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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0

       

        

        

        

        

        

       “하필이면 이런 곳에 스킬 활성화 기기를 놓을 생각을 하다니.”

        

        

        

        몸에 닿는 공기가 뜨겁다.

        

        후끈후끈한 것이 아니다. 아지랑이와 불꽃, 그리고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를 정도의 열기가 사방팔방에 즐비했다. 아마 이 맵만큼 열화상 스코프가 쓸모없는 곳은 없겠지, 하는 쓰잘데기없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화산탄을 정면으로 얻어맞아 반쯤 무너진 것도 모자라, 지하 통로를 타고 꿀럭꿀럭 새나오는 붉은 색의 용암까지. 이곳은 맵의 가장자리에 만들어진 스킬 활성화 구역이자, 동시에 터널을 타고 흐르는 용암 강과 맞닿은 건물이었다.

        

        물론 강은 일종의 선이었고, 면이라고 할 수 있는 킬존 그 자체인 용암 바다가 이 지점을 덮치기까지는 아직 상당한 시간이 남았지만.

        

        

        

       ───투두두두!

        

       ───콰아앙!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근방에 바글바글 모여들어있던 유저들은 마주치는 즉시 총을 쏘아댄다. 적어도 이 맵에서만큼은 용암은 그닥 신기하게 바라볼 만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얼굴을 박게 된다면 꽤나 흥미가 생기겠지만.

        

        아무튼, 이 시점에서의 교전은 말 그대로 눈치싸움이었다. 스킬은 활성화 구역에서만 열 수 있고, 그 말인 즉슨 아직 단 한 명도 스킬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다는 소리. 그렇기에 이 즈음의 교전은 철저히 피지컬과 개인의 센스, 그리고 운에 의존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 즈음에서 염두에 두어야만 하는 새로운 변수 하나가 더 있었는데, 바로 화재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화재 자체는 그다지 신경쓸 필요가 없었지만, 안 그래도 잘 보이지 않는 독성 연기들이 문제였다.

        

        그리하여 많은 이들은 대부분 산소통과 방독면을 지참하고 다닌다.

        

        물론 하나를 착용하면 다른 하나를 잃어버릴 각오는 해야만 했다.

        

        

        

       “커흑-!”

        

        

        

        방독면이나 열반사재 재질로 이뤄진 마스크 등은 해당 영역에서는 굉장한 성능을 발휘했지만, 그만큼 주변 시야가 좁아진다는 상당한 디메리트를 안게 되었다.

        

        이 자리에 올라올만한 유저들이라면 그러한 디스어드밴티지 정도는 어느 정도 감안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자신보다 실력이 낮은 사람들을 기준으로 할 때. 한 나라를 대표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가진 타 유저들과 정면에서 부딪힌다면 그 결과는 대강 예측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는 그냥 적당히 숨을 참거나, 본격적인 상태이상에 빠지기 전에 해결하면 된다는 마인드였다.

        

        

        섬광탄을 면상에 집어던지고, 수류탄 하나를 적절한 곳에 사용하면 상대의 시각과 청각을 완전히 진탕시킬 수 있다. 이제는 꽤나 스탠다드한 전법이었지만 발동 속도를 극한까지 압축하고, 타이밍을 정교하게 조절하는 것만으로 이는 가불기가 되어 적에게 쏟아질 것이다.

        

        십수 발의 .300 AAC BLK 탄환이 실드를 두들기더니, 이윽고 그것을 완전히 깨부수고는 방탄복 플레이트를 꿰뚫는다. 결국 CQB는 속도, 속도, 그리고 속도만이 모든 것이었다. 어느 시점까지 파들어가면 독특하다 못해 기상천외한 전술들 대신 누가 더 기민하게 움직이느냐가 승패를 갈랐다.

        

        물론 스킬이 생겨난다면 선택 가능한 전술의 폭은 미친듯이 넓어지지만.

        

        

        

       “앞으로 3명 정도 남았나….”

        

        

        

        그 누구도 듣지 못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사실 적이 지면에 발을 내딛으며 나는 자그마한 진동만으로 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대략적으로 가늠할 수 있긴 했다. 그래도 이건 게임이기도 하고, 되도록이면 그런 부가적인 신체기능에 의존하기는 조금 그랬기에 – 여하튼, 다시금 주변을 돌며 정찰을 시도했다.

