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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0

   “한 대 제대로 패줘!”

     

   바이오렌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크라슈의 귀에 선명하게 들려왔다.

   검을 쥔 크라슈의 손에 더더욱 힘이 들어갔다.

     

   「저주나 처붙이고 다니고, 너도 나처럼 되고 싶냐?」

     

   회귀 전, 서로 비슷하다고 느꼈기에 은연중에 피했던 바이오렌.

   어느 날 그녀는 크라슈에게 결계술을 툭 걸어주며 말했다.

     

   「사람으로 살아. 혹여나 나처럼 어중간한 꼴 되지 말고.」

     

   그녀와의 대화는 그 정도가 전부였다.

   기억에 남는 대화하기에는 크라슈와 바이오렌의 사이는 멀었다.

     

   하지만 멀었기에 지금은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지, 금 이 순간 가장 짜, 증나는 게 뭔지 아, 냐?」

     

   최흉의 앞에서 몸을 내던져 결계로 막아낸 뒤.

   죽어가는 바이오렌의 마지막 앞에 같이 있게 되었다.

     

   나머지 녀석들은 바이오렌이 막아낸 최흉을 끝장내고자 뛰쳐나갔다.

   비전투원인 크라슈만이 죽어가는 바이오렌의 곁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원치 않더라도 크라슈는 그녀의 유언을 듣게 되었다.

     

   「내가, 망할 내 부, 모 새끼들한테 한, 번도 원망을 못 쏟아, 낸 거.」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얼굴 가득 아쉬운 웃음을 흘렸다.

   그 아쉬움 속에는 절절한 원망과 여러 감정이 뒤섞여 그녀의 인생을 한탄하게 했다.

     

   「씨, 발, 한 대라도 패, 볼걸. 팼어야 했는데…….」

     

   가슴 속에 담아둔 그 말을 마지막에 가서야 내뱉은 그녀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너무, 늦어 버, 렸어…….」

     

   그녀는 그렇게 죽었다.

   무려 최흉을 결계로 막아 버텨낸 영웅은 원망만을 내뱉은 채 죽어 버렸다.

     

   크라슈는 그 꼴이 참으로 보기 싫었다.

     

   왜인지 모르게 자신의 마지막 또한 그녀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녀와 같이 울부짖지 못한 것은 크라슈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크라슈는 이제 더 이상 그녀가 그런 죽음을 맞이하지 않기를 바랐다.

     

   어느 사람이든 죽는다.

   죽음을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면.

   최소한 그 죽음의 끝에 서서 당시를 회상하며 최소한 그날이 있어서 살만했다고 생각해도 괜찮지 않겠나.

     

   후회로 점철된 삶을 살 바에야.

   한 번쯤은 자신의 모든 걸 내지른 삶이 더 가치 있지 않겠는가.

     

   크라슈의 검이 하늘 높이 들어 올려졌다.

     

   회귀 전, 별다른 인연이 없었다고 해도 좋다.

   지금 바이오렌은 크라슈에게 있어 친우였고, 동료였으니까.

     

   언젠가 창공의 세대에 속할 그녀가 자신의 날개를 펼칠 수 있다면.

   크라슈는 기꺼이 검을 들어 줄 수 있었다.

     

   크라슈는 가장 선두에서 빛나는 별, 천추성이 되기로 했으니까.

     

   몸에 가는 부하가 한층 더 강해졌다.

   내부가 흑염으로 미친 듯이 들끓었다.

     

   흑염이 오히려 크라슈의 목을 옥죄이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몸 전체가 불타 없어져 버릴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몸속에 축적된 흑염은 모든 것을 불태워 나갔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는 백룡왕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계가 집어삼켰던 백룡왕.

   비록, 사계가 집어삼켰다고 하나 백룡왕은 크라슈에게 온전히 흡수되지 못했다.

     

   그의 의지는 잡아 먹혔으나 그 힘은 크라슈가 감당할 힘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크라슈는 백룡왕의 힘을 전부 사용할 수 없었다.

   그 힘을 온전히 사용하려면 환골탈태라는 벽을 꿰뚫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지금.

     

   본래라면 감당할 수 없어 그저 사계의 내부에 잠들어 있던 백룡왕이.

   크라슈가 끝도 없이 집어삼킨 흑염에 의해 강제로 녹아내리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해도 녹아내릴 것 같지 않았던 백룡왕이라는 만년설이.

   때아닌 폭염의 더위 앞에 녹아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녹아내린 백룡왕은 모조리 흑염의 연료가 되었다.

   백룡왕을 집어삼킨 흑염은 크라슈의 몸 내부를 미친 듯이 달구었다.

     

   그리고 그건 즉, 녹여 버린 백룡왕의 힘을 크라슈의 몸 전체에 퍼뜨리고 있는 것과 같았다.

     

   “하.”

     

   크라슈의 입에서 어느새 검은색과 백색이 뒤섞인 연기가 흘러나왔다.

   동시에 크라슈의 한쪽 눈동자가 어느새 도마뱀의 것을 연상시키듯 변모하기 시작했다.

     

   크라슈의 머리 위.

