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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0

    <280 – 공평한 대결>

     

    오크노디와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이 기회에 친분을 만들고 싶었던 하급반 학생들은 크루즈선 승선에 몹시 감동받았다.

     

    “우와, 여기 봐. 가상사격장이 있어!”

    “볼링 재밌어~!”

    “승무원씨, 에그타로트 하나만 더 주세요!”

     

    무방비하게 노는 학생들과 달리 용사친위대에 속한 친위대원들은 불만과 부러움이 반반 섞인 얼굴로 멀리서 구경만 했다.

     

    “정말 이대로 지켜보기만 할 겁니까?”

    “모처럼 놀러왔는데…”

    “아무리 오크노디와 재단이 수상하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경계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우리도 놀고 싶어!

    불만을 드러내는 친위대원들을 성녀 유피가 애써 다독였다.

     

    “선상여행은 하루로 끝나지 않아요. 적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같이 지내도록 해봐요. 네?”

     

    실력은 있어도 인성은 터졌다는 평가를 받는 이슈타르와 달리 성녀 유피는 이미지가 좋았다.

    실체는 이슈타르와 그다지 다르지는 않지만 이슈타르가 워낙 돋보이고 욕도 많이 먹는 탓에 겉으로나마 사근사근한 태도와 성녀라는 클래스가 사람들의 눈을 흐리게 만든 탓이었다.

    덕분에 친위대는 유피의 설득을 따라 초호화크루즈선의 고급서비스와 럭셔리룸을 포기하고 3등객실에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우리는 재단의 적이나 다름없어요. 밤중에 기습을 당하더라도 대응할 수 있도록 상태이상에 저항하는 마법진을 설치한 이 방을 벗어나지 말아요.”

     

    유피의 대비는 나름 합리적이었고 친위대는 하룻밤을 3등 객실에서 지냈다.

    집 넣는 사물함 밑으로 장판만 깔린 맨바닥에 누워서 모포 한 자루에 의지해서 잠이 든다.

    노숙만 간신히 면한 취침자리는 아카데미 하급반의 4인실보다도 더한 비좁음으로 불편함을 야기했다.

     

    “으. 어깨가 찌뿌등해.”

    “잠도 설쳤어.”

    “결국 습격 같은 건 없었잖아.”

     

    무사히 하룻밤을 넘겼다는 안도 반, 불편한 잠자리에 대한 불만 반.

    투덜투덜거리며 식당에 나온 용사친위대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식당에 나온 학생들이 적어도 너무 적었다.

     

    “쟤는 왜 저렇게 떨고 있어?”

     

    식당 구석에 혼자 넋 나간 얼굴로 앉아서 덜덜 떨고 있는 남학생이 한 명.

    수저로 밥을 뜰 때마다 덜덜 떨리는 손에 반 이상의 밥풀이 떨어지는 모습은 전장에라도 끌려갔다가 홀로 살아서 돌아온 징집병 같은 모양새였다.

     

    “거기, 동급생.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괜찮나?”

    “히이익!!”

    “진정해! 해칠 생각 같은 건 없어. 나는 용사라고.”

    “이젠 싫어. 재단도 무섭고 용사도 무섭다고!”

    “…유피.”

    “하아. 진정주문은 중독되면 좋지 않은데. 비상시니까 어쩔 수 없네요.”

     

    일시적으로 감정을 없애는 진정마법이 남학생의 몸에 스며들었다.

    한시도 멈추지 않고 덜덜 떨리던 수저가 즉시 흔들림을 멈췄다.

     

    “용사. 알려줄 테니까 나도 보호해줘.”

    “가치 있는 정보라면.”

    “우리들, 오크노디를 따라서 페이퍼 던전 탐사대에 입부한 신입부원 4명이었어. 초대 받은 게 기뻐서 따라와서 좋다고 하루종일 놀았어. 나만 배멀미 때문에 도중부터 속이 안 좋아서 구경만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안내방송이 나왔어.”

    “…안내방송?”

    “정확히 우리 중 한 사람의 이름을 불렀고 승무원의 안내를 받아 어디론가 갔어.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고.”

