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80

    나는 미니 사신 정원에 누워서 절망에 잠겨 있었다.

    ‘왜 안 되는 거야!’

    내 절망의 크기를 보여주는 것처럼 내 곁에는 하얀 아귀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뀨힝힝.”

    그 하얀 아귀 더미에서는 팔다리를 모두 뜯어먹힌 하얀 아귀들이 구슬픈 울음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하얀 아귀 더미 옆에는 메카 티라노사우루스 더미도 있었다.

    하지만 그 메카 티라노 더미에 쌓인 티라노들은 어딘가 조금씩 하자가 있었다.

    내 기억력과 상상력으로는 메카-티라노를 완벽하게 떠올릴 수가 없었다.

    푸른 거인으로 죽은 티라노의 영혼을 불러올 수 있어도, 몸을 완벽하게 만들 수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다시 헤일로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메카 티라노를 만들어 냈다.

    굉장히 집중해서 만들었지만, 튀어나온 것은 어딘가 디테일이 부족한 메카 티라노였다.

    ‘이게 아니야!’

    내가 만들어 낸 메카 티라노는 마치 굉장히 저렴하고 불법적으로 만들어진 모조품 피규어 같은 퀄리티였다.

    역시 제임스에게 티라노 디자인을 외주줘야 하는 걸까?

    내가 순수하게 만든 슈퍼 메카 티라노를 만들고 싶었는데….

    힝힝.

    내가 슬퍼하면서 누워있자, 미니 사신들이 조심스럽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엄마, 괜찮아?’

    쓰러져 있는 내 뺨을 토닥이는 아이들.

    그래도 반응이 없자, 황금 사신들은 자신들이 숨겨둔 별사탕을 하나씩 꺼내 내 입 속에 밀어 넣었다.

    검은 사신들은 자기들끼리 꾸물꾸물 뭉치더니, 천천히 거대한 형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삐이이!

    검은 사신들이 뭉치자, 참새처럼 우는 거대한 메카 티라노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

    그 모습이 굉장히 정교해서 나는 슬며시 눈을 뜨고 구경하기 시작했다.

    <!>

    내가 눈을 뜨자, 푸른 사신들은 구석에 모여서 속닥거리더니 문자열을 허공에 새기기 시작했다.

    <별처럼 빛나는 합체 티라노!>

    <합체 티라노!>

    그러자 물이 허공에서 생겨나더니, 천천히 거대한 티라노사우루스의 모습을 하기 시작했다.

    크아앙!

    소리 없이 티라노 골렘이 울부짖자, 허공에서 물 갑옷이 생겨나 날아들었다.

    철퍽! 철퍽!

    그리고 갑옷이 마치 정교한 부품처럼 맞물리더니, 야광 공룡처럼 빛을 뿜어내는 메카 티라노 골렘이 완성되었다.

    오오!

    미니 사신들의 응원으로 나는 기운을 되찾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를 응원한 미니 사신들을 끌어안고 정말 고맙다고 의지를 전했다.

    그러자, 내 품 안에서 헤실헤실 웃는 미니 사신들.

    나는 그 아이들을 끌어안고, 히히 웃으며 한가지 미션을 부여했다.

    1시간마다 제임스의 등 뒤에 접착제로 메카 티라노 요청을 붙이라는 미션이었다.

    히히.

    ***

    황금 사신은 호기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엄마를 관찰하고 있었다.

    옴뇸뇸.

    엄마는 애착 인간의 품에 안겨 푸딩을 쉴 새 없이 먹으며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중국 정부는 오늘 자유 도시 연합에서 발생한 오브젝트 침식으로 인해 해당 지역을 한 단계 높은 위험 지역으로 지정하고, 기존의 봉쇄 조치를 강화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자유 도시 연합은 콘크리트 건물이 마시멜로로 변하고 오브젝트는 별사탕이 되어 흩어지는 등, 예측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더해, 황금색 사신들이 도시를 활보하기 시작했다는 목격담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 관계자는 “현실의 침식보다 ‘황금 사신’의 출현 쪽을 더 위협적으로 보고 있으며,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봉쇄를 더욱 철저히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감정을 가지지 않은 네모 상자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황금 사신의 관심은 그런 것들이 아니라, 엄마 쪽이었다.

