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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0

       어거스트는 그들의 존재를 확인하자마자 행동에 나섰다. 그는 찰리 일행 중 가장 덩치가 크고 힘이 셌으며 그만큼 성격도 급했다. 그는 미처 주변 동료들이 말릴 새도 없이 냅다 옆에 있는 비석을 뽑아다 입구를 향해 던졌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까만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그는 자신의 대응이 만족스러운지 씩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다른 세 사람은 그의 성급한 짓에 기겁했다.

         

       “어거스트 형! 일단 누군지 물어봤어야지!”

       “그래.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을 죽일 셈이야?”

       “그것도 그거지만. 야, 이 무식한 새끼야! 여긴 지하라고! 저러다 무너지면 어떡해!”

         

       친구들의 성화에 어거스트는 귀를 후벼 파며 대꾸했다.

         

       “호들갑들 떨지 마. 힘 조절은 충분히 했어. 아무렴 내가 그 정도 계산도 안 했을까. 그리고 내가 누굴 죽이기라도 했냐. 그냥 못 들어오게 입구만 좀 부쉈을 뿐이야.”

         

       먼지구름이 가라앉으면서 그의 호언장담은 사실로 드러났다. 상대측에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석굴 역시 멀쩡했다. 좀 지나칠 정도로 멀쩡한 게 문제였다. 그가 부수고자 했던 입구는 흠집조차 가지 않았다.

         

       어거스트를 비롯한 일행은 눈앞의 광경을 보고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방금 그가 던진 수십kg짜리 비석을 누군가 받아서 들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정체가 고작 대여섯 살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여자애라는 것이었다.

         

       루엘로는 자신의 몸집만 한 크기의 돌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 손으로 짚더니 옆에 있는 벽에 조심스럽게 세워두었다.

         

       “비, 비석을 던지다니……. 이, 이러면 천벌 받아요…….”

       “도대체 정체가 뭐냐.”

         

       어거스트는 그녀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자신의 눈빛을 보고 움찔 떠는 저런 조그만 여자애가 자신의 힘이 실린 돌덩이를 받아냈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그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루엘로의 뒤에 서 있던 레이나였다.

         

       “우린 당신들이 납치한 사람을 돌려받기 위해서 왔습니다.”

         

       어둠 속이라 서로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키와 체형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다. 방금 말한 상대가 가면을 쓰고 있기는 했지만, 어거스트는 그녀를 어디선가 본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막 떠오르는 이름을 입에 담으려던 순간, 마야가 앞으로 나섰다.

         

       “단장님을 어디로 데리고 갔어?”

         

       언제나 무감정하던 그녀가 드물게 언성을 높였다.

         

       그녀는 아까까지만 해도 2번 경기장에서 강당 팀 일행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염동력이면 엘라를 구출하는 데 한몫 거들 수 있었지만, 토목에 대해 문외한인 그녀가 함부로 힘을 발휘하다가는 붕괴가 더 진행될 수 있었기에 그녀는 안전요원들이 무너진 석실의 잔해를 치우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렇게 구조 작업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당 팀이 2번 경기장을 찾아왔다. 마야는 그중 원더스타인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단장님은 어디 갔어요?”

         

       그녀는 가장 뒤에 들어온 유라크네에게 질문했다.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뒤쪽을 가리켰다.

         

       “뒤에 오실 거예요. 아마도 레이나 양을 챙겨서 오실 모양이던데요?”

       “단장님이 레이나랑 둘이서요……?”

         

       마야는 자신을 붙잡는 유라크네의 손길을 떨쳐버리고 경기장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녀는 레이나가 단장님과 둘만 있으면 하는 짓을 알고 있었다. 임시로 머무를 때도 그런 대담한 짓을 저질렀는데 정식 단원이 된 지금은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그렇게 밖으로 나온 마야는 레이나가 멀리 학교 밖으로 나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수상하다 여기며 그 뒤를 밟았고, 시험 내내 객석에서 마야의 전담 서포터 역할을 했던 카렌이 마야의 돌발행동을 감지하고 그녀의 뒤를 따라나섰으며, 트랙에서 괴물 서커스 단원들이 트로피를 들고 오면 꽃다발을 안겨 주려고 기다리고 있던 루엘로가 네 사람이 연속해서 학교 밖을 나가는 것을 보고 이상하다 싶어 그 뒤를 쫓았다.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동한 것은 어찌 보면 그들에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4명이나 되는 인원이 한꺼번에 뒤에 붙었 있었으면 찰리의 친구들이 알아채지 못했을 리 없었다.

