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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1

       가장 친한 사람, 그리고 두 번이나 생명을 구해 준 은인.

       

       이제 로테는 에테르를 포기할 수 없었다.

       

       비록 그녀가 마수라고 할지라도, 심성이 곱다는 것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잘 안다. 제아무리 다른 사람이 그녀를 괴물이라 손가락질하더라도, 에테르는 친구다. 둘도 없는 친구.

       

       정체불명의 괴물이 쏜 공격을 대신 맞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자기 친구를 믿었으니까.

       

       그 믿음은 결국 결실을 보았다. 늦가을 추위를 이겨내고 피는 국화처럼.

       

       그래서였다.

       

       마왕군의 습격을 막아내고, 세계수를 지켜낸 에테르가.

       

       정작 당국에 의해 구속당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로테는 참지 못하고 친구들을 모았다.

       

       다행히 그녀와 뜻을 함께할 사람은 많았다. 예상과는 달리 반의 모두가 교수님을 구하자고 따라나섰다.

       

       “…솔직히, 저렇게 열정적으로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 없었지.”

       “잠입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난 좋았어. 다른 교수들보다는 훨씬 낫다니까.”

       

       이때 로테는 조금 놀랐다.

       

       동시에 안심했다. 다들 나랑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구나.

       

       “좋아. 다들 가서 면회 신청을 해 보자.”

       

       그렇게 호기롭게 도전한 면회였으나, 결과가 썩 좋진 않았다.

       

       나라가 급속도로 어지러워진 탓에 가족 관계가 아니라면 면회는 사실상 어렵다고 한다.

       

       “이게 무슨 억지야.”

       “쉿, 잠깐만.”

       

       대신에 공무원 한 명을 붙잡고 들들 볶았더니 수확이 나왔다. 그 공무원이 에테르가 한 말을 그대로 전해주었던 까닭이다.

       

       “…예산을, 확보해 놓으라고?”

       “저번에 만든 것보다 더 강한 폭탄을 만든다고 했잖아.”

       “맞아, 그랬지.”

       

       로테와 프레이가 서로를 마주 보며 깨달음을 얻었다. 반면에 대화 주제를 이해하지 못한 다른 학생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나마 에테르에게 미리 이야기를 들은 유피엘과 레니냐만이 맥락을 붙잡을 수 있었다.

       

       “선생님도 참, 대단하셔.”

       “맞아. 나라에선 선생님을 가둬 놓았는데, 선생님은 이 나라를 위해 지금도 무언가 생각하고 계시다니.”

       

       레니냐는 깊은 한숨을 쉬며 작게 읊조렸다.

       

       “나였다면 이런 썩어빠진 사회, 진작 갈아엎으려고 했을 거야.”

       

       본래 이런 말은 잘 하지 않았으나, 최근 이상한 철학 서적을 읽기 시작한 뒤로 사회에 불만이 부쩍 늘어난 레니냐였다.

       

       “일단 행정부가 있는 곳으로 가 보자.”

       “길 아는 사람?”

       “내가 알아.”

       

       유피엘이 손을 번쩍 들며 안내역을 자처했다.

       

       그렇게 피어바인 가문의 권리를 남용하여 행정부처에 들어가는 것만큼은 어찌어찌 성공했다.

       

       하지만 인생은 쉽게 풀리지 않는 법.

       

       “학생 여러분, 예산 배분은 어린이들 장난이 아니에요.”

       

       경제부처 관계자는 로테 일행의 부탁을 단칼에 거절했다.

       

       “100억 엘랑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닙니다. 여기까진 다들 알잖아요? 지금 나라가 한창 어지러운데 그만한 경비를 빼둘 수는 없어요.”

       “하지만….”

       “같은 이야기라면 돌아가 주세요. 그리고, 저희 장관께선 감옥에 있는 마수의 조언 따위 듣지 않으실 겁니다.”