    ‘엄마 살쪘어.’

    황금 사신은 엄마가 조금씩 둥글둥글해지고 있어서,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의 애착 인간 때문인 걸까?’

    몰래몰래 염탐하고 있던 황금 사신은 예린이 격리실을 나서자, 그 뒤를 살금살금 뒤쫓기 시작했다.

    ***

    예린은 천천히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으며, 시선을 살짝 뒤로 향했다.

    그러자 황금색 조그마한 형체가 화들짝 놀라서, 후다닥 골목으로 숨어들어 갔다.

    굉장히 민첩해서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여전히 골목 끝에는 황금색 더듬이가 튀어나온 채 살랑이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예린은 황금 사신이 쫓아오는 귀여운 상황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끼이익.

    그리고 어느새 도착한 세희 연구소 셔틀버스에 앉아서, 잠이 든 것처럼 눈을 감았다.

    그러자 황금 사신이 살금살금 다가와서 예린의 가방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황금 사신은 완벽하게 숨기 위해 지퍼를 잠가버렸다.

    하지만 지퍼 위로 더듬이가 튀어나와 여전히 살랑거리고 있었다.

    예린은 모르는 척 더듬이를 쓰다듬으며, 집으로 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황금 사신이랑 뭐 하고 놀까? 퍼즐?’

    그녀의 머릿속에는 언제나처럼 행복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

    자유 도시 연합, 아니 이제는 ‘미니 사신 특별 도시’라고 불리는 곳.

    청은 그 도시 구석에 마련된 아지트 창문가에 앉아서, 거리를 내다보고 있었다.

    지저분하고 음침한 기운이 감돌던 거리는 도화지처럼 하얗고 폭신폭신한 느낌이 감돌았다.

    콘크리트 바닥 대신에 깔린 폭신폭신한 마시멜로.

    오래돼서 깜박거리는 네온사인은 맛있어 보이는 막대 사탕으로 변해버렸다.

    지저분한 쥐들은 온데간데없고, 골목 구석구석 젤리 투구를 쓴 황금 사신들이 뚜방뚜방 순찰하고 있을 뿐이었다.

    음식에 섞인 독을 너무 많이 먹어서, 정신을 잃고 길거리에 널브러진 사람들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어깨에 황금 사신을 얹고, 입가에 행복한 미소를 한 사람들이었다.

    청이 창문을 열자, 깨끗한 공기가 방안으로 밀려들었다.

    청은 가슴을 펴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다시 내뱉었다.

    “하아아.”

    약간 설탕 냄새가 나는 것을 빼면, 정말 상쾌한 공기.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생명이 위험했던 도시의 공기가 이렇게 변할 줄이야. 

    정말 정말로 오랜 시간, 이 도시에서 살았었는데, 청은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모두 이 아이 덕분이겠지.’

    청은 주머니 속에서 눈을 감고 잠든 주황 사신을 콕콕 찔렀다.

    청은 깊이 잠들어서 깰 생각을 하지 않는 주황 사신을 웃으며 내려보다가, 5층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그러자 푹신한 마시멜로가 트램펄린처럼 출렁이더니, 청을 부드럽게 받아주었다.

    엄청나게 큰 규모의 놀이기구 같은 느낌이라서,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야말로 마법!

    하지만 주변 상황을 잘 보고 해야 하는 놀이였다.

    건물에서 뛰어내리다가, 황금 사신에게 걸리면 한 시간 동안 때찌때찌 당하니까.

    청은 마시멜로의 부드러운 감촉을 즐기며, 대로변으로 걸어 나갔다.

    자유 도시 연합의 혈관처럼 도시와 도시를 이어주던 중앙 도로.

    그곳도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상태였다.

