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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1

     

    루크는 하늘로 도망쳤다.

    사태가 너무 급박하고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아서 아공간의 입구를 직접 들어갈 수 있도록 안정화시킬 겨를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집을 향하는 것도 지금은 불가능했다.

     

    온 몸에서 신성한 빛을 뿜어내며 당당하게 집을 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이런 상태로 부주의하게 바로 예르나의 집을 향했다면 당연히 엄청난 관심이 쏠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루크에게는 절대 일어나선 안되는 일에 속한다.

     

    그런 일로 주목을 받고 싶지 않을 뿐더러, 설명을 하기에도 골치아팠다.

    그리고,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한단 말인가?

     

    흑마법사의 살해? 리저렉션? 여신? 아린세이아?

    지금은 그 어떤것도 밝혀져서는 안되는 정보에 속한다.

     

    그렇게 간신히 비행을 유지하던 루크는 겨우 어느 인적이 드문 뒷산에 도착하고는 리브와 석관을 그리 우아하지 못한 방식으로 떨어트렸다.

     

    -쿵-!

    “윽……!”

     

    석관이 바닥에 떨어지며 꽤 큰 소리를 울렸지만,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을 쓸 겨를은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더라도 인형인 리브는 별 충격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금방 자세를 일으키며 루크에게 다가가 걱정된다는 듯 안절부절 몸을 움직여댔다.

     

    루크는 몸을 겨우 일으키며 그런 리브에게 안심하라는 듯이 말했다.

     

    “다치진 않았으니, 걱정하진, 말거라……. 그래, 너는 여기에 정말 사람이 없는 지 한번 확인을 해주지 않겠느냐? 부탁한다.”

    “……!”

     

    리브가 알겠다는 듯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려 망을 보러 간 사이, 루크는 나무에 기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크윽, 다 너무 작아져서…….”

     

    마치 온몸에 옷이 아니라 족쇄를 차고 있는 것 같았다.

    치마는 이미 허리의 단추가 망가져서 커진 골반에 걸친 상태에 불과했고, 다리도 너무 길어져서 치맛단이 평소보다 훨씬 과도하게 올라간 상태였다.

    그 뿐만 아니라 신발도 거의 터질 듯이 부풀어 있었고, 발가락 하나하나가 눌려 고통스럽다.

    게다가 속옷도 가슴을 너무 세게 조여와서 숨을 쉬기가 힘들 정도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루크가 생각하기에는 분명 신성력이 유일한 원인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 상태가 아닌가?

     

    신성력이 자신의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친 것이 분명했다.

     

    루크는 그것에서 곧 원인을 추측할 수 있었다.

     

    ‘내가 신성력을 다룰 수 있게 하는 부분은 분명 여신의 파편이었을 터…….’

     

    현재 자신의 몸은 복합키메라.

     

    마수, 드래곤, 그리고 여신이라는 3대 요소가 섞여 기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고, 그 가운데서 루크 이루시의 서클인 자신이 그 조율을 맡은 형태이다.

     

    헌데 그 균형이 방금 전에 자신이 사용한 신성력으로 조금 무너진 것이다.

    자신의 몸에서 신성력을 만들어 사용한 것이 아니라, 외부의 풍부한 신성력을 그대로 받아들여 사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자신의 몸에는 ‘루크 이루시’나 ‘파르바티’, ‘레비’보다도 ‘여신’의 비중이 아주 커졌다.

    게다가 마나와 달리 신성력은 서클인 자신이 다룰 수 없는 영역이므로, 자신이 그 조율에 실패한 영향으로 이런 몸이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싶다.

    “크윽……, 답답해……. 더이상은……!”

     

     

    루크는 가까스로 양말과 함께 신발을 벗어내고, 마치 코르셋처럼 조여든 속옷을 옷 아래로 넣어 뜯어냈다.

    그러자 그제야 짓눌려 있던 몸이 풀려나며 발의 통증이 사그라들고 폐가 제대로 숨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여전히 가슴은 교복에 의해 강하게 눌리고 있기는 했지만, 그냥 찢어버리기에 교복은 상당히 비싼데다 이 교복이라도 없으면 수치심을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참았다.

    이 정도만 해도 숨을 쉬는 것은 한결 나아졌으니 괜찮으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육신의 변화는 그대로였다.

    루크는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번 슬쩍 내려다보았다.

     

     

    머리 옆으로 2쌍, 총 4개의 이질적인 뿔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백금색 날개와 더욱 커진 꼬리, 그리고 갑자기 성장해버린 육체…….

    무엇 하나 어떻게든 둘러댈 수 있는 모습이 없다.

     

     

    일단 루크가 알기로는 뿔을 2개 이상 지닌 수인족은 없었다.

    그나마 사슴과 같은 뿔이 비슷한 형상을 띌 수도 있기는 하다만.

     

    그러나 이 날개는, 정말 설명할 수 없었다.

    어떤 종족도 허리에 이런 날개는 나지 않으니까.

