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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1

        

       ‘좋구나 좋아.’

         

       진성은 의식이 제대로 마무리되었음을 확인하자 흡족한 듯 웃음을 지었다.

         

       진성이 방금 행한 것은 집들이의 일종이었다.

         

       집들이가 아니라 집들이의 일종이라 표현한 것은, 진성이 이리저리 비틀고 기우며 제 원형을 쉽게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본래 전통적인 집들이를 행할 때는 제사와 의식을 행한다. 손이 없는 날 중에서도 길한 날을 골라 이사하는 것은 물론이요, 천지가신에게 제례를 한 뒤 축원을 올리고 가신과 조왕신에게 제례를 올린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기 전 좋은 시간을 받아두었다가 불을 옮기고, 좋은 의미를 지니는 물건을 들고 집으로 들어간다.

         

       불교적 색채가 더해진 경우도 마찬가지. 전통적인 집들이와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큰 틀은 변하지 않는다. 축원을 읊을 때 천지신명이나 가신과 조왕신에게 비는 대신에 부처와 보살에게 빌게 되고, 평화와 안녕을 기원할 때 불교의 용어를 사용하는 것 정도가 차이가 날 뿐이었다.

         

       그런데 진성이 행한 것은 달랐다.

         

       길한 날은커녕 손이 있는 데다가 살(煞)까지 껴 있는 날을 골라서 의식을 진행하였으며, 부처는 물론이고 아브라함 계통 종교의 신, 신령, 가택신 등 여럿을 끌어들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축원 역시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대신 공격적인 내용이 잔뜩 들어가 있었으며, 편하게 머물러야 하는 집임에도 굳이 천국과 지옥을 대입시켜 공간을 확 나눠버리기까지 했다.

       이렇게 되는 경우 천국에 해당하는 높은 곳은 사람이 살기가 편해지지만, 지옥에 해당하는 아래쪽은 온갖 부정한 것들이 창궐하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다가는 큰일이 일어날 수가 있었다.

         

       게다가 지하층에 온갖 주물과 재료들을 갖다 놓기까지 했는데, 개중에는 귀신 들린 물건이나 부정이 탄 물건도 있었다.

         

       이 정도까지 간다면 기가 허한 사람이 지하에서 헛것을 보고 기절하는 일이 예사로 일어날 것이고, 영매 체질인 사람의 경우 빙의를 당할 수도 있으리라. 게다가 부정이 가득 껴 있으니 지하에서 행하는 일은 수틀리게 될 것이며, 사람이 이유 없이 다치게 될 것이고, 병이 없는 사람은 병에 걸리고 병이 있는 사람은 그 병세가 더 깊어지게 될 수도 있었다.

         

       즉.

       진성은 지하를 온갖 더럽고 사악한 것들이 모이는 쓰레기통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본디 땅속은 습하고 축축하며 음기가 가득하여 사람이 살기 힘든 곳. 거기에 부정을 풀고 곰팡이가 창궐하게 하고, 온갖 삿된 것을 넣어 음산하게 만들었음이니. 이제 지하는 독이자 칼이 되어 적을 격퇴하게 되리라.’

         

       식칼 역시 의미가 있었다.

         

       전통적인 집들이에서는 금기시되는 물건들이 존재한다.

       빗자루, 식초병, 칼 등의 물건이 바로 그것이었다.

         

       사람들은 이 금기시되는 물건이 그 물건의 용도처럼 집안에 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여겼는데, 이는 비슷한 것이 비슷한 것을 부른다는 모방주술(模倣呪術)의 일종이라 할 수 있으리라.

         

       옛 조상들은 빗자루를 들고 오면 빗자루가 흙먼지를 쓸어내리듯 집 안의 복을 쓸어버릴 것이라 여겼고, 식초병은 시큼한 식초처럼 집안을 시게 만들어 가난하게 만들 것이라 여겼으며, 칼 역시 가세가 제대로 자라나지 못하게 잘라서 집안을 망하게 할 것이라 여겼다고 한다.

         

       이 외에도 맷돌이나 짐승을 가지고 오지 않는 금기 역시 존재했는데, 이는 길일을 점지받아 가져오는 것으로 해결했다고 한다.

