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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0

       *** ***

         

       요새 상화루의 분위기는 딱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었다.

         

       애매함.

         

       이설이 암룡문으로 불려 들어갈 때만 해도 신참들과 이설의 수하들은 신이 나 있었다. 신참들은 암룡문도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품었고 기존의 수하들도 이설이 소문주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에 기대감을 품었다.

         

       그러나 암룡문에서 돌아온 이설은 화려한 보상 대신 아직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말만을 남겼다.

         

       신참들과 이설의 수하들은 암룡문 내부에서 어떤 일이 있었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그래도 기대감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다.

         

       암룡문에서 무슨 일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세운 공적이 있는데…

         

       대충 이런 느낌으로 희망을 끈을 놓지 못하면서도 동시에 이설의 태도에 불안감을 느끼는 신참들과 이설의 수하들.

         

       나는 그런 어수선한 분위기를 뚫고 2층으로 올라갔다.

         

       혁기린과 다과를 나누고 있던 이설이 나를 반가이 맞이했다.

         

       “어서 오거라. 용지맹.”

         

       이설은 나에게 암룡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소상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제 자식들에게 딸랑 무인 스무 명을 던져주고 속령파에 밀어 넣을 때부터 알아보았지만 흑패 독고영천은 정말로 전형적인 사파 무인 그 자체였다.

         

       어디 일류 무인 스무 명을 가지고 후계자 구도를 굳히는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겠는가.

         

       빈약한 지원은 결국 후계자 자리를 원한다면 자신의 힘이건 외부의 힘이건 투자해서 성과를 내라는 출혈 강요였던 셈이다.

         

       손 안대고 코 풀기.

         

       사파의 거두답게 힘과 직위를 적절하게 이용해서 이득을 짜내는 수완이 아주 능숙하다고 해야겠지.

         

       도의적으로는 어떨까 싶지만 애초에 도의를 지키면 사파라 불리겠는가?

         

       공을 세운 이설을 지금과 같이 대한 것도 그렇다.

         

       정파에서는 애초에 이런 걸 공으로 취급해주지도 않겠지만 아무튼 공을 세웠다면 그만큼 보상을 해 주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독고영천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공적을 늘어놓지 않고 시치미를 뗀 이설을 괘씸하게 여겨 공조차 인정해주지 않은 채 유야무야 자리를 파해버렸다.

         

       정말로 이설의 태도에 괘씸함을 느낀 것인지 아니면 이번 일로 소가주 자리를 내주기에는 이득이 부족하다고 여겼는지는 알 수 없는 문제지만 결국 지금 드러난 결과만 보면 이설은 공적을 세웠고 독고영천은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음에도 아무런 보상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게 사파고 강자존이라는 단어의 정체다.

         

       뭔가 있어 보이게 표현한 것 뿐, 그냥 힘센 놈이 제 마음대로 하겠다는 거지 뭐.

         

       나는 그런 이설을 보며 물었다.

         

       “생각이 바뀌셨습니까?”

         

       “그럴 리가 있겠느냐?”

         

       나는 암룡문에서 있었던 일을 듣고 나서 이설에게 제안했다. 결국 잔뜩 기대하고 있는 신참들이나 이설의 수하들 역시 속 시원한 결론이 필요하니, 내 계책을 따르다가 이렇게 일이 꼬여버렸다 말하자고.

         

       그리고 이설은 그런 내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게 벌써 며칠이 지난 이야기였다.

         

       “네 조언을 받아들인 것은 나이니 지금 사태에 대한 책임 역시 나에게 있다 하지 않았느냐.”

         

       수하를 감싸고 본인이 결과를 책임지겠다는 훌륭한 인품을 보이는 이설.

         

       나는 그런 이설의 모습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정파의 인물이었다면 저런 인품은 하나의 무기였겠지만 이설은 사파인이었다.

         

       제 밑에 있는 사람이나 다른 약자들을 잘 뽑아먹고, 자신보다 강한 자나 상급자에게는 덜 뽑혀 먹히도록 요령 좋게 온몸을 비트는 것이 사파에서 성공하는 법이었다.