     

    하피가 그나마 비슷하다고 할 정도이나, 그들은 인간과 교류할 수 있는 정도의 지성이 없어 몬스터로 분류되며, 팔이 날개로 된 것이라 지금 자신의 모습과는 전혀 닮지 않았다.

     

    그렇다면 헤일로는?

    저건 그냥 아예 타인에게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 꼴은 더 이상 용도 아니고, 고양이도 아니며, 그렇다고 여신도 아니었다.

    다른사람의 눈에 보이는 자신은 말 그대로 괴물.

     

    그게 아니면 자기 몸에 맞지도 않는 작은 교복을 입은 채 거리를 활보하는 변태쯤이려나.

     

    그렇게 생각하니 굉장히 수치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루크는 날개로 자신의 몸을 감추며 이빨로 손톱을 입에 물었다.

    이렇게 뭐라도 입에 물고 있으니 조금 진정되는 것 같았다.

    이것은 인간의 본능 비슷한 것이려나.

     

    그래도 뜯지는 않았다. 손톱을 뜯는 것은 손톱의 단면을 아름답지 않게 만드는 행위니까.

    하지만 손톱을 무는 것 자체를 하지 말라는 것은 아무래도 루크에게도 지금 상황에는 어려운 일이다.

     

    그 뿐 아니라 작아진 신발과 양말을 벗어버리니 맨발이 되어서, 발가락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마저도 굉장히 신경쓰여 꼼지락거리게 된다.

    ‘대체 왜 내가 이런 꼴을…….’

     

    자신이 대체 뭘 잘못했기에 이런 벌을 받는단 말인가?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을 부활시켜준 것 밖에는 하지 않았다.

    그건 옳은 일이 아닌가?

    “……맞아. 그건 옳은 일이었다.”

     

    그래, 자신은 분명 옳은 일을 했다.

    그렇다면 조금 더 당당해도 괜찮은 것이 아닌가?

    불길 속에서 아이를 구하느라 옷이 다 타버린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듯이, 자신도 이 모습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겠지.

    물론 사정을 당당히 밝히지는 못하겠지만, 그럼 어떠한가?

    자신은 분명 영웅다운 일을 했고, 위대한 일을 했다.

    그러니 부끄러울 것은 전혀 없었다.

    이렇게 곤란하게 변해버린 몸을 원망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마음을 진정시켜가던 찰나…….

     

    -바스락, 바스락.

    “히익!”

     

    수풀을 헤치는 소리에 루크는 화들짝 놀라 새된 비명을 질렀다.

    그 뿐 아니라 반사적으로 매직미사일을 옆에 3발정도 띄우고 상대를 조준하였으나, 생성된 매직미사일이 발사되는 일은 없었다.

     

    “…….”

     

    그건 정찰을 마치고 돌아온 리브였으니까.

     

    리브가 매직마사일에 노려진 채 양 손을 들어올리고는 곤란하다는 듯이 몸을 떨고 있었다.

     

    “…….”

    “…….”

     

    잠시간의 침묵.

     

    “미, 미안하다. 내가 지금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자신이 생각해봐도 그리 단정한 옷 상태도 아니거니와,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정말로 바로 부끄러운 모습이 부끄럽지 않게 되는 것도 아니었으니.

     

    루크의 꼼지락거리는 듯 한 손짓에 매직미사일이 공간 속에 녹아들 듯 사라지자, 리브는 겨우 한시름 놓은 듯 팔을 툭, 내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 주변엔 아무도 없었느냐?”

    “…….”

     

    고개를 끄덕이는 리브.

    그건 그나마 다행인 일이다.

     

    “그렇다면 대체 이를 어쩐다…….”

     

    루크는 다시 손톱을 입에 물고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기 시작했다.

    산 아래로 보이는 도시의 야경은 마치 지상에 별이 뜬 것과 같아 아름다웠지만, 그런 풍경 정도로는 루크의 다급한 심정을 달랠 길이 없었다.

     

    그러다 루크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미 시간이 많이 늦었는데 예르나가 너무 걱정하지는 않을까?’

     

    당장 뭐라도 연락을 하기 위해 루크가 휴대폰을 꺼내자, 예르나로부터 ‘파이리스랑 저녁은 잘 먹었어?’라는 문자가 와 있었다.

    아마 예르나는 오늘 집에 오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 차라리 다행이었다.

    루크는 간단히 아직 먹지 않았지만 곧 먹으려고 했다며, 이쪽은 걱정하지 말고 남은 일 마저 열심히 하라는 응원의 메세지를 답으로 보냈다.

     

    “……일단은 이 거추장스런 신성력부터 거둬야겠지.”

     

     

     

    그렇게 루크가 신성력을 다 거두었을 때는 무려 두시간이나 지난 후였다.

    마침내 명상에서 벗어난 루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지었다.

     

    원래도 어둑어둑한 시간이었는데, 이제는 아주 한밤중이 되었다.

