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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2

       밤하늘 위로 작열하는 태양이 하나.

       

       로즈마리는 천천히 고개를 올리며 몇 분간 불멍을 때렸다. 

       

       모닥불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몰입도를 지닌 불꽃.

       

       핫, 하고 겨우 정신을 차린 로즈마리는 상황 파악을 위해 스코프를 켰다.

       

       “비, 빌어먹을. 저게 뭐야.”

       

       말은 그렇게 해도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저것은 틀림없이 에테르 언니가 만든 원자폭탄. 다른 빡대가리 머저리들은 ‘흑주’라 착각하고 있는 요물이었다.

       

       그런 원폭이, 마왕이 부활하자마자 떨어졌다.

       

       그것도 전방이 아닌, 후방에.

       

       에테르 언니일 가능성은 없었다. 타락한 에테르였더라면 사람 많은 곳에 떨구지, 유령도시나 다름없게 된 수도를 타격할 이유가 없었다.

       

       수도에 직접 떨어뜨렸다는 건 전쟁에서 두 가지 목적을 지닌다.

       

       행정망 마비와 보급 차단.

       

       “마왕이 주로 쓰는 수법이잖아.”

       

       후방을 타격하여 처음부터 보급을 끊어버리는 기술. 틈만 나면 마왕이 사용했던 전술로 기록되어 있다.

       

       큰일이다.

       

       로즈마리는 서둘러 캠프파이어를 정리했다.

       

       지금 도시 바깥에서 한가로이 야영할 때가 아니었다.

       

       남쪽으로 도망치든, 다른 곳으로 가서 인간들을 구하든. 뭐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로즈마리는 전자를 선택하고 싶었다.

       

       “인간을 구해? 내가? 웃기셔.”

       

       쿡쿡 웃으며 비행 마법을 전개한다.

       

       로즈마리는 잠시 하늘 위로 피어오르는 버섯구름을 감상한 뒤, 출력을 최대로 하여 하늘 위를 날아올랐다.

       

       

       **

       

       

       마왕이 유예한 시간은 고작 일주일.

       

       그동안 폭탄을 많이 만들 수는 없었다. 제조 공정에는 그만큼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원자폭탄을 열댓 개 정도만 흡수한 마왕은 곧바로 진군을 준비했다.

       

       세계수가 입은 피해를 정령들이 완전히 복구하기 전에 제국과 엘프국을 함락할 요량이었다.

       

       “두 나라는 이래 봬도 대국이다. 짐이 잠든 사이에 많은 발전 또한 있었겠지.”

       “그러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두 국가의 통신망을 끊고 각개 격파한다. 제국이 무너지기 전에 엘프놈들이 지원을 와선 안 된다. 알겠나?”

       

       그렇게 기선 제압 겸 통신망을 마비시키기 위해 제국 수도에 핵폭탄이 떨어졌다.

       

       다른 수단도 아니고, 마왕이 직접 흡수한 폭탄을 던져서 공격한 것이었다.

       

       수백 킬로미터를 날아간 폭탄은 정확하게 황궁에 내리꽂혔고, 장엄한 폭발과 함께 하늘 위로 산화했다.

       

       허무한 결과였다. 대공망이 있었고, 그동안 아둥바둥하며 나라를 정상화하려던 마지막 황제의 노력이 있었음에도 모조리 한 줌의 재로 돌아갔다.

       

       원자폭탄이란 그런 마법이었다.

       

       “지금이다. 적군이 교란된 틈을 타 1진을 전개하라.”

       

       마왕은 지휘봉을 휘두르며 4개 사단을 전개했다.

       

       선봉장은 구천지대계 6석인 캐슬 브라보.

       

       그가 일반 폭탄을 쏟아부으며 단숨에 2차 저지선을 밀어붙인다.

       

       – 으아아악!

       – 사, 살려 줘!!

       

       원자탄까지 갈 것도 없었다.

       

       캐슬 브라보가 토해내는 백린탄에 맞은 마도사들은 죽을 때까지 고통받았다.

       

       치료법을 아는 군의관들이 나섰으나, 최전방에 나선 의사들은 마수들에겐 딱 좋은 먹잇감이었다.

       

       – 미친 새끼들, 의사에게도 가차 없는 거냐!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마왕군의 전투는 일반적인 국가 간 전투가 아니었다. 따라서 전쟁 협약을 준수해야 할 의무도 전혀 없었다.

