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아랫선에서 묵살당했다고 합니다.”

       “피어바인 가문에서 알아주는 아이가 협상장에 갔는데도 그런 박대를 받았다고요?”

       “모르십니까? 현재 경제부는 로스차일드가 꽉 쥐고 있습니다. 피어바인과 로스차일드는 사이가 좆같이 안… 앗, 실례.”

       “알아요. 둘이 사이 더러운 것쯤은.”

       

       로스쿨에 가야 한다는 이유로 유피엘과 싸우던 로스차일드 여자애가 하나 있었지. 이름이 리케였나?

       

       아카데미에서도 그렇게 싸워댔으니 실제 정치판에선 어떨지 감 잡힌다.

       

       그나저나 예산을 관리하는 곳이 나와 적이라니. 일이 쉽게 풀릴 가능성은 아직 낮겠군.

       

       “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아카샤가 살짝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뭘 어떻게 해. 당분간은 기다려야지.”

       

       나는 능글맞게 웃으며 종이학이나 마저 접었다.

       

       

       **

       

       

       경제부.

       

       지금 이곳은 어느 때보다도 바쁘게 돌아가는 중이었다.

       

       “빨리 움직여!”

       “재가해야 할 서류가 산더미입니다, 각하.”

       “복사기 고장 낸 놈 누구야?”

       

       안 그래도 예산 배분에 쪼들리던 경제부는 지금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최근 세 차례에 이은 마수의 습격으로 인해 세계수에 큰 지출이 생겼기 때문이다.

       

       총선거를 위해서라도 선거 예산을 갈무리해야 했고, 흔들리는 경제를 다잡기 위해서 대대적인 결단도 필요한 시기였다.

       

       게다가….

       

       “로스차일드 장관님, 필리우트 제국에서 추가 생필품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카우렐리아의 방패막인 제국이 멸망하지 않도록 원조까지 해야만 했으니.

       

       “돌아가시겠군.”

       

       카우렐리아의 경제부장관, ‘마샬 로스차일드’는 이마를 짚으며 시가를 물었다.

       

       열아홉에 행정고시를 넘어선 천재였지만, 그런 그조차도 이번 일은 처리하기가 매우 까다롭다고 느꼈다.

       

       마샬은 부하가 내민 서류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결단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려졌다.

       

       “…제국에서 요구한 물품의 세 배를 보내주게. 딱 하나, 밀은 쌀로 대체하고.”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저희 예산도 빠듯한데….”

       “아니. 반드시 보내야만 하네.”

       

       마샬은 목에 힘을 주며 말을 이었다.

       

       “제국은 우리나라의 방패야. 제국이 멸망하면 마왕군은 곧바로 우리를 침공할 걸세.”

       

       그러면서 그는 등 뒤에 걸린 대륙 지도를 짚었다.

       

       카우렐리아를 중심으로 넓게 퍼진 지도.

       

       아래쪽으로는 바다가 있고, 서쪽과 북쪽으로는 제국을 비롯한 자잘한 나라들이 위치한다.

       

       그리고 제국 너머로 보이는 최북단이, 마왕군의 영토.

       

       “남쪽 해상은 상대적으로 막기가 쉽지. 내 비록 병법은 잘 모르나, 상륙 작전에는 공격보다 수비가 쉽다고 들었네.”

       “저도 그리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쪽은 달라. 제국이 망하면 마왕군은 대륙 중부로 진출하겠지. 그리고 곧바로 티림스 강과 브륄리움 강을 도하하면….”

       “두 강은 수심도 깊고 폭도 넓잖아요. 틀림없이 방어할 수 있을 텐데….”

       

       부하의 말에 마샬은 쯧, 하며 혀를 찼다.

       

       “강이랑 바다랑 같나?”

       

       강 근처에서 벌어지는 전투라고는 해도, 엄연히 보면 육상전이다. 해전이 강제되는 바다와는 달리, 도하가 끝나거나 강을 우회해서 오면 답이 없어진다.

       

       “다시 말하지만 제국은 우리 방패다. 어떠한 어려움을 겪더라도, 우린 제국과 함께해야만 해.”

       

       적어도 마왕군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말이야, 라고 마샬은 덧붙였다.

       

       “알겠습니다. 각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음.”

       

       결국 도장을 찍은 마샬.

       

       이젠 정말로 예산이 부족하다.

       

       의회나 정부에서 긴급 증세를 하겠다는 말이라도 나오지 않는 한, 이대로라면 국고는 바닥을 드러내고 말 것이다.

       

       물론 얼마 안 있으면 총선…. 게다가 1년 정도만 더 지나면 대선이다. 이 상황에서 현 정부는 국민 정서에 반하는 짓을 할 수 없었다.

       

       “정말이지, 머리 아프군.”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몇 시간 전, 피어바인의 명의로 왔다는 파릇파릇한 학생들이 자신을 만날 것을 요구했다.

       

       여러 일로 바빴던 마샬은 당연히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에 아랫사람을 시켜서 만나게 했는데, 학생들의 제안을 듣고는 곧바로 거절했다고 한다.

       

       – 무슨 요구였던가?

       – 마왕군에 대항할 폭탄 제조를 위해 100억 엘랑 정도를 따로 빼 두랍니다. 어이가 없죠?

       

       “하하하하.”

       

       다시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누가 그런 걸 요구했냐고 물었더니, 현재 구치소에 구속되어 있는 절멸급 마수가 그랬단다.

       

       “정신 나간 것들이, 이런 식으로도 우리를 소모하려 하는구나.”

       

       마샬은 이것이 마왕군이 내린 고도의 노림수라고 생각했다.

       

       “내 생각이 맞았어. 그것들 거짓 투항이었다니까.”

       “하지만 정령왕들이 인정해 주었다고 하잖아요.”

       “하하하하!”

       

       부하 공직자의 말에 더 크게 웃는 마샬.

       

       “이보게, 카우렐리아는 종교 국가가 아니야. 제정일치 같은 옛날이야기는 그만하게.”

       

       정치가 종교를 원할지언정, 종교는 정치를 이용할 수 없다. 마샬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들 사이에서 뿌리 깊이 박힌 인식이었다.

       

       정령신앙은 단지 믿는 국민이 많으니까 이용하는 것.

       

       마샬도 표면적으로는 정령교에 속하지만, 사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쪽 예산 집행은 신경 쓰지 말게. 마왕 처리는 국방부와 의논할 일이지, 그런 새파란 아이들하고 얘기할 게 아니야. 내 말 이해했나?”

       “이해했습니다.”

       “좋아, 볼일 보러 가게.”

       

       마샬은 부하의 어깨를 툭툭 털어주고는 집무실 밖으로 내보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또 다른 공무원이 헐레벌떡 안으로 들어왔다.

       

       “각하! 큰일 났습니다!”

       “뭔데 그러나?”

       

       공무원은 마라톤이라도 한 것처럼 숨을 씨근거리며 다급하게 외쳤다.

       

       “제국이, 필리우트 제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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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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