         

       그런 의미로 내가 대신 욕을 들어 먹겠노라고 방패를 자처했음에도 한사코 거절하는 이설은 사파인으로서는 실격이라고 봐야 하려나.

         

       이설의 완고한 태도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주군, 응조입니다. 속히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

         

       “말해보도록.”

         

       “옥계에 황군이 나타났다 합니다.”

         

       “뭐라…?”

         

       나와 혁기린의 눈이 마주쳤다. 드디어 기다리던 소식이 들어왔군. 혁기린이 눈짓으로 할 말이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저와 사저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편히 말씀 나누시지요.”

         

       “음. 아니 같이…알았다. 후에 같이 이야기 하지.”

         

       우선은 응조의 보고를 받는 것이 먼저라 생각한 이설이 우리 둘을 놓아주었다.

         

       “사제, 사제에게 할 말이 있다네.”

         

       “무엇입니까? 사저?”

         

       “사제가…음…‘그곳’에서 기른 자들 말일세.”

         

       그곳이라면 낙양이겠지. 낙양에서 기른 인재라면 십이번대 훈련생들인가.

         

       “그들 말입니까?”

         

       “그렇네. 그들 중 몇몇에게는 본가 차원에서 지원을 해 주었다네.”

         

       “오, 그랬습니까?”

         

       그 녀석들이 활약하는 시기가 좀 빨라지려나?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십이번대 녀석들이야 대부분 쓸만한 놈들인지라 근황을 알게 되면 옥수수처럼 부려먹을 각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이설과 함께 있었던 자리를 깨면서까지 전해야 할 긴급한 소식은 아니었다.

         

       외부 소식을 물고 온 응조의 말을 듣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 같은데.

         

       “사저, 그래서…”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였습니까?

         

       그렇게 되물으려고 했지만 혁기린의 고개가 입구 쪽으로 돌아갔다. 반사적으로 혁기린이 무언가를 감지했다고 느낀 나 역시 오감을 강화시켰다.

         

       척! 척! 척! 척!

         

       “….발소리?”

         

       한두 사람이 아니다. 못해도 오십 이상, 아니 백 명은 훌쩍 넘는 이들의 발걸음 소리. 이설의 수하들은 물론이고 신참들까지 깜짝 놀라 입구에 몰려들었다.

         

       “전체 차렷!”

         

       착! 착!

         

       ….뭐지 이 익숙한 목소리는? 기시감이 드는 이 대사는 또 뭐고?

         

       나는 나도 모르게 혁기린 쪽을 바라보았다. 혁기린은 이미 자신의 몸이 보이지 않도록 엄폐를 한 상황이었다. 나와 시선을 마주친 혁기린은 장난을 치다가 걸린 어린아이처럼 어깨를 움츠리더니 배시시 웃으며 혀를 쏙 내밀었다.

         

       “진입!”

         

       드르륵! 쾅!

         

       우르르르르르!!!

         

       나는 입을 떠억 벌렸다. 별채로 쏟아져 들어오는 국방색의 물결들! 손에는 추에 가까운 비살상 비도를 들고 팔각모를 입은 이들이 입구에서부터 쏟아져 들어왔다.

         

       “웬! 놈들이냐!”

         

       “이, 이놈들 뭐야!”

         

       갑자기 들이닥친 수많은 팔각모들을 보며 이설의 수하들과 신참들이 당황해서 무기를 뽑아들었다.

         

       “황군의 적귀대의 행사다!”

         

       “공격을 하는 자 반역으로 간주하겠다!”

         

        반역을 입에 담는 팔각모들의 살벌한 시선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굳어버린 이설의 수하들과 신참들.

         

       소강상태가 되었다고 판단했는지 팔각모들이 입구의 길을 텄다.

         

       그리고 그렇게 열린 길로 걸어 들어오는 붉은 팔각모.

         

       …뒷짐을 진 채 한껏 여유로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 강추모루가 눈에 들어왔다.

         

       아니, 왜 니가 여기서 나와?

         

       어이가 없어서 다시 혁기린을 돌아보았는데 이미 혁기린은 자리에 없었다. 당황해 주변을 둘러보는데 혁기린의 전음성이 들려왔다.

