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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0

    대규모 리저렉션을 떠올린 루크는 시체들을 하나하나 찾아내 한 곳에 잘 모았다.

    그렇게 다 모으고 나니 마치 전시상황에 사망자를 파악하기위해서 모아 놓은 것 같은 풍경이라 그리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나, 루크는 꽤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사실 리저렉션에 반드시 시체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대상의 영혼이 부당하게 희생되었으며, 영혼도 아직 이승에 미련을 갖고 있느냐 였으니까.

    따라서 부족한 신체는 재구축될 것이다.

     

    마법으로는 결코 쉽게 할 수 없는, 아니.

    불가능한 방식이란 걸 알지만, 본디 그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 바로 기적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루크가 생각하기에는 역시 이 정도 규모의 리저렉션에는 막대한 신성력이 필요할 터이니, 그 신성력의 소모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시체를 모아두는 것은 필요할 것 같았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좀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어 보이긴 했지만, 이곳은 리치가 이 정도의 병력을 숨겨둘 정도로 외진 곳이니 아마 다가오는 사람도 없을 것이 분명했다.

    만일 숲지기들의 순찰이 잦은 곳이었다면 세이어는 진작에 다른 장소를 찾거나, 검거당했을테니.

     

    아니면 숲지기들도 한 패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루크는 그 생각을 지금은 조금 보류해두기로 했다.

    명확한 근거도 없이 숲지기들이 그렇게 부패했다고는 믿고 싶지 않았으니까.

    비록 소속은 다르더라도 왠지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예르나를 모욕하는 것 같기도 하고.

    게다가, 조금 귀찮긴 했다만 샌슨과 같은 선량한 자도 있지 않은가.

    ‘이 얘기는 나중에 예르나에게 살짝 언질을 하는 거면 족해.’

     

    그러면 숲지기들의 일은 예르나가 해결해줄 것이다.

    그녀는 숲지기들 사이에서도 목소리가 크니까.

     

    그리고 지금은 당장 눈앞에 닥쳐있는 일부터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다.

     

    “리브, 리치와 함께 조금 떨어져있거라.”

    “…….”

     

    방금 전 리치의 시체를 힘들게 옮긴 것이 헛고생이 된 셈이지만, 리브는 별다른 불만 없이 즉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리치가 담긴 석관을 들어 자리를 옮겼다.

     

    신성력이 닿지 않도록 리치의 몸에 방부처리를 하긴 했지만, 대충 ‘어스 월’을 엮어서 임시로 만들어 둔 석관이 리저렉션을 사용하는 과정에 투사된 막대한 신성력까지 버틸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성직자들이 신성력과 기적을 어떻게 사용하고 무슨 원리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는 마법사인 루크 자신은 정확히 알지 못 하지만, 굳이 교회에서 피해자의 잘린 부위를 챙겨오는 것을 선호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아마 확실히 차이는 있을 것 같았다.

     

    과거 레니에도 그런 뉘앙스로 이야기를 했던 것 같고…….

     

    하지만 신성력이 무조건 마나와 같은 성격을 지닌 자원은 또 아니라, 신성력이 전혀 없는 공간에도 돌연 나타나게 할 수도 있다고 들었다.

    도대체 일관성이 없는 기운이 아닐 수가 없다.

     

    루크는 레니에가 아무데나 쏘다니며 장난을 치던 모습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데나 왔다갔다 한다는 점에선 참으로 레니에 같은 특성이다.

    그래서 성녀로 쓰임받은 것인가?

     

    어쩌면 여신과 그녀는 꽤 죽이 잘 맞는 ‘에레’가 아니었을까.

     

    ‘아무렴. 지금은 그게 다 무슨 상관이 있겠나.’

     

     

    중요한 것은 현재 자신의 손에 도구가 있고,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자격과 힘도 갖추고 있다는 것.

    단지 문제는 그 도구와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지 잘 모른다는 점 뿐이다.

     

    ‘그래도 기억을 잘 더듬으면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하지만 머릿속에 안개가 끼인 것 처럼 신성력에 관한 기억은 미묘하게 흐릿하다.

    감각도 마치 물에 빠진 것 처럼 잔뜩 물을 먹은 것 같이 둔감해서 잘 모르겠고…….

     

    “흠, 이번엔 힌트는 없다, 이건가…….”

     

    그동안 ‘기억’을 이용해 꽤 많은 이득을 취할 수 있었건만, 이번에는 그 기억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좀 답답하다.

    뭐, 세상은 여신에 대한 모든 것을 잊어야만 했으니, 자신이 그걸 기억하고 있는 것도 이상하기는 하다.

     

    그래도 딱히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광적인 믿음을 이용해 사용하는 기적이나, 강력한 의지를 이용해 현실을 조작하는 마법이나, 큰 틀로 보면 어쨌든 하나의 기술일 뿐이지 않은가?

     

    루크도 그 부분에서 영감을 얻어 마법과 신성력의 융합은 과거에도 몇 번정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그 당시의 결과는 그닥 좋지 않았지만.