    버스도 이제 도로를 다니지 않겠지.

     

    하지만 버스가 다닌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타지는 못했으리라.

     

    왜냐하면 신성력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루크의 몸은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았고, 고작 더 이상 빛나지 않으며 헤일로와 날개를 없애는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루크는 하는 수 없이 다시 ‘플라이’를 써서 몰래 밤하늘을 날았다.

    아마 마력흔은 남겠지만, 그것도 집 근처 골목에서 내려서 은폐하면서 걸어가면 추적하지 못하니 괜찮을 것 같았다.

    지금은 어두워서 누가 누군지 잘 보이지도 않는 데다, 사람들도 별로 없을 테니까.

     

    ——

     

    -벌컥! 찰칵!

     

    황급히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누군가가 들어왔다는 것을 알아차린 파이리스는 현관문을 향해 도도도 다가갔다.

    현관 앞에는 웬 아름다운 몸매의 여인이 몸에 맞지 않는 티그 아카데미의 교복을 입고는 ‘왜 이 시간에 다니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게냐……!’라며 중얼거리는 장면이 보였다.

     

    하지만 파이리스는 그다지 당황하지도 않고 그 여인에게 달려가 다리를 껴안았다.

     

    -와락.

     

    “언니!! 나 엄청 기다렸어!”

    “으으, 어?”

    “언니가 걱정됐지만, 말없이 함부로 밖에 나가지 말라고 해서 꾹 참았어! 어때, 나 착하지?”

     

    자신의 다리를 껴안고 얼굴을 부비는 파이리스를 내려다보던 여인은 당혹스러운 눈길을 파이리스에게 보내며 말했다.

     

    “그, 그래. 착하구나. 그런데 내가 이상하지 않느냐?”

    “음……. 뭐가? 루크언니는 루크언니잖아?”

    “……어, 음…….”

     

    루크는 조금 벙찐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래, 그런건가.”

     

    정령이 보는 자신의 본질은 어차피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일까?

    하긴, 사물의 본질을 보는 정령에게 몸의 변화가 그다지 의미 없을지도 모른다.

    자신은 이렇게 변했어도 여전히 파이리스의 ‘루크언니’인 것이다.

     

    덕분에 조금 마음이 놓인 루크는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파이리스를 쓰다듬었다.

     

    “다녀왔다, 파이리스.”

    “응.”

     

    그렇게 루크가 자신의 허리에 달라붙은 파이리스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을 무렵, 문득 파이리스의 눈이 희번뜩 뜨였다.

     

    “냄새.”

     

    루크는 그에 당황하며 변명했다.

     

    “아, 시체 냄새가 지독하지? 그게, 이건 말이다……! 숲에 나쁜 사람이 있어서 그걸 혼내주느라 묻은 거다. 그러니까 예르나한테는 시체 얘기는 비밀…….”

    “아니, 그게 아니라!”

    “으, 응?”

     

    파이리스는 루크의 허리에서 튕겨 나오듯 거리를 벌리며 화난 표정을 지었다.

     

    “맛있는 거 냄새! 언니만 먹었지!!”

    “……어?”

    “난 못 나갈 때 언니만 맛있는 거 먹고! 난 여기서 언니만 기다리면서 계속 계속 굶었는데!!”

    “아.”

     

    루크는 문득, 자신이 집에 오기 전 붕어빵을 먹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설마, 파이리스는 시체와 흙, 그리고 땀으로 범벅된 자신의 몸에서 그 희미한 붕어빵의 잔향을 느끼고 말았단 말인가?

     

    ‘저 아이의 후각은 사냥개보다 더 뛰어날지도 모르겠군…….’

     

    루크는 가방에 꼬깃꼬깃 넣어두었던 붕어빵 봉투를 꺼냈다.

     

    “그……. 사실 널 생각해서 가방에 남겨 놓은 게 좀 있기는 하다만, 이미 완전히 다 식어버려서……. 그리고 가방에 눌려 모양도 엉망이고…….”

     

    원래 파이리스를 주려고 미리 남겨둔 것이었지만, 그 일련의 사건동안 쭈욱 루크의 가방 속에 들어가있다보니 형태는 더이상 붕어의 모양도 아니고, 따듯하지도 않아서 별로 먹음직스럽게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파이리스는 그걸 바로 낚아채듯 받아가며 말했다.

     

    “맛있겠다! 역시 언니가 최고야!”

    “…….”

     

    루크는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파이리스는 자신이 몸이 이렇게 된 것 보다는, 가방 속의 붕어빵이 훨씬 중요한 사안이었던 모양이다.

    “……왠지 자존심이 좀 상하는 것 같구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파이리스는 언니가 커졌든 작아졌든 시체냄새 풀풀 풍기면서 들어오든, 뭉개지고 식어버린 붕어빵이 훨씬 더 중요하다….

    ps. 파이리스는 저거 다 먹고도 루크가 밥해줘서 또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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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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