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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1

       

        

        

        

        

        

        

       “이야, 끝내주는구만.”

        

        

        

        누군가가 중얼거린 말이 본 경기장에 가득찬 6만 명의 관중 사이로 퍼져나간다.

        

        과연 그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다이스가 사전에 버기에 장치해둔 트랩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고지대를 가득히 메운 백색의 유독성 연기 때문이었을까. 혹은 그 연기를 헤치고 나온 당사자의 비주얼 때문일까. 하지만 확실한 건 – 이번의 경기, 그리고 다이스의 플레이는 앞으로 몇 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계산하고, 모든 변수를 플랜 안으로 편입시켜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창출하는 유진과는 다르게, 간혹 다이스는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서 마치 신들린 것처럼 영감을 뽑아내어, 그것을 현실에 구현하는 능력과 행동력을 가지고 있었다.

        

        고지대에서 뜬금없이 흘러넘치는 백색의 산성 구름은 바로 그 결과물이었다. 

        

        물론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부우웅!

        

        

        

        허공에서부터 저공 비행하던 드론 한 대가 산성 연막 속으로 추락함과 동시에 4륜 오토바이 한 대가 도로를 가로질러 비포장도로로 들어선다. 실로 능숙한 움직임으로 고지대에 위치한 마을까지 차량을 몬 다이스가 진입 직전 방호복을 착용하고는 백색의 구름 사이를 가로질렀다.

        

        그녀는 누가 보아도 부자연스럽게 건물에 주차되어있는 버기 한 대를 발견하였고, 그 즉시 다용도 파우치에서 낚싯줄과 수류탄 두 개를 꺼내들었다. 구태여 오래 시간을 들일 필요조차 없이, 안전손잡이 두 개에 낚싯줄을 연결한 뒤 이를 바퀴 휠과 연결하고는 안전핀을 뽑았다.

        

        말 그대로, 시동을 걸고 바퀴가 한 번 구르면 수류탄의 안전손잡이가 분리되는 구조였다.

        

        기다림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방에서 백색 연기가 뿜어져나온 시점부터 대략 5분도 지나지 않아 산성 가스는 적이 위치한 버려진 빌라의 4층까지 침투했고, 그는 방독면을 쓴 채 황급히 내려와 버기에 탑승했다. 부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시동이 걸리며 바퀴가 회전했다. 마치 사신의 숨결과도 같은 소음이었다.

        

        그 다음으로 발생한 일은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었다.

        

        폭음과 섬광이 일시에 치솟았다.

        

        

        

       -커헉!

        

        

        

        콰아앙!

        

        차체가 크게 들썩이더니 불구덩이로 변모했다. 속도가 붙기도 전 불타버린 차량에서 한 명의 유저가 반쯤 튕겨지듯 바닥을 구른 것은 그와 거의 동시였으며, 다이스는 폭발음이 들린 즉시 느릿하게 걸어 적을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그가 듣지 못했던 웅얼거림은 다음과 같았다.

        

        

        

       -내년에 보자구요.

        

        

        

        그리고 다이스는 검지를 당겼다.

        

        본래라면 가만히 놔둬도 질식사로 파이널 챔피언십을 마감하게 될 유저였지만, 다이스는 이미 몇 차례 로건을 마주하며 결국 최고의 확인사살은 시체가 사라지고 아이템 더미만이 남는 것을 두 눈으로 관람하는 것임을 뼈저리게 느낀 시점이었다.

        

        퍽 하는 둔탁한 소음과 함께 총알이 미간을 꿰뚫었다. 그리하여 UI 위에는 새로운 킬이 추가되었고, 사망자와 생존자가 표시되었다. 그리하여 남은 유저는 60대에서 50대로 줄어든다.

        

        산소 잔량이 그다지 많이 남지는 않았고, 바닷물과 용암은 계속해서 들어차며 이 주변에 끊임없이 유독한 연기를 뱉어내겠지. 그 증거로, 본래 지하 관제실로 내려가는 입구였던 곳에서는 마치 새 치약을 힘주어 눌러 짜는 것마냥 연기가 끝도 없이 세차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더 이상 이곳에 볼일은 없었다.

        

        다이스는 그 자리에서 몸을 돌려 사전에 주차해둔 4륜 바이크를 타고 가파른 비탈길을 능숙한 조향으로 내려갔고, 불과 몇 분 전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점차 수몰되어가는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 채 아타카이아 화산섬의 중심부로 들어섰다.

        

        

        

       -후아.

        

        

        

        조향은 이카루스 기어에 맡겨둔 채, 방호복을 벗고 방독면까지 벗어던진 그녀가 그 누구보다도 상쾌하게 숨을 쉬었다.

