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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0

     매국노.

     명사로서, 나라를 팔아먹은 자를 일컫는 말.

     보통은 그런 부류의 인간을 싸잡아 부르는 말이지만, 회귀 전에는 어떤 한 가문을 일컫는 말이었다.

     매국노 지브롤터.

     

     노스트럼의 입장에서, 노스트럼 왕국을 끝내버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워버린 매국가문.

     검술과 충성으로 이름을 날린 가문이 아니라, 앞으로는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명가로서 역사에 남으리라고 수도 없이 저주를 받았던 가문.

     그래서 나는 처음 윌리엄 테일이 매국노를 운운했을 때, ‘또 나를 죽이려고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비록 그 잠꼬대 같은 말만 하고 그대로 다시 의식을 잃었지만, 윌리엄 테일은 분명 매국노를 지브롤터가 아닌 다른 이들을 지칭했다.

     세이레네.

     ‘매국노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세이레네 백작가는 망했다.

     제국이 노스트럼 왕국을 멸망시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이레네 백작가는 사기에 휘말려 파산하고 말았다.

     재판정에서 기사를 고용하겠다고 떠들기도 했으나, 제국의 법정에서는 지엄한 헌법과 제국법에 의거하여 모든 것을 처리했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처리당한 세이레네 백작이 지금의 백작은 아니다.

     지금의 백작은 본래 사촌동생에게 백작위를 계승당해야 하는 사람이었으나, 세이레네 해협 개방으로 제국에 미리 줄을 대어 자기 자산을 늘려나간 사람이다.

     어디에 빌붙어도 이상하지 않을 인간.

     매국노라고 불려도 이상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 두고 보면 매국노라고 죽여버리겠다고 할 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

     제국과 친하게 지낸다는 이유로 매국노라고 욕한다면, 그건 이 윌리엄 테일이라는 인간 개인이 이상한 거고.

     그렇다면 윌리엄 테일, 혁명군의 간부는 어떠한가?

     “도련님. 윌리엄 테일 일생에 관한 정보를 정리해왔습니다.”

     “고맙네.”

     로버트 경이 자료를 모아온 덕분에 나는 윌리엄 테일에 관한 정보를 살필 수 있었다.

     윌리엄 테일.

     올해 나이 25세.

     세이레네 백작가 중급 기사.

     장래가 유망하여 세이레네 백작이 기사단에 영입하여 키우고 있는 기사 중 한 명으로, 검술은 평범하지만 석궁을 다루는 솜씨가 일품.

     약 두 달 전, 세이레네 백작가에서 ‘평화에 따른 긴축’을 이유로 기사단 규모를 감축하는 과정에서 해고되었음. 

     “세이레네 백작은 뭐라고 말하던가?”

     “자기는 무관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요.”

     “둘이서 따로 이야기를 할 때는?”

     “해고한 기사단을 자유용병 형태로 돌리면서 황금을 확보하려고 했답니다. 윌리엄 테일은 그 지시에 따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윌리엄 테일과 세이레네 백작의 성향, 그리고 경험을 바탕으로 상황을 추론했다.

     “다른 기사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전부 잠적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윌리엄 테일 경은 주인을 위해 황금을 지키려고 한 거였군.”

     대충 견적이 그려진다.

     “해고된 자유기사들, 계약서는 썼나? 해고된 이후, 다시 고용복직을 해주겠다고 하는 계약서 말이야.”

     “세이레네 백작은 계약서의 존재 자체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구두계약이겠군. 마법사가 와서 현장재현을 할 필요도 없겠어. 자유기사들이 황금을 빼돌리려고 했고, 윌리엄 테일은 황금을 지키려고 몸 속에 집어넣었다.”

     “어리석은 행동이었군요.”

     “나중에 토하면 된다고 생각했겠지.”

     일단 황금을 입 안이든 넣은 뒤, 자리를 이탈하여 안전한 곳에서 토해내거나 뱉어내려고 했을 것이다.

     몸 안에서 황금이 굳어 식도의 내부에 황금으로 된 막을 만든다거나, 황금 때문에 식도가 막힌다거나 그런 건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그런 걸 걱정했다면 황금 자체를 입 안에 넣는다거나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

     ‘충성하기 위해 뭔가를 열심히 하려고 하다가 이상현상으로 인해 이 지경이 되었군.’

     주인을 위한 과한 충성으로 인하여 얼굴에 황금이 달라붙었다.

     이상한 문제가 있다면, 황금이 그대로 얼굴에 드래곤이 둥지를 튼 것처럼 자리를 잡은-

     ‘말이 드래곤이지, 그냥 약간 기생생물 같은 거 아니야?’

     차마 말로 하기는 좀 그렇지만, 생긴 게 꼭 오염지대에서 나오는 마수와도 같이 사람 얼굴을 덮고 있다.

