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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1

       항의하러 간 윤현서가 힘없이 돌아왔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가 고개를 푹 떨궜다.

       

       “왜 그러세요?”

       

       “어··· 음···”

       

       “무슨 일 있었어요···?”

       

       “그게 말이지···”

       

       머뭇거리던 윤현서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조심스레 주위를 둘러보던 그녀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 주었다.

       

       참가자인 백이현과 아카데미 강사진이 한편이라는 것과, 그의 뒷배가 엄청나다는 것까지.

       윤현서가 해주는 말에 나는 놀란 모습을 숨길 수가 없었다.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이 진짜 있었네?’

       

       뒷배가 있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 왜 아카데미에서 비리를 저지르는 걸까?

       잘은 모르겠다.

       그래도 찾아내긴 했으니 집에 가서 보고하기로 했다.

       

       “하아··· 미안해서 어떡하지? 우리 일 등은 못 하겠는데···”

       

       “어쩔 수 없죠. 그래도 남은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봐요.”

       

       “응··· 그걸로 만족해야겠다.”

       

       윤현서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도 그녀를 따라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다가 긴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할 일이 없어진 나는 나뭇가지로 흙바닥을 쿡쿡 찌르며 놀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강사진이 나와 우리의 순위를 공개했다.

       

       어제의 체력 테스트와, 이번 슬라임 잡기를 합친 점수였다.

       

       내 순위는 97명 중에서 62등.

       슬라임 잡기에서 2등을 기록했으나, 체력 테스트에선 꼴등을 하는 바람에 등수가 낮았다.

       강한 팀원에게 얹혀가서 패널티가 있기도 했다.

       

       ‘그래도 순위가 오르긴 했다.’

       

       집에가서 빨리 자랑해야지.

       살랑살랑 꼬리가 흔들렸다.

       

       참고로 백이현이라는 남자는 정확히 60등이었다.

       나처럼 첫 순위가 낮아서 그런 것 같았다.

       

       

       

       **

       

       

       집으로 돌아와 처음으로 한 것은 한여름을 찾아가는 일이었다.

       집에서 미리 페로몬을 묻혀 뒀기에,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길드 회의실이네.’

       

       회의실 문 앞.

       언제나 보던 경호원분이 문을 열어주었다.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를 하며 지나가자, 말없이 미소만 지어주었다.

       

       그렇게 열린 문으로 들어서자 보인 것은 길드의 높은 사람들.

       마스터와 한여름 정유나와 최진혁도 있었다.

       

       “아저씨.”

       

       나는 가장 끝자리에 앉은 마스터 옆으로 달려갔다.

       최고 결정권자인 마스터에게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앉을 데가 없어서 마스터 무릎 위에 앉았다.

       

       “어쩐 일이야.”

       

       마스터가 내 뺨을 죽죽 잡아당겼다.

       자연스레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해 쏠렸다.

       순간 나도 모르게 근엄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제가 비리 저지르는 사람을 찾아낸 거 같아요.”

       

       “벌써?”

       

       “네. 대놓고 하더라구요.”

       

       나는 모두에게 아카데미에 있었던 일들을 알려주었다.

       슬라임을 스물네 마리 잡았는데 삼십 마리로 체크된 엄청난 뒷배를 지닌 남자의 이야기를.

       

       “뭐 그런 인간이 다 있어.”

       

       “그러게 말입니다.”

       

       이야기를 들은 길드 사람들이 분노를 표출했다.

       나는 길드 사람들의 분노 속에서 조금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저기, 근데 엄청난 사람이라는데 괜찮으려나요···?”

       

       내 물음에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이 일순간에 입을 다물었다.

       그 침묵을 깨고 처음으로 입을 연것은 마스터였다.

       

       “그것참 큰일이네.”

       

       “크, 큰일이에요···?”

       

       “굉장히 큰일이야.”

       

       마스터가 저러니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 긴장감을 한여름이 깨주었다.

       

       “마스터 너무 그러지 마요. 겨울이 순수해서 진짜 믿는단 말이에요.”