       

       정령왕과 여신을 모조리 죽이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방식이라도 기꺼이 사용한다.

       

       그랬기에 파르켈수스에게 마왕(魔王)이라는 이명이 붙었던 것이다.

       

       “주군, 보고드립니다. 필리우트 제국의 수도는 그 기능이 정지, 황궁에 있었던 황족들은 남김없이 전부 사망했습니다.”

       

       마왕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제국은 멸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멍청한 권세가 놈들. 후방에 있었으면 안전할 거라 생각했나 모양이지?”

       “상천이 만든 무기가 아니었더라면 안전했겠죠. 끌끌.”

       “비록 배반하였다고는 하나, 상천의 공로가 생각보다 크게 느껴지는군. 내 그녀를 제압하면 고통 없이 먹어 치워야겠다.”

       

       자신이 에테르를 흡수하면 여신을 파괴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해진다.

       

       과거 보잘것없었던 그녀를 데려와 사천 자리에 앉힌 덴 다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1천 년에 걸친 기다림이, 드디어 결실을 보는구나.”

       

       말 그대로 ‘키워서 잡아먹기’였다.

       

       지금은 열 발 정도에 불과한 흑주 발사 기회를, 에테르를 직접 먹는다면 수백 수천 발이고 쏴댈 수 있을 테니까.

       

       마왕이 그런 행복한 상상을 한 지 몇 시간이 채 안 됐을 무렵이었다.

       

       “주군, 1차 저지선에 마도사들이 잔뜩 모였습니다. 대규모로 진을 치고 플레어와 백야라는 마도를 준비 중입니다.”

       

       인간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마왕님, 선봉대가 밀리고 있습니다!”

       “밀려? 무슨 연유로?”

       “예의 백야 때문입니다. 흑주에 버금가는 마도로, 저희라도 한 대 맞았다가는 소생할 방도가…….”

       “짐이 직접 나가 보겠다.”

       

       마왕은 비대해진 몸을 이끌고 시찰을 나섰다.

       

       수도가 증발했음에도 전방의 마도사들은 대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통신을 못 받은 건지, 아니면 아직 군량이 충분한 건지.

       

       심지어 처음 보는 마도구를 사용하여 재앙급 마수를 닥치는 대로 잡아 죽이는 중이었다.

       

       “…저 종이 쪼가리가 무엇이더냐?”

       “스크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군. 2백 년 전에 새로 발명된 마도구인데, 효용성이 엄청납니다.”

       “하기야, 기술의 발전 정도야 예상하고 있었다.”

       

       저 스크롤인가 뭔가 하는 걸 노획해 사용하고 싶었지만, 틈이 안 보였다.

       

       그렇다고 만들어서 쓸 수도 없는 것이, 스크롤 제작에 도가 튼 마수들은 죄다 마왕군을 떠난 뒤였다.

       

       “학식 있는 마수들이 어디 갔을고.”

       “전부 상천을 따랐으니까요.”

       

       가면 갈수록 골때리는 상황이었다.

       

       “짐이 이것 때문에 이번 전쟁이 질 수도 있다고 말했던 것이니라.”

       

       상천만 있었더라면 지금쯤 브릴뤼움 강을 도하했을 것이다.

       

       “민천의 상황은 어떠한가?”

       “민천은 서쪽에서 천천히 들어오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수인족 규합에 시간이 걸리는 모양입니다.”

       “흐음.”

       

       그렇다면 아직 제국 서부는 멀쩡하다는 뜻인데.

       

       당장 서쪽 땅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마왕군이 해야 하는 건 오직 남진뿐이었다.

       

       “아깝지만, 한 발 더 사용해야겠군.”

       

       

       **

       

       

       하스펠트 부녀는 가장 서쪽에 배치받았다.

       

       수인족이 사는 곳과 인접한 지역이었다.

       

       “수인들이 정말로 쳐들어올까요?”

       “이상한 움직임이 있다잖아. 여기가 가장 힘든 지역일 거야.”

       

       각각 대령과 소장으로 전역했었던 두 사람은 어느덧 다시 계급장을 붙이고 전선을 시찰하는 중이었다.

       

       이제 클라이스는 소장이, 클라라는 중장이 되어있었다.