        

        주변에 존재하는 유저들의 숫자가 두세 명 가량으로 줄어들면 기회를 틈타 스킬을 활성화할 수도 있었다. 물론 확률과 운에 모든 걸 맡기고 도박을 거는 건 내 스타일도 아닐 뿐더러 전혀 좋은 생각이 아니었기 때문에, 구태여 할 이유가 없었다.

        

        망가진 자동차에서 뛰어내려 적 차량 위에 탑승한 후, 시속 50~60km로 달리는 자동차의 유리를 깨고 공격을 가해 로비로 사출시킨 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이 있는 방법이었기에 시행한 것뿐이었고.

        

        아무튼.

        

        

        

       “….”

        

        

        

        주변을 몇 번 돌면서 상황을 확인했다. 구조 자체는 상당히 간단했지만 위로 올라가는 길은 한정적이었고, 계단 자체도 제대로 주변이 막혀있거나 한 길이 아니라 사방이 트여있는 곳이기에, 섣불리 올라갔다간 등짝이든 복부에든 총알을 얻어맞겠지.

        

        그렇다고 해서 사방팔방에 널려있는 금속 비계와 임시 부설 계단으로 올라가기도 좀 그런 것이, 군홧발이 맞닿으며 소리가 사방팔방으로 퍼질 것이고, 자재들이 많아 트랩을 설치하기도 실로 간단할 것이다.

        

        요컨대,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는 그걸 실행할 충분한 힘이 있었다.

        

        

        

       “흡…!”

        

        

        

        공사 중인 채 방치된 저층 건물. 벽면의 비계와 결합한 철제 기둥을 손으로 단단히 붙잡는다. 용암이 건물 1층으로 짓쳐들고 있었기 때문에 기둥은 상당히 뜨거웠다. 아마 지금으로부터 몇 분만 지나도 손으로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달궈지겠지.

        

        그것을 붙잡고 당긴다. 포즈는 나름 엉성한 것처럼 보였지만 장구류 등등을 포함하여 200kg 후반대의 내 몸을 위로 끌어올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순식간에 기둥을 타고 3층 외벽을 수직으로 가로질렀다.

        

        3층 수평 기둥에 발을 댄 채, 공사 현장을 가리기 위해 펄럭거리는 천을 조심스럽게 뜯고 상황을 살폈다. 안전지대를 구축한 채 기민한 움직임으로 주변을 살피는 유저 한 명이 보였다. 드물게도 트로피 시스템 – 요컨대 투척물을 요격 가능한 휴대용 ADS까지 설치해둔 걸 보니 아주 단단히 작정한 듯했다.

        

        물론 이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지만.

        

        그리하여 선결해야만 하는 고민이 하나가 생겨난다.

        

        

        

       ‘…총을 사용해야 하는가? 혹은 쓰지 말아야 하는가?’

        

        

        

        또는 만약 총을 사용한다면, 최소한의 시간으로 제압할 수 있는가?

        

        MCX 래틀러는 충분히 훌륭한 총이었지만, 이카루스 오퍼레이터들은 실드라는 기술이 있었다.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생존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선형적으로 발전해나가는 현대 테크놀로지 위로 첨탑처럼 튀어나온 산물이었다.

        

        한 탄창 정도면 충분히 실드를 부수고 HP를 깎아낼 수 있겠지만, 탄환을 전부 맞춰야만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음은 충분히 사방팔방에 울려퍼질 확률이 높았다. 요컨대 이번에는 신속성과 정확성 중에서 전자를 선택해야만 할 때란 소리였다.

        

        움직이는 도중 장구류끼리 부딪혀서 소리가 나지 않도록 결속을 조정한 후, 다용도 파우치에 넣어놓았던 택티컬 스파이크 해머를 들고는 아주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이번에는 해머헤드가 아니라 뒤쪽의 블레이드 부분을 사용할 것이었다.

        

        어느 맵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EMP 수류탄을 작동시키고, 그것을 왼손에 쥔 채 터뜨린다.

        

        고작 3초밖에 실드가 다운되지 않기에 똥쓰레기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실로 유용했다.