         

       [강추모루는 제가 여기 있는 것을 모릅니다.]

         

       혁기린이 자신의 방문을 살짝 열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괜히 절 보자마자 황녀님이니 뭐니 하면 사태가 돌이킬 수 없으니 전 숨어있겠습니다. 강추모루 군관에게는 잘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니 뭐요?

         

       졸지에 강추모루에 대한 대응을 떠맡게 된 내가 황당함에 입을 쩍 벌렸지만 혁기린은 내 얼굴을 보며 키득거리더니.

         

       [마음 고생 시킨 벌입니다.]

       

       그런 전음을 남기고는 방문을 닫아버렸다.

         

       내가 뭘 어쨌다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에 입을 뻐끔거리고 있자니.

         

       “이 무슨 소란이냐!”

         

       이설까지 나타났다.

         

       “본관은 적귀대를 이끌고 있는 적귀대장, 강추모루라고 하오.”

         

       “….암룡문의 독고이설입니다. 이 무슨 소란인지요? 군이라 하여 남의 터전에 이리 함부로 들어오시다니요!”

         

       이설이 날카로운 기세를 발했지만 강추모루 역시 꿈쩍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본관은 역적 도당인 서화파를 추포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소.”

         

       “여, 역적…?”

         

       신참들이 기겁했고 이설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방금 전에 응조의 입으로 옥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듣고 있었을 이설은 지금의 사태를 파악한 모양이다.

         

       “고작해야 잡배 무리에게 역적이라니 과장이 심하시군요!”

         

       “뭐, 과장인지 아닌지는 수사해 보면 알 터!”

         

       강추모루가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그야말로 자신의 우위를 확신하면서 상대를 비웃는 표정이었다.

         

       “아무튼 본관은 옥계에서 일어난 사태의 시발점인 서화파와 대암흑파 놈들을 잡아들이러 왔소. 그래. 고작해야 이런 기루 별관에 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니 수상하기 짝이 없군.”

         

       “함부로 말씀하지 마시죠. 증거도 없이 사람을 죄인 취급하는 것이 관의 법도입니까?”

         

       “증거라. 하하…이제부터 찾으면 그만이지 않겠소? 얼굴이 창백해 보이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니로군. 너인가? 너?”

         

       강추모루의 손가락질에 지적당한 신입들이 흠칫했다. 그 모습을 보며 이설은 입술을 짓씹었다. 옥계의 소식과 함께 들이닥친 황군이다. 손발을 써 보기도 전에 본진을 급습당한 상황이니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라 할 수 있었다.

         

       이 급습을 계획한 강추모루는 그 누구보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을 터.

         

       그렇기에 강추모루는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고 있었다.

         

       “아니면 이층에 서 있는 저놈……..??”

         

       안색이 퍼래진 신입들을 삿대질하며 기세를 올리던 강추모루가 나에게 삿대질을 하다가 행동을 멈추었다.

         

       “…교…교…”

         

       나는 황급히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강추모루의 입에서 교관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위장 신분은 박살난다. 초절정 고수인 이설과 마주하고 있는 이 상태에서 강추모루에게 전음을 보내는 것도 위험이 있었다.

         

       강추모루는 그래도 최소한의 눈치는 있는 놈! 지금 이 순간 교관이라는 단어만 입 바깥으로 나오는 것을 막으면 충분히 대화를 도모할 수 있었다.

         

       “헙!”

         

       다행히 고개를 모로 꼬는 동작에 반응한 강추모루. 갑자기 바른 자세를 취한 채 입을 다물어버린 강추모루에게 의문의 시선이 박혀들었다.

         

       “심문이라면 응하겠소.”

         

       내가 입을 열자 퍼뜩 정신을 차린 듯한 강추모루. 강추모루는 자신의 뺨을 문지르고는 한참이나 나를 바라보다가 안색을 회복하고는 다시 이전과 같은 태도로 소리를 높혔다.

         

       “적귀대!”

         

       “악!”

         

       “곤명에서는 이 주루를 거점 삼아 움직인다! 주루에 협조 요청을 하고 주둔 준비를 하도록!”

