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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1

        

         

       별의 의지란 하늘이 준 개인의 근본적인 성질이다.

       중원 말로는 천성이라고도 했다.

         

       무인이란 경지가 오르면 오를수록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

       그리고 사람이라는 생물은 본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기이한 특징이 있었다.

         

       왜인지는 알 수 없다.

       청의 고향에서도 무수한 숫자의 인간들이 그저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기묘한 행동들이 하나둘이 아니지 않던가.

         

       그러니 무인이란 본래 경지가 오를수록 저 하고 싶은 것을 참지 못하는, 점점 그 천성이 튀어나오고 마는 것이다.

         

       사실 이것이 정파와 사파들의 차이라고 할 것이다.

         

       도가와 불가의 문파들은 근본이 수행자들이라서 경지가 오르고 점차 전능해지는 그 과정에서도 제 중심을 잡고 자제하는 마음 수양이 함께 이루어진다.

         

       십대세가를 선두로 한 명문세가들의 안전 장치는 체면이다.

       가문의 이름에 욕되지 않기 위해서, 일신의 체면을 구기지 않기 위해서.

        할 수 있지만, 그랬다간 욕먹겠다 싶은 일은 자제한다.

         

       그러나 사파는 다르다.

       사파 무인의 꿈은 근본부터가 내 좆대로 세상을 쥐락펴락 안하무인으로 살고 싶다는 것이기에.

       경지가 오를수록 그 힘에 취하여 점점 더 패악질을 부리니 그러다 선을 넘으면, 혹은 들키면 바로 마두가 되어버리고 만다.

         

       어쨌든, 이러한 이유로 청의 진기들도 매 순간이 고생이었다.

         

       진기들은 청의 의지이자 무의식이며, 또 무의식 중에서도 가장 깊은 심층 무의식에 닿아있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본래가 자연에 흐르던 흐름이니 세상의 기운을 잠시 빌린 것이다.

         

       진기들은 청 스스로도 모르는 내밀한 내면의 작용들을, 기능과 기제들을 알고 또한 자연의 흐름을 기억하는 신묘한 기운이다.

         

       사실, 크게 터진다 싶으면 대정선기가 한 번씩 억누르긴 했지만, 실상 가장 고생을 한 심법은 주양진기, 주양세심공이다.

         

       소녀환희공은 주인이 천살으로 위태함을 알고서는, 그 살심을 최대한 음심으로 돌려 폭주를 막자는 결론을 내놓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이년은 어째 절세미인에 천하제일요녀의 몸을 하고서는 그 음란함이 음기가 아니라 양기, 사내와 닮아있는 것이다.

       덕분에 이름부터 소녀소녀한 소녀환희공, 환희진기의 공능이 힘을 쓰기 어렵다.

         

       그래서 소녀환희공이 같은 도가 식구인 주양세심경에게 도움을 청했다.

       주양세심경은 도가에 뿌리를 두었으니, 불가의 심법과는 달리 일신의 즐거움을 번뇌로 치부하지 않고 양생술이라 하여 인정하는 친구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주양진기는 순양의 기운을 담아 마음을 씻는 공부, 본래 정신을 보호하는 탁월한 공능이 있었다.

       그리하여 살기를 양기 충천한 욕정으로 비트는 데에도 탁월한 공능이 있었으니 지금까지 내내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덕분에 천살이 아무리 짙어지더라도 청이 살심이 폭주하여 아무나 막 잡아죽이고 하는 참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살심이 다른 쪽으로 몰리는 부작용이 좀 있었지만. 애초에 그러한 목적이라 부작용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어쨌거나, 무의식의 바닥까지 닿아있는 진기들은 항상 답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 초절정에 달해 천살이 빵 터진 지금.

       제 주인이 천살의 운명 앞에서 흔들리니, 경지가 올라 스스로 별빛을 내기 시작한 지금은 아예 흉성을 발하며 눈깔이 뒤집어지고 말더라.

        

       이제는 완전히 힘에 부친다.

       예방도 힘들고 치료도 힘들다.

       일단 마음의 중심, 제 근본부터가 수도자에 뜻을 두지 않았다.

       그러니 천살에 거부감을 느끼지도 않고, 천살을 피하고자 자는 노력 자체가 없다.

       배고프면 밥을 찾듯이 피가 고프면 죽을 짓을 해 왔던 악인을 찾아 헤맨다.

       그나마도 선택적 천살의 발동은 주양세심경의 눈물겨운 노력 덕분이고.

       

       그럼에도 진기들이 답을 찾았다.

          

       진기들이 일단, 아예 놓아주었다.

       괜히 도중에 막아봐야 식사 도중에 끊긴 것 같은 찝찝함와 아쉬움만 남길 뿐이다.

         

       대신에 그 이후, 크게 만족하여 포만감을 느낄 때를 집중적으로 공략하기로 했다.

         

       그러니 불가 도가의 진기들은 때를 기다렸다.

