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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1

        

         “……어라?”

         

         얼빠진 탄식이 저절로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왔다.

         

         왜? 그야 스튜디오에서 나름 세기의 신경전이라 부를만한 눈치 싸움을 하다가 온 덕분에 한껏 날카롭게 곤두서 있던 내 감각이 ‘님님, 그건 존나 큰 실수 같은데요?’라며 경종을 울렸기 때문에.

         

         한 쪽에서는 총성과 고함이 난무하고 있어도, 그래도 약간 어울리지 않는 엄숙함이 감돌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어디로 갔나.

         

         공통된 적 앞에서 사소한 원한이나 마찰 정도는 뒤로 미룬다는 공동 전선의 법칙이나 도의는?

         

         난 분명 민폐를 끼치고 있는 아르카디아 친구들이나 좀 후딱 치워달라 정중하게 부탁했거늘, 왠지 이쪽에도 따로 살벌한 전운이 감돌기 시작하였다.

         

         진짜 내 잘못이냐? 응?? 다 내 잘못이야?

         머리 한 구석에서 물과 기름을 뒤섞은 걸 넘어, 콜라에 멘토○ 사탕을 처박고도 멀쩡하길 바라는 건 무리라는 냉정한 의견이 나왔지만…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아, 혹시 크게 조력하기 힘들 거라 지레짐작하고 너무 남의 일처럼 말해서 그런가?

         테러리스트 무리를 뚫고 뉴스 룸까지 갈 볼일이 있는 건 난데 통나무를 다 떠넘겨서?

         

         내 전투 능력을 긴급 상황에서 꺼내는 비장의 한 수 정도로 평가했다 뿐이지 딱히 내빼려던 건 아닌 만큼, 고사리손이라도 보태는 편이 도움이 된다면야 원호할 의지 자체는 만만하다.

         

         언제는 내가 찬밥 더운밥 가리면서 싸움에 임했다고, 전열이 힘내서 시선을 잡아 끄는 틈을 타면 하나나 둘쯤은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으리라.

         

         “좋아, 그럼 나도 최대한 살살 지원할 테니까 불만은 없겠…….”

         

         – 일부러 그러실 필요도 없습니다. –

         “그건 무사의 수치오.”

         

         “…뭐, 어쩌라는 건데 니들!!”

         

         기껏 홀스터의 잠금을 풀고 피스메이커를 뽑아 들며 한 발 낄 준비를 마쳤건만.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둘이서 짠 것처럼 동시에 참전을 적극 만류해왔다.

         

         그래 놓고 정작 흘겨보는 눈에는 모두 묵묵부답이었으니.

         

         이것도 아니야, 저것도 안 돼.

         

         도무지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는 투로 사이버웨어 방송 화면을 힐끔거리며 말하자, 과연 사람 초조하게 만드는 것도 나쁜 짓이라는 걸 드디어 알아주었는지 서로를 힐끔거린 제로와 마사나리는 각자 천천히 모퉁이 쪽으로 다가섰다.

         

         마사나리의 무기는… 아까 내가 권총 한 자루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구시렁거린 게 무색하게시리 특유의 일본식 단검, 거기에 다른 손에는 소음기가 달린 핸드건. 단출하지만 사용자가 초인이라면 얘기가 전혀 달라지는 경무장.

         

         반면 제로는 고슴도치가 낮추고 있던 가시를 곤두세우듯, 일찌감치 0호기의 모든 총구를 개방하고 블레이드까지 뽑아 든 채로 신체 각 부위의 출력을 점검하며 전진했고.

         

         “귀인께서 보고 계신 와중에 주접을 떨 수야 없으니. 예전에 소인이 제로 공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처럼, 이번에는 소인의 방식대로 넘어가지 않겠소이까?”

         

         – 어디까지나 합리적이고 합당한 제안이라면 적극 수용하겠습니다. –

         

         앞에서 경비 드로이드 특유의 내구력과 정밀 사격으로 충분히 승기를 잡을 수 있다 판단한 모양인지. 아르카디아 쪽 전투원들이 대범하게도, 서서히 복도로 밀고 나오는 형국이었지만.

         

         대처가 영 곤란해 보이는 방송국 경비원들과는 달리, 우리측 둘은 선공권을 취할 수 있는 위치까지 먹이감이 스스로 머리를 들이밀기 기다리듯 태평하게 티키타카를 주고받고 있었다.