        

        

        그리고-

        

        

        

       ───쿠웅!

        

        

        

        묵직하지만, 총소리에 비하면 극히 작은 소음.

        

        순간적인 가속을 통해 적을 들이받자마자 컥 하는 소리를 내며 폐부의 공기를 몽땅 토해낸다. 실드로는 막을 수 없는 유형의 충격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 끝은 아니었고, 바닥에 철푸덕 엎어지기도 전에 망치 뒷쪽의 날이 턱과 입천장을 뚫고 들어갔다.

        

        그 상태에서 바닥과 얼굴이 센티미터 단위로 가까워진다. 다시 말해 바닥에 털썩 엎어졌단 소리였다. 발버둥치려는 적의 몸을 발로 밟아 누른 뒤 그대로 오른손을 위에서 아래로 휘두른다. 깔끔한 반원을 그리며 휘둘러진 해머 뒷편의 블레이드가 경추를 깔끔하게 관통하는 순간 몸이 부르르 떨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적은 그렇게 로비로 사출되고 말았다.

        

        

        

       “…후.”

        

        

        

        확실히 총보다는 근접 공격이 확실했다. 적이 죽는 것을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었으니까 – 물론 그걸 즐긴다는 건 절대로 아니었다. 오히려 확인사살의 용도에 가까우면 가까웠지.

        

        아무튼, 이 즈음에서 스킬 활성화 구역 인근은 대체로 정리가 완료된 모양이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수확도 있었고.

        

        

        

       ───철컥!

        

        

        

        트로피 시스템을 고이 접어 가방 안에 넣어놓은 뒤,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근방에 단 한 명만 남았다는 것은 설령 스킬을 활성화하던 와중 총알을 얻어맞아도 반격 가능하고, 덤으로 적의 위치까지 동시에 파악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 그리고 적의 위치를 알게 되면, 나는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트래킹에 임할 자신이 있었고.

        

        리스크가 현저히 줄어드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경기는 아직 더 많은 선수들의 목숨을 원하고 있었다.

        

        

        

       

        

        

        

        

        

        

        

        

        

        

        

        

        

        

        

       “음….”

        

        

        

        누군가가 나 – 다이스 – 를 따라오는 것 같은데.

        

        그리 생각하면서 계속해서 주변을 정찰했지만, 특별하게 눈에 띄는 것은 없다. 오로지 감만으로 도출된 결론이었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무시할 수도 없었다. 스스로 말하기 부끄러웠지만 내 판단 기준과 감은 한국 대표팀 중에서도 가혹하고 엄격하며 날카로운 편이었고, 이는 유진의 커리큘럼으로 한층 더 증강되었으니.

        

        바로 그로부터 나온 결론이었다. 숙련된 트래커가 쫓아오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확신은 가지 않았지만, 다른 유저와 교전하던 와중 있을 수 없는 방향에서부터 날아온 탄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두 번이면 근처의 제3자려나 했지만 그것이 한 번 더 반복되면 이야기가 좀 다른 법이었다.

        

        거리는 아마 200미터 가량. 이 이상 벌어지지도 않고 가까워지지도 않는다. 접근하여 처리하고자 했음에도 불구하고 모종의 수단을 통해 그 자신의 위치를 가리고, 동시에 이쪽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한다.

        

        그나마 가늠한다면 은폐 펄스와 드론을 통한 휴대용 UAV 기능을 사용 중인 유저일까.

        

        

        

       “로건이 아니라 다행인데….”

        

        

        

        물론 그렇게 말은 했지만, 그 사람이 의도적으로 자신을 따라올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차라리 가다가 우연하게 만난 김에 뒤지게 얻어맞는 편이 더 개연성 있겠지.

        

        그리 생각하며 지도를 켰다. 반경 200미터를 표시한 뒤 사격각이 나오는 곳을 찾는다. 다년간의 경험과 맵 분석 실력의 상승이 시너지를 일으킨 덕에 대략적인 위치를 도출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도리어 문제 투성이였지.