         

       “아악!”

         

       “그리고 너…! 아, 아니! 그대! 심문에 응하겠다고 했으니 따라 나오도록!”

         

       야, 이 자식아 똑바로 안 해? 기세등등하게 삿대질을 하던 놈이 갑자기 공손하게 손바닥을 펼치니까 애들이 이상하게 보잖아!

         

       강추모루가 황급히 주루 별채를 나섰고 적귀대원들이 나를 연행하기 위해 이층으로 올라왔다.

         

       그러나 그들의 발걸음은 멈출 수밖에 없었으니.

         

       이설의 몸에서 한순간 폭사된 강렬한 경 때문이었다.

         

       “감히 내 앞에서 내 수하를…!”

         

       그야말로 분노가 형상화 된 듯한 경을 줄기줄기 내뿜는 이설! 적귀대원들이 놀라 비도의 투척자세를 잡을 때 내가 재빨리 이설과 적귀대원들 사이를 막아섰다.

         

       “괜찮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저들이 너를 잡아가는 것을 보고만 있으라는 거냐!”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아무 일도 없다니! 그럴 리가 있느냐!”

         

       이설이 격정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괜찮습니다. 저를 믿으시지요. 아무 일도 없을 것입니다.”

         

       내 차분한 시선을 마주한 이설은 주먹을 쥐고 입술을 깨물며 분기를 다스리기 위해 노력했다. 간신히 기세를 갈무리한 이설은 나를 애타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이설이 성큼 다가와 내 손을 꽉 쥐었다.

         

       “정말, 정말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는 것이냐? 그렇지 않다면 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예. 아무 일도 없을 것입니다.”

         

       내 손을 쥔 이설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섬섬옥수 그 자체인 손이었지만 역시 초절정의 무인답게 손바닥은 단련의 흔적이 역력했다. 겉은 부드럽고 바닥은 단단한 이질적인 감촉을 느끼고 있자니…스르르 그 손이 빠져나갔다.

         

       “…믿겠다. 정말로 믿겠다 용지맹. 그러니…내 믿음을 배신하지 말아다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설이 한 발자국 물러서자 팔각모를 쓴 적귀대원들이 나를 포위했다. 적귀대원들이 자신의 팔을 끼워 내 팔을 봉쇄하는 것을 보고 이설이 흠칫하기는 했지만 그 이상의 행동은 없었다.

         

       그렇게 상화루 본채로 끌려온 나.

         

       “대장님은?”

         

       “주루의 주인에게 협조를 요청하고 계신다. 잠시 기다리도록.”

         

       그 말을 듣자마자 내 양팔을 잡고 있던 적귀대원들이 나를 거칠게 무릎 꿇렸다. 저항하려면 저항할 수 있었지만 딱히 그럴 필요성까지는 느껴지지 않아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퍽!

         

       한 녀석이 내 머리를 거칠게 땅바닥에다 박았다. 아니 이 새끼들아 이거 과잉 진압 아니냐? 아까 이설도 막아 줬는데 왜 이렇게 거지같이 굴어!

         

       “야, 아까 이 녀석한테 그 미녀가 절절한 시선 보내는 거 봤냐?”

         

       “와, 진짜 나는 머리털 나고 저렇게 예쁜 여자는 처음 봤다.”

         

       “빌어먹을 자식! 누군 역적 놈들 때문에 이렇게 뺑이나 치고 있는데 이런 역적 놈은 그런 미녀랑 노닥거리고 있고 말이야!”

         

       “개자식! 야 이거 팔 더 꺾어!”

         

       감정이 실린 동작으로 내 팔을 거칠게 꺾고 포박을 진행하는 적귀대원 놈들.

         

       “이 뭐하는 짓들이오? 순순히 협조하고 있건만 사람을 이리 다루다니.”

         

       “이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야! 더 세게 묶어!”

         

       “아직도 그 미녀 고수가 너를 보호해 주는 줄 아느냐 이놈! 생각하니까 더 부럽, 아니 괘씸해!”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강추모루가 적귀대 녀석들의 군기를 엄정하게 유지하고 있기는 한 모양이다.