       

       그 말에 발끈한 프레이가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댔지만, 결국 건물에서 내쫓기는 데 걸린 시간만 단축되고 말았다.

       

       “장관도 못 봤어.”

       “어쩔 수 없잖아. 이게 우리 최선인걸.”

       

       조금 더 세련된 방법으로 얘기했더라면 장관 얼굴이라도 볼 수 있었겠으나, 아직 학생에 불과한 아이들에게 협상 기술이 있을 리 만무했다.

       

       로테는 망연자실하여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에테르는 나와 세상을 위해 모든 걸 해주는데, 나는 이런 몸뚱이를 날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분했다.

       

       “아니, 여기서 끝낼 수는 없어.”

       

       아카샤와 에테르가 동시에 잡혀 들어간 상황.

       

       이것을 자신의 지식으로 타개할 수 없으니, 로테는 살리에르라는 이름과 제국의 힘을 빌릴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살리에르 가문은 화염마도 명문가로 제국에서 그 위상이 굉장히 높다. 때문에 추종자도 많았고, 영지 관리도 잘하고 있었기에 인심도 좋다고 정평이 난 상태였다.

       

       제국이나 되는 대국에서, 그만한 가문이 직접 카우렐리아에 귀띔을 한다면.

       

       아무리 못해도 여론을 흔들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유피엘, 혹시 핫라인을 걸 수 있을까?”

       “어? 응. 우리 집에 대규모 통신기가 있기는 한데….”

       

       이 세상에서 무선 염화 시설은 나라가 직접 빌려주거나 부자라도 되지 않는 이상 사용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었다.

       

       다행히도 반 친구 중에 다이아수저가 있었다.

       

       “누구에게 염화를 걸려고?”

       “황실에 직접.”

       

       살리에르 본가로 이어지는 직통 전화가 없으니 황실을 경유해야 한다. 긴급한 상황이니만큼 받아주긴 할 것이다.

       

       로테는 유피엘에게 양해를 구해서 염화를 걸었다.

       

       “어라?”

       “왜 그래?”

       “연결이 안 돼.”

       

       핫라인은 24시간 운영된다. 황궁쯤 되면 항상 대기조가 있을 텐데.

       

       “──!!”

       

       이에 이상함을 느끼던 도중, 피어바인 저택 아래로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며 뛰어갔다.

       

       뭐가 이렇게 시끄럽지? 그런 생각을 한 로테는 창밖으로 고개를 슬쩍 내밀었다. 우체국 완장을 찬 신문 배달부가 기사를 날리며 마구 소리를 내지르는 중이었다.

       

       “호외요 호외! 필리우트 제국이 멸망했다네요─!!”

       

       사락, 하고 신문 하나가 창 안으로 던져진다. 로테는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 펼쳐보았다.

       

       [(속보) 필리우트 제국 수도 전소, 황궁 사라져]

       

       “…아.”

       

       풀썩.

       

       로테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

       

       

       사건 발생 얼마 전, 제국.

       

       “내정이 안정된 것 같으니, 카우렐리아의 지원을 계속 받으면서 군사를 이전 수준까지 양성하도록 하게.”

       “명을 받들겠나이다.”

       

       에테르와 같은 반이었던 클리온 필리우트 2황자.

       

       그런 2황자의 형인 1황자 알리온 필리우트는 ‘증기의 비’ 사건 이후로 황제가 되어 국정을 총괄하고 있었다.

       

       사대공작 중 한 명인 레너윌 하스펠트의 노력으로 인해 제국은 어느 정도 이전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폐하, 마왕이 부활했답니다.”

       

       그런 소식이 들려오기 전까지는.

       

       “뭐라?”

       “얼마 전, 카우렐리아에서 세계수 습격이 있었습니다. 바람의 로드스톤을 빼앗기고, 사상자는 다수……. 엘프국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마수들이 제 주인을 불러냈다는 보고입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야기였다.

