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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1

   크라슈가 다시금 눈을 떴을 때.

   그는 익숙한 천장을 보았다.

     

   왜냐하면 이곳은 라헬른 아카데미의 병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에 마황, 그 인간이 열어주고 간 걸로 기억하는데.’

     

   다행히 바로 공간 이동된 뒤 이쪽으로 이송된 모양이었다.

   크라슈는 살짝 지끈거리는 이마를 감싸며 몸을 일으켰다.

     

   주변이 조용하다.

   아무래도 새벽 시간인 것 같았다.

     

   ‘있다가 아스트리아를 보면 한 소리 듣겠네.’

     

   [ 누가 그딴 식으로 환골탈태를 재촉하라고 가르쳤더냐? ]

     

   대신, 크림슨가든의 타박이 먼저 이어졌다.

     

   크라슈가 한 행동은 명백히 자기 몸을 깎아 먹는 행위였다.

   자칫했다면 환골탈태는커녕 주화입마가 먼저 걸릴 판이었다.

     

   그런데도 크라슈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황, 테라시우스에게 전력을 부딪쳤다.

     

   “단지, 그 인간에게도 보여줘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을 뿐이야.”

     

   분명, 테라시우스는 이제 무슨 부탁이든 들어줄 것이다.

   하지만 그 부탁을 들어주는 데 얼마나 진심이 담기는가는 별개의 이야기였다.

     

   테라시우스는 아직도 마법 종족 창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는 이제 평생의 숙원이 되어버린 목표다.

     

   마법 대화를 할 수 있는 크라슈가 있다고 한들.

   삶의 목적을 갑자기 포기하는 게 오히려 더 어렵다.

     

   그러한 목적을 지닌 테라시우스의 눈에 크라슈가 용왕족으로 각성하는 모습은 연구 자료로서 탁월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을 터.

     

   그러니 테라시우스는 크라슈의 용왕족 각성을 위해 더더욱 많은 투자를 해줄 게 분명했다.

     

   이쪽은 이점이라면 명백한 이점이었다.

     

   “그리고 그냥 마음에 안 들었으니까.”

     

   가끔은 이성보다 감성이 먼저 앞설 때도 있는 법이다.

   크라슈는 그냥 순수하게 테라시우스의 행동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러니 한 방 먹여주고 싶었기에 한 방 먹였다.

     

   [ 단순한 녀석. ]

     

   크라슈는 짧게 웃고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스트리아의 치료가 있었음에도 몸이 아직 제 상태가 아니었다.

     

   크라슈는 일어난 상태 그대로 걸어가 병실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병실 문 앞쪽에 있던 한 녀석이 흠칫하며 몸을 일으켰다.

     

   졸기라도 했는지 입가에 침이 묻은 녀석은 서둘러 이쪽을 보았다.

     

   바이오렌 제블람.

   마황과 결계사 사이에 태어난 딸이었다.

     

   “뭐야. 일어났냐?”

     

   그러고는 천연덕스럽게 크라슈를 올려다보며 졸지 않은 척했다.

     

   “왜 밖에 있냐.”

   “……가슴 큰 성녀가 최소한 밤까지는 절대 안정이라길래. 너야말로 벌써 움직여도 괜찮냐?”

   “이래저래 익숙하거든.”

     

   크라슈는 가볍게 팔을 푸는 시늉을 하며 멀쩡해 보이는 척했다.

   정작 풀고 있는 팔에서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기에 바이오렌은 크라슈를 잠시 노려보았다.

     

   “헛짓거리 말고 안에 들어가서 쉬기나 해. 애초에 그 인간한테 싸움 걸다니 제정신이냐? 세계 침식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한 짓을 왜 해.”

   “부정은 못 하지.”

     

   크라슈는 그리 말하면서 열린 문에 몸을 기대었다.

     

   “대신 좀 후련해졌잖냐.”

   “…….”

     

   다음 말을 들은 순간 바이오렌이 조용히 침묵했다.

   그러고는 바이오렌의 자그마한 손이 크라슈의 옷깃을 꾸욱 잡았다.

     

   크라슈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러자 바이오렌은 크라슈의 눈을 슬쩍 피하며 입술을 떼었다.

     

   “……고마워.”

   “별말씀을.”

     

   크라슈가 장난스럽게 웃자 바이오렌은 괜히 심술이라도 났는지 크라슈의 다리를 퍽하니 때렸다.

     

   “크헉!”

     

   덕분에 크라슈는 고꾸라질 뻔한 걸 간신히 견뎠다.

   괜한 심술을 부렸던 바이오렌은 깜짝 놀라 쓰러지려는 크라슈를 부축했다.

     

   “야이씨, 그렇게 아팠냐?”

   “아프지. 방금 병상에서 일어난 몸이라고.”