        

        우선 적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 좀 더 고지대에 있었단 점이었다. 거기까지 올라가는 길은 구불구불한 비탈과 경사면으로 되어있었기에 더더욱 골치가 아팠고. 게다가 뒤에서는 지형이 수몰되고 있었다. 이 또한 다른 형태의 킬존이었다. 아마 이 마을의 지하를 관통하는 통로에서는 물이 들어차고 있겠지.

        

        요컨대 어지간하면 저쪽 길을 통과해야했단 소리였다. 주변에는 차량도 없었기에 걸어서 도망치다가는 아마 저격총에 신나게 얻어터지겠지.

        

        

        

       “실력은 더 늘었는데, 왜 작년에 비해서 더 어려워진 것 같지?”

        

        

        

        어쩌겠는가, 세상이 원래 그런 것을. 아니면 반대로 작년의 자신은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죽어서 그런 걸지도 몰랐다.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처했는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했다고 봐도 될 테니.

        

        아무튼, 내 관심사는 저 모기처럼 달라붙는 유저를 어떻게 떼어낼지였다. 사실상 지금은 모기가 아니라 수문장이었지만, 어쨌든 거기서 거기였다. 이 게임에는 전기 파리채도 모기향도 없었으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 가 아니라.

        

        잠깐.

        

        모기향?

        

        

        

       ‘모기향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예컨대 이런 뜻이었다.

        

        아타카이아 화산섬의 모든 맵, 그리고 모든 도시는 지하 통로로 연결되어있다. 물론 사람이 걸어다닐 수 있도록 뚫어놓은 통로는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화산 폭발 시 용암의 분출을 어느 정도 줄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화산 분출구와 이어지는 길을 만들어 용암을 바다로 흘러가게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일단 게임 툴팁의 설명은 그러했으나, 실질적으로는 용암만으로는 킬존의 형성이 느리기 때문에, 일부러 길을 막아두거나 하여 외곽의 도시 하수도와 지하철 통로 등을 통해 용암을 분출시켜 원형의 킬존을 만들기 위한 장치였다.

        

        여하간,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섬이 수몰되며 바닷물이 역으로 통로에 유입된다는 점이었다. 흐르는 용암에 바닷물이 닿는 순간 미세한 유리조각이 섞인 염소 가스가 뭉게뭉게 피어오를 것이다. 게다가 적이 있는 지역은 고지대라 가스가 빠져나가기도 충분했고.

        

        잘하면 적을 질식시켜 죽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가스를 통해 UAV를 교란시킨 사이 탈출에 필요한 충분한 시간을 벌 수 있겠지.

        

        그렇다면 목표는 도시에 하나씩 있는 지하통로 관제실이었다.

        

        

        이번에 내가 선택한 스킬은 두 개. 하나는 화학물질 – 나나이트 발사기였고, 두 번째는 홀로그램 미끼였다. 다행히 후자로 적을 대략적으로 속일 수 있을 듯했다.

        

        미끼를 바닥에 던지고 난 뒤 황급히 이동했다. 이제부터는 시간이 생명이었다. 어차피 지금부터 가는 루트와 구역은 해당 고지대에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은엄폐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AAC 허니뱃저 한 자루만을 들고 지하 통로를 내려가자 스산한 바람이 피부를 스쳐지나갔다.

        

        주변을 철저히 확인했지만, 아무래도 수몰이 얼마 남지 않은 외곽 마을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었다. 기껏해야 AI 적 몇 마리 정도. 물론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바로 머리에 바람구멍을 내주었고, 그다지 신경쓰지조차 않은 채 관제시설 내부로 들어섰다.

        

        

        

       “어으, 복잡해라.”

        

        

        

        그러나 손댈만한 것들은 정해져있었다.

        

        정면에 떠있는 홀로그램 패널을 통해 어느 게이트가 열려있고 닫혀있는지, 그리고 용암이 어디에 정체되어있는지를 확인 가능했다. 현재 내 위치는 이미 표시되어 있었으니, 빠르게 게이트를 열 준비를 했다.

        

        하나, 둘, 셋…용암을 도달시키고 싶은 지점을 표시하면 어느 문을 열고 닫아야 하는지가 자동으로 표시되는 시스템이었고, 즉각 허가를 내렸다. 여러 개의 문에 동시다발적으로 개방 신호를 보낸다. 앞으로 10초 동안 어떤 반대 신호가 없으면 게이트는 자동으로 열릴 것이었다.

