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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0

       

       

       

       

       

       280화. 내 오른손에는… ( 4 )

       

       

       

       

       

       낯익은 공간이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한스가 사방을 둘러봤다.

       타닥거리며 타오르는 모닥불과 듬성듬성 자리 잡은 테이블과 의자들.

       

       누가 봐도 어엿한 술집 혹은 여관이었다.

       

       “……아. 여기는 혹시 그때의 여관…?”

       

       기억 저편에 자리한 장면 하나가 떠오른다. 한스가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 모험가 시절, 우연히 이곳에 왔었다.

       

       “그래 맞아. 여기였어.”

       

       그는 여기에서 신을 만났다.

       그리고, 신의 무기를 받았다.

       

       “여기는 하나도 안 변했구나.”

       

       어쩐지 조금은 반가운 기분. 한스가 여관의 곳곳을 구경했다. 그러다 문득 떠올렸다.

       그가 이 여관에서 정신을 차렸다는 것의 의미를.

       

       “어- 신께서 나를…?”

       

       쿵-!

       

       깨달음과 동시에 묵직한 시선이 그의 몸을 내리눌렀다.

       주변의 중력이 수십 배 강해져서 자신을 짓이기는 듯한 감각.

       

       이미 한 번 겪어본 것이기도 했다.

       

       한스가 고개를 덜덜 떨며 푹 숙였다. 입이 자동으로 움직이며 만신전에서 배운 찬미의 기도를 외웠다.

       

       “마, 만물을 아우르시며 빛으로 길을 인도하시고, 번개와 불로 하여 악을 벌하시는 여섯 번째 신을 뵙습니다…!”

       《……》

       

       신께서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가만히 그를 바라볼 뿐. 

       

       “…”

       《…》

       

       침묵이 점점 길어지자 한스의 등이 축축하게 젖어갔다. 

       

       딱-!

       

       “아악.”

       

       갑작스레 이마의 통증이 작렬했다. 마치 누군가 딱밤을 때린 것 같은 통증이다.

       불시에 얻어맞은 한스의 표정이 어리둥절하게 변했다. 

       

       ‘…누, 누가 나를?’

       

       신께서? 

       

       ‘에이 설마.’

       

       다른 것도 아니고 딱밤이라니. 신께서 그런 가벼운 짓을 하셨을 리 없다.

       아마 그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신비한 존재가 장난을 쳤으리라.

       

       《내 너에게 하사하기 위한 귀물이 있노니.》

       “아, 네!”

       

       신의 말씀에 한스가 바짝 엎드리며 귀를 쫑긋 세웠다.

       

       《이를 중히 사용하여 그대는 세상천지 모든 악을 정벌하도록 하라.》

       “받들겠습니다.”

       

       신의 말씀을 받드는 한스의 다짐과 함께 허공에 밝은 빛이 하나둘 뭉치기 시작했다.

       

       츠파아아앗-

       

       밝게 뭉친 빛무리는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 갔다. 그런데… 그것이 어딘가 굉장히 특이한 모양이었다.

       적어도 한스는 이런 모양의 무기를 본 적이 없었다.

       

       “이, 이건… 꼭.”

       

       마치 사람의 팔,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의수의 형태와 똑같았다.

       한스의 추측이 맞다는 듯, 신께서 장엄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이것이 그대의 새로운 오른팔이 되어 검을 쥐게 될지어니. 그대는 힘의 무게를 중히 깨닫고, 힘에 휘둘리지 아니하며, 그대 자신을 굳건히 세우라.》

       

       “…알겠습니다.”

       

       도통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말.

       

       하지만 한스는 머릿속에 신의 말씀을 꼭꼭 새겨 담았다. 신께서는 온 세상의 지혜를 품으신 분이니, 필히 무언가 뜻이 있으리라.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의수는… 굉장히 폭력적인 자태를 자랑했다.

