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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0

        

         

       “여, 열 두 명입니다.”

         

       마부가 돌연 무척이나 공손해졌다.

       청이 보기에 참으로 흡족한 일이었다.

         

       역시 버르장머리가 없으면 목이 날아가야 사람이 예의를 갖추는 법이라니깐.

         

       본래 예의와 예절이란 배운 사람에게서만 나타나는 특징이다.

       왜냐면 예의와 예절은 학습이라서.

       학습하지 못한 머저리 및 저능아들만이 그러면 지가 강해보이는 줄 알고 무례하게 구는 것이다. 그러나 실은 강해 보이는 게 아니라 그 애미와 애비가 없어 보이는 행동이다.

         

       그러나 중원에는 의무 교육이 없어서 못 배워먹은 놈이 워낙에 많았다.

       그렇기에 무림에서는 목 아래 칼을 들이댐으로서 간단하고 빠르게 교정하곤 했다.

       이렇게.

         

       “열 둘. 음. 좀 아쉬운데. 그게 다예요?”

         

       “네, 넷!”

         

       마부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열 둘이나 더 있다는 소리를 듣고도 아쉽다는 소리나 할 정도면 고수도 그냥 고수가 아닌 것이다.

       젠장, 미모가 보통이 아니라고 할 때 알아볼 걸, 하는 뒤늦은 후회나 하면서.

         

       하지만 일 저지를 때에 마부가 한 생각이 바로 이러했으니- 에라이, 어차피 벌레처럼 살다 갈 인생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죽기 전에 절세미녀 한 번은 배 아래에 깔고서 뭉개봐야 하지 않겠냐! 하고.

         

       “그런데 이런 게 하루이틀 일이 아닌가 봐요? 관상이 좋아서 다들 속아넘어갔나?”

         

       사실, 얘보다 악업이 더 높은 마부가 둘이나 더 있었더란다. 마부란 인신매매범, 그리고 강도와 강간범을 겸업으로 하는 놈들이니 오죽하랴.

       그러나 그놈들은 생기기부터가 험악하게 생겼다. 딱 봐도 범죄자처럼 생긴 놈한테 마부를 맡겼다가 봉변을 치르면 그건 자연사에 가깝지 않나, 하고.

         

       굳이 이 놈을 고른 것은 인상이 너무나 좋아서였다. 현대였다면 도를 아십니까를 넘어서 사이비 교주까지도 능히 해낼 것만 같은 인자하고 온화한 얼굴이었으니까.

       아예 생겨먹기가 무고한 피해자를 양산하기 딱 좋은 개새끼라서 이건 치워야겠다.

       악업을 보니 이미 수많은 피해자가 초상을 치렀겠지만, 더 치러지는 꼴은 막아야 할 테니까.

         

       “자. 흔들어 봐요.”

         

       “네, 네?”

         

       “마차가 좀 막 흔들흔들하고 그래야 다른 새끼들도 와 재미 좀 보나보다 하고 달려들 거 아냐. 마부 아저씨가 불러봐야 저 새끼 왜 혼자 재미 안 보고 부르지 하고 수상하다고 여길 게 뻔하지 뭐.”

         

       “그럼.”

         

       “안 흔들고 뭐 해요? 자. 마차 바닥이 어여쁜 소저라고 생각하고, 빨리 자세 안 잡아요?”

         

       청의 칼날이 검게 물들어갔다. 그리고 아예 새까맣게 물든 월광검(8호)의 검신에서 징그러운 눈동자들이 톡톡 떠오른다.

       초절정에 이르면서 파천마기도 아주 쬐끔이나마 더 녹아들어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어차피 누가 볼 때는 못 쓰는 진기라서, 안 볼 때 먼저 쓰면 알뜰살뜰하게 내공의 운용이 가능한 것이다.

         

       그 흉악한 모습에 마부가 엉거주춤 자세를 잡았다.

         

       “아니. 여인이랑 동침하는데 누가 그렇게 엉거주춤하게, 무슨 벌 서요? 엎드려 뻗쳐? 마차 바닥이 절세 미인이라니까?”

