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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0

        

         명목상으로도, 그리고 감정적으로도.

         

         ‘구조대의 역할을 수행하겠다!’ 하는 결심과 야심을 품고 스튜디오에서 뛰쳐나온 만큼 마음 같아선 한달음에 생방송 중인 촬영장까지 달려가고 싶었지만… 우리 일행의 앞에는 좀 무시하기 힘든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이 놓여있었다.

         

         하나, 총성과 고함으로 판단컨대 여기저기서 아르카디아와 경비 간의 간헐적 충돌이 일어나고 있긴 해도 너무 대놓고 가로막는 친구들을 다 쓸어버리며 전진하면 역으로 인질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둘, 여러 전투 환경을 겪으며 전에도 느껴본 바이지만. 백병전 개념이 아직 현역인 것과는 별개로 개나 소나 총을 들고 설치는 동네라 이런 구조의 실내 복도는 보통 지키는 측이 유리하고 뚫는 쪽이 더 지랄맞다.

         

         셋, 인정하기는 싫으나 아무리 열심히 훈련하고 시뮬레이션을 했어도 집단 전투에서의 내 수행 능력은…… 좀 그렇지?

         

         …그야 자기 객관화와 자기 비하 사이에는 아주 크나큰 차이가 있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안다.

         

         하지만 원활히 들고 다니며 다룰 수 있는 무장이 권총이고, 체격으로 인한 보폭의 한계가 명확한 이상 내 자리에 백발백중의 명사수를 가져다 놓는다 한들 지금 여기서 달라지는 점을 없을 거라니까??

         

         시발, 대기 구성 성분에 공식적으로 총알과 분진을 추가해도 모자랄 판에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엄폐한 자리에서 발이라도 삐끗하면 곧바로 벌집이 되는 총격전 한복판에서 대체 뭘 해야 하냐고요. 일단 나는 겁 없이 나대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안 드는 걸?

         

         탕! 타당!!

         드가가가가갓——!!

         

         “아주 개지랄이 났네 진짜!”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면 무조건 지나쳐야 하는 앞쪽 통로에서 경비 무리와 아르카디아 테러리스트들이 신나게 총질을 하고 있길래 일부러 공을 들여 T자 복도의 옆구리 쪽으로 돌아왔는데, 총기 과열이나 탄약 부족은 고려 대상이 아닌지 아직도 저러고 있다.

         

         서로 머리를 내밀기는커녕, 총을 겨냥하는 과정도 신중히 하라는 것처럼 미친듯이 오가는 견제 사격의 향연.

         

         여기서 뭔가 유의미한 변수를 만들려면 대단한 용기를 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게 아니라면 존재 자체로도 적들의 진형에 크랙을 만들 수 있는 물건을 이용하던가.

         

         팅! 드르르륵….

         

         이미 협의가 끝났는지, 전용 통신 채널로 경고를 대신했는지.

         여타 아군에 대한 예고도 없이 경비 측에서 뽑아 던진 수류탄이 빗발치는 총알의 궤적과는 달리, 물 수제비가 튕기듯 바닥을 구르는 걸로 아르카디아 쪽을 향해 미끄러져 들어간다.

         

         건물 인테리어가 많이 손상되겠지만, 따질 겨를이 아닌 지금은 훌륭한 해결책이다.

         

         아, 그러고 보니 나는 돈도 많이 벌었으면서 왜 저런 걸 적극적으로 안 쓰냐고?

         

         FPS 장르에서 수류탄 같은 고가치 부무장을 활용하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는 잘 안다만. 막상 실전을 여러 차례 겪으니까, 몸에 폭발물을 상시로 지니고 다닌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걸 배웠거든.

         

         ……괜찮다. 응, 괜찮아. 나에겐 든든한 외부 무장 담당이 있지 않나.

         

         어쨌거나 얘기가 잠깐 샜는데, 경비 측의 대응은 충분히 합격점 이상이었다.

         최대 화력으로 몰아붙여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든 다음 고화력 폭발물로 일망타진? 지극히 효율적인 전략이 아닌가.

         

         하지만 자업자득에 가까우나 애석하게도… 원래 그들이 운용하고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전략 병기가 탈취당한 시점에서 정석대로 밀어붙이는 건 영 힘들어 보였다.