       

       “음···”

       

       “겨울아, 큰일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알았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말투에 안도감이 들었다.

       마스터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어서 더 그런 걸지도 몰랐다.

       

       “그럼 이제 어떡하죠?”

       

       “일단 수업은 계속 받아 봐. 단기간에 많은 걸 알려주는 곳이니까 도움이 될 거야.”

       

       “네에.”

       

       아카데미 남은 기간이 이 주 정도였나.

       초보 모험가들을 위한 단기 훈련소 같은 곳이었으니까.

       남은 시간 동안 열심히 수업을 받으며 백이현이라는 남자를 살펴보기로 했다.

       

       “다음 안건은···”

       

       아카데미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고, 회의가 계속 진행되었다.

       나는 마스터의 무릎에 앉아 멍하니 회의를 지켜보았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책상 위에 올라온 서류로 종이접기를 해 보았다.

       그러다가 꾸벅꾸벅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겨울이 골골한다.”

       

       “서류로 고양이 접어놨는데?”

       

       “내비 둬.”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다가 잠이 들었다.

       분위기가 무거운 회의실인데도 뭔가 편안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 있어서 그런 게 분명했다.

       

       

       **

       

       

       “겨울아.”

       

       어둠속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얼굴이 푹신한 게 누군가에게 안겨 있는 것 같았다.

       조심스레 눈을 뜨자 한여름의 품이 보였다.

       

       “우으···”

       

       눈이 잘 뜨이지 않는다.

       계속해서 눈을 깜빡거리고 있으니, 한여름이 내 눈을 문질러 주었다.

       

       “겨울아, 언니 던전 가야 하는데 집에 데려다 줄까?”

       

       “아뇨, 저 공원에서 아이들 만나기로 했어요.”

       

       “응. 그러면 잠에서 깰까?”

       

       한여름이 나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직 정신 차리지 못한 몸이 비틀거렸다.

       

       그런 내 두 팔을 한여름이 붙잡았다.

       두 팔을 위로 잡아당기며 강제로 기지개를 켜게 했다.

       

       “냐아.”

       

       내 입에서 고양이 소리가 새어나왔다.

       고양잇과 수인족이라 그런지, 가끔 이렇게 고양이 같은 소리가 새어나오고는 했다.

       

       “겨울아, 잠깼어?”

       

       “네에.”

       

       “헤헤, 그러면 언니가 바빠서 이만 가볼게. 먼저 가서 미안해.”

       

       “괜찮아요. 조심히 다녀오세요.”

       

       바이바이.

       한여름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는 아이들을 향해 달렸다.

       

       공원에 있는 수영장 놀이터.

       그곳 벤치에 아이들과 권아린이 있었는데, 권아린의 손에 검정색 구슬이 들려있었다.

       

       저 구슬이 뭐길래 저러지?

       호기심이 생겨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저 왔어요.”

       

       “왕아!”

       

       “쥬인!”

       

       레비나스와 가을이가 자기만의 별명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새벽이는 입을 열지 않았지만, 꼬리는 빠르게 흔들리고 있었다.

       수인족인 나이기에 알 수 있었다.

       꼬리를 흔드는 것이야 말로 최고의 반가움 표현이라는 걸.

       

       “다들 여기서 뭐 하고 있어?”

       

       “구슬 보고 있다!”

       

       “구슬?”

       

       자연스레 권아린 손에 들린 검은 구슬을 바라보았다.

       뭔지는 모르겠는데, 마나가 느껴지는 구슬이었다.

       검정 기운이 일렁거릴 정도였다.

       

       “이게 뭐예요?”

       

       “나도 모르겠어. 던전에서 나온 미확인 아이템인데, 여름 언니한테 감정받아 보려고.”

       

       “어··· 아마 오늘은 안 될걸요? 방금 던전 갔거든요.”

       

       “그래? 회의 끝나는 거 기다리고 있었는데.”

       

       쩝.

       권아린이 입맛을 다셨다.

       나중에 물어보면 돼서 그런지 크게 불만을 내보이진 않았다.

