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82

        

         

       하지만, 설이리가 마부는 아니다.

       마차를 잘 몬다고 마부가 아니라, 마부는 기본적으로 길을 잘 아는 사람이니까.

       어차피 지리 몰라요인 설이리는 길을 쭉 따라서 갈 뿐이다.

         

       그것도 세찬 비가 쏟아지는 와중이었으니 여차하면 조난당하기 딱 좋은 상황이다.

       그러나, 아주 다행히도 하남성 한복판에서 길을 잃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하여 길 따라, 갈림길에서는 큰 길 따라 마차를 몰다 보니 부북촌이라는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겨우 객잔 하나 덜렁 있는 한미한 동네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랴.

       나름 가도를 끼고 있다고 요새화한 시골 집성촌이 아니기만 해도 천만 다행인 일인 것이다.

         

       그리하여 방 잡아 따뜻한 수건으로 몸을 닦아내고(뜨거운 물 목욕은 도시에서나 제공되는 편의라서), 포목점도 없는 동네라 일하는 여급에게 웃돈 주고 마른 옷가지를 사다 갈아입었다.

       요리라고 인정을 해 줄까 말까 한 애매한 수준의 식사를 푸지게 한 이후에, 그렇게 푹신하지 않은 침상에 몸을 누이고 나니, 와. 피곤이 그냥.

       침상이 좀 불편하고 쿰쿰하니 냄새도 좀 나는 바람에 제정신이지, 아니었으면 눕자 마자 기절하고 말았을 터다.

         

       그런데 왜 이렇게 피곤하지……?

       고작 칼부림 조금 벌였다고 이렇게?

         

       청이 이상하게 피곤하여 축축 처지는 몸으로 푹 퍼져 있노라니, 설이리가 멀뚱히 서서 침상 위, 이불 밖으로 머리만 쏙 빼놓은 청을 내려다보는 것이다.

         

       “뭐 해요? 안 자요?”

         

       “저는 누구 이쓰면 자믈 목 자요.”

         

       설이리의 발음도 엄청나게 호전이 되었으니 아마 오늘 따뜻하게 푹 자고 나면 내일은 다 나을 터였다.

       원래 코감기 정도는 고수, 아니 중수 쯤 되면 하루면 낫고 마는 것이다.

         

       어쨌거나, 설이리가 그나마 데리고 다닐 만한 마지막 이유, 죽부인의 의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닌가.

         

       “흠. 좋아요. 그럼 이렇게 해요.”

         

       “머조?”

         

       “내가 봤을 때 설 소저는 누가 있어도 아주 잘만 자거든요? 그것도 아주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완전히 떡실신이야.”

         

       “아니에오.”

         

       “좋아요. 설 소저가 가만히 누워서 이 각(삼십 분)만 버티면 방 하나 더 잡아줄게요. 그런데 못 버티고 잔다? 그러면 거짓말 친 괘씸죄까지 해서 앞으로는 무조건 나랑 같이 자는 거예요. 어때요?”

         

       “시러요.”

         

       “싫으면 뭐 바닥에서 자든가.”

         

       “치사해오.”

         

       “어허이. 쫄려요? 질 것 같으니까 내기도 못 하지. 겨우 이 각도 못 버티면서 ‘우우 저눈 누구 이쑤묜 자물 목 자용.’ 코맹맹이 소리나 내고.”

         

       그에 설이리의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조아요.”

         

       그리고는 침대에 척 눕는 것이다.

         

       애초에 시골 구석 구색만 갖춰놓은 객잔이라서 침상이라고 해도 코딱지만하다.

       청이 이불 속에서 몸을 놀리니, 설이리의 몸통에 기대 누우며 팔과 다리까지 척 올려놓았다.

         

       “치워오. 불평해오.”

         

       “그럼 설 소저한테 유리한 거 아니에요. 누가 있는데다가 불편하게까지 굴면 잠이 더 안 오는 거 아닌가.”

         

       “이러케 안 해도-”

         

       “어허이. 나름대로 공정성을 위한 거거든요. 잠 안 자고 버티겠다고 막 몸에 힘줘서 뻗대고 꼬집고 숨 안 쉬고 그러는지 감시하려는 거니까. 자. 이제 이 각. 시작.”