       빛이라는 것을 완전히 거부하는 검은색의 몸통, 다섯 손가락에서 길쭉하게 자라난 길고 날카로운 손톱.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오싹하게 만드는… 마치 맹수를 마주한 감각이 절로 일었다.

       

       “이건ㅡ”

       

       한스는 그 오싹함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의수에서 느껴지는 오싹함 속에 숨은 기묘한 낯익음.

       마치 이전에 한 번 본 것 같은 느낌이다.

       

       “…용왕?”

       

       작게 중얼거렸다.

       설마, 정말로?

       

       “에이. 설마…”

       《…》

       

       신께서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셨다.

       

       “…아니겠지?”

       《…》

       

       대답 대신 둥둥 떠 있던 의수가 천천히 한스에게 다가왔다. 그림자로 빚은 듯한 의수는 조용히 한스의 오른쪽 어깨로 다가와 제 몸과 한스를 연결하기 시작했다. 

       

       차르륵-! 철컥- 차각!

       

       의수와 한스의 어깨가 맞닿는 부분에서 쇳소리가 작게 울렸다. 얇은 비늘 여럿이 마찰하며 나는 듯한 소리였다.

       역시 신께서 만드신 의수는 달라도 뭐가 다르다는 것일까.

       

       “오, 오오…”

       

       오른쪽 어깨에서 느껴지던 공허함이 단숨에 사라졌다. 한스가 감탄을 뱉으며 새로운 의수를 움직였다.

       

       차르르륵-

       

       움직이려고 마음 먹으니 손가락이 부드럽게 움직인다. 주먹을 쥐었다가 쫙 펴도, 이리저리 움직이며 관절을 움직여도.

       의수는 본래 그의 팔이라는 것처럼 아주 부드럽게 움직였다.

       

       한스의 표정이 활짝 밝아졌다. 

       

       《그대여, 잊지 말거라. 힘에 휘둘리지 말고, 중심에 그대를 굳게 세우라.》

       

       사아아아-.

       

       신의 마지막 조언과 함께, 한스의 몸은 서서히 빛으로 변해 사라지기 시작했다.

       

       꾸욱-

       

       굳게 말아쥔 의수를 타고 흐르는 기운이 느껴진다.

       

       야성적이고, 폭력적인 기세.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부숴버릴 기운.

       

       그야말로, 패도적인 힘.

       

       신께서는 이 힘에 휘둘리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리라.

       

       “예. 꼭, 명심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한스는 완전히 빛이 되어 여관에서 사라졌다.

       이제는 그의 오른팔이 된, 용왕의 심장과 비늘과 발톱으로 만든 의수와 함께.

       

       

       

       *****

       

       

       

       “으, 으음……”

       

       어쩐지 가슴이 무겁고 답답하다. 한스가 작게 신음을 토하며 제 몸을 뒤척였다.

       

       “힉ㅡ!”

       

       돌연 가슴을 누르던 것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은근하게 따뜻하던 것도 자취를 감췄다.

       

       “으… 으음…”

       

       조금 아쉬운 느낌. 그래도 한스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몽롱한 잠결에 비틀비틀 걸어 창문을 활짝 열었다.

       

       늦은 새벽까지 제 몸을 혹사했던 탓인지 밖을 보니 태양이 중천에 걸려 있었다.

       농부의 아들답지 않게 늦잠을 자버렸다.

       

       “하… 하, 한스 님?!”

       “음?”

       

       뒤에서 새된 비명이 들렸다. 돌아보니 언제 왔는지 데이지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한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찌나 놀랐는지 한스를 가리키고 있는 데이지의 손가락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뭐야 데이지. 언제 왔어?”

       

       “소, 손! 한스 님, 손이ㅡ!”

       

       “뭐?”

       

       손이 뭐가 어쨌다는 걸까.

       데이지의 손가락을 따라 천천히 고개를 내린 한스. 이내 그의 눈동자가 찢어질 정도로 크게 변했다.