        

        물론 고지대를 이루는 언덕과 이어진 야트막한 언덕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검고 붉었으며, 무엇보다도 세상의 종말이라도 온 것마냥 시꺼먼 구름을 토해내는 활화산인 호쿠 마우 로아는 그 자체로 무지막지한 압박 그 자체였다. 하지만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그렇게 마치 음악 앨범 커버에나 쓰일 법한, 혹은 영화 포스터라고 해도 믿을 법한 광경으로 돌입하는 다이스를 보며, 모두가 감탄을 터뜨렸다.

        

        

        

       -낭만에 죽고 낭만에 사는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낭만(본인은 철저히 실리적임)

       -야스가별거냐? 이게 야스지 ㅋㅋ

       -얘네들은 왜 나랑 다른게임하냐? 나도 AP하는데 얘네들은 왜 자기들끼리만 더 개꿀잼으로 함? 나도 존버스팸질 가득한 좆같은 랭크말고 낭만가득한 대회나갈래!!!!!!!!!!!!!

       -꼬우면너도선수해~

        

        

        

        당연하겠지만, 한 선수당 붙은 카메라의 갯수는 적어도 네 개에서 다섯 개. 그런 것이 어느덧 50개 가량이었으니, 적어도 200개가 넘는 화면이 존재하고 있단 소리.

        

        그 중에서도 단연 인기가 넘치는 것은 한국 대표팀의 플레이 화면이었고, 당연히 그 아래의 채팅창은 문전성시를 넘어 인구 과포화 상태에 다다를 정도였다. 적잖아 스무 개 가량으로 분리된 것도 모자라 저속 채팅까지 걸어놓은 채팅창조차 읽을 수 없을 정도였으니, 더 이상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터.

        

        그러나 그 모든 상황들이 어쨌건 간에, 다이스를 비롯한 한국 대표팀은 제각기 자신만의 방법으로 적들을 패배시키며 전설을 쌓아올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유저들의 숫자는 50에서 40으로, 그리고 30으로 줄어든다.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이후로도 수많은 역경을 거친 다이스가 지옥에서 막 건져올린 듯한 불타는 시가지에 진입했을 즈음, 하모니는 조심스럽게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이널 챔피언십과 동일한 날에 끝나는 파트너 스트리머 대항전 준비 때문이었다.

        

        비록 우승한 유진에게 가서 축하의 인사를 건네기는 조금 어렵겠지만, 그건 호텔에 돌아가서 하는 수밖에 없겠지. 참으로 아쉬웠지만, 하모니는 작게 숨을 내쉬고는 유진에게 미리 문자 하나를 작성했다.

        

        

        

       -[Harmony : 1등 축하해요 유진씨!]

        

        

        

        설레발이라고 할 수 없는 설레발.

        

        이래놓고 설마 유진 씨 지인분이 우승하면 엄청 쪽팔린건데. 하모니는 그리 중얼거리며 히히 웃었고,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파이널 챔피언십이 끝나기까지 불과 15분 전의 일이었다.

        

        

        

        

        

        

        

        

        

        

        

        

        

        

        

        

        

        

        

       “진입로의 상태가 영 안 좋은데….”

        

        

        

        마치 지옥의 일부분을 케이크처럼 도려내어 현실에 덧씌운 듯한 광경을 보며, 나도 모르게 그리 중얼거렸다.

        

        현실이었다면 진작에 화상을 입을 정도의 공기가 도시 내에 만연했다. 바깥에서부터 다가오는 용암이 진로상에 놓인 모든 걸 불태우고 밀어버리며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이리 말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길 꼬라지 진짜.”

        

        

        

        안전지대임에도 불구하고 눈 앞에는 용암이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

        

        요컨대 이 맵은 다른 킬존처럼 용암이 맵 주변을 원형으로 감싸는 형태이긴 했지만, 킬존이 다가오는 것보다 지하에서 일찍 용암이 넘치게 되면 원형의 안전구역을 관통하는 또 다른 용암 강이 생긴다. 그런 상황은 근처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나처럼 멀리서부터 출발해서 도착한 인원들은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었고.

        

        마지막 안전지대는 한창 공사가 이뤄지고 있는 구역이었다. 사방에 콘크리트 흙먼지만 날리는 곳이라는 소리였다. 물론 오늘은 공사장에서 흔히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와 건설 기자재 같은 것들은 온데간데없었고, 오로지 콩 볶는 소리만이 사방팔방에서 들려올 뿐이었지만.

        

        아무튼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예상 기동로의 한복판을 폭 십수 미터 가량의 용암 강이 가로막고 있었다.

