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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0

       

       

       

       “얼리버드 기상……!”

       

       며칠 뒤, 1939년 7월 2일 일요일 아침.

       

       “요오시! 시라바야시 완전부활!”

       

       일어나자마자 컨디션이 지극히 좋았다. 저번 다까시마 요시오와의 싸움 이후 저조했던 컨디션이, 며칠간의 휴식을 통해 완전 회복된 것이다. 물론 독성 면역 능력이 한단계 오른 덕분도 있겠지만, 과연 이것이 젊은 몸이라는 것인가……

       

       “웬일루, 공일 아침부터 일찍 인나셨어요? 어디 가셔요?”

       

       내가 마당에 나와 간단하게 몸을 풀며 라디오체조를 하고 있자니 함서주가 물어보길래, 나는 적당히 대꾸해 주었다.

       

       “응. 저번에 경찰서에서 부탁받은 일을 하러 가려고……”

       

       그리고, 마침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참. 너희 아버지 입는 옷, 남는 거 있지?” 

       “네에? 옷 남는 거요? 물론 있긴 한데요, 지금 빨려구 바구니에 담아놨는데요. 근데 그건 왜요……?”

       

       나는 체조를 마치고, 함서주에게 웃으며 마했다.

       

       “그거 좀 빌려줄래?” 

       

       

       

       ***

       

       

       

       “자네, 썩 그럴싸하군!”

       

       일요일 아침, 오전 10시를 조금 남겨놓고 도착한 약속 장소—덕수궁 앞에서 만난 송병오 녀석이 나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정말 짐꾼이라 해도 믿겠네! 자네 보기보다 잔근육이 꽤 있었군 그래! 그리고 얼굴에는 검댕이라도 바른 건가? 하하……!”

       

       녀석이 감탄하며 하는 말처럼, 나는 함원삼 아저씨의 옷을 빌려입고 나왔다. 인력거를 끌고 있진 않으니 인력거꾼은 아니더라도 짐꾼 행세를 할 셈이었다. 어차피 짐꾼 옷이나 인력거꾼 옷이나 비슷비슷하니까. 

       

       그리고, 이 옷을 빌려입는 것이 처음도 아니기에 나름대로 익숙했다. 왜 예에에전에, 그러니까 아오끼 소좌와 싸웠을 때에도, 몰래 마문에 들어가려고 인력거꾼으로 위장해서 들어가지 않았던가.

       

       내 위장은 이정도면 됐고, 이번에는 내가 송병오 녀석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고맙다. 너도 위장이 꽤 그럴듯 한데.”

       “큭…… 놀리지 말게!”

       

       송병오는 그저 평소대로의 더벅머리로, 저번에도 입었던 낡은 양복 재킷을 입고 왔을 뿐인데도, 그것만으로 충분히 아편에 찌든 룸펜처럼 보였다. 그야말로 현실을 비관하여 아편에 빠져 중국인 거리를 드나들 것만 같은, 룸펜 그 자체……. 

       

       송병오는 진절머리를 내며 화제를 돌렸다.

       

       “에잇, 내 얘기는 그만두게! 그래 자네나 나는 이쯤하니 되었고, 이유하가 어찌 입고올지가 걱정되는군! 설마하니 조선옷을 입고 오는 것은 아니겠네마는……”

       

       나 역시 이유하가 조금 걱정이긴 한데. 그래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양복자가 입혀준다고 했으니 잘 맞춰줬겠지. 사복 패션은 걔가 나름 잘 알잖냐.”

       “그렇겠지마는 말일세! ……그나저나 이유하 그 아이는 언제 오는가? 벌써 오전 열 시가 되어가는데 여전히 안 뵈는군!”

       “걔는 학교 기숙사에서부터 오니까 멀잖아. 기다리면 올 거야.”

       “거리가 멀면은 거기에 맞춰서 일찍 나오면 될 일이…… 잠깐, 백철연이!”

       

       투덜거리며 주변을 살피던 송병오가 갑자기 말을 멈추고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왜?”

       “저기 저 호복 입은…… 저, 저거! 이유하가 아닌가!”

       

       송병오가 기겁하며 거리 한 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녀석이 가리킨 방향을 본 나 역시 놀라고 말았다.

       

       ‘맙소사.’

       

       저 쪽에서 다가오는 사람은 이유하였다. 그런데, 이유하가 입고 온 것은 호복(胡服), 그러니까 미래에는 영어로…… 차이나드레스라고 불리는, 바로 그 옷이었던 것이다.

       

       “…….”

       “…….”

       

       나는 평소같으면 ‘유하’하고 인사할 것도 까맣게 잊고, 이유하 역시 뭐라고 말도 못한 채 시선을 피하며 내 앞에 섰고, 나는 그런 이유하에게 말했다. 

       

       “아니, 이런 옷을 입고 오리라고는……”

       

       이유하가 입은 옷은 파란색으로 윤기가 흐르는 차이나드레스. 진짜 차이나드레스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몸에 쫙 붙는 차이나드레스를 입고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 그대가.”