       

       “뭔가 어두운 느낌이에요.”

       

       “응. 마녀 잡고 나온 거거든.”

       

       “마녀요? 던전에서 마녀도 나와요?”

       

       “네가 생각하는 그런 마녀는 아니고, 뭔가 고블린 같이 생긴 몬스터 마녀야.”

       

       “아하.”

       

       마녀를 잡고 나온 아이템이라니 뭔가 신기하다.

       자세히 관찰하고 싶은 마음에 권아린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자.”

       

       권아린이 내 의도를 알았는지, 내 손바닥 위에 구슬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때.

       

       슈우윽-!

       검정 구슬과 그 기운이 내 몸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헉!”

       

       깜짝 놀라 손을 털어내려 했으나, 검정 구슬은 이미 흡수된 후였다.

       놀란 아이들과 권아린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헉! 왕이가 구슬을 흡수했다!”

       

       “냠냠?”

       

       내가 구슬을 흡수 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라는 말을 해주려 했다.

       그런데.

       

       “냐아.”

       

       내 입에서 고양이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

       

       뭐지.

       갑자기 사람 말이 안 나온다.

       혓바닥을 이리저리 굴려 보았지만, 나오는 건 고양이 소리였다.

       

       “냐아아!”

       

       놀라고 답답한 마음에 발을 동동 굴렸다.

       아이들이 이런 나를 가을이와 같은 맹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왕아! 많이 놀랐냐?!”

       

       “쥬인···!”

       

       “냐아···”

       

       놀란 게 아니라 사람 말이 안 나와.

       그리 말해주고 싶었으나, 내 입에서 나오는 건 고양이 울음소리뿐이었다.

       

       “겨울이가 계속 야옹 만 한다. 구슬 흡수돼서 많이 놀랐나 봐.”

       

       “응. 겨울아 아무 일도 안 일어났어. 너무 겁먹지 마.”

       

       새벽이가 다가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권아린도 진정하라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는 그들의 태도에 발구름이 더욱 거세지고 말았다.

       

       ‘무슨 일 일어났어···!’

       

       나 지금 고양이 소리만 내고 있는데?!

       왜 이걸 깨닫지 못하는 거지?!

       답답한 마음에 몸이 들썩거렸다.

       

       “자, 심호흡하고.”

       

       권아린이 등을 쓸어내려 주었다.

       아이들도 어깨와 머리 등을 토닥여주고 있었다.

       

       “우우···”

       

       귀와 꼬리가 축 가라앉는다.

       평생 이렇게 고양이 소리만 내면서 살아야 하는 건가?

       당장 내일 아카데미에 가야 하는데?

       

       당황스러운 마음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저 멀리 공원을 거니는 정유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

       

       정유나의 마법 실력이라면 내 문제를 해결해 줄지도 몰랐다.

       나는 다급히 정유나를 향해 달려갔다.

       

       “냐아아···”

       

       “어머, 겨울아?”

       

       정유나에게 내게 생긴 문제를 온몸으로 표현했다.

       폴짝폴짝 자리에서 뛰다가, 그녀의 주위를 뱅글뱅글 돌았다.

       그리고는 정유나의 품에 안겨들어 몸을 마구 흔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다급함 표현이었다.

       

       “겨울이가 많이 급했나 보구나?”

       

       “······!”

       

       맞아요 맞아.

       눈을 빛내며 정유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정유나가 후후 웃으며 나를 꼭 안아주었다.

       

       “이 정도로 안기고 싶었어?”

       

       “·····?”

       

       아닌데?

       안기고 싶은 게 아니라 문제가 생긴 건데?

       

       아이들과 권아린 그리고 정유나까지.

       모든 이들의 앞에서 고양이 소리만 내었음에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나로서는 정말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오늘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댓글 추천 또한 감사합니다! 언제나 힘이 되네요!

    겨울이가 야옹 한다 = 평소의 겨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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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젠풍뎅이님 25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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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최강 길드에 납치당했다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When I opened my eyes, I was in a den of mon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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