         

         – 파열 수류탄 접근 확인, 직원 여러분은 유폭에 주의하여 주십시오. –

         

         왜? 신경계 전투 임플란트를 도배한 용병이나 해결사가 아닌 이상, 그리고 시야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똑같이 집중할 수 없는 인간인 이상 실수로 놓칠만했을 허를 찌르는 유탄 투척도 기계의 눈을 속이지는 못했으니까.

         

         전방을 향하고 있던 총구가 거의 수직으로 지면을 향해 꺾이더니 발사.

         

         미처 교단 놈들이 있는 깊이까지 제대로 파고들기도 전에 쾅!! 하고 터트리는 걸로 경비 드로이드는 ‘직원들’을 지키는 임무를 성실히 이행했다.

         

         아무래도 짧은 시간 안에 침투하는 작전인만큼, 장착된 인공지능을 완전히 갈아엎거나 소프트웨어를 덧씌운 건 아니고 식별 프로토콜만 슬쩍 반대로 뒤집어 놓은 모양인데….

         

         이 새끼들은 머리가 나사 빠진 정도에 비하면 꼴에 인공지능 분야 종사자가 많이 섞여 있어서 이런 건 또 잘한단 말이지.

         

         그렇지만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 인지 편항 현상의 한 종류)에 따르면 얕게 배운 놈들이 우매함의 봉우리 꼭대기에 올라있는 법이라고.

         

         폐쇄 도시 퀘스트를 수백 번 클리어하고 진화의 산증인이나 다름없는 제로와 한솥밥 먹는 내가 단언컨대, 자아를 개화한 인공지능이라고 약점이나 한계가 없는 건 아니니까 느그들은 그런 음모론에 심취하기 전에 차라리 공부나 좀 더 하지 그랬냐!

         

         – 어떻게, 제가 강습해서 돌파할까요? –

         

         “……널 의심하는 건 아닌데, 이걸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어?”

         

         – 정직하게 말씀드리면. 놈들을 섬멸하는 것까지는 문제가 아니나 교전 이후에 원활한 가동이 힘들어질 가능성이 꽤 높긴 합니다. –

         

         적들은 아직 우리가 옆으로 들어와서 분위기를 살피고 있는 걸 모른다.

         

         그러나 양측의 사선에 동시에 노출되는 건 역시 쓸데없는 손해를 보게 될 게 뻔해서 부담스러운지 제로가 드물게 달려드는 걸 망설이는 기색을 내비쳤다.

         

         아니, 사실 얘가 거슬려 하는 정확한 이유는 안다.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이 놈들이 귀찮고 손해보는 수준이라면, 정작 뒤에 쫄래쫄래 따라온 아군 비슷한 녀석이 주는 잠재적 위협에 나를 노출시키고 싶지 않다는 거겠지.

         

         적어도 내 앞에서는 싸우지 않고 그럭저럭 데면데면하게 지내나 싶더니 이런 상황이 닥치니까 또 이러네들.

         

         “…….”

         

         오랜만에 차려 입은 추적자 제복이 꽤나 안심되는지, 정자세로 편안히 손을 모으고 대기 중이던 마사나리가 내 시선을 받자마자 살짝 고개를 숙여 예의를 차렸다.

         

         허튼 생각 말라는 것처럼 견제하는 제로와 마찰을 빚기는 싫은 모양인지 약간 거리를 두고 있기는 한데… 의미 없지 이거?

         

         쟤는 저번에 보니까 추적자 중에서도 네임드 급으로 날아다니는 미친 놈… 아니, 미친 년이더만.

         

         욕하려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객관적으로 평가해서. 내가 직접 본 인물들과 순수 무력을 비교하자면 제로나 오멘조차 일대일은 무리겠고… 속도전에 대응 가능한 헬레나 정도는 어떻게 맞붙을만 한가?

         

         “그래서… 마사나리? 넌 갑자기 왜 따라왔어?”

         

         “저는 이사님께 아나스타샤님의 철저한 호위를 명 받은 몸이옵니다. 다소 거추장스럽더라도 이런 상황에 평소처럼 은밀히 경호하기는 어려우니 부디 이해해주시길.”

         

         거… 나야 십분 이해하는데요. 네가 거기서 그러고 있으면 우리 유일한 가용 전력인 제로까지 덩달아 못써먹게 된다니까 이 양반아?

         

         우째서 1+1이 0이라는 이상한 결과가 되냐고. 누군가가 마이너스인 걸 숨기고 있는 거 아니야.

         

         자, 그럼 생각해보자.