         

       살짝 감정 섞인 대우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현 시대상을 생각해보면 적귀대는 엄정하게 규율을 지키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이런 압송 과정에서 상대를 고분고분하게 만든다는 미명하에 인격모독이나 욕설, 구타를 퍼붓는 게 일반적이 세태니까.

         

       “대장께서 심문을 시작하신단다! 녀석을 들여라!”

         

       나를 포박한 녀석들이 우르르 몰려와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내가 끌려간 곳은 귀빈실 같은 곳이었다. 강추모루는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무게를 잡고 있었다.

         

       “문을 닫고 물러나 주시게.”

         

       “예, 예!”

         

       주루에서 일하는 것으로 보이는 시비가 황급히 귀빈실의 문을 닫고 사라졌다. 고급 주루의 귀빈실이라 그런지 문을 닫고나자 외부의 소음이 차단되는 것이 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바깥에서 알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나를 압송해 온 녀석 중 하나가 내 오금을 걷어찼다.

         

       퍽!

         

       “무릎 꿇어!”

         

       살짝 비틀거리긴 했지만 버텼다. 아까야 순순히 제압당해 주었지만 강추모루 앞에서 무릎을 꿇기에는 좀 그랬으니까.

         

       “이놈이…!”

         

       “그만! 그만!! 멈춰라!”

         

       강추모루의 제지에 적귀대원들이 차렷 자세를 취했다. 문이 닫히기 전까지 근엄하게 무게를 잡고 있던 강추모루가 재빨리 품에서 비도를 꺼내 내 포박을 풀어냈다.

         

       적귀대원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야 자신들의 대장이 다급한 표정으로 내 포박을 풀어주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겠지.

         

       “교관님을 뵙습니다!”

         

       강추모루가 경례를 올리며 말했다. 나는 적귀대원들이 너무 세게 묶어서 빨간 자국이 남은 손목을 만지작거리며 강추모루에게 말했다.

         

       “적귀대장, 본인은 현재 아무 관직도 없는 야인에 불과하네. 황군 부대장인 자네가 이리 경례를 올릴 대상이 아닐세.”

         

       “무슨 말씀이십니까! 교관님은 관직 유무를 떠나서 저희 십이 번대의 영원한 교관님이십니다!”

         

       …이 자식 이거 왜 이래.

         

       사실 나는 살짝 쫄아 있었다.

         

       왜.

         

       한국에서도 간부한테 복수하던 병사들이 있듯이 한때 교관이었지만 지금은 야인에 불과한 나에게 복수하려고 벼르고 있는 교육생이 있다고 해도 이상할 일은 아니었으니까.

         

       그런 악감정이 없더라도 나도 금의위를 나왔고 강추모루도 금의위를 나와 황군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강추모루 입장에서는 굳이 자신에게 불리한 교관과 훈련생이라는 관계를 자처할 필요가 없었다.

         

       “허허, 고작해야 잠깐 자네들을 가르쳤을 뿐 아닌가.”

         

       “…교관님…!”

         

       강추모루의 눈을 바라본 나는 나도 모르게 흠칫했다. 그야말로 격한 감동의 물결이 넘실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치미 떼지 마십시오! 교관님! 동기들에게 다 들었습니다!”

         

       “…뭐?”

         

       “재상해가 전우회를 조직해서 십이 번대 출신들에게 소식을 공유해 주었습니다! 조가주와 제가 떠난 뒤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저희 훈련생들이 각자의 날개를 펼 수 있도록 교관직조차 포기하고 야인으로 돌아가셨다는 사실 말입니다!”

         

       야, 니들 전우회도 만들었어?

         

       어이가 없어서 입을 쩍 벌리고 있자니 강추모루가 절절한 어조로 말하며 붉은 팔각모를 꾹 쥐었다.

         

       “이 팔각모! 이 붉은 옷! 어쩐지 너무 쉽게 넘겨주신다 싶었습니다! 교관님께서 이 붉은 옷과 팔각모를 저에게 넘겨 주신 것이 바로 처음부터 저희를 위해 희생할 각오를 했다는 결정적인 증거! 이 강추모루와 십이 번대 훈련생들이 어찌 그 은혜를 잊겠습니까!”

