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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1

       찰리가 이 지하 공동을 계획의 무대로 삼은 이유는 이곳이 다름 아닌 성역(Sanctuary)이었기 때문이다.

         

       성역은 주로 범죄자가 교회 안으로 도망쳐 왔을 때, 사제들이 경찰들의 진입을 막는 명분으로 내세우곤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원래 성역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권위를 임의로 빌려온 것에 지나지 않았다. 진짜 성역은 정말로 성스러운 힘이 깃든 공간을 의미했다.

         

       성역은 빛의 신이 이 세상에 머물렀다 간 흔적으로 설명되곤 했다. 그곳에서는 어비스의 어떤 존재도 제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약한 마귀는 성역에 들어오는 순간 온몸이 불타버리면서 소멸해버렸고, 마도사들 역시 성역에서는 마신으로부터 받은 힘을 사용할 수 없었다.

         

       성역이 나타나는 장소에는 여러 조건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바로 ‘성인의 유해’가 안치된 땅이었다. 아니, 선후가 반대라 할 수 있었다. 죽은 사람 주변에 성역이 형성되면, 교황청이 그를 공식적으로 ‘성인’으로 추대하는 식이었으니까.

         

       “우리 학교의 연혁에 대해서는 알고 있을 거야. 원래 대성당이었던 곳을 황제가 빼앗아 광대와 곡예사들의 놀이터로 만들어 버렸다고 말이야. 황제가 기존 교구들을 어떻게 불살라왔는지 이곳의 사제들은 잘 알고 있었어. 그래서 그들은 성당이 황제의 손에 넘어가기 전에 중요한 성물들은 지하의 비밀공간에 미리 빼돌려 놓았지.”

         

       엘라는 찰리를 따라 도착한 공동의 끝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돌로 만든 제단과 황금으로 만든 제기들이 있었다.

         

       “성직자들은 대성당의 가장 중요한 보물을 여기다 옮겨 놓았지.”

         

       그는 그녀를 데리고 제단 위로 올라 그곳에 놓인 직사각형 형태의 돌덩이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석관이었다.

         

       “여기에 성 빅터의 유해가 모셔져 있어. 덕분에 이 주변에는 성역이 형성된 거야. 이곳에서 반경 수십 미터 안에서는 인스피라를 사용하는 게 불가능해. 다른 마도의 힘 역시 마찬가지고.”

         

       그의 설명을 들은 엘라는 왜 이 상황이 되도록 원더스타인이 자신에게 연락이 없는지 알 수 있었다. 그의 힘 역시 마도에 기원한 것이라서 그럴 것이다.

         

       ‘단장은 괜찮을까?’

         

       그녀는 이제 원더스타인에 대한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아까 찰리가 함정 운운했을 때, 그녀는 그에 대해서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비록 원더스타인이 휠체어 신세라고는 하나 그는 그 무시무시한 사신과도 정면으로 맞붙은 사람이었다. 그가 힘을 쓰면 시시한 함정 따위 다 때려부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이 성역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엘라는 제단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이곳에는 횃불도 전등도 없었다. 아까 엘라가 보았던 빛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하얀빛이 제단을 중심으로 안개처럼 퍼져 공동을 밝히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성역에서 일어난다는 발광 현상이었다.

         

       찰리는 그녀의 옆에 서서 공동을 둘러보며 설명을 이어갔다.

         

       “이렇게 유물을 숨기고도 사제들은 안심하지 않았어. 그들은 황제의 끄나풀이나 도굴꾼들의 침입을 우려했지. 그래서 이 공동에 함정을 설치해둔 거야.”

       “함정이라고?”

         

       엘라가 눈을 가늘게 뜨고 공동을 둘러봤다. 그러고 보니 아크로바틱 러시 때처럼 뭔가 부자연스럽게 형성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모두 침입자를 죽일 각오로 설치된 것들이지. 하지만 위력에 비해 정교함이나 기발함은 많이 떨어지더군. 덕분에 내가 불과 1학년 때, 그것들을 모두 해체해버릴 수 있었지. 무려 반년이나 걸렸지만 말이야. 그런데 그것들을 내가 지난 한 달 동안 다시 복구시켰어. 내 지식을 활용해 이전보다 훨씬 지능적이고 치명적으로 말이야. 궁금하지 않니? 그 남자는 저길 통과할 수 있을까?”

         

       엘라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까까지의 그녀라면 우리 단장이라면 그 정도는 문제없을 거라고 소리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이 성역이라는 것을 안 지금은 아니었다.

       엘라는 그가 크게 다치거나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왜 이런 짓을……?”

       “네 16번째 생일날, 알라모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줘.”

         

       그가 기습적으로 핵심을 찔러 들어왔다. 그것은 두 사람이 아까부터 계속 피해왔던 주제였다.

         

       엘라는 눈을 질끈 감았다.