         

       따뜻한 이불 속에 누워서, 빙공의 후유증인지 체질인지 서늘한 죽부인을 안고 있으니 세상 안온하고 안락해서, 여기가 바로 극락 아닌가 싶은 정도다.

         

       그리고 잠시 후.

         

       “……도롱.”

         

       서서히 잠에 빠져드는 청의 귓가에 도롱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렸다. 코감기 때문인지 도롱도롱 귀여운 코골이 소리가 규칙적으로 도롱, 흐읍, 도르롱. 하고.

         

       그야 코감기에, 약 먹고 뻗었다가 일어난 이후에다가, 마차를 몰면서 내내 비를 맞은 몸이다.

       아무리 예민해서 누가 있으면 잠을 못 자니 어쩌니 해도 이 피로를 가지고 어떻게 이 각이나 버티겠는가.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별로 힘도 안 썼는데, 빗속에서 날뛴 게 생각보다 체력이 더 빠졌던가.

       어쨌거나 피곤하기는 청 역시 매한가지라, 그 앙증맞은 코골이 소리를 듣고 있자니 참을 수 없이 잠이 쏟아져서……

         

         

       —-

         

         

       초저녁부터 정신없이 처잤더니 일어나고 나서는 도통 시간을 모르겠다.

       본래는 객실로 드는 볕을 보고 대충 뭐 아침이니 오전이니 오후니 알겠다마는, 방 안은 어두컴컴하니 깜깜하고 정신을 집중하면 쏴아아 그놈의 비 내리는 소리.

         

       코감기는 다 나았는지, 설이리의 숨소리도 쌕쌕 숨이 나오며 긁히는 데가 없다.

         

       청이 조금 아쉬움을 느꼈다.

         

       음. 코맹맹이 소리도 나름 귀여웠는데.

       음. 그런데 설 소저에게서 귀여움을 빼면 도대체 뭐가 남지?

       그냥 예쁜 마부 아닌가?

       앞으로 마부를 구할 필요 없이 그냥 설 소저보고 몰라고 하면 안 되나?

       어차피 같이 타고 있어도 한 마디도 안 하는데, 그럴 바에야 마부석에 앉혀놓으면 돈도 쪼끔 아낄 수가 있고.

         

       음. 돈을 아낄 수 있나?

       오히려 돈이 든다고 봐야 하나?

         

       청은 돈이 많았지만, 이제는 더 많다.

         

       마부 놈이 혼자 즐긴 후에 웃돈 받고 제 친구들에게도 즐거운 시간을 공유할 예정이었단다.

       듣자하니 은자를 열 냥이나 내놓으라고 했다던가.

       그러니 열다섯 놈이 기본적으로 은자 열 냥 씩을 들었다.

       게다가 따로 찬 전낭도 쏠쏠했지.

       마차의 짐칸에 실린 싸구려 병기들까지 처분하면 금전이 더 생길 예정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청은 지상의 쓰레기를 한 무더기나 치우고 그 댓가로 톡톡한 금전을 벌어들인 것이다.

       설이리에게 마부 역할을 시켰다면 얻을 수 없었던 수입이었다.

         

       어쨌거나.

       음. 꿉꿉해.

         

       원시 고대 미개 미개 중원에는 공기 조절 장치가 발명되지 않았으므로, 아, 그립습니다 캐 대협……,

       그래도 비 온다고 날씨가 막 덥지는 않더라도 그 습기에, 이제 칠월의 날씨가 시원해봐야 뭐 얼마나 시원하겠는가.

         

       객실 밖으로 나오니 이제야 이른 아침에 깨어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앗. 나리. 일어나셨나요.”

         

       아침부터 부지런히 식탁을 닦던 점소이, 까지는 아니고 객잔 집 딸내미가 말을 붙여 온다.

       나리라니. 시골에서나 들을 법한 칭소다.

         

       “아유. 뭔 놈의 비가 이리 온대요?”

         

       “그러게요. 올봄이 너무 가물어서 그랬는지, 그간 안 온 비가 몰아서 오는 것 같다고, 어르신들이 그러셨어요.”

         

       “하긴, 좀 가물긴 했었죠.”