         

       그에 마부가 바닥에 납죽 업드린다.

       그리고는 위아래로 반동을 주는 것이다.

         

       “아씨.”

         

       청의 칼날이 팍. 마부의 귀를 위/아래로 분리하며 바닥에 틀어박혔다.

       그러나 당장 칼날이 머리 옆에 박히고 나면 아프다고 해서 비명이 나오지는 않는다.

         

       “허억.”

         

       “제대로 하라고요. 제대로. 절세 미인이랑 떡 치는데 그냥 냅다 꽂아서 흔들기만 할 거야? 입맞춤부터 해야지. 혀도 막 적극적으로 써 가면서. 무슨 말인지 몰라?”

         

       “네, 넷!”

         

       마부가 또다시 깨달음을 얻었다.

       그냥 고수에게 걸린 것이 아니라, 제대로 미친 고수에게 걸리고 만 것이다.

       그에 마부가 목숨을 건 열연을 펼치니 마차의 더러운 바닥을 물고 빨고 손으로 쓸며 아주 지랄이 났다.

         

       “히힛.”

         

       청이 그 꼴을 보며 깔깔거렸다.

         

       “애무에 너무 힘을 주는 것 같은데, 팍팍 안 박아요? 마차가 뒤집어지도록.”

         

       “네, 넵!”

         

       그리하여 끼익 또 끼익 마차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한 번 탄력을 받아 움직이고 나니 진폭도 점점 빨라지고 커진다.

       마부의 혼신의 열연으로 마차가 삐걱삐걱 뒤틀리는 소리를 내며 좆 같은 탑승객들을 욕했다.

         

       그러자 청의 귀로 차박차박 빗속을 뚫고 우르르 몰려오는 목소리들.

         

       -이 새끼 얼마나 재미를 처 보고 있길래 이야, 마차 쓰러지겠다, 아주.

         

       -형님도 어떤 년 타는지 얼굴 봤지 않습니까? 저는 벌써 한 발 뺐습니다.

         

       -미친놈이 아깝게 왜 벌써 빼? 무조건 안에, 흘러나온 것도 모아다 곱게 집어넣고 마개까지 딱 닫아 놔야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판인데.

         

       음. 사형.

       청이 빠르게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마침내 마차의 문이 발칵 열리며.

         

       “야, 재미를 보려면 같이 봐야. 음?”

         

       “그럼요. 기쁨은 나누면 두 배, 슬픔은 나누면 절반, 고통은 나누면 내가 재미있잖아요. 사람 기다리게 하곤. 자! 빵!”

         

       청이 마차 입구에 매달린 사내놈의 명치를 발바닥으로 콱 밀어 차며 소리쳤다.

       그에 와르르 엉켜 쏟아지는 사내들.

       청이 그 위로 사뿐히 한 발 내려앉아서 우드득, 히히. 일단 발목 하나 접수.

         

       일단 도망 못 치게 발을 노려야 한다.

       발목은 스물넷이나 되지만, 실제로는 그 절반만 조지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청이 짓밟고, 오우, 차고 오우, 검으로 살짝 베어 힘줄이 톡, 와, 이 손맛.

       눈치 빠른 놈이 등을 돌리길래 철비녀가 날았다. 비녀가 발목에 쏙 박혀들어가 비녀머리만 빼꼼이었다.

         

       예기치 못한 기습에 이미 허리끈을 풀고 있던 놈이 있을 정도로 방심한 상태였던데에다, 이미 대장 같은 놈이 몸으로 반수를 깔고뭉개 우르르 넘어진 상태였다.

       게다가 장대비란 시야를 가리는 친구고 먹구름으로 날은 어둡다.

       거기에 초절정 초절청이 날뛰니 가시는 걸음 놓인 발목을 사뿐이 즈려밟아 이제는 발목이었던 것의 대량 발생이었다.

         

       하지만 역시 나쁜 놈은 나쁜 놈일까.

       재빠른 상황 판단으로 호다닥 뛰는 뒷모습이 속출하니 청의 비녀가 날고, 또 날고, 또 날고, 또 날아서 그렇게 마지막 비녀마저 청의 손에 잡혔다.