     

    ‘그 때는 신을 믿는 것 보다 자신을 믿는 것이 훨씬 강했으니까.’

     

    그렇다면 신이 몸에 깃든 지금은 좀 다르지 않겠는가?

    자신이 곧 신이고 성녀라면, 자신에 대한 믿음도 일종의 신앙심이 아닐까?

    가설이기는 하지만 루크에게는 꽤 흥미로운 관점이었다.

     

     

    리브가 리치를 끌고 시야에서 사라지는 장면을 확인한 루크는 이내 열쇠를 들어 허공을 갈랐다.

     

    그렇게 아린세이아의 문을 연 루크는 열린 문을 그대로 두어 대기에 아린세이아의 신성력을 풀기 시작한다.

     

    루크는 눈을 감은 채 서서히 숲에 신성력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좋아. 이 정도면 준비는 된 것 같구나.”

     

    하지만 루크는 여전히 눈을 뜨지는 않았다.

     

    신성력을 다뤄야하는 지금 마력시는 방해에 불과하였으니, 루크는 반드시 감각을 이용해야만 했다.

    보통 그 둘은 서로 상극인 성질을 지니고 있기에, 항상 마력만을 보며 느껴왔던 루크는, 이런 신성력의 감각에 익숙하지 못했다.

    마력과 신성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몸이 되었다는 것이 참 성가시다.

     

    루크는 천천히 자신의 주변에 충만하게 떠오른 신성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금 집중하니 신성력을 움직이는 것은 어떻게든 가능했다.

    어쩌면 몸이 기억하는 것일까?

    걱정과는 달리, 그리 어려울 것이 없었다.

     

     

    못과 망치는 이미 준비되었고, 자신에게 망치를 쥘 손과 그것을 들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것을 내리치기만 하면 될 뿐.

     

     

    루크에게 더 이상 망설임은 존재하지 않았다.

     

    -…….

     

    인간의 표현력으로는 미처 표현할 수 없는 이질적인 울림이, 리엔느 숲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

     

    숲을 채웠던 신성력도 모조리 소멸하고, 한동안 울리던 거대한 미지의 울림도 서서히 잦아들 무렵.

    루크는 강한 탈력감에 겨우 두 다리를 땅에 붙이고 있을 뿐이었다.

     

    숨쉬기가 어렵고, 등은 따가우며, 불어오는 바람이 닿는 다리와 팔목이 너무 지나치게 서늘했다.

    그리고 온 몸이 꽉 조이는 듯 답답하기까지 하다.

    허리도 강하게 조이고 가슴도 답답해 숨도 잘 쉬어지지 않을 정도다.

    ‘된……건가……?’

     

    기적이라는 것이, 원래 사용하면 이토록 힘들고 답답한 것이었단 말인가?

    루크는 그동안 이 답답함을 레니에 역시 겪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다시보게 되었다.

    그녀의 성격에 이런 감각은 절대 참아내지 못했을 텐데, 어찌 그리도 의연하게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인지…….

     

    “레니에, 그대도 역시 성녀는 성녀였던 모양이군…….”

     

    그녀는 그동안 자신의 성격마저 죽이며 이렇게 기적을 행하였다는 것이 아닌가.

    항상 크지 않는 아이 같은 여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본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진지한 성녀였던 모양이다.

     

    그렇게 한동안 몸을 떨던 루크는 숨을 몰아쉬며 눈을 떴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마치 대낮처럼 환한 강한 빛이 내리쬐는 숲과, 하나 둘씩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기적을 통해 부활했다곤 하나 리저렉션이라는 것이 원래 옷까지 전부 잘 입혀서 부활시키는 기적은 아니었기에 현장에는 더러운 누더기조차 걸치지 못한 알몸의 인간이 더 많았다.

     

    아마 누가 본다면 정신이상자들의 모임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은 모습이긴 하나, 그래도 죽음보다는 그 편이 훨씬 보기좋은 결말이 아니겠는가?

    아주 희망적인 결과였다.

     

    “되었구나!”

     

    루크는 기쁨을 숨기지 못했다.

    자신이 죽은 자를 살리다니,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이토록 쉽게 사람을 살릴 수 있는 힘이라니!

    아마도 정상적인 죽음이 아니라 흑마법을 통해 제물로 바쳐진 영혼들이었기에 생각보다 쉽게 부활시킬 수 있던 모양이다.

    본래 흑마법과 신성력은 대척점에 있는 힘이니까.

     

    보통은 흑마술로 죽은 자는 쉽게 살릴 수 없지만, 그것도 성직자의 권한과 직책이 흑마법을 사용한 흑마술사보다 높으면 극복할 수 있는 문제.

    헌데 자신은 무려 추기경보다 더 위에 있다는 성녀, 또는 여신의 파편이 깃든 몸.

    고작 그런 리치와 비교해 권한이 부족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신성력에서 말하는 가치는 흑마술과 다르다.

    상실을 전제하는 흑마법에서는 불사자의 생명에는 가치를 매기지 않지만, 반대인 신성력은 불사자의 생명에도 큰 가치가 부여되는 덕이다.