         

       이러한 전통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세계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중국에서는 시계가 죽음을 의미한다고 해서 받는 것을 꺼리며, 일본에서는 불을 연상하게 만드는 물건이 화재를 떠올리게 한다며 꺼린다.

         

       종교적 의미에서, 동음이의어 때문에, 물건의 용도에서 연상되는 불길함 때문에 등등.

         

       이렇듯 세계적으로 수없이 많은 이유로 금기시되는 선물은 존재했으며, 없어지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문화가 되었다.

         

       하지만 진성은 금기임에도 칼을 들고 왔다.

       아니, 오히려 금기였기에 그대로 들고 왔다.

         

       칼을 들고 오되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을 가지고 와 상징을 부여한 것이다.

       칼이 위협이라면 그것을 무디게 만드는 것은 그것이 무용(無用)함을 말하는 것이라.

       위기가 닥쳐온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성공하지 못할 것임을 말하는 것이며, 불화가 스멀스멀 피어올라 문제를 일으키려 해도 그것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것임을 말하는 것이었다.

         

       또한 식칼은 귀신과 관련된 주술을 사용할 때도 사용하였는데, 영적 능력이 있는 사람이 사용하면 귀신을 탐지하는 나침반의 역할을 한다. 또한 귀신이 사람에게 품은 살기를 알려주는 경고의 표시로 사용되기도 하며, 귀신을 위협해 내쫓게 만드는 퇴마와 파마의 성질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진성이 던진 식칼이 전부 꼿꼿이 섰다는 것은….

         

       ‘훌륭히 자리를 잡았구나.’

         

       부정하고 삿된 것들이 지하에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음을 알려주는 알림이요, 동시에 그것들이 만만찮은 살기를 품고 있어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종류의 것임을 알려주는 경고이기도 했다.

         

       진성은 삼매진화를 끌어올려 제사를 지낼 때 썼던 물건을 모조리 불태워버렸다.

         

       의식이 제대로 진행되었음을 확인했으니, 이제 더 이상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삼매진화로 모든 것을 불사른 진성은 잠시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바닥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느낌을 만끽하였고, 그 냉기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파악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견적이 나오자 그제야 몸을 움직여 건물의 창문을 가리고 있는 것들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찌이익.

       촤아악.

         

       접착성이 있는 것, 하늘거리는 것, 무거운 것….

         

       진성이 창문을 막을 때 사용했던 것들은 그의 손에 의해 모두 치워졌으며, 그렇게 건물은 다시 환하게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은 냉기가 엄습하던 아까와는 다르게 따스함을 퍼뜨렸으며,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포근함을 품은 온기를 곳곳에 머무르게 하였다.

         

       그리고 그 온기는 이리저리 흐르다가 부드럽게 움직이며 위로 서서히 흐르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아까 진성이 축원을 읊었을 때 말했던 ‘가볍고 훌륭한 것은 위로 가게 하소서.’라는 말에 들어맞는 듯했다.

         

       진성은 그러한 흐름 속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어디론가 연락했다.

         

       『 깨어있느냐? 』

       『 네, 신주님. 깨어ㅅ습니다. 무슨 일이신지요? 』

         

       무녀, 사이고 리세였다.

         

       리세는 진성의 문자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1분도 지나지 않아 바로 답장을 보냈다.

         

       하지만 너무 급했던 것일까?

       그녀의 문자에는 오타가 있었다.

         

       진성은 그것을 보곤 리세에게 전화를 걸었다.

         

       [ 네. 신주님, 전화 받았습니다. ]

       

       “그래, 오랜만에 목소리를 들으니 좋구나.”

       

       [ 네에. 저도 너무나도 기쁩니다. ]

         

       물론 오타는 지적하지 않았다.

       급하게 연락하려다가 생긴 것인데, 그것을 지적하면 얼마나 어색하겠는가.

         

       “슬슬 세를 불리고자 일을 하나 하고자 하는데, 혹여 특이사항이 있느냐?”

       

       [ 특이사항이라면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

       

       “축복받은 이들이 뒤를 밟힌다거나, 무도한 자의 손에 의해 연속적으로 죽어 나가거나 납치당하는 이가 있다거나, 정치적으로 커다란 문제가 터져 그들이 힘을 잃게 되었다거나, 혹여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이들이 생겼다거나 하는 문제 말이다.”