       사실 그녀는 이미 찰리가 왜 찾아왔는지 짐작하고 있었다. 이 도시에 와서 그가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그녀는 이런 순간이 오리라는 것을 예상했었다.

         

       현재 그녀의 기억은 대부분 돌아와 있었다. 그녀는 마을 사람들과 학교 친구들이 무사하지 못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최대한 그것을 떠올리는 걸 피해왔다. 불완전한 기억을 파헤치려고 할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자신이 그것을 다 떠올리고 나면……원더스타인을 미워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좋은데.

       그와 함께하는 지금이 너무 행복한데.

         

       찰리는 엘라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안색이 창백해지자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어깨를 붙들어 주었다.

         

       “역시 뭔가 문제가 있는 거지? 세뇌? 최면? 협박? 원더스타인 그자야? 그자가 네게 무슨 수작을 부린 거야?”

         

       찰리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걱정스러움이 가득하면서도 환희 역시 깃들어 있었다. 엘라가 정신적인 금제에 당했다는 단서가 발견되어 기쁜 것이다.

         

       “아, 아냐…….”

         

       엘라는 거칠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앞으로 그날 본 것들이, 그녀의 귀로 그날 들은 것들이 스쳐 지나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이웃들이 친구들이 기괴하게 일그러진 형태로 죽어 있었다. 일부는 아직 죽지 않은 듯 소리를 지르고 몸을 움직였지만, 그 꼴은 이미 살아있다고 할 수 없었다.

         

       ‘엘라, 네가 데려온 그 사람……. 그건 사람이 아니었어. 아, 악마였어……. 사람의 모습을 한 괴물…….’

         

       죽어가던 친구 한 명이 그녀에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엘라는 그 기억을 떠올리고 나서도 원더스타인을 믿으려고 했다.

         

       그 친구가 뭘 오해한 걸 거야. 그 사람이 쓰는 마법이 막 뼈와 살이 뒤엉켜서 좀 징그러운 구석이 있잖아?

         

       그녀는 그렇게 자신을 달랬으나, 그녀의 마음 한구석은 죽은 사람들의 모습 또한 뼈와 살이 마구 뒤엉켜 있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찰리는 엘라가 크게 동요하는 것을 보고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될 것 같았다.

         

       “엘라,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랬어. 네가 악마를 마을로 불러들였다고 말이야. 그게 누구지? 응? 역시 원더스타인 그 남자 아냐?”

       “아니라니까!”

         

       소리를 버럭 지르는 그녀의 눈앞으로 또 다른 장면이 나타났다.

       피로 칠갑한 괴물 하나가 죽은 친구들의 시체를 가지고 놀며 웃고 있었다.

         

       ‘약속대로 찾아왔습니다, 엘라 양.’

         

       괴물은 곧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다. 피와 시체의 웅덩이 한가운데에 그녀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남자가 서 있었다. 죽은 친구의 머리통을 한 손에 든 채.

         

       하지만 그 기억을 떠올렸을 때도 엘라는 그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기억을 잃기 직전에 경험한 사건을 근거로 그를 변호했다.

         

       저주 역병이 퍼졌던 그 마을을 생각해 봐. 거기서 그는 사람들을 치료해주려고 했었어. 하지만 어쩌다 사람들이 괴물로 변했고 그는 그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어.

       그 발렌티나라는 수녀님이 다 설명해주셨잖아? 분명 우리 마을에도 그 비슷한 일이 일어난 걸 거야. 과거의 나는 그걸 오해했던 게 분명해. 분명 그럴 거야.

         

       “그러면 얘기해줘. 사람들을 죽인 건 누구지?”

       “그, 그건…….”

         

       싫은데. 그날 일을 다시 생각하기 싫은데. 이 이상 더 떠올리고 싶지 않은데.

         

       그녀는 그에 대한 좋은 기억들로 그 잔상들을 덮으려 애썼다.

       그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본을 수정하던 기억, 그와 함께 무대에서 진행을 맡았던 기억, 그가 목숨을 걸고 자신을 구해주었던 기억, 그가 아픈 자신을 달래주었던 기억, 그가 자신을 꼭 껴안으며 믿겠다고 말하는 기억, …….

         

       찰리는 엘라의 동요가 서서히 가라앉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 다시 핑크빛 기운이 감도는 것을 느꼈다.

         

       ‘좋아해. 원더스타인. 진심으로.’

         

       그 마술사 놈의 수작이 다시 작동하는 것이 분명했다.

       찰리는 울컥해서 소리쳤다.

         

       “넌 그놈에게 속고 있어! 네가 품고 있는 건 그놈이 만든 가짜 감정이라고!”

         

       가짜 감정?

       그 말에 엘라는 불쑥 반발심이 치솟았다. 자신의 고백을 일시적인 혼란에 의한 헛소리로 치부했던 원더스타인의 말과 겹쳐 들렸기 때문이다.