   아주 작은 한쪽 뿔 하나가 돋아났다.

     

   동시에 그의 볼 가에 비늘이 돋아나며 송곳니가 날이 섰다.

   내부에 온전히 흡수되지 못하고 잠들어 있던 백룡왕의 힘이 크라슈의 몸에 강제로 흡수된 결과물이었다.

     

   그 광경을 눈앞에서 목격한 테라시우스의 눈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인간이라는 종족이 새로운 종족으로 탈바꿈되는 광경이었기 때문이었다.

     

   마법 종족을 창조하려는 테라시우스에게 있어서 완전한 새로운 도달점.

   그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부릅뜬 테라시우스의 눈과 마주친 크라슈가 다시금 하늘 높이 검을 들어 올렸다.

   그의 몸에서 치솟아 오른 흑염의 불길이 미친 듯이 타오르고 있었다.

     

   어느새 크라슈의 몸 내부.

   일곱 별이 일제히 새빨갛게 빛나기 시작했다.

     

   푸른빛으로 빛나던 크라슈의 눈에는 붉은 별빛이 서렸다.

   흑염의 사이사이, 붉은 별빛이 퍼져나가며 그 위력이 한층 더 강해졌다.

     

   까득-

     

   그리고 그 힘이 한계점에 도달한 순간.

   크라슈는 입안에 줄곧 머금고 있던 순간 강화 영약을 깨물어 트렸다.

     

   화르르르르르륵!

     

   흑염이 하늘 끝까지 치솟아 오르며 거세게 타올랐다.

   그것은 마치, 새까만 용이 하늘 위로 승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마지막에 마지막.

   한계에 한계를 넘고, 또 넘어 도달한 크라슈의 경지 앞.

     

   테라시우스는 넋 놓듯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테라시우스를 내려다보며 크라슈가 짧게 웃었다.

     

   “철 좀 들어라.”

     

   이윽고, 크라슈가 검을 내려그었다.

     

   멸화침식(滅火浸蝕)

   칠식(七植)

   멸천흑룡(滅火黑龍)

     

   흑룡이 모든 걸 집어삼켰다.

     

     

   * * *

     

     

   흑룡이 낙하한 자리.

   흑룡이 집어삼키며 휘몰아친 흑염의 폭풍이 주위에서 들끓었다.

     

   저 멀리 마을 사람들은 정말로 용이 낙하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두려움에 떨었고.

   프레이야 산맥의 동물들도 소스라치게 놀라 여기저기로 도망쳤다.

     

   그만큼 크라슈의 멸천흑룡은 압도적인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멸천흑룡이 내려앉은 자리.

   한 사람이 조용히 숨을 삼킨 채 서 있었다.

     

   마황, 테라시우스 제블람.

   테마린 제블람이라는 탈을 쓰고, 라헬른 아카데미에 들어온 이였다.

     

   그는 가만히 자신의 앞을 직시하고 있었다.

     

   크라슈는 테라시우스에게 있어 손짓 한 번으로 만들어낸 마법으로 죽일 수 있는 상대였다.

   아무리 크라슈라 한들 마법의 극의에 통달한 테라시우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는 아직도 한참 더 강해져야만 했다.

     

   그렇기에 테라시우스는 9서클 마법 릴루미노를 사용했을 때 이거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크라슈가 릴루미노를 뚫기에는 수준 차이가 너무나 명확했으니까.

     

   그런 지금.

   릴루미노의 파편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테라시우스가 깨지지 않을 거라 단언했던 릴루미노가 조각조각 난 채 휘날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감당할 수 없는 힘을 받아 내려 했기에 깨진 여파였다.

     

   테라시우스의 눈이 천천히 아래로 향했다.

   거기에는 만신창이가 된 꼴인 소년이 한 명 서 있었다.

     

   크라슈 발하임.

   자신과 마법을 함께 논해주었던 이.

     

   붉은 머리카락의 떠돌이 마법사가 죽은 이후.

   자신과 마법에 관해 논해줄 이는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지독한 외로움을 느꼈던 그가 몇십 년 만에 외로움을 달래게 해주었던 이.

     

   그런 크라슈가 테라시우스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테라시우스는 여전히 크라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과 함께 마법에 관해 논할 정도의 지식을 갖춘 그다.

     

   물론 테라시우스는 은연중에 크라슈의 너머에 있을 누군가를 엿보았지만.

   어찌 되었든 그런 존재의 대변인을 해줄 만큼 크라슈 또한 자격을 갖춘 인물이었다.

     

   테라시우스는 크라슈가 원한다면 어떠한 것도 지급해줄 수 있었다.

   평생을 논하지 못할 거로 생각했던 마법을 자신과 논해주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해줄 수 있는 것이 테라시우스였다.

     

   그런데도 크라슈는 지금 자신에게 분노를 표하고 있었다.

     

   “네가 원하는 것은 나라면 무엇이든 해줄 수 있을 텐데.”

     

   왜 이토록 분노하느냐고 테라시우스는 물었다.

   그러자 테라시우스의 앞에 더 다가온 크라슈가 떨구었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내가 원하는 건 네가 해줄 수 없는 거니까.”