       

       “마왕이 부활했다면, 당장 엘랑카야 산맥을 넘어서 올 것이 분명하지 않나?”

       “그럴 거예요.”

       

       회의에 참석한 토츠펠 공작은 담담하게 사실을 전했다.

       

       “이전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군사력이 필요할 겁니다, 전하.”

       “과인도 조금 전의 말을 듣고 그리 생각하던 참이오.”

       

       그로부터 엿새 간.

       

       모든 예비군과 보충역은 전시 마도사로 소집되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스태프를 쥘 수 있는 자들은 전부 군에 편성되었다. 그중에는 당연히 레너윌과 두 딸도 포함되어 있었다.

       

       “클라이스, 클라라. 다시 전쟁터에 나오게 해서 미안하구나.”

       “아니에요, 아버지.”

       “죽으면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거예요.”

       

       두 딸은 그리 말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사실, 마수에게 쓰라린 패배를 겪은 클라라와 클라이스는 전장에 다시는 서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지켜야 할 나라와 가족이 있었기에. 다시 한번 스태프를 꼬나쥐고 북방으로 향하려는 것이다.

       

       “단체로 미쳤구나.”

       

       엘랑카야로 떠나기 직전. 하스펠트 자매와 같이 살고 있던 마수 하나가 혀를 쯧쯧 차대며 그리 말했다.

       

       새까만 드레스에, 길게 늘어진 포도색 머리카락.

       

       ‘블루베리’라는 애칭이 있을 정도로 동글동글한 외모와는 달리, 입은 걸쭉한 이 소녀의 이름은 로즈마리.

       

       과거 제국에게 패망한 타르케닐 왕국의 마지막 왕족이자, 이후 마왕군의 핵심 간부로 수백 년간 활동하던 금안족이다.

       

       “마왕님, 아니. 마왕이 부활한 시점에서 너희 몇 명이 가든 똑같아. 개죽음만 당해.”

       “……너.”

       “그냥 카우렐리아로 도망치지? 그게 가장 현명한 방법인데.”

       

       로즈마리의 말에, 안 그래도 복잡했던 하스펠트 자매의 마음이 더욱더 심란해진다.

       

       이게 정말로 자신들을 걱정해서 하는 말인지 아니면 항복한 척 내부에서 군심을 어지럽히려는 건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진득한 워딩이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안 갈 하스펠트가 아니었다.

       

       먼저 고개를 내저은 것은 레너윌이었다.

       

       “귀족에겐 영지민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 설령 도망치더라도 마지막 민간인이 피신할 수 있을 때까진 후퇴하지 않을 것이니.”

       

       두 딸도 정신을 다잡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여긴 우리나라니까 우리가 지켜야 해.”

       “마도사인 저희가 도망치면 누가 마수와 싸울 거죠?”

       

       이미 헤를라인도 틸레트 학생들을 전부 대피시킨 뒤 서부 전역으로 떠났다. 불온한 움직임이 있는 건 북방 전선뿐만이 아니었던 까닭이다.

       

       하다못해 평민 출신 귀족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이행하려고 하는 마당인데, 정통파 귀족인 하스펠트가 등을 보이는 건 수치라고 생각했다.

       

       “죽더라도 명예롭게 죽을 겁니다.”

       

       하스펠트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

       

       설령 이제 와서 빛이 바래버린 이름이라 할지라도.

       

       “웃기셔.”

       

       로즈마리는 코웃음을 쳤다. 왕족에서 바닥까지 한 번 추락한 경험이 있는 그녀에게는 명예 따위 허울이나 마찬가지였다.

       

       “너희들 알아서 해라. 어디 보자, 나는….”

       

       로즈마리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나 도망가도 돼?”

       “마음대로 하세요.”

       

       죽음이 코앞에 다가와서 그런가? 아무도 로즈마리를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진짜 멍청이들인가.’