         여기를 무사히 돌파혀려면 얘를 이제 잘 써먹어야 하는데…… 어떻게?

         

         그래도 내 몸을 지키는 게 목표인 녀석이니까, 약간 ‘당장 안 도와주면 나 레고 삼켜버린다!? 저기 뛰어든다! 으아악!!’ 같은 느낌으로다가 협박하면 어쩔 수 없이 협조하려나? …자해 공갈을 좀 부끄럽긴 해도 사람 구하는 일에 그쯤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아니지, 함부로 그런 꼴을 보이면 제로가 먼저 기절초풍해서 방송국 건물에 전병력을 투하해야 한다며 호들갑 떨 것 같은데.

         

         허허허… 이 하나같이 극단적인 말썽꾸러기들 같으니라고. 괜히 중간에 낀 내 머리만 아프구나 진짜.

         

         그런데 이게 웬 일일까?

         

         0호기 드로이드 몸체가 좀 피해를 입는 한이 있더라도 몸으로 밀고 들어가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과는 가장 거리가 먼 인물이라 생각했던 이에게서 뜻밖의 해결책이 제시되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오나. 저 치들을 처리하길 원하시면 망설이실 것 없이 그저 명령만 내려 주시면 되옵니다. 저희는 에나마의 대적자를 멸하는 칼날이오니.”

         

         “여태 그게 문제였던 거 아니야…? 너는 명령대로 내 주변을 맴도는 거지만 난 더는 에나마 소속이 아니니까.”

         

         존재를 인지하고는 있지만 공식적인 커넥션은 저어얼대 없고.

         평범한 이웃이라기엔 외부 노출을 죄악처럼 여겨서 만나는 게 불가능한.

         피차 일방적으로 뭔가를 요구하기 어려운 복잡미묘한 거리감과 관계 탓에 언제나 어정쩡하게 대하는 게 기본이던 옆집 유전공학 닌자, 마사나리 감마.

         

         내가 아는 명령 체계의 한도 내에서 이 요원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단 하나뿐이다.

         

         “에다마츠 이사님께서 아나스타샤님의 편의를 최대한 봐 드리고, 그 의사를 자신의 것처럼 존중할 것을 명문화明文化하였기에. 암행 호위 역할을 변함이 없으나 필요하실 경우 얼마든지 명령을 내리셔도 무방하오이다. 거기에….”

         

         방금 막 달라붙지 좀 말라며 차버리고 온 참인데 자기 휘하 요원을 가져다 써도 된다는. 더욱 큰 호의를 베풀어주는 쇼우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기 전에.

         

         뒷말을 흐린 그녀가 어색하게, 개인적인 사견을 표하는 일이 굉장히 드문 추적자에게 쓸 표현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어딘가 쑥스러운 듯이 몇 마디를 덧붙였다.

         

         “…소인 또한 귀하에게는 도움받은 빚이 있는 만큼, 해주시는 관대한 배려에 감사한만큼 모시게 된 것을 영광으로 여기고 있소이다.”

         

         ‘엥…?’

         

         뭐야, 먼저 밥을 챙겨 먹이는 걸로 위장을 사로잡는다는 내 계획이 어찌저찌 성공했나? 묘하게 호의적인 기색이 느껴진 것 같았는데 착각인가?

         

         계속 이쪽을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거에 불만이 없는 수준이라도 충분하기는 하다. 어차피 스토킹 당하는 건 비슷해도 여차할 경우에 도움을 얻을 방법이 늘어났다는 뜻이니까.

         

         하여간 좋다. 좋아, 그럼 그녀와의 정식 수교… 동맹을 기념할만한 첫 전투니까. 이제부터라도 둘이 좀 친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볍게 호흡을 맞춰 보길 기대해도 되겠지?

         

         “그럼 어디… 따로 사양하지는 않을게? 둘이 같이 얼른 길 좀 뚫어줘. 나중에 인질극이 벌어질 수도 있는 만큼, 가급적 우리 쪽 정보가 안 새어 들어가도록 빠르게.”

         

       

       

         – ………아샤님의 명령이라면. –

         “……흠, 제로 공은 여전히 날카로우시구려.”

         

       

       

         …어라? 너희들, 정말 괜찮은 거 맞지? 응??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합동 전선 – 지옥의 호흡 편 개봉박두.

    항상 재밌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댓글, 모든 형태의 응원은 언제나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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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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