        

        

        

       ‘…밟고 갈 수 있나?’

        

        

        

        어디 영화와는 다르게 용암의 밀도는 무진장 높다. 빠르게 달리면 밟을 수 있을 정도로 묵직하고 단단했고, 발이 푹 꺼질 정도는 전혀 아니라는 소리였다. 물론 저렇게 흐르는 상황이라면 몇 발자국 내딛는 순간 발에 달라붙어버리겠지. 그 다음은 저 불구덩이 위에 넘어질 거고.

        

        건너편은 마찬가지로 공사장. 바닥에 박혀져있던 철제 기둥과 금속 비계는 이미 엿가락처럼 휘어지거나 용암에 쓸려간 지 오래인 듯했고, 공사 현장을 가리는 천이나 바람막이는 진즉에 타버린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이 길은 포기할 수밖에.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가야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를 이 위로 올릴 걸 그랬나.”

        

        

        

        이딴 미친 생각이 먼저 드는 걸 보니 열기에 머리가 익어버렸나보다.

        

        그래도 주변에 있는 기자재를 잘 활용해서 점프대를 만들면 건너갈 수 있을지도 몰랐으니, 일단 바깥에 주차해두었던 4륜 바이크가 아직 잘 있나 확인하는 게 우선이었다. 게다가 지금 확인한 기동로는 말 그대로 사용 불가능 상태였기 때문에, 어차피 되돌아가야만 했고.

        

        내려왔던 계단을 다시 올라 주변을 살핀다. 이곳은 고작 3층 가량밖에 공사가 진행되지 않은 대형 쇼핑몰이었으며, 다르게 말하면 다른 공사 현장보다도 비교적 복잡한 구조를 가졌다.

        

        물론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본래라면 금속 비계와 바람막이, 천 등으로 추락을 막고 있던 발코니 부분은 진즉에 용암에 다 쓸려갔고, 다르게 말하면 외부에서 바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바깥을 확인해봤을 때, 내가 타고 온 4륜 바이크는 이미 잿더미 혹은 불타는 고철덩어리 정도로 개명해버린 상태였다.

        

        

        

       “…그럴 거 같더라.”

        

        

        

        물론 지나간 일에 아쉬워할 수는 없었다.

        

        로프랑 무게추 비슷한 거라도 찾아봐야 하나. 여차하면 던져서 어딘가에 걸고, 그 다음 건물에서 뛰어내려서 건너편 공사장에 착지하는 것도 눈여겨봐야겠다. 잡동사니들은 널리고 널렸으니까 사실상 줄이 가장 큰 요소였다.

        

        주머니에 들어있는 낚싯줄을 사용하는 건 보류. 복사열 때문에라도 떨어지면서 반동을 받는 순간 줄이 끊어져서 용암 위로 자유낙하해버릴 확률이 높았다. 차라리 드론이 있었더라면 최대 출력으로 작동시키고 떨어지면서 잡아 낙하 대미지를 어느 정도 상쇄시킬 수 있으련만.

        

        물론 이 또한 늦은 지 오래였다.

        

        그렇게 주변을 열심히 둘러보면서 쓸만한 물품이 있는지를 확인해봤을까,

        

        

        

       ───투두두두두!

        

       “그럴 줄 알았지!”

        

        

        

        이 시점에서 쓸모있는 물건보다도 더 많이 볼 수 있는 존재는 다름아닌 적이었다.

        

        여섯 발 중 세 발을 방어구와 다리, 그리고 허벅지에 적중당했다. 물론 전부 실드에 튕겨져나가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감당할 수 있는 대미지였고, 이제는 확실하게 적의 위치를 확인해야만 했다. 황급히 올라왔던 계단을 내려감과 동시에 미끼를 발동, 사격 모드를 발동시킨다.

        

        원형의 접시처럼 생긴 홀로그램 투영기에서 막대기 하나가 길게 뻗어나오더니, 그 위에 무언가를 걸칠 수 있는 받침대가 튀어나온다. 홀스터에서 권총을 뽑아 그 자리에 올려놓자마자 뒤쪽으로 지지대가 뻗어나왔고, 이내 나와 동일하게 생긴 홀로그램이 계단통에 권총을 겨누는 모습이 그 자리를 메웠다.

        

        홀로그램 투영기를 자재 뒤쪽에 숨긴 뒤 지지대를 벽면에 고정시켜 반동 제어가 가능하도록 조정을 끝낸 뒤, 다시금 계단에 올라 2층의 전경을 눈에 담자마자 적이 엄폐물 뒤에 숨는 모습이 보였다. 즉각 나나이트를 발사해 그것을 통째로 녹여버림과 동시에 사격을 개시했다.