         

       신녀문을 나와서부터 무림대회가 끝나기까지, 봄이 이르다 피고 지기까지 유난히 비가 오는 날이 드물었다.

       개봉 대운하의 수위가 반절이라나 그런 소리를 들었던 것도 같고.

         

       “음. 그래서, 비는 언제까지 온대요?”

         

       “헤헤. 하늘의 뜻을 제가 어찌 알겠어요. 나리.”

         

       “그런가……”

         

       원시 미개 미개 미개 중원에는 일기 예보도 활성화되지 않은 것이다. 애초에 일기 예보가 워낙에 첨단 기술이기도 하고.

         

       물론, 일기 예보는 아주 중요한 것이다.

       덕분에 중원에도 풍수사니 천문가니 천기분석가니 하는 일기 예보 조무사들이 존재하기는 했다.

       하지만 정확도는 거의 뭐 비 오고 나서야 ‘아 비 올 것 같았는데’ 하는 수준이다.

         

       애초에 비 오면 맞아야지 별수가 있나.

       청이 그러다 본론을 꺼내들었다.

         

       “낙양까지 마차 몰아줄 분 좀 수소문해 주세요. 삯은 은자 한 냥 드리구요.”

         

         

       —-

         

         

       애초에 숭산 등봉현에서 낙양까지는 본래가 마차로 하루면 가는 길이다.

       도중에 즐거운 사건이 있어서 재미도 보고 돈도 벌고 하루 지체되기는 했다.

       하지만 기한을 정해둔 여행이 아니라서 느긋하니 시골에서 일찌감치 출발하니, 낙양에 도착했을 때는 아주 늦은 점심 시간 쯤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낙양!

       낙양이라 하면 중원의 삼 대 고도로……중략. 어쨌거나 한 번 와 본 도시였고, 비가 와서 바깥 구경도 제대로 못 하다보니 별 감흥도 없고.

         

       그리하여 마방에 들러 마차를 반납하고.

         

       “이봐요. 마부 관리 안 해요? 세상 사람들 알기로 마부가 뭐 강도새끼들하고 다른 게 없다고 해도 진짜로 그럴 거에요?”

         

       “죄송, 죄송합니다……!”

         

       “말로만 죄송하면 단가? 이 마방은 텄다. 아주 강간범들 소굴이던데. 내 아주 온 세상에 다 알려버릴 거야.”

         

       “아이고, 아닙니다요.”

         

       청이 능숙하게 소정의 배상을 뜯어냈다.

         

       애초에 마방이라고 마부들의 일탈을 모르겠는가. 하지만 그런 개인사에 대해서 딱히 간섭하지는 않았다.

       마부가 부업에 성공하면 어차피 소문이 날 일이 없고, 실패하면 그 놈 잘못이라고 몰아간 후에 소정의 위로금을 지급하는 식이었다.

       청이 딱히 악독해서 질 나쁜 손님으로 돈을 뜯어낸 것이 아니라, 당연히 받아내야 하는 보상인 것이다.

         

       “후후.”

         

       맑은 목소리로 웃음이 넘치다 못해 흘러넘치는 청이다. 기분이 매우 좋아 보인다.

         

       이런 때에 보편적인 감성과 상식을 가진 여행 동료라면 마땅히,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요? 무슨 좋은 일 있어요?’ 하고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설이리는 죽부인으로서 서늘함을 탑재한 이외에는, 길동무로서 모든 점에서 함량 미달이었다.

         

       동전 한 푼도 없는 쌩거지에, 그렇다고 대화가 되는 것도 아냐, 태도가 살갑지도 않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걸 여행 동무랍시고 데리고 다니는 자신이야말로 인세에 강림한 살아있는 보살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심지어 의매도 이렇게까지 쓸모가 없진 않았는데.

         

       의매는 그래도 항상 안아줘, 먹을 거 생기면 제 입보다 먼저 내 입에 넣어주려고 바빠, 짐도 들어주고 다리 아프면 몸도 들어준다.

         

       멍청하다는 점에서는 설이리와 같다고 해도 그 내실은 꽉 차서 흘러넘치는 내 의매와는 비교하는 자체가 실례이지 않나!

         

       세상에, 어떻게 세상에 견포희 미만의 존재가 존재할수가 있지?