       

       “어ㅡ”

       

       찰그락-

       

       얇은 비늘끼리 부딪치는 가벼운 금속음.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어서, 데이지가 말하기 전까지는 차마 의식하지도 못했다.

       

       “소, 소소소손! 한스 님! 손이! 손이 다시 생겼어요!”

       “이건…”

       

       한스가 멍하니 중얼거리며 제 오른팔을 천천히 움직였다. 

       

       햇빛을 반사하며 칠흑의 비늘로 반짝이는 그의 의수.

       손가락에 자라난 날카로운 발톱과 의수를 따라 흐르는 거칠고 사나운 기세.

       

       철컥-.

       

       한스가 발톱이 너무 길다고 생각하자, 의수의 발톱이 절로 움직이며 모습을 감췄다.

       그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와, 와아ㅡ! 대단해요 한스 님! 이, 이게 도대체 뭐예요? 의수인가요? 도대체 언제 이런 걸 만신전에서 받으신 거예요?”

       

       데이지가 한스의 주변을 폴짝폴짝 뛰며 기쁘게 소리 질렀다.

       이 의수를 만신전에서 받은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하긴, 그편이 당연한 발상일 것이다.

       

       “…아니. 이건 만신전에서 준 의수가 아니야.”

       “어? 그러면 도대체 어디에서, 아니 언제 의수를… 그러고 보니 어젯밤에 외출하실 때랑 일어나기 전에는 의수가 없었는데ㅡ”

       

       한스의 말을 들은 데이지가 고개를 푹 숙이며 중얼거렸다. 중간중간 들려오는 심상치 않은 단어들.

       

       자신이 늦은 밤에 외출한 걸 도대체 어떻게 데이지가 아는 걸까?

       거기에 일어나기 전까지 의수가 없었다니? 그걸 도대체 왜 데이지가 알고 있는 거지?

       

       한스는 이에 대해 깊이 파고들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애써 듣지 못한 척했다.

       

       대신 눈을 감고 의수에 집중했다. 오른쪽 어깨 밑으로 연결된 의수, 그 내부를 향해.

       끊임없이 맥동하며 흐르는 강인한 기운이 느껴진다. 마치 폭포처럼, 파도처럼 거세게 몰아치는 기운.

       

       한스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의수에 잠들어 있는 거센 기운을 느꼈다. 

       그것이 문제였을까.

       

       “…윽ㅡ!”

       

       이변은 한순간에 일어났다.

       

       잠자고 있던 용이 한순간에 깨어나 사방으로 분노하는 것처럼 의수의 기운이 거세게 끓어올랐다.

       

       콰아아아아!

       

       갈 곳 잃고 포효하는 용의 분노는, 불꽃으로 화했다.

       

       “꺄아아악!”

       

       의수에서 새까만 불꽃이 넘실거리며 천장까지 솟아올랐다.

       

       흑염에 휩싸인 의수가 한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이며 사방으로 불꽃으로 토하려 했다.

       

       “크으, 으으윽ㅡ! 데이…지! 도망쳐ㅡ!”

       

       부들거리는 왼손으로 오른손을 억누른다. 흑염이 왼손을 타고 넘실거렸지만, 뜨겁다고 느낄 틈도 없다.

       멋대로 폭주하려는 의수의 기운을 억누르고 통제하려는 것에만 집중했다.

       

       “으으윽, 크으읍… 멈… 춰…!”

       

       의수의 기운은 쉽사리 한스의 통제를 따르지 않았다.

       길들지 않은 야생마의 성질처럼, 의수의 기운은 흉포하고 광오했으며 동시에 파괴적이었다.

       

       “환자 방에서 도대체 무슨 소란을ㅡ 한스!”

       

       “요, 용사님! 한스 님의 의수에서 가, 갑자기 불꽃이!”