       옆에서 정신 못 차리고 웃기만 하던 파천마기가 눈치 챙기라며 괜히 두들겨 맞는 사고가 있었지만, 어쨌거나 쭈욱, 단번에 치밀어올라 진압할 때를 기다린다.

         

       그러다 지금, 평생 악행을 일삼으며 단 한 번도 부끄러워 한 적이 없었던 악인의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

       

       신경 세포가 용광로의 쇳물처럼 끓어오르며 전신으로 격렬한 온갖 신호로 발광하는 이 때.

       

       불가 도가의 진기들이 일제 발사되었다.

         

       때로는 불을 끄기 위해서 불을 더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만족에 만족을 더하면 아예 긴 여운으로 남아 한동안은 쳐다보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 번 반복하고 나면, 주인도 버릇이 들어 같은 순간마다 굳이 스스로 불가 도가의 진기를 일으켜 천살을 한 번씩 싹 쓸어버리게 되리라고.

         

       그리하여 이 방면의 최고 권위자인 환희진기의 음란하기 짝이 없는 인도를 따라, 불가와 도가의 진기들이 체면이고 체통이고 엄격 근엄 진지 죄다 내다 버리고 주인의 전신을 간질이며 문란한 몸짓으로 청의 전신을 내돌았다.

         

       마침 주인의 심층 무의식에 크게 다리를 걸친 각성진기가 대기를 읽어 넓은 범위에 위험이 없다고 하지 않겠나.

         

       그에 도가와 불가의 진기들이 그간의 원한까지 담아서, 그놈의 천살 좀 꺼려하고 피할 것이지, 그리고 마공 좀 작작 익힐 것이지 하고 평소의 악감정을 듬뿍 담아서 그 주인을 조져놓았다.

         

       그 주인의 정신이 견디다 못해, 아예 의식이 툭 끊어져 눈을 까뒤집고 게거품 푸르르 흘리며 기절해버릴 때까지.

         

         

       —-

         

         

       “……지반야바라밀다시대신주시대명주시무생주시무등등주능제일체고진……”

         

       설이리는 불경을 외는 목소리가 참으로 맑고 깨끗하다고, 정말 듣기 좋은 소리라고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자다 깬 사람답게 눈 감은 채로 그 여운을 즐기고 공간을 메우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즐기다가.

       돌연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아제아제바라아제바라승아제모지사하바. 앗. 설 소저. 일어났어요?”

         

       그러나 설이리를 반기는 것은 알몸으로 가부좌를 튼 채로 반야경을 암송하고 있던 청의, 인자하기 짝이 없는 따뜻한 미소였다.

       어딘가 굉장히 후련한 듯한, 무언가 큰 근심을 털어버린 사람처럼 맑고 깊어 투명하게 반짝이는 눈빛이 설이리를 바라본다.

         

       그에 설이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문 소저의 눈빛이 원래 저렇게 더없이 맑았었나, 하고.

       세욕에 완전히 초탈한, 덕 높기로 유명한 고승이 저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다만, 청이 발가벗고 있는 데에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잘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원래 훌렁훌렁 잘 벗는 사람인가 보다 하고 이해를, 이해보다는 그러거나 말거나 나와는 상관없으니 그냥 관심이 없는 것이다.

       

       마부랑 싸워서 젖어서 벗었나보다 하고. 다른 의문도 없이. 아. 마부.

         

       “왜 그래요?”

         

       “아니오.”

         

       설이리가 뭔가 허무맹랑한, 마부가 갑자기 습격하고 약을 먹어 쓰러지는 그러한 꿈을 꾼 것 같다는 말을 세 글자로 줄였다.

         

       그 혁명적인 글자 절약에도 불구하고, 청은 그저 빙긋 웃어줄 뿐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청의 미소에 곤란함이 조금 스민다.

       그 고운 눈썹의 앞부분이 살짝 각을 그리며, 곤란한 듯한 미소가 설이리를 향했다.

         

       “설 소저. 물어보나 마나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

         

       “혹시, 마차 몰 줄 알아요?”

         

       사실, 묻는 청도 그냥 물어보았을 뿐이지 아무런 기대도 안 했다.

       그런데, 이럴수가!

         

       “내.”

         

       “역시. 괜찮아요. 애초에 설 소저한테 뭐 기대한 적도 없고, 그럼 대체 할 줄 아는 게 뭔지 궁금, 오잉? 네라구요? 마차 몰 수 있어요? 몰 줄 알아요?”

         

       “내.”

         

       설이리가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청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유난히 맑은 눈이 놀라움으로 물든다.

         

       설이리가 살짝 우쭐해졌다가, 잠깐 지금 우쭐해지는게 맞나 싶은 생각도 들고.

         

       청은 정말로 놀랐다.

       정말 엄청나게 놀랐다!

         

       뭐지? 귀하게 자라서 할 줄 아는 일은커녕 제대로 아는 상식도 없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아가씨가 마차를 몰 줄 안다고?

       어떻게? 심심해서 배웠나?

         

       히야.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이런 천한 재주가 있을 줄이야.