       이렇게 하찮으면서도 쓸모가 없는 인간이 도대체 왜 살아서 숨을 쉰단 말인가!

         

       청이 식탁에 앉은 설이리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에 무공의 부작용으로 은빛 머리채를 가진 신비로운 인상의 미인이 청에게 뚱한 시선을 던진다.

       표정 없이 물끄러미 보는 것이, 이제는 저게 왜 그러냐는 말 대신임을 한다.

         

       아씨. 얼굴.

       진짜 얼굴만 아니었으면 버리고 갔다.

         

       그냥 보기만 해도 스르륵 마음이 풀리는 어여쁜 용모의, 스스로 움직이는 기능이 있는 껴안는 베개니까.

       그럼 베개가 아니라 껴안개인가?

       어쨌든, 뭐. 죽부인,

         

       결국, 끝까지 설이리는 기분이 좋아 보인다거나 하는 마땅한 동료의 소임을 다하지 못했으므로, 청이 왜 기분이 좋았는지는 영원토록 미궁 속에 빠져들고 만 것이다……

         

       는 점소이에게 대신 물어보았다.

         

       “이봐요, 점소이. 흑영회라고, 낙양에 좀 꺼드럭거리는 사파 놈들 있죠?”

         

       그렇다.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지나도 늦지 않는다고. 이것이 바로 고대로부터 중원 사람이 가진 중원의 정신이었다.

       원한은 천년만년 절대로 잊지 않고 은혜는 나몰라라 하는 것이 바로 위대한 중화의 정신, 중원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청이 낙양에서 굴욕적인 철수를 감행한 지가 겨우 삼 년 전이니, 그때 못다한 복수를 끝마치기에는 딱 좋은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 그 놈들 말입니까? 망했습니다.”

         

       “엥. 왜요? 왜 망해?”

         

       “듣자하니 무림세가의 높은 분을 잘못 건드린 모양입니다.”

         

       점소이가 동전 이십 문 어치 설명을 해 주기를, 하북팽가와 황보세가의 무사들이 사업장을 덮쳐 그 추악한 범죄를 밝혀내고 말았다나.

       덕분에 낙양의 다른 사파들도 바로 손을 떼고 우리는 모르는 일입니다를 시전.

       결국 십대세가 중 둘의 공격을 받았으니, 결국 주춧돌 하나도 안 남기고 망했다고.

         

       그에 임무창이 반짝거리더니 돌발 임무의 완료를 알리는 창을 띄웠다.

       어째서인지, 늦었지롱 이 멍청아, 하고 조롱을 받는 기분이었다.

         

       아니, 왜!

       팽가랑 황보가면 산이랑 쪼끄만 놈이네!

       이것들이 나만 쏙 빼고 재미를 보냐!

       나도 멸문시킬 줄 아는데!

       내가 나쁜 놈 썰면 얼마나 좋아하는데!

         

       청의 기분이 곤두박질쳤다.

         

       믿었는데…….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한 아픔이었다.

       어떻게 날 쏙 빼고 그렇게 재미있는 일을 저네들끼리만 할 수 있어.

         

       팽대산과 황보운척이 들었다면 어이가 없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고 귀가 막힐 한탄이었다.

       나름 이후의 후환 등등을 배려해 가문의 무사들까지 동원해서 피를 보았으니, 팽대산은 청을 보호하기 위해 나선 것이었다.

       황보운척은 그냥 청의 말을 듣고 소대협 특유의 오지랖, 아니 의협심으로 불타올라서 동참했을 뿐이었고.

         

       다행히, 청은 금방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이미 망했다니 뭐 어쩔 수가 있나.

       안녕, 내 낙양아. 내 은원아.

       그런데, 음. 아. 맛있겠다.

         

       왜냐하면, 요리가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부모님께서 찾아오셨기에 모처럼 가족들 전부 모여 오붓한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비축분이라고는 있어본 적이 단 한번도 없이 매일 글쓰느라 바쁜 아들놈 때문에 종종 기습하시곤 합니다.

    역시 명절의 진정한 의미는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겠지요.

    그럼 Ilham Senjaya님, 즐거운 성탄절 보내세요!

    다음화 보기


           


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