   “아 썅! 그러게, 누가 그딴 표정 지으래!”

   “사람 표정 가지고 뭐라 하는 거 아니다.”

     

   바이오렌은 한 대 더 치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눌렀다.

   그러고는 기다란 한숨과 함께 크라슈를 부축해 병실로 옮겨 주었다.

     

   “곧 다른 녀석들이 올 거야. 너가 일어날 때까지 오매불망 기다리다가 식사하러 간 거니까.”

   “넌 밥 안 먹냐. 그러다 평생 키 안 큰다.”

   “먹고 온 거거든! 내가 제일 먼저 먹고 온 거라고! 그리고 키가 뭔 상관이야!”

     

   이런 말 하기 미안하지만, 바이오렌은 후에도 딱히 키가 크지 않는다.

     

   그러니 그녀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조금은 더 식사해두는 게 좋을 거라 생각 들어 조언했지만, 그녀는 들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안타깝군.

     

   “그보다 제블람으로 갈 거지.”

   “그래.”

     

   테라시우스는 분명 자기 입으로 제블람에서 기다린다고 말했다.

     

   거기로 간다면 강제로 끌어올린 용왕족의 힘도 완전하게 흡수가 가능할 터.

   이번 일을 마친 크라슈는 확실하게 강자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다.

     

   “잘됐네. 얼른 가버려.”

     

   바이오렌은 썩 가라는 듯 손을 훠이훠이 저었다.

   그 모습을 보던 크라슈는 고개를 기울였다.

     

   “뭔 소리야? 너도 가야지.”

   “……그 인간을 주선해줬으니 내 역할은 끝난 거 아니야?”

   “그때 말했잖냐. 지금 익시온이 너를 노리고 있으니 지켜 달라고 결계사와 계약했다고.”

   “그건…….”

     

   바이오렌은 할 말이 없는지 입술을 벙긋거리다가 말았다.

   그녀도 딱히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게 아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익시온에게 노려지고 있다면 그녀는 제 목숨을 지켜야 했다.

     

   “애초에 말이야. 그 녀석들이 왜 날 노리는 건데?”

     

   바이오렌은 익시온 놈들이 왜 자신을 노리는지를 의문을 내비쳤다.

   그도 그럴 게 자신은 기껏해야 결계술이나 조금 다룰 줄 아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크라슈도 거기에는 확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과거에 익시온은 분명 바이오렌은 노리지 않았었다.

   그녀가 무사하게 창공의 세대까지 이어진 게 그 증거였다.

     

   그런데 지금 그들이 왜 바이오렌을 노리고 있는가.

     

   ‘두 가지 정도는 예상이 가긴 하는데.’

     

   하나는 바이오렌의 결계술 때문이다.

   바이오렌의 결계술은 현세의 마법과 세계 침식의 결계술을 합쳐낸 결과물이다.

     

   즉, 방어와 관련된 능력 중 가장 특이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대표적으로 크림슨가든의 눈조차 막아 버린 그녀의 결계만 보아도 그 효과는 탁월하다.

   만약, 익시온이 수성전을 원하고 있다면 바이오렌의 결계는 상상 이상의 가치를 보일 것이다.

     

   ‘흑마녀가 세뇌한다면 이용 못할 것도 없으니까.’

     

   두 번째는 크라슈도 확신은 할 수 없지만, 그녀의 결계술이 세계 침식자의 신을 창조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크라슈는 이 부분이 꽤 마음에 걸렸다.

     

   그도 그럴 게 익시온이 세계 침식자의 신을 창조하려는 것처럼.

   바이오렌을 태어나게 한 마황도 마법 종족을 창조시키고자 했기 때문이다.

     

   두 목적이 무엇을 창조하는가가 다르긴 하지만.

   일단 둘 다 창조의 영역인 것은 같았다.

     

   ‘마황이 바이오렌을 태어나게 만든 건 어디까지나 마법 종족의 창조를 위한 정보를 얻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바이오렌은 마황에게 있어서 마법 종족 창조를 위한 재료였을지도 몰랐다.

   그러다가 몇 가지 실험 끝에 재료로서 사용되지 못할 거라 판단하고, 바이오렌은 방치했겠지.

     

   ‘하지만 마황과 다르게 익시온은 바이오렌이 재료로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그녀를 납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크라슈는 대뜸 이상한 점을 한 가지 눈치챘다.

     

   ‘……그렇다면 왜 결계사에게 구태여 바이오렌을 납치할 것을 부탁한 거지?’

     

   물론 그녀가 바이오렌에게 접근한다면 가장 의심 없이 데려오기 좋겠긴 하나.

   이러나저러나 바이오렌은 결계사의 딸이다.

     

   당연히 이번처럼 돌발 행동을 할 확률이 굉장히 높았다.