         

         설마…… 특유의 기 싸움 연장전이 훨씬 더 중요하다 생각해서 그러는 건 아니리라 믿는다. 아니, 정말로.

         

         “긴장이 부족한 섬멸전에서 추적자들은 종종 수급한 머릿수(Kill count)를 가지고 내기를 한다 들었소이다. 안타깝게도… 소인은 같은 기수의 동료 요원이 없는 터라, 여러 선배님들의 경험담을 듣고 넘기기만 하였소만.”

         

         – 생각보단 나쁘지 않군요. 허면 개시 신호는? –

         

         공격할 때에는 바람처럼 빠르게, 행동할 때에는 숲처럼 정연하게.

         침공할 때에는 불처럼 기세 좋게, 마지막으로 주둔할 때에는 침착한 태산처럼.

         

         게임에서도 추적자들 특유의 충성과 관련하여 약간 엇비슷한 묘사가 있긴 했는데.

         마사나리가 따르는 걸로 보여지는 퓨-전 무사도에도 풍림화산風林火山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지, 조용히 호흡을 순환시키며 가속할 준비를 마친 그녀는 나지막하게 대답하고는.

         

         “지금.”

         

         파앙——!!!

         

         있는 힘껏 당겨진 활시위가 놓이듯, 인근 공기가 빨려 들어갔다가 터져 나가는 수준의 소음과 함께 흐릿한 잔상을 남기며 튕겨져 날아갔다.

         

         “이런 개씨발 뭐야!?”

         “갈겨!! 교단 인식 태그가 없는 놈들은 어차피 전부 이단이다!”

         

         공세로 나서던 테러리스트 쪽에서 비명이 쏟아졌다.

         저들의 눈에는 숫제 시커먼 먹물이 돌연 경로를 가로막으며 짓쳐 들어오는 것처럼 보였겠지 그래.

         

         검고 울퉁불퉁한 컴뱃 아머… 높은 곳에서 덮치는 기습을 즐기는 성격….

         

         어딘가의 밤을 수호하는 박쥐 히어로가 생각나는데? 물론 이쪽은 살인 리미터가 풀리다 못해 부스터 모드가 켜져 있다는 사소하지만 중대한 차이가 있긴 하다만.

         

         – 미확인 개체의 적대 행동 포착, 위협도 레벨 즉응 사살로 판정. 지원 여러분은 교전에 휘말리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

         

         빠각!!

         챙! 쩌엉…!

         

         시각 계통에 꽤 고급 부품을 채용했는지 용케도 날아가는 게 생명체라는 걸 분석해낸 로봇들이 총구를 일제히 위로 치켜들었으나.

         

         그들에겐 본능적으로 행하는 무차별 난사가 없다는 걸 아는 노련한 요원답게, 마사나리는 발에 채이는 돌멩이를 짓밟듯 놈들의 머리통을 징검다리 삼아 단숨에 후열 사이비들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심지어 중간중간 날아드는 총알 몇몇 개는 호쾌하게 단도를 휘둘러 쳐내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정면에 있던 기존 경비원들이 생성하는 위협(Threat Level)보다 방금 놓친 괴한을 막는데 더 중대하다 연산한 드로이드들은 휘청거리면서도 일제히 뒤로 돌았는데… 아무래도 존나 실수지 저건?

         

         까득! 우지직!!

         

         – 치명…적, 손상 확. 인. –

         – 코어 과충전 방지를 위해 긴급 종료……. –

         

         타들어 가는 단말마를 남기고 두 기의 시스템 전원이 거의 동시에 꺼졌다.

         사람으로 치면 얼굴이나 다름없는 헤드 파츠를 뚫고 거꾸로 솟은 처형검이 불쑥 자라났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기는 하다.

         

         외부 장갑의 틈새. 그러니까 장갑과 장갑 사이의 관절, 그리고 데이터 전송용 단자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드로이드 특유의 연약한 부위를 깔끔하게 관통한 제로의 블레이드가 잔인하게 내부 회로를 박살내 놓으려는 듯 좌우로 비틀린다.

         

         동족 의식이고 나발이고 따질만한 수준의 AI가 탑재된 게 아닌 것 같기는 했는데… 얘도 참 어떨 때 보면 전혀 용서가 없다니까.

         

         양손에 꽃 대신 강철 덩어리를 대롱대롱 매단 꼴이 된 제로는 히든 블레이드의 날이 상할 게 염려된 듯, 팔을 거칠게 털어내는 걸로 볼일이 끝난 것들의 몸뚱어리를 복도 구석에 처박았다.