       

       [ 그런 일은 없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비인외도(非人外道)의 길을 걷고 있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이들이 하는 행동이나 과거는 드러나게 된다면 배척받을 것이 분명한바, 이들은 그것을 막기 위해 하나로 똘똘 뭉쳐 행동하고 있습니다. ]

       

       “장담이란 좋지 않은 것이니라. 세상의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니, 휑한 모래사장에서 뱀에 물려 죽을 수도 있는 것이 사람의 인생이라! 예기치 못한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으며, 뱀의 독을 마음에 품고 그것을 휘두를 때를 기다리는 사람 역시 언제든 나타날 수 있는 법이니라.”

       

       [ 무도한 작자 하나가 배신하려고 하였지요. 하지만 그자에게 행하신 처벌이 본보기가 되어 이들을 단속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사람들은 배신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신주님의 말씀대로 배신하지 않음은 장담을 할 수는 없으되, 적어도 공포가 남아있는 동안은 쉬이 그것을 저지르지 못할 것입니다. ]

       

       “좋은 일이로다. 그렇다면 힘과 인맥은 어떠한고?”

       

       [ 지금에 와서는 그 권력이 주 파벌과 견줄 정도가 되었습니다. 또한 귀축(鬼畜)이나 할법한 귀접행위를 거듭하며 영능력을 각성한 이들도 생겨났고, 그들은 그 영능력을 이용해 능력자들에게까지 인맥을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

       

       “그것은 기쁜 일이로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게 되고, 몸집이 크면 숨을 수 없게 되는 법. 무작정 세를 넓히는 것을 멈추고 내실을 단단하게 다지도록 하여라. 그리고 내가 벌이는 일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면 움직이게 만들어 힘을 쥐게 하도록 하거라.”

         

       진성은 계단참에 앉았다.

         

       “현재 일본의 상황은 내환이 겹치고 겹친 상황이니라. 과거 엄청났던 성세는 추억이 되어버렸고, 거품 경제 이후는 제대로 힘을 회복하지도 못한 채 그저 ‘잃어버린 몇 년’이라면서 자조하기만 하였지. 하여 국민의 마음속에는 불안감과 불만이 점차 팽배하고 있느니라.”

       

       [ 신주님 말씀이 맞습니다. 여러 사람이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하더군요. ]

       

       “그리고 예로부터 이러한 불만을 해소하는 방법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터져 나오는 불만을 외부로 돌리는 것이니라.”

         

       외부로 불만과 분노를 돌리는 것.

       일본이 전통적으로 사용한 방법이었다.

         

       게다가 이 전통적인 방법에, 과거 세계를 호령하던 찬란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까지 더해진다면?

         

       이보다 더 효과적인 것이 몇이나 있을까?

         

       “아마 일이 터지기 전부터 이러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을 것이니…. 내가 일을 벌이게 된다면 그 기류를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니라.”

       

       [ 기류…요? ]

       

       “그러하다. 전쟁을 원하고, 전쟁에서 얻는 재화를 탐하고, 거기서 얻게 되는 권력을 욕망하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기류이니라.”

         

       회귀 전, 통일 대한민국과 일본은 서로 총칼을 겨누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본은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귀중한 주술에 대한 자료들 역시 싹 다 증발해버렸다.

       그리고 에너지 열돔이라는 인공적으로 만든 환경 역시 그 과정에서 훼손이 되어 다른 나라와 같은 환경으로 돌아가게 되기까지 했다.

         

       진성 입장에서는 참담한 일이었다.

         

       주술도 가득하고, 주술을 쓰기도 좋은 땅이 박살이 난다니.

       끔찍한 비극이 아닌가!

         

       진성은 이러한 비극이 다시 되풀이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비극은 일어나서는 안 되며, 설령 비극이 일어나도 진성이 일본의 모든 주술을 얻은 다음에야 일어나야만 하리라.

         

       그것이 바로 옳은 일이 아니겠는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 이를 뺐습니다.
    그리고 지금, 마취가 풀리기 전에 한 편을 올립니다…

    오…마취가, 마취가 풀리려 하고 있습니다…
    오, 맙소사.

    이빨요정의 가호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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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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