    신호 따위는 무시하고 마구 달리는 자동차들과 시끄러운 경적, 그리고 숨쉬기 힘든 매연은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콜라 맛 젤리가 아스팔트 모양으로 깔렸다는 점이 아니었다면, 여기가 ‘중앙 도로’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변해버렸다.

    그 젤리 도로에는 자동차 대신 하얀 아귀들이 다시 자리 잡고 있었다.

    안을 파서 좌석을 만든 자동차만 한 아귀들이었다.

    도로 위의 아귀들은 정말 다양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다.

    벌써 자기 아귀를 꾸민다고 하얀 아귀들 위로 온갖 액세서리들을 달고, 형형색색으로 칠했으니까.

    경적 대신에 울리는 것은 귀여운 ‘뀨’ 소리.

    매연 대신에 있는 것은 마시멜로의 달콤한 향기.

    청은 그 모습을 보며 작게 웃으면서 약속 장소를 향했다.

    의뢰가 끝나면 언제나 갔었던 바비큐 음식점.

    그 익숙한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조금 색다른 풍경이 반겨주었다.

    “아, 드디어 왔네.”

    PIG 언니가 커다란 갈비를 입에 물고 청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주방에는 푸른 사신들이 우글우글 모여서 젤리에 마법을 걸고 있었다.

    <바비큐 맛이 되어주세요!>

    <고기 식감이 되어주세요!>

    만화에 나올 법한 고기 모양 젤리에 마법을 걸자, 먹음직스러운 바비큐가 탄생하고 있었다.

    색이 젤리처럼 살짝 투명한 점만 제외하면, 훌륭한 바비큐였다.

    청이 천천히 걸어서 테이블에 앉자, 동료들이 반겨주었다.

    “자자, 청도 먹어봐. 이번에 새로 나온 메뉴래. 가격도 다른 메뉴처럼 공짜야.”

    겉보기에는 평소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동료들이었지만, 조금 달라진 점이 있었다.

    오브젝트로 만들어진 신체 대체물들의 재질이 변해버렸다.

    롤케이크로.

    왜 롤케이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롤케이크였다.

    물론 잘라보기 전까지는 알아볼 수 없었고, 기능에도 차이는 없었다.

    시간이 꽤 흐른 지금은 안정되었지만, 처음에는 조금 난리가 나기도 했었다.

    사실 갑자기 신체 일부가 롤케이크가 되었는데, 난리를 피우지 않는 것도 이상하긴 하지.

    그리고 롤케이크 사태로 많은 사람이 죽어버렸다.

    스캐빈저처럼 ‘붉은 목소리’에 매몰된 사람들이나, 뇌 일부를 오브젝트로 대체한 사람들은 모두 죽어버렸다.

    롤케이크 인간이 아니라, 그저 롤케이크가 되어버렸다.

    청의 동료들은 그 정도로 오브젝트에 의존적인 사람들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뭐, 많은 사람이 죽어버렸지만.

    그래도 이 도시는 천국에 가장 가까운 곳이라고 생각했다.

    맛있는 음식과 귀여운 미니 사신, 그리고 미니 사신에게 감화되어 온화해진 사람들.

    이런저런 생각하는 청의 어깨 위에서 청량한 방울 소리가 울려 퍼졌다.

    띠링.

    어느새 어깨 위로 올라간 주황 사신이 자기 몸통만 한 방울을 들고 있었다.

    청이 그런 주황 사신의 머리를 통통 두들기고 있자, 담배 대신 담배 맛 막대 사탕을 빼 문 여자가 말했다.

    “청, 정말로 갈 거야?”

    “응.”

    청은 목적을 이뤘다.

    부모님의 유품인 오브젝트 방울도 되찾았으니, 이제는 떠날 일만 남은 것이다.

    “그러면 역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건가?”

    “언젠가는 가야겠지. 하지만 당장은 아니야.”

    청은 주황 사신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우선은 여행을 좀 다녀보려고. ‘자유 도시 연합’에서 지내다 보니,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던 것 같아서.”

    “그래? 그럼, 어디로 갈 건데?”

    청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국.”

    다음화 보기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