     혹은 그런 걸 모티프로 삼아 영영 벗겨지지 않은 황금가면 구속구라고도 할 수 있다.

     숨은 쉬고 말은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행스럽기는 하지만, 음식이나 배출 문제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이대로 계속 있다면, 관리하는 인건비도-

     촤르르륵.

     

     “……!!”

     “도, 도련님! 위험합니다!!”

     로버트 경이 카를로스 경처럼 외치며 내 앞을 가로막았다.

     윌리엄 테일의 얼굴 위에서 황금의 가면이 액체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하더니, 곧 윌리엄 테일의 입에서 꾸멀꾸멀 흘러나와 역류하기 시작했다.

     “…쿨럭, 쿨럭!”

     윌리엄 테일이 기침을 토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황금의 가면이 황금의 노예가 죽을 때와 같이 액체처럼 흘러내리더니, 그대로 윌리엄 테일의 뒤로 흥건하게 고이기 시작했다.

     “여기는….”

     윌리엄 테일이 눈을 깜빡이며, 멍한 얼굴로 천장을 바라본다.

     “낯선 천장이다.”

     그렇겠지.

     이 천장은 우리가 만든 임시 군용 막사니까.

     “……아앗!!”

     윌리엄 테일은 나를 바라보더니, 바로 다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변경백 각하! 죄송합니다!”

     “…….”

     “지금 무슨-”

     로버트 경이 인상을 찌푸리며 윌리엄 테일을 다그치려고 했으나, 나는 로버트 경의 옷덜미를 잡아당기며 신호를 보냈다.

     “그래. 윌리엄 ‘경’.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 그게…. 세이레네의 기사단이 기어이 강을 거슬러 올라와 초소를 기습 공격하였고, 저희들은 전력을 다해 세이레네 기사단으로 위장한 제국군을 퇴치…응?”

     윌리엄 테일이 멍한 얼굴로 로버트 경을 올려다본다.

     “…로버트!! 살아있었구나!!”

     “……도련님.”

     “흐허헝, 나는 경이 그 때 죽은 줄 알고…! 크읏, 역시 소문은 틀리지 않았어…! [환영기사단]은 거짓된 소문이 아니었던 것이야…!”

     “미치겠군요, 도련님. 저기, 좀 어떻게 해주십시오.”

     “왜. 재미있는데.”

     너무나도 재미있는 상황이라, 소름이 끼칠 따름이다.

     환영기사단이라는 거,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기사단이다.

     그 이름은 내가 로버트를 비롯한 지브롤터 기사단 중 일부 기사를 바탕으로 하여, 훗날 나중에 ‘그레이 지브롤터의 기사단’을 만들 생각으로 염두에 두고 있던 이름 중 하나였으니까.

     우연의 일치일까?

     글쎄. 나를 변경백 각하라고 불렀다는 점이라거나, 로버트를 보고 죽은 줄 알았다고 한 점이라거나, 여러모로 신경 쓰이는 점이 많다.

     그러니.

     “윌리엄 테일, 세이레네 백작가의 해고 기사.”

     “예…?”

     “아무래도 뭔가 악몽을 꾼 것 같은데.”

     “악…몽…?”

     “자네, 지브롤터의 주인이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야 당연히 제 앞에 있는 그레이 지브롤터 변경백 각…하?”

     윌리엄 테일이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크림슨 지브롤터 후작님?”

     “이제야 좀 제정신으로 돌아온 모양이군.”

     “아….”

     “꿈을 꾼 것 같은데.”

     “……다행, 다행이로군요.”

     윌리엄 테일이 눈물을 흘렸다.

     “정말로 다행입니다, 흐끅, 흐윽….”

     “이번에는 또 왜 우나.”

     “도련님. 그냥 어떻게….”

     “꿈에서, 노스트럼이 함락되었습니다.”

     “…….”

     노스트럼 사람이라면 너무나도 악몽과도 같은 꿈에, 나는 헛웃음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함락되었다고? 노스트럼이?”

     “네. 그게….”

     윌리엄 테일은 대답을 하려다가, 어딘가 멍한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왜 망했을까요?”

     “…….”

     “아니, 잠시만요. 뭔가 떠오를듯 말듯….”

     “아무래도, 뭔가 환영에 홀린 모양이군.”

     나는 윌리엄 테일이 일어난 침대에 고여있는 거짓된 황금을 가리켰다.

     “황금에 취했던 모양이야.”

     “…….”

     “이제, 좀 정신이 드나?”

     “…아, 네. 그…실례했습니다. 총독 각하.”

     흐리멍텅해졌던 윌리엄 테일의 눈동자가 서서히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말씀하신대로, 뭔가에 홀렸나봅니다. 노스트럼이 멸망할 리가 없는데. 그리고…제국이 전쟁을 일으킬 리가 없는데. 하하하.”