        

        교전이 시작되었다.

        

        

        

       “어으!” 

        

        

        

        치이이익!

        

        불길한 소음과 함께 바닥을 무서운 스피드로 굴러오는 시커 마인. 반사적으로 조정간을 연발로 바꾼 뒤 트리거를 잡아뜯자, 그 중 운 좋은 한 발이 지뢰를 부순다. 섬광과 파편이 튀어오르며 귀가 먹먹해졌다.

        

        그 와중 적은 내가 소모한 탄환의 수를 정확하게 세고 있었는지, 하나의 탄창이 다 소모되는 순간을 노려 호 형태의 펄스 에너지를 내게 방사했다. 충격파를 직격으로 얻어맞은 탓에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으-나, 그 상태에서 그대로 계단으로 굴러떨어졌기 때문에 다행히 총알에 맞지는 않았다.

        

        혼란이 점차 걷히는 사이 적이 빠르게 접근하는 소리가 들렸다. 황급히 계단통 옆에 숨은 뒤 몰리의 수류탄을 하나 뜯어 2초간 쿠킹, 그것을 계단 위로 휙 집어던졌다. 이것으로 적은 쉽사리 내려오려고 들지 않겠지.

        

        그렇게 숨막힐 듯한 적막이 흐른다.

        

        하지만 그리 길지 않았다.

        

        

        

       “또…!”

        

        

        

        츠즈즈즉!

        

        시커 마인의 쿨타임이 다 되었다.

        

        내가 숨어있던 1층으로 툭 떨어진 시커 마인이 내가 있는 방향이 아니라 미리 설치해둔 홀로그램 투영기로 다가간다. 이로부터 한 가지 사실을 확인 가능했다 – 추적 지뢰의 쿨타임이 되었다는 것은 아마 기절 펄스 역시도 비슷한 상황이란 소리겠지.

        

        다르게 말하면 정면에서 마주하는 건 승산이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소의 손상을 입더라도 홀로그램 투영기를 살려, 적이 그곳에 기절 펄스를 낭비하게 만들어야만 했다.

        

        나는 발을 내딛었고, 그 순간 1층을 자율기동 모드로 정찰하던 지뢰가 나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치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가속하더니 순식간에 3미터 내외로 접근했다. 물론 피하지 않고 총을 겨눈다. 확실히 쐐기를 박기 위해서라도 내 위치와 홀로그램 투영기의 위치가 비슷하다는 사실을 각인시켜야만 했다.

        

        그리하여 다음 순간, 파드득 하는 소리가 울려퍼지며 지뢰가 총알에 맞아 폭발했다.

        

        물론 그 여파를 전부 뒤집어쓰긴 했지만, 이걸로 적은 내 위치를 대략적으로 알게 되겠지.

        

        

        

       “…!”

        

        

        

        간신히 몸을 추스른 다음 반대쪽 계단통에서 대기.

        

        그리고 그로부터 몇 초나 지났을까.

        

        

        

       ───파아앙!

        

       ───탕! 탕! 탕!

        

        

        

        홀로그램이 총을 사격함과 동시에 펄스라기보단 마치 충격파 같은 그것이 홀로그램 투영기를 강타했다. 당연히 권총도 미끼도 전부 박살나 날아가지만, 그 대가로 나는 30% 가량 남은 실드 에너지와 적의 등짝을 선물로 받아낼 수 있었다.

        

        조정간은 연발. 적의 등과 총기 간의 거리는 꼴랑 수 미터.

        

        그 순간 나는 트리거를 잡아뜯었고, 상대방은 만신창이 이상의 무언가가 되었다. 실드가 부서지는 청량한 소음과 함께 묵직하게 탄환이 박히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물론 내 허니뱃저 탄창 용량은 45발이었지만.

        

        

        대략 30발 가량을 박은 순간, 적은 홀로그램 미끼가 있던 엄폐물에 황급히 몸을 숨기고는 기겁한 표정으로 제압사격을 갈겨대었다. 실로 놀랄 만한 스피드로 기동하던 그는 마지막 한 발까지 소모함과 동시에, 내가 더 나아가기를 포기했던 용암과 맞닿은 1층 발코니에 몸을 숨겼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우위는 내가 점하고 있었다. 사실상 그냥 밀고 들어가도 정면에서의 교전조차 내가 이길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HP랑 실드는 아껴두고 싶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는 적을 어떻게 조져버릴지에 대한 한 가지 행복한 고민이 생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결정된 방법.

        

        

        

       -퉁!