         

       강추모루가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절절한 눈으로 소리 높여 외쳤다.

         

       “교관님은! 십이 번대 모두의 영원한 교관님입니다! 십이 번대의 전우회 회원들은 모두 교관님을 영원히 교관님으로 모시기로 맹세했습니다!”

         

       나는 잠시 옥수수의 행실을 되살펴 보았다. 어쩐지 무조건 말끝마다 교관 교관 하더니 그냥 입에 붙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전우회에서 그런 약속을 한 모양이었다.

         

       서장에서 알뜰살뜰 부려먹히고도 끝까지 존경심을 유지하던 옥수수를 떠올린 나는 슬쩍 강추모루를 살폈다. 강추모루의 눈을 보아하니…이 녀석도 가능하려나?

         

       “정말 자네 나를 평생 교관으로 생각할 작정인가?”

         

       “물론입니다! 이 강추모루! 군인으로서 황국에 맹세하는 바입니다!”

         

       “…그렇습니까. 강추모루 교육생.”

         

       “악!”

         

       강추모루가 만면에 미소 지으며 구호를 붙였다.

         

       “그럼 엎드려.”

         

       “…예?”

         

       “엎드리라고 말했습니다. 교육생.”

         

       강추모루의 굳어 있다가 내 고개가 모로 돌아가는 것을 목격하고는…

         

       “악!”

         

       재빨리 엎드렸다.

         

       적귀대원들은 입을 떡 벌리고 그대로 굳어 있었다.

         

       “너희들은 뭐 하냐? 상사가 엎드려 있는데 그냥 그대로 서 있을 거야?”

         

       적귀대원들이 영문을 모른 채 눈을 깜빡이고 있자 강추모루가 소리를 질렀다.

         

       “뭐해 새끼들아! 당장 엎드려!”

         

       “아, 악!”

         

       우르르르르!!

         

       그제야 나를 포박해 온 적귀대원들이 우르르 쓰러졌다.

         

       나는 방금 전까지 강추모루가 앉아 있던 자리에 다리를 꼬고 앉아 등받이네 몸을 기댄 상태로 손목을 주물렀다.

         

       “어휴, 이거야 원 무저항으로 순순히 잡혔는데도 사람을 이렇게 포박하고 말이야. 손목에 남은 자국 이거 일주일은 가겠어. 그치?”

         

       흠칫.

         

       강추모루와 적귀대원들의 몸이 떨렸다. 나는 손을 주물럭거리며 생각했다. 강추모루의 쓸모는 무궁무진했다. 일단 혁기린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도 이야기 해 줘야 하고 기왕 중앙의 정예 부대라는 패가 내 손에 들어왔으니 사도련의 다른 문파들도 실컷 압박해야 하고 그 외에도 요긴하게 쓸 곳이 많았다.

         

       그러니 한번 정도는 기선제압을 해도 나쁘지 않겠지.

         

       결코 제압 과정에서 대가리가 처박혔다던가 팔이 꺾였다던가 남정네들의 추한 질투심이 섞인 포박을 당해서 앙금이 남았다던가 한 것이 아니었다.

         

       이몸 호천안.

         

       선을 넘은 것도 아니고 그냥 공무 집행 중에 감정이 살짝 섞인 대우를 받은 것 가지고 꽁할 정도로 속이 좁은 사람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런 부분을 지적하지 않으면 또 발전이 없는 것도 사실이지.

         

       날 평생 교관으로 모시기로 했다면 응당 교육생에게 가르침을 내려야 하지 않겠는가.

         

       “발 들어.”

         

       “아악!”

         

       상화루의 귀빈실에는 한동안 악 소리가 울려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악!

    이터니티!

    늦어서 죄송합니다!

    고봉밥으로 준비해 왔습니다!

    *
    [파페포포]님께서 [10코인]을 후원해 주셨네요.

    늘 재미있게 보고 있으시다니 정말 고마운 말씀이네요! 재미있는 글로 보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후원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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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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