   “내가 해줄 수 없는 것은 이 세상에 거의 없다.”

   “아니, 더럽게 많아. 내가 내 두 눈으로 봤거든.”

     

   이토록 강한 테라시우스조차 결국에는 세상의 멸망을 막지 못했다.

   그 시점에서 크라슈에게 테라시우스는 만능이 아니었다.

     

   그 또한 사람이고, 해내지 못하는 것이 있다.

     

   “테라시우스 제블람.”

     

   크라슈는 말아쥔 주먹을 들어 올렸다.

     

   “살 거면 사람답게 살아.”

     

   누군가의 인생을 실험체 취급해놓고, 그것에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살아가는 이를 크라슈는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답게도 못 사는데. 네가 뭘 할 수 있겠냐.”

     

   크라슈는 그 말을 끝으로 테라시우스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툭-

     

   크라슈의 주먹이 테라시우스의 가슴팍에 닿았다.

   그러나 내지른 크라슈의 주먹에는 더 이상 한 줌의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모든 힘을 쥐어짜 낸 만큼 그가 한계에 봉착한 것이었다.

     

   투둑-

     

   크라슈의 피부에 균열이 생겨나며 일부가 떨어져 내렸다.

   백룡왕의 힘을 강제로 녹여 내어 흡수한 대가였다.

     

   크라슈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테라시우스는 의식을 잃은 그의 몸을 텁하니 받아 내었다.

     

   타닥!

     

   그 순간 연기를 뚫고 뒤늦게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기에는 자신과 똑같은 은발의 소녀가 서 있었다.

   상황이 끝났다고 생각하자마자 달려온 그녀는 테라시우스의 품에 쓰러져 있는 크라슈를 발견했다.

     

   동시에 그녀는 테라시우스의 가슴팍에 묻은 검은 흔적을 발견했다.

   크라슈가 내지른 주먹이었다.

     

   그것을 알아차린 그녀는 울컥한 듯 크라슈를 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크라슈는 지금 익시온이라는 새끼들한테 쫓기고 있어.”

     

   테라시우스의 귀가 멈칫하며 반응했다.

     

   “그걸 위해서 크라슈는 안전장치를 하나 만들려고 해. 위험 신호를 보내면 대기하고 있던 인원들이 즉시 크라슈가 있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장치.”

   “……그보다는 안전하게 숨어 있는 게 나을 텐데.”

   “그 녀석은 그럴 생각 없는 녀석이야. 익시온을 무찌를 생각이 가득하니까.”

     

   그녀는 크라슈를 못 말리겠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아카데미 선배 중에 마도구 제작에 일가견 있는 사람이 있어. 나도 할 수 있는 건 뭐든 도울 거니까. 만드는 걸 도와줘.”

     

   증오해 마지않던 아버지였다.

   마주할 때면 자신의 인생을 부정해버리는 그였기에 마주하는 것조차 싫은 그였다.

     

   그런 그에게 바이오렌은 지금 부탁하고 있었다.

   자신을 위해 울부짖어준 소년을 위해서.

     

   “…….”

     

   테라시우스는 크라슈를 내려다보았다.

     

   마지막 순간에 한 종족을 넘어서려는 크라슈의 의지를 엿보았다.

   크라슈는 안전장치 말고도 용왕족이 되는 것 또한 자신에게 협조를 부탁할 생각이었겠지.

     

   거기까지 꿰뚫어 본 테라시우스는 잠시 동안 침묵하더니 이내 크라슈를 바이오렌에게 건네었다.

   바이오렌이 건네는 크라슈를 급히 받아 내자 테라시우스가 몸을 돌렸다.

     

   “먼저 제블람에 가 있겠다. 라헬른 아카데미로 돌아가는 문은 열어줄 테니. 그쪽으로 가라.”

     

   그 말을 들은 바이오렌이 깊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 미치광이라면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 내심 불안했기 때문이다.

     

   “사람답게 살라라.”

     

   그러면서 테라시우스는 크라슈의 말을 짧게 곱씹더니.

   곧 어딘가 달관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나한테는 어려운 거로군.”

     

   그렇게 테라시우스는 먼저 공간 이동 마법으로 떠나갔다.

     

   “바, 이오렌.”

     

   그 순간 바이오렌은 크라슈의 목소리를 듣고 흠칫하며 그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만신창이가 된 낯짝으로 크라슈는 말했다.

     

   “좀 후련하, 냐.”

     

   목소리도 제대로 못 내는 주제에 무슨 말을 하는 걸까.

   황당하기 짝이 없었지만, 바이오렌은 크라슈를 붙든 팔에 힘을 주었다.

     

   “……그래 망할 놈아.”

     

   아주 후련하다 못해 마음이 깨끗해졌을 지경이다.

   그 말을 들은 크라슈는 짧게 웃더니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본 바이오렌은 조용히 결심했다.

     

   적어도 자기 삶이 실험체로서의 가치밖에 없었을지언정.

   그런 삶을 대신해서라도 울부짖어준 놈을 위해서라도.

     

   조금 더 최선을 다해 살아 보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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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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