        

        

        

        충전된 한 발의 나나이트 발사기가 벽에 착탄하는 순간, 마치 여름날 밖에 내놓은 아이스크림마냥 콘크리트 벽이 녹아가기 시작했다. 시멘트 벽이 박살나며 안의 철제 골조가 드러나는 것도 모자라, 머지않아 건너편 벽에 숨어있던 적이 모습을 드러낸다.

        

        

        

       “우와악!”

        

        

        

        그리고 그것이 적의 단말마가 되었다.

        

        파득 하는 소리와 함께, 상대는 몇 초 안에 시체로, 그리고 아이템 무더기로 화했다.

        

        물론 한가롭게 파밍할 시간은 없었고, 여유롭게 짐을 뒤져보려던 내 시선에 들어오는 게 하나 있었다 – 사실 눈으로 볼 필요도 없었다. 시선을 그쪽에 주지 않아도 무진장 불길한 소리…그러니까,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가 저 건너편에서부터 들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저 건너편에서부터 1층을 침습하기 시작한 용암이 건물 기둥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이 액체는 당연히 돌이 녹아내린 것이었으며, 다시 말해 상식 이상의 물리량에 열까지 가진다. 집조차 무너뜨리는 자연재해에 건물이 버틸 수 없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내가 서있는 곳 역시도 용암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알림 : 적대적 환경 침습. 건물 변형 한계점 도달, 붕괴 임박.]

        

        

        

       “큰일났네.”

        

        

        

        설마 이걸로 끝인가. 결국 건물 붕괴로 내 파이널 챔피언십은 막을 내리는 건가. 그렇게 녹아내린 벽면을 보고 있다가 – 갑자기 드는 미친 생각.

        

        붕괴?

        

        

        

       “설마 이거라면….”

        

        

        

        그 순간, 마치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화학물질 발사기에 나나이트 실린더를 밀어넣는다.

        

        대략 십수 미터 가량의 간격을 둔 채 서있는 건너편의 건물, 그리고 내가 서 있는 건물의 기둥 상부를 조준했다 – 내 생각은 간단했다. 내가 있는 건물과 건너편 건물을 통째로 무너뜨림으로서 용암 강 사이에 발판을 만든다. 어차피 모 아니면 도였고, 이 자리에서 가만히 좌선하며 타죽을 수도 없는 노릇.

        

        폭파구조학은 그 무엇보다도 복잡한 학문이었지만, 지금 내게 정밀한 계산을 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그저 중력을 믿고 건물이 기울어지는 방향을 십수 미터 가량의 폭을 지닌 용암강으로 이끌 뿐.

        

        

        실린더가 허공을 날았다. 건너편 건물과 내가 서있는 건물 기둥이 하나둘씩 사라진다. 어차피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으며, 나나이트 캐니스터는 내가 죽기 전까지 계속해서 충전된다. 모자라면 다시 생겨나는대로 기둥을 녹여 없애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대략 1분이나 지났을까.

        

        

        

       ───쿠구구궁!

        

        

        

       “흐익…!”

        

        

        

        건물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강을 사이에 둔 3층 콘크리트 가건물이 ㅅ 모양처럼 맞닿았고, 수십 톤에 달하는 파편과 돌들이 십수 미터 가량의 용암 위로 쏟아졌다.

        

        진즉에 옆으로 피해있었기에 붕괴로 인한 피해는 없었다. 따라서 흙먼지가 채 걷히지도 않은 시점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미터 단위의 높이와 두께의 파편들이 용암의 강 위에서 길을 만들었다. 그 길 위를 한 발자국씩 내딛는 동안에도 불과 몇 미터 옆에서 고이기 시작한 용암이 파편을 밀어내려고 하는 게 느껴진다.

        

        그렇게 영원과 같은 20초가 지났다.

        

        그리고-

        

        

        

       “후아…!”

        

        

        

        ───드드득!

        

        

        

        무사히 건넌 시점에서, 건물의 파편만으로 이루어진 가교(假橋)가 완전히 용암에 떠내려가는 것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싶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이 방법을 진작에 좀 떠올려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지만, 원래 세상 일이란 그런 법이 아닐까. 지금은 살아있음에 감사하도록 하자.

        

        물론,

        

        

        

       “진짜 나만 오만가지 힘든 상황 다 겪는 느낌이네.”

        

        

        

        분명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아직 파이널 챔피언십의 마지막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과 내일은 연참 한 번씩입니다

    오늘은 별 이유가 없지만, 내일은 무려 연재 1주년이네요

    전부 여러분들이 여기까지 지켜봐주신 덕이 아닐까 합니다

    내일 더 긴 감사의 말과 연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귀환했지만, 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Just the fact that I came back couldn’t be the end of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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