     

    느낌이 싸하다.

    이슈타르뿐만 아니라 용사친위대 모두가 긴장하며 숨소리까지 줄여가며 귀를 기울였다.

     

    “친구 한 명이 승무원한테 이유를 물어보니까 승선포인트가 마이너스가 되어서 빚을 갚기 위해 끌려갔다는 소리를 들었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안내방송이 울리면서 그 녀석도 끌려갔고. 그때의 질문으로 마이너스가 되었다는 모양이야.”

    “승선포인트… 설마 승선티켓의 이 숫자가?”

    “아마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 이곳의 시설은 모두 이용료가 있었어. 오락시설도 휴양시설도 숙박시설도 전부 다.”

    “재단의 함정에 빠졌네.”

    “이 배에서 살아남으려면 금욕적인 생활을 이어나가거나 승선포인트를 벌어야해.”

    “포인트는 어떻게 하면 벌 수 있지?”

    “아르바이트를 하면 된다고 들었어. 승무원의 일을 돕는 방식으로.”

     

    친위대가 뒤에서 물었다.

     

    “그럼 주방에도 우리 학생 있는 거 아니야?”

    “에이 설마.”

     

    애써 웃어넘기기에는 묘하게 찝찝한 기분.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주방을 슬쩍 들여다본 학생이 빨간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를 하던 학생과 눈을 마주쳤다.

    거품이 잔뜩 묻은 고무장갑을 들어 올리며 설거지를 하던 학생이 말했다.

     

    “너흰 레어음식 같은 거 먹지 마… 하나 먹고 파산해서 배에서 내릴 때까지 설거지만 하게 생겼어…”

     

    입맛이 뚝 떨어진 친위대원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카데미에서 잔뜩 쌓아둔 흑빵을 가져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안도했다.

     

    “이제 어떡합니까, 용사님?”

    “저희는 용사님과 성녀님만 믿겠습니다.”

     

    엘프궁수 스콜라가 옆에서 눈을 부라리며 꼽을 주었다. 친위대는 마지못해 “궁수님도요.”라고 덧붙였다.

     

    “승선포인트를 벌 방법을 찾아내자. 재단은 포인트라는 아카데미의 재화를 흉내냈어. 실제 포인트는 아니지만 그렇기에 승선포인트라는 것은 더욱 쉽게 얻을 수 있을 거야.”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던가.

    탐문과 수색을 시작하니 포인트의 비밀을 깨닫지 못하고 속 편하게 놀러 다니는 학생과 쪼들리는 포인트에 전전긍긍하는 학생, 이미 파산하고 노동에 종사하는 학생과 자신들처럼 포인트를 모으러 돌아다니는 학생이 골고루 눈에 띄었다.

     

    “너, 너, 그리고 너. 너희 셋은 나랑 다니자.”

     

    스콜라의 지목을 받은 친위대원 셋은 나쁘지 않은 얼굴로 뒤를 따랐다.

    스콜라는 궁수.

    궁수의 장점은 넓은 시야와 뛰어난 관찰력이다.

    파티에 따라서는 도적의 역할을 겸하는 궁수도 있을 정도로 가치가 높다.

    심지어 스콜라는 그런 궁수계열의 끝판왕인 신궁에게 궁술을 전수받은 제자.

    전투력만 높은 인성 터진 용사나 마음씨는 착하고 신중함은 겸비했어도 관찰력은 미지수인 성녀보다는 훨씬 믿음직했다.

     

    “포인트가 0 밑으로 내려가면 강제징수를 당하기에 받는 포인트의 가치가 줄어들지만 0보다 높을 때에는 같은 일을 해도 10배의 보상을 받는다는군.”

    “탑승객들의 부탁을 들어주면 포인트카드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어려운 부탁일수록 높은 보상을 얻겠지. 제법 구미가 당기는데. 이름과 얼굴, 부탁은 전부 외워둬라.”