         

       “음. 지금쯤 마부 아저씨가 한참 삼도천 건너서 염라대왕 만나러 가는 여정에 있을 때라서요. 알고 보니 이렇게 일을 저지른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나봐. 그런 흉악한 악인을 살려둘 수 있겠어요? 절대 깜빡하고 죽여버린 게 아니라, 마땅히 정파의 일원으로서 해야 할 악인참, 악인 처단이었으니까 제 탓이 아니지만요.”

         

       청이 굳이 천한 재주라고 생각한 이유는, 실제로 마차는 모는 일이 비천한 하류들이 하는 천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몰 줄 안다고 해서 부탁하기도 좀 민망한 일인 것이다.

       그러니 말이 길어질 수밖에는.

         

       “그래서, 설 소저가 마차를 좀 몰아줄 수 있겠어요? 그래도 이 빗속에 걸어가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내.”

         

       설이리가 순순히 긍정했다.

       비 맞으며 걷기 대 비 맞으며 마차 몰기 하면 당연히 압도적 후자의 승리였다.

       적어도 비 맞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마차를 몰면 편히 앉아서 갈 수 있으니까.

       그리고 보통 마부석에도 그늘을 만들어 두기 때문에 빗속을 헤치는 일보다는 훨씬 덜 맞기도 한다.

         

       게다가 설이리가 약에 취해 쓰러진 때에 악적을 대신 무찔러준 청이 아니던가.

       옷을 다 벗고 있는 지금의 꼴도 악적을 처단하느라 흠뻑 젖어버린 탓일 테니까.

         

       아니었다면 정말로 큰일을 치를 뻔했다.

       그리 땅땅 소리를 쳐놓고 마부를 하필 그 악적을 고른 안목은 웃기지만, 누가 봐도 속을 수밖에 없는 생불의 관상이었으니 탓하기도 뭐하다.

         

       그렇게 설이리가 순순히 마차를 몰러 자리에서 일어날 때였다.

         

       “아. 맞다. 설 소저.”

         

       설이리가 청을 물끄러미 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자 청이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차피 마차 몰면 젖을 거니까 마른 옷은 나 벗어주고 갈래요? 대신 저거 입고. 생각해보니 그것도 원래 내 옷이잖아요? 줫다 뺏어서 미안하지만, 그래도 굳이 두명 다 찝찝하게 젖을 필요는 없잖아요?”

         

       설이리의 이마에 힘줄이 빠직 솟았다.

         

       

        —-

       

       

       악천후와 코감기 속에서도 마차를 모는 설 소저에게 감사, 가 아니라.

       그 정도는 좀 해야 하지 않나?

       옷 줘, 밥 줘, 방도 잡아줘. 사람이 아주 최소한의 염치라도 있으면.

       그래. 애초에 마부 찾을 때 자기가 할 수 있다고 먼저 나섰어야 예의가 아닌가?

         

       청이 속으로 툴툴거렸다.

       설이리가 마른 옷을 넘겨주지 않고 그냥 나가버렸기 때문은 절대 아니었다.

         

       게다가 이렇게 잘 모는데.

         

       청은 이미 마차 여행의 전문가다.

       마차 모는 데에 무슨 실력이 있냐고 할 수 있겠지만, 마부의 역량에 따라 탑승객의 승차감도 천차만별이었다.

         

       기본적으로 중원의 도로는 엉망진창이다.

       게다가 미개한 중원 과학으로는 마차에 승차감까지 생각하는 인본주의적 기술 발전이 이뤄지지 않았기에, 그 엉망진창인 도로 상태가 바퀴에 깔리는 모래알 하나의 감촉까지 손님의 엉덩이로 고스란히 전해지는 기적적인 신차합일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니 마부는 무심하게 걸어가는 말들을 잘 몰아서 속도를 유지하고 최대한 진동을 줄여 손님에게 부담을 적게 주어야 한다.

         

       거기에 비까지 오면 난이도는 아주 수직 상승이다.

       흙탕물이 얕은지 혹은 진창으로 푹 빠지는지, 아니면 기우뚱 바퀴가 푹 빠지는 구덩이인지도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비오는 날은 기본적으로 어둡고 빗줄기는 죽죽 그어대는 사선으로 시야를 방해하기까지 한다.

         

       그러한 점에서 설이리의 마부 실력은 이미 어지간히 큰 마방에서도 최고 숙련자에 필적하는 정도였다.

       말이 최고 숙련자지, 최소 십년 많게는 수십년 길게는 평생 마차만 몰고(부업으로 강도 살인 납치 강간이 있지만) 산 자들과 비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실력이란 말인가.

         

       물론 빗속을 뚫고 보는 데에는 고수라는 점이, 아니 중수라는 점이 크게 한 몫을 했겠지만, 그를 감안하더라도, 음.

         

       설 소저의 재능은 마부에 있었던 건가?

       시대를 잘못 타고나서 빛을 못 보는구나, 안타까운 일이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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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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