     “……..”

     과연, 어떨지.

     “윌리엄 테일 경. 잠시 혼란스럽겠지만, 일단 침착하게 호흡을 고르고 이야기를 계속 나누지.”

     나는 로버트 경에게 시선을 보내며 나의 관자놀이를 두드린 뒤.

     “어떤 악몽을 꾸었나?”

     “그게….”

     * * *

     윌리엄 테일을 뒤덮은 거짓된 황금은 액화 상태에 오랫동안 머물러있다가, 다른 거짓된 황금과 마찬가지로 서서히 굳어졌다.

     지금은 베개에 쏟은 슬라임 덩어리가 굳은 것처럼 흐리멍텅한 상태 그대로 굳었으나, 그것이 윌리엄 테일을 환상으로 이끌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

     

     “로버트 경. 정리는 끝났나?”

     “예. 도련님과 제 기억이 틀림없다면….”

     “윌리엄 테일 경은 꿈을 꾸는 동안의 시간을 경험한 걸세. 지금이 아닌 미래의 자기 자신을 말이야.”

     “또다른 자신…입니까.”

     “그런 셈이지.”

     

     윌리엄 테일의 말에 따른 경험은 우리가 그의 입에서 들은 내용과 크게 차이는 없었다.

     “자신은 지브롤터의 기사였고, 세이레네 백작가가 제국군이 상륙하도록 허락했고, 그 백작가의 ‘국경’을 통해 제국군이 몰려들어왔다. 자신은 그들을 상대로 열심히 싸웠으나, 제국군의 기사들에게서 지브롤터 성으로 도망을 쳤다.”

     “크림슨 지브롤터의 백작가가 아닌 그레이 지브롤터 변경백을 향해서. 그리고 저는…이미 그의 악몽에서는 죽은 사람이고.”

     로버트 경이 볼을 긁적이더니, 남쪽을 가리켰다.

     “세이레네 백작가, 지금이라도 칠까요?”

     “아니지, 아니야. 변경백이라고 하지 않았나. 자네 죽음은 그냥 윌리엄 경의 개꿈 속 하나의 ‘환상’일 뿐이야.”

     “환상일 뿐인데, 어딘가 상당히 기분이 좀 그렇군요.”

     “…흐흐.”

     그렇겠지.

     내가 처음 회귀를 하고 며칠 동안은 이게 꿈인지 진짜인지, 내가 백은을 며칠 째 취한 상태로 꿈속에서 과거를 되돌리고 싶어하는 건지 긴가민가하기도 했으니까.

     “왜 그러십니까, 도련님?”

     “아니, 그냥. 일어나지도 않은 타인의 악몽 때문에 기분이 나빠하는 걸 보니, 자네도 참 사람답다는 생각이 들어서.”

     “죽었다는 것만 알고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찝찝하잖습니까.”

     “그래. 찝찝하지. 이런 상황이 일어난 적이 없으니.”

     나는 우리의 옆에 놓인 거짓된 황금을 가리켰다.

     “로버트 경. 한 가지, 실험을 해봐야겠어. 내가 직접.”

     “…도련님, 혹시?”

     “괜찮아. 안 죽어.”

     “보통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제일 죽기 쉽다는 거, 알고 계시잖습니까?”

     “나는 다르거든.”

     대충 어떤 상황일지 예상이 가기때문에, 나는 안전장치를 걸어둘 것이다.

     “백금경 에이페리아를 소환하지. 이 상황에 대하여 그녀만큼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며, 설령 모른다고 하더라도 내가 지금부터 할 실험에서 나를 구해줄 사람은 그녀 뿐이니.”

     실험.

     내가 직접 해본다.

     “아스타시아에게는 비밀로…아니, 모든 이들에게 비밀로 하고.”

     

     * * *

     잠시 뒤.

     거짓된 황금을 ‘마셨다’라고 생각한 순간.

     “…….”

     찬란한 황금빛 세상 속에서, 나는 어떤 여인을 만나게 되었다.

     “…나리아 여왕?”

     “…….”

     평소와 달리, 드레스를 입은 나리아 여왕이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드디어 미치신 모양이군요, 오라버니.”

     “……?”

     “어머니들을 모셔오겠-”

     벌커덕.

     “그레이!”

     “오셨어요, 어머니.”

     전통적인 지브롤터식 문이 열리며, 나리아가 어머니라고 부른 여인은-

     “괜찮니?!”

     “…….”

     카르멘 왕비였고, 그녀의 모습은-

     “어, 음.”

     나리아보다 더 큰 모성을 가진, 소녀가 아닌 여인의 몸이었다.

     ‘꿈 맞네.’

     꿈이 아닐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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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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