       

       그리고 이런 옷을 입은 당사자인 이유하 역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서는 시선을 피하며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백철연 그대가, 중국인 거리에 어, 어울리는 의복을 입고 오라고 하지 않았소! 그래서 호복을 입은 게요!” 

       “아니 그렇다고 해도, 물론 뭘 입든 네 맘이긴 한데—”

       “내, 내가 고른게 결코 아니오! 양가 복자가 골라준 옷이 이거였단 말이오! 내 이런 옷은 극구 못 입겠다고 했지만, 양가가 말하길 요사이의 젊은 중국 여인이라면 다들 이런 것을 입는다면서……! 그리해서……!”

       

       그러니까, 양복자의 안목이라는 건가. 하지만, 그건 중요치 않았다.

       

       ‘이유하가! 이런 부끄러운 옷을!’ 

       

       저번 전신고무타이즈 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양복자처럼 폭력적인 발육까진 아니지만서도 이유하는 겉으로는 가냘퍼보이면서도 은근히 볼륨이 있었다. 품이 넓은 교복을 입어서는 그다지 티가 안 나지만, 이런 미끈한 옷을 입으면 드러나는……

       

       “……어서 들어가면 안 되겠소? 무척이나…… 부끄럽소.”

       

       이렇게 서 있는 것조차 부끄러운지, 평소답지 못하게 안절부절 못 하는 이유하.

       

       아닌게 아니라 한 걸음 너머에는 중국인 거리가  있지만,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은 바로 앞에 경성부청이 있고, 덕수궁이 있는 태평통 대로변이다.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겠지. 차라리 빨리 중국인들 사이에 섞여서 눈에 덜 띄기라도 바라는 것이었다.

       

       “하여간, 자네들도 그렇고 나도 여기 이렇게 서있기는 민망스럽네! 어서 들어가세나! 그런데……”

       

       마찬가지로 나를 재촉하던 송병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지적했다. 

       

       “그런데 말일세, 우리 중에 중국어 할 줄 아는 사람이 있는가?”

       

       타당한 지적이었다. 아무리 조선 땅에 와서 살고있는 중국인들이 어느정도 조선어나 일본어를 할 줄은 안다지만, 그래도 비밀스러운 영역을 수사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중국어로 소통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테니까. 

       

       “내 필담이라면 할 수 있소만……”

       

       고전 한문에 능통한 이유하는 중국어는 몰라도 문자를 쓰면 중국인과 대화는 가능하리라. 물론 내가 이유하를 데려온 이유 중에는 그것도 있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이 당연했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그래서 바로 안 들어가고 기다린 거야. 한명 더 불렀거든. 마침 저기 오네.” 

       

       내가 그렇게 말하자,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누군가를 발견한 송병오가 눈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음? 저건 남자가 아닌가? 당췌 누군가?”

       

       송병오 녀석이 말한대로, 이 쪽으로 다가오는 사람은 마르고 작은 체격의 젊은 남자였다. 중절모에 세련된 양복 차림이고, 얄쌍한 얼굴이지만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모습이었다. 

       

       “아니, 자네 누굴 부른 겐가? 우리 분대원들 말고 외부인을 끌어들이기엔 위험하지 않나!”

       

       송병오 녀석이 그렇게 말했고 이유하 역시, 

       

       “처음 보는 자이건만, 믿을만한 사람이오?”

       

       하고 이마를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하지만 남자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아하! 이제야 알겠군!”

       “……!”

        

       저 수상한 사내의 정체가 무엇인지 눈치챈 듯 보이는 송병오와 이유하. 이미 들킨 것 같지만, 나는 새삼스럽게 녀석들에게 설명했다. 

       

       “다들 알겠지만…… 태극단 소속의 홍옥례야.” 

       “안녕! 백 동지, 송 동지! 그리고 이유하 동지!”

       

       다가온 사내(?)가 중절모를 슬쩍 벗어보이자 적갈색 포니테일이 드러났다. 그 모습을 본 송병오가 웃음을 터트리며 외쳤다. 

       

       “남장을 하였군! 깜빡 속았네그려!”

       

       그 말대로 홍옥례는 남장을 하고 왔다. 얼굴에는 콧수염을 붙이고, 포니테일은 중절모 속에 숨기고, 남성용 양복을 걸쳤다. 

       

       물론 여자애 티가 완전히 안 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름 무술을 하는 애라서 그런지, 또래 여자애들보다 체격이 좋아서, 아까처럼 얼핏 본다면 조금 얄쌍한 남자 정도로 착각할 정도는 되었다. 

       

       송병오는 홍옥례라는 것을 알고 안심했지만, 이유하는 말 없이 나를 슬쩍 바라보았다.