       평상시에는 묶어서 틀어 올린 긴 머리가 비 맞은 채 쏟아져 무릎 뒤편까지 무겁게 늘어진다.

       새까맣게 윤기나는 머리채가 자르기에는 아깝다고, 자르지 말고 기르라 하신 사부님의 명이었다.

         

       다행히 마지막 비녀가 하늘을 나는 일은 없었으니, 다행히 도망치는 놈 없이 죄다 제 발목을 쥐고 진창을 구르는 덕분이었다.

         

       청이 머리채를 한 뭉텅이로 잡아 한 편으로 매듭을 지어 올려묶고 남은 장비녀 한 개로 능숙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그러고 나니, 하나, 둘, 셋…… 열둘, 열셋, 열넷, 열, 다섯!

         

       뭐지? 세 놈이나 더 있는데?

       나한테 거짓말을 했어?

       물론, 이런 기쁜 거짓말이라면 얼마든지 더 당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히 초절청님을 속이려 든 죄를 눈감아 줄 수는 없다.

         

       “마부 아저씨. 열 둘이라며요? 열 다섯이나 있네.”

         

       “헉, 어떻게, 벌써.”

         

       “자. 해명해 봐요. 어떻게 세 놈이나 더 있지? 혹시 숫자 못 세요?”

         

       “그, 그럴 리가요. 분명 열 둘입니다요.”

         

       “뭐에요, 내가 거짓말이라도 했단 말야? 자, 가서 세 봐요.”

         

       “어억! 자, 잠깐!”

         

       청이 마부의 발목을 덥석 쥐고는 휙 바닥을 쓸어 바깥으로 내던졌다.

       바닥이 진창이라 말 그대로 철퍼덕 소리와 함께 웅덩이를 허우적거리던 마부가 겨우 상체를 일으켜 얼굴을 쓸어내린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마부는 청을 속이지 않았습니다!

         

       절세미인을 깔고뭉갤수 있다고 하니 범죄자끼리의 끈끈한 우정으로 데려온 친구가 세 명 추가되었던 것이다.

       음. 그 끈끈한 우정, 저승 가서도 계속 이어지도록 사이좋게 보내드려야겠네.

         

       어쨌거나 마부는 아는 바를 정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정직한 태도로도 충분히 사람을 속여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뭐해요. 속은 사람은 여기 있잖아요. 결론적으로 내가 속았으니까 마부 아저씨가 속인 게 맞잖아요? 네. 사형.”

         

       “자, 잠깐!”

         

       “벌써 소리지르지 마요. 아직 소리 지를 시간 많이많이 남았으니까. 목 쉬어서 헉헉거리면 듣는 사람도 맥이 빠지니까 오래오래 싱싱하게 비명을 질러 줘야지. 그러니까 완급 조절 잘 하시고.”

         

       검기와 검강의 차이란 무엇일까.

       저도 참 궁금한데요, 지금부터 제가 한 번 실습으로 탐구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청이 찔러도 보고 베어고 보고 회도 쳐 보고 뼈도 잘라보고 살을 발라보거나 피부를 벗겨보거나 이것저것 도려내도 보는 등등, 아주 날붙이로 할 만한 동작을 죄다 검기와 검강을 번갈아 비교해 보았다.

       이는 검기와 검강의 근본적인 차이를 찾기 위한, 훌륭한 무인의 열성적인 수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검기는 잘 잘린다.

       그런데 검강은 막 잘린다!

         

       검기가 스윽, 스윽, 하는 느낌이라 하면, 검강은 샥, 이라는 느낌이었다.

         

       일단은 손맛은 검기의 승리.

       검강은 너무 날카로워서 딱히 와 닿는 느낌이 없네.

         

       중대, 아니 청은 실망했다.

         

       사실, 무언가를 무척이나 기대하고 나면, 그 기대감이 충분한 만족스러움으로 충족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검강을 써 본 청의 마음도 역시 그러한 것이었다.

         

       이래서 차라리 부러질지언정 강성이 강한 원투대(낚시대의 일종)는 쓰지 않는 법이다.