        

        이제는 바닷물을 가둬두고 있는 문을 열 차례였다. 물론 배출 통로로부터 모르는 액체가 유입되었기에 문이 열릴 리는 없었지만, 쟁여두었던 나나이트를 문 곳곳에 설치한 뒤 마지막 한 발을 문의 잠금장치에 발사. 쨍그랑 하는 소리가 들려오며 불길한 소음과 물줄기가 뿜어지는 가운데, 관제실로 되돌아가 삼중 잠금문을 폐쇄.

        

        그리고 나나이트를 작동시키는 순간,

        

        

        

       ───쿠우웅!

        

        

        

        묵직한 소음과 함께 문이 통째로 뜯겨나가며 물이 서서히 차오른다.

        

        물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넘실대며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이어진 통로 안쪽을 향해 빨려들어갔고, 때마침 저 위에서도 용암이 빠르게 흘러내려오고 있다. 용암이 외부 공기에 식지 않고 터널에 의해 단열되며 계속해서 유동성 있는 액체 상태를 유지했기 때문에, 미리 표시한 포인트까지 도착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로서 내 할 일은 다 했다. 한 벌의 방호복을 챙긴 채 관제실을 빠져나가 위로 올라오자, 또다시 소름끼치는 적막만이 나를 감싼다. 미끼를 자폭시키고는 근방에 있는 건물 하나에 들어가 고지대를 관측하며 계속해서 기다렸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그러면 그렇지.”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새하얀 연기가 고지대의 타운에서 넘실댄다.

        

        그제야 밖으로 나가 무소음 4륜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고, 그 사이 저공 비행을 유지하던 UAV가 부식되어 추락했다.

        

        상황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경고 : 유독성 산성 가스 감지. 불순물 농도 치명적. 1분 이상 호흡 시 호흡계에 치명적인 손상 발생 확률 99.9996%. 해당 위치에서 즉시 퇴출을 권고합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귀신이 곡할 노릇. 도대체 어떤 경위로 이딴 일이 발생했는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상황은 명백했다. 지금 당장 방독면을 쓰지 않으면 1분 안에 질식사할 예정이란 경고문은 실로 섬뜩했기에, 그는 챙겨놓았던 마스크를 황급히 둘러쓰고 숨을 내쉬었다.

        

        당연히 UAV가 추락한 시점부터 주변 정찰은 꿈도 꿀 수 없었고.

        

        마스크로는 가릴 수 없는 피부가 살짝 가렵기 시작했다. 물론 가상현실 내였기에 통각 차단이 있어 살짝 간지러운 정도만이 끝이었지만, 현실이었더라면 아마 상당히 고통스러웠겠지. 피부에 염소 가스가 닿으며 발생한 작용이었다.

        

        황급히 바깥으로 나갔지만, 주변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하수도를 비롯한 사방팔방에서 뿜어져나오는 백색의 연기 때문에 앞조차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원활한 퇴출을 위해 주차해두었던 버기를 간신히 찾아, 운전석의 문을 열고 황급히 의자에 앉아 시동을 건 뒤 액셀을 밟았다. 부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바퀴가 힘차게 회전하는 사이, 잘 보이지 않는 앞을 필사적으로 확인하면서 조향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4초나 지났을까.

        

        

        

       ───콰아아앙!

        

        

        

       “커헉!”

        

        

        

        등 뒤에서부터 발생한 폭발.

        

        차량은 말 그대로 불구덩이가 되었으며, 그는 단번에 실드가 박살난 채 지면을 처참하게 나뒹굴었다. 마스크는 진즉에 박살났기에 유독성 가스가 스멀스멀 호흡기로 짓쳐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 짙은 백색 연기가 걷히며 방독면을 쓴 채 온 몸을 방호복으로 감싼 한 명의 인영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쩐지 그녀가 히죽 웃는 것만 같았다.

        

        

        총구가 들어올려졌다.

        

        그녀는 그 직전 몇 마디를 웅얼거리더니, 검지를 깔짝였다.

        

        그렇게 그의 파이널 챔피언십은 끝을 맞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깨스깨스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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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귀환했지만, 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Just the fact that I came back couldn’t be the end of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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