     

   익시온도 멍청이가 아니다.

   결계사의 어디에 믿을 부분이 있다고 선뜻 그렇게 맡기겠는가.

     

   ‘하지만 결계사에게 믿을 부분이 있었다면?’

     

   만일이지만 바이오렌이 태어나기 전부터 결계사가 익시온의 소속이었다면 어떨까.

     

   크라슈는 결계사와의 대화에서 왜 위화감을 느꼈는지 깨달았다.

     

   ‘……결계사는 처음부터 익시온 소속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계사는 분명 마황과 자신의 사이에서 바이오렌을 낳은 것은 강제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고 했었다.

   그렇다면 그녀 또한 마황과 무언가 거래를 했을 것이다.

     

   크라슈는 이 부분이 의문이었다.

   결계사는 마황과 무슨 거래를 하였기에 바이오렌을 태어나게 했는가.

     

   하지만 그녀가 처음부터 익시온의 소속이었다면 전부 말이 된다.

     

   그녀가 마황과 거래를 한 목적.

   그것은 서로의 창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마황은 바이오렌을 창조하기 위한 실험체로서 실패작 취급했다.’

     

   그런데 왜 지금 와서 익시온이 바이오렌을 노리고 있을까.

   크라슈의 생각이 거기까지 닿은 순간 크라슈가 고개 들어 바이오렌을 바라보았다.

     

   “……바이오렌, 네 어머니 결계사는 네가 어린 시절에 떠났다고 했었지.”

   “그랬는데?”

     

   인제 와서 뭘 묻냐며 바이오렌이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혹시 떠나기 전에 네게 뭔가 한 거 없어?”

     

   바이오렌은 눈을 깜빡였다.

     

   “한 거라니?”

   “네게 뭔가 중요한 비밀을 알려주고 갔다던가.”

     

   바이오렌은 자기 몸을 살피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런 걸 했을 리가…….”

   “잘 생각해봐. 정말로 없냐? 마황이 내려놓았는데 익시온 놈들이 너를 노린다는 거에 의문점이 있어서 그래.”

   “끄으음.”

     

   바이오렌은 어떻게든 기억을 짜내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 결계를 써둔 거 아니더냐? ]

     

   그 순간 크림슨가든의 목소리가 불쑥 들려왔다.

     

   “결계라면?”

     

   바이오렌을 두고, 크라슈가 질문했다.

   그러자 파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창문 쪽에 까마귀가 나타났다.

     

   [ 기억에 말이다. 결계사가 무슨 짓을 했고, 그게 밝혀지기 싫은 거라면 기억부터 건드렸을 것이다. ]

     

   크라슈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크라슈가 바이오렌을 홱하니 돌아보았다.

     

   “바이오렌, 네 몸 내부에 결계가 쳐져 있지 않은지. 확인할 수 있겠어?”

   “결계라고?”

   “어쩌면 네 어머니는 기억에 결계를 쳐뒀을 가능성도 있어.”

     

   바이오렌이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는 이내 정말로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는 눈을 천천히 크게 뜨기 시작했다.

     

   “기다려 봐.”

     

   바이오렌은 그 말을 듣고는 서둘러 크라슈의 침대 옆에 앉았다.

   그러고는 조용히 눈을 감더니 숨을 가다듬었다.

     

   바이오렌이 자신의 내부를 조용히 결계로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바이오렌이 당황한 얼굴로 눈을 떴다.

     

   “……진짜 있잖아.”

     

   결계를 몸 바깥에 칠 생각은 해봤지.

   지금껏 내부에 결계를 칠 생각은 못 해봤기 때문일까.

     

   이제야 내부에 발견한 그녀는 크라슈와 눈이 마주쳤다.

     

   “풀게.”

     

   그러고는 이내 결심한 듯 말했다.

     

   바이오렌은 숨을 가다듬더니 이내 서서히 자신의 머릿속에 채워진 결계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집중을 해야 하는 만큼 크라슈는 바이오렌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의 몸 주위에서 빛무리가 흘러나온 뒤 바이오렌이 컥 하고 숨을 삼켰다.

   그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식은땀이 뚝뚝 흘러나왔다.

     

   바이오렌의 결계술에도 불구하고, 풀리지 않을 만큼 정교한 결계였다.

   분명 결계사는 절대로 되찾아서는 안 되는 기억이라고 판단한 거겠지.

     

   혹은 바이오렌 말고도 다른 이가 그녀의 기억에 접근할 수 없도록 한 걸지도 모른다.

     

   “안, 풀려. 대체 뭘 어떻게 해놨길래.”

   “바이오렌.”

     

   크라슈가 바이오렌의 어깨를 손으로 잡았다.

     

   “내가 풀게.”

     

   블랙 후드가 활약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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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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