     

    무한한 가치와 권능이 있는 자신은 이 정도의 기적은 간단히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이로써, 내가 후에 잘못을 하게 되면 수습할 수 있는 수단이 하나 생긴 셈이로군?’

     

    루크는 그동안 죽은 사람은 되돌릴 수 없다는 점에서 굉장히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인간이란 원래 너무나도 약한 생명체니까.

    잘못하면 고작 1서클의 마법만으로도 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이 아닌가?

     

    헌데, 부활이 가능하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엎질러진 물을 돌이킬 수 있다면, 물을 엎지르는 것은 실수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마치, 과거로 가는 힘이 생긴 것과 같다.

     

    그 모습을 루크가 뿌듯하게 지켜보고 있을 무렵, 숲의 저편에서 리브가 헐레벌떡 뛰어오기 시작했다.

    축하라도 하러 오는 것일까?

     

    루크는 그런 리브를 크게 반기며 외쳤다.

     

    “리브! 보거라, 내가 성공했다!”

    “……!”

    “응? 그대여, 왜 그러느냐?”

     

    하지만 리브는 마치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듯 계속 허둥댈 뿐이었다.

    리브가 대체 왜 그러는 걸까, 유심히 관찰하던 루크는 이내 이상함을 깨달았다.

     

    “잠깐, 리브. 그대 좀 몸이 작아진 것 같지 않나?”

    “……!”

     

    리브는 다시 허우적거렸다.

     

    ‘아니, 잠깐만. 그 뿐만 아니라 시야도 꽤 높아진 것 같은데.’

     

    한번 위화감을 깨닫고 나니 이상한 점은 계속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루크는 마침내 리브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깨닫고, 자신의 몸을 되돌아보았다.

     

    그러자 루크의 눈에는 작아진 교복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날개를 확인하고는 숨을 들이켰다.

    날개? 날개라니?

    꼬리 역시 이전의 꼬리보다 훨씬 두꺼워지고 길어진 형태다.

    게다가 머리카락도 이전처럼 길어져 갑작스레 등을 찢고 튀어나온 날개를 자꾸만 간지럽히고 있었다.

     

    게다가 루크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머리 위의 귀는 끝이 조금 더 길어져 토끼와 비슷해진 모습에, 본래 뿔이 있던 자리에는 기존의 뿔보다 더욱 커진 뿔과 더해 한쌍의 뿔이 더 생겨났고, 머리 위에는 신성을 의미하는 헤일로까지 띄워진 상태였다.

     

    마치 갑자기 성장이라도 한 것과 같은 모습이다.

     

     

     

    “이, 이게 대체 무슨??”

     

    루크는 이토록 환하게 숲을 비추는 빛도, 사실은 제 몸에서 뿜어져나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빛은 신성력을 상징한다는 것도 느껴진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그렇게 루크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이, 사람들이 서서히 정신이 드는 것인지 눈살을 찌푸리며 한두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으윽, 눈부셔…….”

    “너무 밝아……!”

     

    죽었다가 살아나 본 것과 비슷한 경험은 루크에게도 있었으니 이해하지 못할 반응도 아니었다.

    마치 오랫동안 잠을 잔 것 같이 몸이 뻐근하고, 눈은 빛을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한동안 시리고 따갑겠지.

    그나마 말을 빠르게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칭찬을 해주고 싶다.

    자신은 성대를 울리는 것을 의식하는 데에도 꽤 시간을 써야 했으니까.

    뭐, 그건 사실 몸의 형태가 바뀌어서 적응하는 것에 시간이 걸린 것이긴 하지만.

     

    “잠깐, 저건 대체 누구야……?”

    “몸에서 빛이 나고 있잖아……?”

    “사람…? 저거 사람인가…?”

    “눈부셔! 제발 누가 저 불 좀 꺼줘!”

     

    아니, 지금은 이렇게 태연하게 그들을 분석할 시간이 루크에겐 없었다.

     

    “라이트.”

     

    애초에 부활을 시전한 뒤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일 생각이 없던 루크는 오히려 더욱 강한 빛을 투사하기 시작했다.

    방금 쓰는 법을 깨달았을 뿐이지, 신성력에는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불을 끄는 법은 모르기 때문이다.

     

    “끄아아악!”

    “내, 내눈이!”

    “너무 밝아!!”

    “으아아!! 제발 불 좀 끄라고!!”

     

    강렬한 섬광을 투사당한 사람들은 다들 눈을 부여잡으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시력은 좀 나빠질 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실명하지는 않겠지.

     

     

    “리브! 이 틈에 얼른 돌아가자꾸나!”

     

     

    생각을 정리할 겨를도 없이, 루크는 허겁지겁 리브와 가방, 그리고 석관을 붙잡고 플라이를 써서 도망쳤다.

     

    무허가 마법 사용은 불법이지만, 지금은 그런 세세한 규칙따위를 신경 쓸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루크도 이제 어른이야!(10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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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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