        

       아무리 서로 알기도 알고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지만, 외부인은 외부인이다. 우리 분대원이었던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 이제와서 홍옥례를 끌어들인 것을 설명해달라는 눈치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홍옥례라면 믿을 수 있지. 분명 우리에게 도움도 될 테고……. 그래서, 나는 홍옥례한테도 다 얘기했어.”

       

       며칠동안 쉬면서 나는 내 몸의 회복만 기다린 것이 아니었다. 얼마 전 내 분대원들에게 모든 것을 밝혔던 것처럼, 홍옥례에게도 비밀을 공유했던 것이다. 

       

       대동아공영회에 대한 비밀을…….

       

       태극단이 하는 일이라는게 우리 입장에서는 독립운동이지만 일본제국의 입장에서는 테러나 마찬가지. 그러니 이들은 달리 말해 사보타주의 전문가들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곳에 속한 홍옥례는 이전부터도 이런저런 활동에 가담해왔으니 사보타주 경험도 있고, 우리 분대원이 아닌 사람이면서도 정말 믿을만한 사람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송 동지, 이 동지! 나도 백 동지에게 전부 전해들었어. 백 동지와 너희들은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중요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는 것도 깨달았고……” 

       

       홍옥례는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 나도 백 동지가 하는 일이라면, 그게 무엇이 되었든 한마음 한뜻으로 도울 생각이야. 결국은 조선의 독립을 위한 길이니까.” 

       

       홍옥례가 말을 마치자 이유하가 한 걸음 나서며 말했다.

       

       “그대의 뜻이 그렇다면, 나 역시 그대를 믿겠소. 나 역시 조선의 해방을 바라마지않는 한 명의 조선인이니.”

       

       그렇게 말하며 오른손을 내미는 이유하. 악수를 청하는 것이었다. 

       

       “그대 역시 나를 믿어도 좋소.”

       “어, 으응! 이 동지……”

       

       다만, 홍옥례는 아직 이유하를 좀 무서워하고 있었다. 내가 예전부터 홍옥례에게 이유하를 마치 피도 눈물도 감정도 없는 살인병기인 것처럼 묘사해 왔으니…… 뭐, 차차 나아지겠지. 

       

       “옥례는 중국어도 할 줄 안다니까, 중국어를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옥례가 나서면 돼. 그럼, 슬슬 진입할까.” 

       

       나는 바지 주머니 안에 양복자의 긴따마가 얌전히 들어있는 것을 확인하고 앞장섰다. 중국인 거리로 들어가는 골목 앞으로……

       

       바로 길 건너편에는 경성부청 청사가 있고, 그 옆에는 덕수궁이 있다. 이 앞으로는 자동차가 바삐 오가는 넓은 길이 지난다. 

       

       하지만 이런 대로변에 접하고 있는 저 골목, 저 골목은, 분명 환한 낮인데도 어쩐지 어두컴컴하고 음습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여기서 얼핏 봐도 건물이며, 간판들이며, 사람들까지 모든 것이 다른 나라 같다는 인상이 저절로 풍겨왔다. 마치, 저 안에 들어가면 무슨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조금 긴장되는데.’

       

       나 뿐만 아니라 다른 녀석들도 그렇게 느꼈던 것일까, 송병오 녀석이 입을 열었다. 

       

       “……‘마굴(魔窟)’이로군.” 

       “뭐? 이 뻐킹 인종차별주의자야.” 

       

       아무리 중국인이 이미지가 안 좋더라도 그건 공산 패권주의 정권이 세계를 상대로 패악질을 부리던 미래의 일이지, 지금의 중국은 조선과 마찬가지로 일본에 시달리고 있는 피해자요 반식민지에 불과했다. 그렇게까지 나쁘게 말할 것까진 없는 것이다. 

       

       “마굴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인데 그렇게 부르는건 심하지 않냐.” 

       “아니, 아니. 내가 지어낸 말이 아닐세! 자네는 신문도 안 보는가! 또 사람들이 하는 얘기도 안 듣는가!”

       

       송병오가 손을 내저으며 해명을 이어나갔다. 

       

       “인구 백만의 대도시 경성이란 곳이 워낙 뒤숭숭한 곳이긴 하지만, 저곳이야말로 온갖 살인사건, 도박사건, 납치사건, 성 사건…… 하루가 멀다 하고 엽기적인 사건사고가 일어나는 곳일세!” 

       

       “그래서 저곳을 일컬어 조선 사람들도, 일본 사람들도, 직접 겪은 주민들도, 소문을 들은 타향 사람들도, 신문 기자들도, 소설 작가들도, 온갖 사람들이 모두 동감하며 부르는 것일세.”  

       

       송병오 녀석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안경을 올려쓰고 중국인 거리를 바라보며, 음산한 어조로 나직이 말했다

       

       “저 곳은, ‘마굴’이라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드디어 소제목을 갈았습니다……!!!!!

    그럼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저는 다음주에 돌아오겠습니당! 즐거운 주말 되세요!!!!!!!

    다음화 보기


           


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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