         

         – 둘. 제가 먼저 크게 선취점을 땄군요. –

         

         “!? 공짜나 다름없는 로봇의 머리까지 세는 건 명백히 반칙이 아니오!”

         

         – 드로이드에게 내기를 걸으셨는데, 그런 예외를 지금 와서 제가 인정할 것 같습니까? –

         

         첫번째 희생양으로 선택당한 악조건 속에서도 두 팔을 몸 쪽으로 최대한 붙여 라이플의 근접 사격각을 만든 아르카디아 신도의 노력이 무색하게.

         

         가속이 끝난 채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제자리에서 폭풍처럼 회전하며 가드를 날려버린 마사나리는, 거의 주먹으로 후려갈기듯 깊숙하게 단검을 돌려 치는 걸로 해저드 슈트 밑에 숨은 경부를 확실하게 그어버려 미약한 저항을 산산이 분쇄했다.

         

         덧붙여서 상황 파악이 덜 끝난 얼빠진 놈 하나에겐 쳐다보지도 않고 이마에 푝푝! 다른 손의 방아쇠를 당기는 걸로 마무리 지었고.

         

         “과연, 그 점은 합당하구료! 허면 소인도… 하나에 둘…!”

         

         이제는 슬슬 해설할 시간조차 없었다.

         

         전열도 후열도, 진형은 물론 탄탄하던 밸런스가 무너진 시점에서 양떼 속에 풀린 늑대도 고개를 저을 것 같은 광경이 펼쳐지기 시작했으니까.

         

         그 다소 뜬금없을 수 있는데. 일부 FPS 게임에 있는, 임시 가벽이 막 세워져 있고 정확하게 제거해야 할 과녁판이 솟구치는 훈련 및 평가용 건물을 킬링 하우스라 부른다는 사실을 혹시 아십니까?

         

         흡사 그런 초심을 찾고 감각을 벼리는 장소에, 이미 고일대로 고인 특전사 듀오가 술집 테이블에 생명 수당 걸어 놓고 입장한 것 마냥 난리를 치고 있으니 나도 뽑아 들었던 권총에 힘을 빼고 구경할 수밖에.

         

         어… 그래서 얘들 지금, 테러리스트 가지고 점수 내기를 하고 있는 거지?

         

         ……이 미친 놈들이?

         

         그제서야 난 내가 잘못 생각해도 한참 착각한 게 뭔지 깨달았다.

         

         아하, 이미 둘 중 하나만 들어가도 한참 오버킬인 모지리들을 상대하는 일이니까. 전쟁 기계 같은 둘이 같이 협동하기 전에 손잡고 화해하라고 유치원 선생님처럼 다독인다 한들 진지하게 하하호호 할 리가 없군요. 네.

         

         정말 알고 싶던 정보였어요. …와아~ 이상해라.

         

         “저기, 그렇게 여유가 넘치면 한 명만 생포해 줄래? 몇 가지만 좀 확인 차 물어보게?”

         

         역으로 불쌍하다는 감상이 얼핏 들었지만 이것들은 워낙 지은 죄가 있으니까. 경비원 분들의 피해도 장난 아니게 큰 것 같고, 손해 좀 목숨으로 감수해라 너희들은.

         

         하여간 위기감은 없어도 바쁘긴 더럽게 바쁜지 드물게 대답조차 없이 머리만 끄덕이고 인간 믹서기 작업에 열중하는 두 명을 보며 나는 나 대로 해야 할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직접적인 무력 투사만큼이나 외교도 동등하게 중요한 법이 아니겠나? 음.

         

         그러니 거기 경비원 분들…?

         아유, 저희 애들이 좀 많이 사납긴 한데. 그 모건 국장님한테 다 정식으로 초대받아서 온 손님이거든요? 그러니 자칫 아군 오발 사고 같은 게 나지 않게 부디 그 총부리 좀 내려 주시겠어요?

         

         갑자기 끼어들어서 놀라신 건 이해하는데 저한테 그걸 막 겨누시면 위험해질 수 있거든요. ……아마도, 주로 여러분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아무도 감당 못한다고요 으아악.

    주) 네오 헤이븐에서는 적이 아군으로 영입되어도 파워 다운 하지 않습니다. 다루실 때 주의해주세요. (오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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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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