         

       지금 내 마음이 가짜라고?

       그녀가 뭐라고 반박하려는 그때, 공동 저 반대편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엘라 양?”

         

       원더스타인이 어느새 공동 입구에 도착해 있었다. 그를 이곳까지 안내했던 원숭이는 그를 홀로 내버려 두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원더스타인은 이때까지 해왔던 것처럼 반사적으로 원숭이의 뒤를 쫓으려 했다. 그러나 휠체어가 특정 지점을 밟는 순간, 윙 하는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단단하고 길쭉한 쇠막대가 날아와 그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쾅.

       휠체어가 엎어지며 그의 몸은 바닥을 몇 바퀴나 굴렀다. 그렇게 날아간 그는 이내 돌기둥에 머리를 찧더니 고개를 푹 꺾고 쓰러졌다. 수십 미터 떨어져 있었지만, 엘라는 그가 구른 흔적을 따라 붉은 피가 번지는 것을 봤다.

         

       “단장!”

         

       바위나 칼날도 튕겨내던 그의 방어력이 너무나 손쉽게 깨져 버렸다. 성역 안에서 그가 무력해질지 모른다는 그녀의 예상이 맞은 것이다.

         

       “역시나.”

         

       찰리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엘라는 사나운 눈으로 그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그만해! 저 사람은 나를 구하러 온 거야! 저 사람이 정말 나쁜 사람이라면 저렇게까지 할 리가…….”

       “물론 자기 능력을 믿었겠지. 하지만 보다시피 여기서는 무용지물이야. 그리고 ’저렇게까지‘라니? 나는 너를 얻을 수 있다면 저 정도는 기꺼이 감수할 거야.”

       “뭐?”

         

       엘라의 반문에 찰리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도 모르게 본심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어쨌든 가만히 지켜봐 줘. 부탁이야. 난 마을 사람들의 원수를 갚고 싶을 뿐이니까.”

         

       그가 진지한 말투로 그렇게 말하자 그녀의 몸은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죽은 마을 사람들과 친구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웃고 있는 원더스타인의 모습이 다시 눈앞을 스쳐 지나간 것이다.

         

       “우으읏.”

         

       엘라는 머리를 붙잡고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모든 것이 떠오르기까지 한 발자국 남았지만, 그녀 본인이 그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녀가 가진 최악의 기억. 사신의 낫과 사도의 권능이 합쳐서 이루어진 축복과 같은 저주가 그것을 지워주었다. 그녀는 그것을 좀 더 누리고 싶었다.

         

       찰리는 엘라의 반응을 보고 원더스타인이 원흉임을 확신했다. 물론 평소의 그라면 그것만으로 사람을 죽이려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한 달 동안 그는 원더스타인이라는 남자가 레이나를, 엘라를, 클라라를 가지고 노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쿨럭, 큭, 크윽.”

         

       원더스타인은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으며 피를 토했다. 아니, 그렇게 보이도록 연기를 했다.

         

       사실 그는 피부에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그의 육체 강도는 현재 6.0. 상태창의 표현을 빌리자면 방탄유리 수준이었다. 고작 그 정도로 다칠 리 없었다.

         

       지금 그가 흘리고 있는 피는 체액을 조합해 만든 가짜였다. 그의 옷이 찢어진 것은 몸에 가시를 솟게 해서 한 것이었고, 그의 팔이 뒤로 꺾인 것은 관절을 역으로 개조한 것이었다.

       모두 그가 공동에 들어서기 전에 미리 준비한 것이었다.

         

       다친 척하는 개조에 데볼루트를 쓴 것은 좀 아깝긴 했지만, 적의 방심을 유도하고 엘라를 안전하게 빼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제단 위에 서 있는 엘라와 찰리를 바라봤다.

       저 남자가 미스테릭서의 정체인가? 생각보다 젊군.

         

       지금이라도 준비해둔 모든 전투 특성을 개방해 그에게 달려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좀 더 기다리기로 했다. 저자를 좀 더 방심시켜야 했다. 괜히 여기서 공격에 들어갔다가 저자가 엘라를 붙잡고 목에 칼이라도 들이대면 큰일이었다.

         

       “오, 오지 마, 단장! 제발! 돌아가!”

         

       엘라는 그가 주춤주춤 땅을 짚고 일어서는 것을 보고 소리쳤다. 그러나 원더스타인은 그녀에게 희미한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얌전히 계세요. 제가 구해줄 테니까.”

       “단장…….”

         

       그는 피투성이 몸을 이끌고 그녀를 향해 절뚝이며 걸어갔다.

       엘라의 볼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도로시 님, 20코인 후원! 꾸준한 응원 감사드립니다!

    -독심 님, 80코인 후원! 휴가 틈틈이 글을 쓰고 있다 보니 어제는 놓치고 말았을 뿐입니다! 걱정해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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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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