       

       물론 마수에게 납치당했다가 살아 돌아왔다는 것도 대단했지만, 앞서 죽은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승급한 것이었다.

       

       “얘들아, 정신 똑바로 차리거라.”

       

       마수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클라라는 정령을 전개하고, 클라이스는 미리 완성해 온 스크롤에 일제히 마력을 불어넣는다.

       

       각자 자신의 재능을 강점으로 삼아 웨이브에 대적하기 시작한 하스펠트 자매.

       

       진형을 잘 구축해 놓은 덕분에 별다른 힘을 들이지 않고도 제1파를 막아낼 수 있었다.

       

       “메리는 잘하고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지금 친구 걱정할 때가 아니잖아. 자, 또 온다!”

       

       그렇게 몇 시간에 걸쳐서 치러진 소모전.

       

       먼저 마력을 소진한 클라이스가 뻗었고, 다음으로 클라라가 현기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친 것은 마수들도 마찬가지였는지 11파에 이르자 공격이 뜸해졌다.

       

       “지금이 호기로구나.”

       

       터억.

       

       기간토피아의 마석을 잘라 가져온 레너윌이 전황을 살폈다.

       

       “동쪽에 돌출부가 생겼구나. 저쪽을 뚫고 나아가면 전선을 위로 밀어붙일 수 있겠어.”

       “아버지가 직접 가시게요?”

       “주력군이 많이 지쳤다. 너희도 못 움직이니 아비가 직접 돌격부대를 이끌고 급습하는 수밖에.”

       

       망원경으로 같은 전황을 확인한 클라라와 클라이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안 돼요, 아버지.”

       “뭔가 이상해요.”

       

       다른 곳도 아니고, 딱 동쪽 부분만 돌출된 것이 수상하다.

       

       “혹시 마왕의 유인책일 수도 있잖아요. 함부로 전선을 이탈하시면 안 돼요.”

       “그래, 그것도 맞는 말이구나.”

       

       군대에서도 오래 있었던 만큼 레너윌은 모든 수를 전부 생각하고 있었다.

       

       경험상 저런 돌출부는 적의 허점일 수도 있었지만, 전황을 뒤집기 위한 함정일 때도 있었다.

       

       결국 시도했을 때 모 아니면 도인 상황.

       

       이러는 동안에도 전선은 점차 교착 상태로 접어들고 있다.

       

       이윽고 새벽이 되자, 후방부대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수, 수도가 사라졌답니다.”

       “……?”

       

       모두가 척후의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세히 말해 보게.”

       “저희가 이곳으로 떠나온 사이에 마왕군이 급습을 감행, 전략마도로 후방을 초토화했습니다.”

       “…….”

       “때문에 모든 행정망과 보급이 끊기고, 황제 폐하께서는 가신 데가 없으시다고….”

       “헛소리!”

       “아닙니다, 여기…! 증거로 당시 교외에서 찍힌 사진을 확보했습니다!”

       “보여주게.”

       

       레너윌은 다급히 사진을 받아 하나씩 훑어보았다.

       

       번쩍, 하고 피어오르기 시작한 광구. 하늘로 용솟음치는 불기둥. 수도의 하늘을 뿌옇게 뒤덮은 버섯구름까지.

       

       사진 너머로까지 전해져 오는 열감에, 사진을 본 장교들은 너도나도 입을 다물었다.

       

       “이게, 대체, 무어란 말인가.”

       

       황실과 수도를 모두 잃었다. 기사회생하려던 제국이 한순간에 멸망한 것이다.

       

       물론 레너윌이나 다른 모두가 힘을 모은다면 나라는 유지되겠으나, 이미 제국은 ‘필리우트’라는 이름을 계속 쓸 수 없게 되었다.

       

       “전쟁을 나간 사이에 조국이 뒤로부터 패망하다니…. 이게 지금 말이 되는 보고라고 생각하나!!”

       “사령관님,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보급이 안 되어 이대로라면 오래 버티지 못할 겁니다.”

       

       돌파, 아니면 후퇴.

       

       지금, 제국 마도사들은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었다.

       

       “황실의 궤멸 소식이 널리 퍼지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군 사기의 하락은 필연적이고, 탈영병이 급속도로 늘어날 테지요. 그러면 저희는 끝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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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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