    “이 오락실에서는 어떤 종목이든 최고점을 받으면 그 게임기에 들어간 포인트사용료를 전부 준다는군. 자신 있는 녀석은 도전해봐라.”

     

    오전 내내 숨 가쁘게 배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한 스콜라조는 용사 친위대 모두가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은 정보를 물어왔다.

     

    “세 가지네요. 파산하고 강제노동에 시달리던가. 가치 있는 부탁을 들어주던가. 시설에 있는 도전과제의 달성에 도전하거나.”

     

    용사친위대보다 수가 많은 소그룹들도 있지만 자신들만큼 많은 정보를 모은 소그룹은 없다.

    적어도 용사친위대의 모두는 그렇게 확신하며 웃음꽃이 피어났다.

    오크노디가 자신들을 엿 먹일 심산으로 초대를 했지만 애석하게도 몸 성히 배에서 내리는 것은 자신들뿐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오크노디는 알고 있을까요?”

    “당연히 알겠지. 저렇게 레어요리를 먹어대는데.”

     

    용사가 식당 한편에서 레어요리만 세 그릇 째 비우는 오크노디를 가리켰다.

    주방에서는 “어째서 파산하지 않아…? 어째서…?”라는 누군가의 억울함 가득한 중얼거림이 대놓고 귀에 들리도록 새어나왔다.

    용사의 눈에도 그 꼴이 아니꼽게 보였다.

    그래서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이슈타르!”

    “치사하잖아. 너 혼자만 포인트가 무한이라니.”

    “넹?”

    “레어요리의 가격이 얼마나 높은지는 먼저 파산한 애한테 들어서 알고 있어. 그렇게 많은 레어요리를 먹고도 파산하지 않았다면 승선포인트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

     

    오크노디가 킥킥 웃었다.

    놀리는 거냐고 화를 내기도 전에 오크노디가 품에서 승선티켓을 꺼냈다.

     

    “보세요!”

     

    [오크노디, No.0397759]

     

    남들은 10만 포인트에서 아래로 내려가거나 겨우 제자리걸음을 하기 급급한 사이에 혼자만 40만 포인트에 가까운 승선포인트를 기록했다.

    하지만 무한대의 포인트로 사기를 치고 있다고 보기에는 애매한 수치에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은 거냐?”

    “당연하죠!”

    “…물으나 마나 한 소리였군. 질문을 바꾸지.”

     

    용사는 오크노디를 노려보았다.

     

    “이렇게 될 걸 알면서도 네 친구들을 데려온 건가?”

    “용사님도 친구로 초대했는데요?”

    “내가 왜 너의 친구지?”

    “친구는 원래 싸우면서 크잖아요!”

    “…”

     

    이 아이,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지금껏 그렇게나 격하게 싸워왔는데?

    역시 의도를 모르겠다.

    수상하고 불편한, 어떤 의미로는 무서운 아이다.

     

    “우린 당하지 않아. 멍청한 네 동료들만 승선포인트를 잃고 널 원망하겠지. 우릴 강제로 재단장학생으로 만들 계획에는 당해주지 않아.”

     

    당당하게 선포하기는 했지만 미심쩍은 기분을 감출 수 없다.

    노린 것이 아니라면 오크노디도 자신들과 같은 조건 하에서 포인트를 벌었다는 건데.

    저 많은 레어음식을 먹어치울 포인트는 대체 어디서 벌어들인 걸까.

     

    “셰프님!”

    “부르셨습니까, 아가씨.”

    “잘 먹었습니다!”

     

    기분이 좋아진 셰프가 허허 웃으며 모자를 벗고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려는 순간, 오크노디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이며 셰프의 머리카락을 들었다.

     

    “!?”

     

    정확히는 ‘가발’을 벗기고 샤샥 다시 제 자리에 덮어씌운 오크노디.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셰프가 어리둥절했지만 오크노디의 손에는 이미 보란 듯이 [+10만]이 적힌 포인트카드가 들려있었다.

    …저렇게 잘 찾으니까 포인트가 남아돌지.

    어딘지 모르게 납득하는 자신을 발견한 용사 이슈타르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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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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