       어쨌든 네 사람은 하수도 입구에 가서야 서로 만나게 되었고, 레이나로부터 사정을 들은 세 사람은 원더스타인을 구출하기 위해 힘을 합쳐 아래로 내려온 것이었다.

         

       “너희들 다 죽었다. 사랑하는 단장님이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마야가 화가 많이 났거든.”

         

       카렌이 손가락을 소리 내어 풀며 그들을 위협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어려 있었으나 눈빛은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의 것과 같았다.

         

       방금 루엘로가 보인 엄청난 괴력 덕분에 납치범 네 사람은 상대가 여자애 4명이라고 해서 방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찰리가 엘라가 취조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버는 것이었다.

       애초에 그들의 목표는 엘라뿐이었다. 괜히 다른 사람과 목숨 걸고 싸우고 싶지 않았다.

         

       “이 방법밖에 없겠네.”

       “하나씩 맡자고.”

       “다들 무운을 빈다.”

       “그래. 모두 흩어져!”

         

       이곳 카타콤은 지리를 잘 모르는 사람이 들어오면 길을 잃기 쉬운 곳이었다. 네 사람은 각각 하나의 통로를 골라 달렸다. 그리고 그들은 동시에 근처에 있는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욕을 날리는 등의 행동으로 그녀들을 도발했다.

         

       “거기 절벽 누나, 사실 남자 아냐?”

         

       찰리 일행 중 가장 어린 남자애가 그렇게 외치고 달아났다.

         

       “저들이 넷으로 갈라졌다면, 우리도 넷으로 나눠야겠지!”

         

       카렌은 흥분한 목소리로 그렇게 소리치며 그의 뒤를 쫓았다.

         

       “바보.”

         

       마야는 친구의 등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자신들을 분산시켜 시간을 끌려는 의도가 명백했다. 저런 뻔한 수작에 낚이다니.

         

       그때, 가장 먼 통로로 달아나던 광대 분장을 한 소녀가 외쳤다.

         

       “그 금발 미남은 내가 따먹을 거다!”

         

       그녀는 깔깔거리며 어둠 저편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마야의 몸이 포탄처럼 쏘아져 나갔다.

         

       “마야! 기다려!”

         

       레이나가 그녀를 불러세웠으나 그녀의 귀에는 다른 목소리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방금 자신의 스승에게 망언을 지껄인 저 계집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레이나는 마야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별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이렇게 된 이상 자신도 하나를 맡기로 했다.

         

       “좋아. 나는 이쪽으로 갈게. 루리, 너는 위험한 짓 하지 말고 여기 있어. 알겠지?”

         

       레이나 역시 통로 하나를 골라 달렸다. 그렇게 석굴의 입구에는 루엘로 혼자만이 남게 되었다.

         

       “아우…….”

         

       홀로 남은 루엘로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 그녀도 다른 언니들처럼 멋지게 “여긴 저에게 맡기세요!”라고 외치고 상대의 뒤를 쫓고 싶었으나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때, 그녀의 머리카락이 들썩거렸다. 동시에 그녀의 입에 도발적인 미소가 걸렸다.

       주저하고 있는 그녀를 보다 못해 삼손이 나선 것이었다. 그는 루엘로의 입을 빌려 소리쳤다.

         

       “당연히 그 덩치를 쫓아야지! 받은 대로 갚아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 하지만 레이나 언니가 여기 있으라고…….”

       “그러다가 놈이 자기 팀을 도우러 가면 어쩔 건가? 누구는 2대 1로 싸워야 한다. 거기서 잘못되면 차례로 3대 1, 4대 1로 싸워야 할 수도 있다! 친구들의 시체를 보고 난 뒤에 후회할 건가?”

         

       루엘로는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가 곧 각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그녀는 비석을 던졌던 덩치 큰 남자가 사라진 방향으로 달렸다.

         

         

       ***

         

         

       원숭이는 내가 자기를 잘 따라오는지 간간이 뒤돌아보며 길을 안내했다.