       

       눈앞에 떡하니 절멸급 마수가 있는데, 몇 달 동안 친하게 지냈다고 의심의 싹을 거두다니.

       

       기억력이 금붕어 수준인 건지, 알면서도 믿고 있는 것인지.

       

       ‘언니들 봐서라도 뒤통수는 안 친다, 진짜.’

       

       틈을 봐서 자신이 협공하면 이긴다. 제국은 궤멸하고, 하스펠트 일가는 멸족되겠지. 로즈마리는 그 공로로 마왕군에 복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에테르 언니를 봐서라도.

       

       이렇게 뒤통수를 때리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단념했다.

       

       그렇다고 같이 싸워주기에도 뭣하기에 양해를 구하고 도망치기로 결심하던 참이었다.

       

       “…….”

       

       척. 척. 척.

       

       그렇게 정예 병력을 이끌고 북부로 행군하는 마도사들.

       

       텅 비어버린 틸레트 교정을 보며, 로즈마리는 작게 탄식했다.

       

       “개미 새끼 한 마리 안 보이네.”

       

       정말로 아무도 없었다.

       

       황제를 비롯한 최소 인력을 제외하면 수도는 완전히 유령 도시가 되어버린 상태.

       

       금군에 속한 마도사 몇 명을 뒤에 끼고 돌아다니던 로즈마리는 학교 분수대에 발을 딛고 서서 낄낄 웃어댔다.

       

       “꺄하하하! 바보들! 이제 이 나라는 완전히 내 수중에 떨어졌다!”

       

       – 바보들…! 이제……! 떨어졌다……!

       

       메아리처럼 울리는 목소리.

       

       “……에휴.”

       

       급하게 현타가 온 로즈마리는 분수대에 그대로 걸터앉아 마력초를 물었다.

       

       그렇게 얼마나 앉아있었을까.

       

       “가자….”

       

       로즈마리는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아무런 짓도 안 하고 보따리를 싸서 발걸음을 옮겼다.

       

       아카데미를 떠날 때 한 번.

       

       수도 중심가를 떠날 때 또 한 번.

       

       아예 수도를 뜰 때 마지막으로 한 번….

       

       몇 번에 걸쳐서 뒤를 돌아본 로즈마리는 픽픽 한숨을 쉬며 남쪽으로 향했다.

       

       언니를 만날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왜인지 자꾸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 것이다.

       

       “잠깐 쉴까.”

       

       결국 수도가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곳까지 나왔을 땐 저물녘이 되어 있었기에 야영을 해야만 했다.

       

       아무래도 밤에 돌아다니는 건 위험하기 때문이다.

       

       ‘산적이나 마수라도 만나 봐. 좋은 꼴은 못 볼 거야.’

       

       어느새 자기 자신이 절멸급이라는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린 블루베리였다.

       

       타닥, 타닥.

       

       불멍을 때리며 마력초를 하나 더 문 로즈마리.

       

       밤하늘에 수놓인 별을 구경하며 감상에 젖는다.

       

       사실 감상이라고 해봤자 별다를 건 없었다.

       

       ‘김에 소금 뿌린 것 같구만 뭐.’

       

       인간들은 어떻게 별들을 보고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건지.

       

       혼자 큭큭대며 고개를 더욱더 위로 내뻗는다.

       

       그런데 그때.

       

       “……?”

       

       슈우우웅, 하고 하늘에서 시커먼 무언가가 떨어지고 있었다.

       

       어두운 밤이었기에 육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로즈마리는 적외선 레이더를 비롯한 여러 관측장비를 지닌 마수.

       

       게다가 고유마도인 ‘스코프’까지 가지고 있었기에 그녀의 탐지 능력은 절멸급 중 제일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런 로즈마리가 떨어지는 검은색 물체를 확인하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저, 저건…!”

       

       몇 초 후.

       

       하늘이 번쩍, 하며 순식간에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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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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