       강성이 강하고 빳빳한 낚시대에 크고 톱니 좋은 감개를 달아 물고기를 낚으면, 아주 힘 하나 안 들고 돌리는 대로 슥슥 올라온다.

       하지만 누가 물고기 잡으려고 낚시하나?

       그럴 바에야 그냥 저인망으로 싹 쓸어내버리는 게 낫지.

         

       그런 점에서 검기는 낚시대, 검강은 어선으로 끄는 그물이라고 할 만 했다.

       물고기를 낚는다는 본연의 목적에는 아주 탁월하니 충실하지만, 즐기기에는 영 맥이 빠져 그냥 작업하듯 힘만 빼는.

         

       하지만, 무영신수와 결합하면 또 의외로 신통한 재주가 가능하기도 했다.

         

       수검 훈련으로 날카로운 청자검을 제 손가락처럼 다루는 청이었다.

       그리고 무영신수는 비장의 소매치기술로 닿을 듯 말 듯한 거리를 유지하며 파고들어 절도를 행하는 신공이다.

         

       그러니까 거리 조절을 조금 달리해서, 더 바짝 붙여서, 예를 들어서 근육과 피부 사이쯤으로 피부를 쭉 타고 올라간다던가.

         

       하지만 얇고 길게 저며낸 사람 가죽을 가져다가 뭐 어디다 쓴단 말인가.

       이걸 종이 삼고 피를 먹으로 삼아 강시술 책이라도 쓰면 뭔가 후대에는 대단한 것과 마주칠수도 있겠지만.

       청은 강시술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으니, 애석하게도 일어나지 않을 미래다.

         

       그리하여 청이 마음껏 취미를 즐기다보니 결국 남은 이는 마부 하나뿐이었다.

         

       청이 힘겨운 미소를 지으며 마부에게 한 발, 또 한 발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면서 문득 생각이 들기를.

         

       어라. 뭐지? 얘는 죽이지 말아야겠다고,

       그런 생각을 했었었는데. 왜 그랬지?

       왜 살리려고 했지? 그럴 이유가 있었나?

         

       청이 곰곰히 제 사고를 반추해 보았다.

         

       결론은, 음! 모르겠다!

       뭔가 기발하게 죽이려고 했었는데 까먹은 모양이지 뭐, 하고.

         

       청이 살심을 머금고 다가가니, 마부는 이미 정신줄을 놓은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악귀처럼 쭉 찢어진 입으로 활짝 웃으며, 사람을 조각조각 해체하는 꼴이 눈에 고스란히 들어왔으니.

       심지어 중간중간 돌연 쓰러져 가늘지만 격렬한 경련을 일으키며 진창을 구르기도 하니, 이미 꼴이 사람의 꼴이 아닌 탓이다.

         

       정신줄을 잡고 있었더라도 도망을 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양 발등에 구멍이 뻥 뚫리고, 마차에서 떨어질 때 정강이가 똑 부러졌으니까.

         

       멍하니 저를 올려다보는 마부의 얼굴을 보며 청이 쳇, 혀를 차고는 결국 마무리는 소수마공, 명치 아래로부터 살가죽 안으로 파고드는 손이 심장을 덥석 쥐는데.

         

       와! 이제 이건 제 겁니다!

       제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겁니다!

       난 이놈의 심장을 조종할 수 있다!

       내가 지배하고 있다!

         

       청이 정말 최후의 최후의 수단을 쓰는 외과의처럼, 심장을 콱콱 쥐어짜 강제로 피를 마구마구 순환시켰다.

       심장 뛰는 속도를 세 배로 올려줬더니, 전신의 구멍으로 피가 배어나온다.

       혈압이 강제로 치솟다 못해 전신의 혈관이 일시에 터져나가는 것이다.

       핏줄이 모조리 터진 흰자위가 시뻘겋게 부어오르는데, 오, 뭐야. 세 배로 빨라지니 빨갛게 변하네? 이런 원리가?

         

       그러다가 마침내 가늘게 이어지던, 그 어떤 산 것이 죽은 물체로 뒤바뀌는 바로 그 순간, 그 찰나, 정말로 그 짧은 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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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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