       석굴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천장이 높아졌고 기둥 사이의 간격도 넓어졌다. 거기다가 울퉁불퉁했던 길도 점점 반듯하게 변했다. 통로 깊은 곳에서 웅 하며 바람이 흘러나오는 것으로 보아 안쪽에 거대한 공동이 있는 것 같았다.

         

       죽은 사람의 뼈로 빽빽하게 채워진 이 석굴도, 벽에 그려진 그림들도, 저안에 있는 공동의 존재도 흥미로웠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 저 원숭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는 저 녀석을 알고 있었다. 이름은 몰랐지만, 게임 안에서 본 적이 있었다.

         

       TTT는 선택의 다양성으로 이름 높은 게임이었다. 작중에는 습득 가능한 수많은 종류의 스킬이 등장했다. 그것은 TTT를 반복해서 플레이하는 것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 주는 요소였다.

       플레이어는 앞서 선택했던 것과 다른 특성을 찍음으로써 이전 회차에는 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게임을 공략하고 자잘한 대화문의 변화를 즐길 수 있었다.

         

       ‘수수께끼의 조력자’는 TT1 때부터 있었던 특성이었다. 그것은 효과도 강력하면서 동시에 재미도 있는 특성으로, 가성비만 따지자면 기본 특성 중 최고라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이름 그대로 가면을 쓴 정체를 알 수 없는 마술사가 일정한 확률로 나타나 주인공들을 돕는 특성이었다. 그의 놀라운 점은 언제나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TTT는 온라인 계정 연동으로 사용자의 플레이 정보를 수집했다. 어느 구간에서 플레이어들이 잘 죽는지, 어떤 분기에서 어떤 선택을 선호하는지, 어느 구간에서 어떤 방식으로 적을 격파하는지. 수수께끼의 조력자는 그 정보를 기반으로 플레이어에게 어떤 도움을 줄지 결정했다.

         

       낙사 위기 때 발판을 만들어 주거나, 즉사기에 적중할 위험에 처했을 때 공격을 빗나가게 하거나, 독에 중독되어 사경을 헤맬 때 해독제를 들고 나타나거나, 서포트 캐릭터가 벽에 끼어 게임에 진행되지 않을 때 서포터의 엉덩이를 발로 차 벽에서 빼내 주는 등이 그 예시였다.

         

       가면 쓴 마술사 캐릭터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게임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공개된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과묵했다. 도적이 ‘달변가’ 특성을 찍으면 그의 정체를 캐낼 수 있는 선택지가 뜨긴 했지만, 그마저도 “원더스타인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두지.” 한마디로 정리하고 말았다.

         

       그는 믿기 힘들 정도로 다재다능했다. 게임 내에 등장하는 그의 능력만 수십 가지는 되었다. 어떤 때는 종종 다른 캐릭터의 고유 기술도 쓰기도 했다. 시스템 특성상 그는 항상 문제를 해결해 주는 방향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플레이어들은 때로는 그것을 이용해 그가 일부러 특정한 기술을 쓰게 하거나 엉뚱한 짓을 저지르게 유도할 수도 있었다.

       내가 찍은 많은 유머 동영상의 주인공도 바로 그였다.

         

       사람들은 그의 비밀스럽고 다재다능한 캐릭터 성에 주목해 그에게 ‘미스테릭서’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국에서는 적절한 도움을 계산하는 놀라운 인공지능에 주목해 ‘트파고’라고 부르기도 했다.

         

       저 푸른 털의 원숭이는 분명 그 미스테릭서가 부리던 녀석이었다.

       새하얀 정장과 망토와 모자, 얼굴을 가린 가면, 어깨 위의 원숭이.

       이 3개는 그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라면 이번 납치극의 범인인 것이 이해가 갔다. 사연을 알 수는 없었지만 원더스타인에게 강렬한 증오를 품고 있던 남자였다.

         

       납치범의 정체를 확인한 나는 그에 맞도록 작전을 짰다. 나는 그의 성격은 알고 있었다. 그가 증오하는 것은 원더스타인뿐이었다. 그는 원더스타인에게 개조된 적들을 만나면 항상 안타깝게 여겼다.

       그의 성격이라면 아마 엘라를 인질로 붙잡았다고 해도 자신이 얌전히 당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녀에게 해를 끼치진 않을 확률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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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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