       

       소란을 듣고 들어온 케니스가 잠시 당황하더니, 이내 재빨리 방 안의 상황을 빠르게 파악했다. 

       

       한스, 요사한 까만빛의 의수, 흑염, 비명.

       

       해야 할 일은 명료했다.

       어쩐지 저 까만 불꽃은 낯이 익었지만…

       

       나중에 알아보면 될 일.

       일단 상황을 진정시켜야 했다.

       

       “한스! 잠깐만 실례할게요!”

       

       귀신같이 달려든 케니스가 빠르게 일섬을 휘둘렀다. 한스의 어깨와 의수, 그 사이를 정확하게 노린 일격이다.

       

       문제의 원인으로 보이는 의수를 제거하고자 한 공격.

       

       ㅡㅡㅡ!

       

       허나, 사방으로 몸을 부풀리던 흑염이 어느새 형태를 갖춰 케니스의 성검을 막아냈다.

       

       “! 무슨…”

       

       일정한 형태를 이뤄 타오르는 흑염은, 마치 거대한 용처럼 보였다. 꿈틀거리며 타오르는 흑염이 요사하게 흔들렸다.

       

       케니스는 그제야 기시감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용왕?”

       

       흑염, 불꽃의 형태 그리고 포악한 기세.

       

       틀림없는 용왕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한스의 의수에서 용왕이?

       

       ㅡㅡㅡ…

       

       흑염으로 형태를 이룬 용왕이 한참이나 케니스를 바라봤다. 눈도 보이지 않는 불꽃의 형태였지만, 케니스는 눈을 마주쳤다고 느꼈다.

       

       짧은 대치가 이루어졌다.

       

       “흐으으으읍…! 들어…가!”

       

       그 틈을 노리고, 한스가 멋대로 날뛰는 흑염의 기운을 억눌렀다. 통제에서 벗어나려 수시로 날뛰고 튀어 나가려는 것을 가까스로 붙잡았다.

       

       파스스스…

       

       한스가 의수를 억누르는 데 성공하며 흑염이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방 안을 뜨겁게 달군 잔열은 열린 창가를 통해 천천히 빠져나갔다.

       

       “하아, 하아…”

       

       어떻게든 기운을 억눌렀다.

       

       그 사실에 긴장이 풀린 한스는 온몸에서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 어쩐지 바닥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ㅡ스! 한ㅡ…!!”

       

       “한ㅡㅡ!! 일어나보ㅡ…!!”

       

       몽롱해지는 의식 너머로 두 여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듯 들려왔지만, 한스의 의식은 점점 더 깊은 밑으로 가라앉았다.

       

       “……윽, 으음……”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흘러 한스가 정신을 차렸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익숙한 병실의 천장이었다. 기절한 동안 밤이 되었는지, 창문 밖의 풍경이 깜깜하다.

       

       “…윽. 아고, 모, 몸이…”

       

       몸 여기저기 안 쑤시는 곳이 없을 지경.

       

       침대에 앉으려다가 포기한 한스는 문득 제 오른손을 바라봤다. 따지고 보면 그가 기절한 이유도 의수 때문이었다.

       

       신께서는 어째서 자신에게 이런 위험한 것을 달아주신 걸까.

       

       “…..붕대?”

       

       한스는 알 수 없는 글씨가 빼곡하게 새겨진 하얀 붕대로 칭칭 감긴 자신의 오른손을 볼 수 있었다.

       

       마치, 붕대로 무언가를 봉인한 듯한 형태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오른손의 흑염룡…!! 붕대… 봉인… 그리고 폭주…!! 아 절대 못 참거든요 이거…!!!
    사실 정말 고민이 많았습니다…!! 봉인을 붕대로 할 것인가… 아니면, 사슬로 할 것인가…!!! 그 결론은 역사와 전통의 붕대…!!! 붕대와 흑염룡은 식빵과 딸기잼 같은 조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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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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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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