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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2

       “…….”

        

       앨리스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뭔가 이야기를 더 해보라는 것 같은 눈치라서, 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저에게 여전히 능력이 남아있었다면, 제가 황제의 자리에 올라야 한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었겠죠. 제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고 모자라고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심각한 실수를 하더라도 바로 되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수가 애초에 없었던 일이 된다면 저는 그저 완벽한 존재로 남아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하지만 그 능력이 사라진 지금은 다릅니다.”

        

       “어째서?”

        

       “황녀님의 능력이 제 능력보다 뛰어나니까요.”

        

       나는 간단하게 사실을 말했다.

        

       “제가 그토록 여러 번 시도를 해서야 얻을 수 있었던 성취를 황녀님은 한 번에 얻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재능이 있는데 본인의 노력도 상당하죠. 게다가 명분 또한 황녀님께 있습니다. 아직 공표된 사실은 아니지만 제게는 사실 황제의 피가 한 방울도 흐르지 않으니까요.”

        

       “…….”

        

       나를 보는 앨리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러면서도 입을 꾹 닫은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아서, 나는 조금 초조한 마음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니까…… 사실 제가 황녀님보다 뛰어난 점은 저를 따르는 그리폰을 하나 데리고 있다는 점 정도입니다. 그게 사람들의 눈을 홀릴 수는 있더라도, 황녀님은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데 필요한 것이 그것뿐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실 테니까요.”

        

       그러니까 오래전부터 나를 이기기 위해 노력했던 거고.

        

       애초에 황제의 아이들에게 진짜로 황제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자체가 그 상황이 터진 뒤의 이야기다. 어린 시절 나를 이기기 위해 노력하던 앨리스는 정말로 황제의 자리가 나에게 넘어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앨리스는 그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황제의 자리에 오를 사람은 그저 핏줄이나 명분뿐만이 아니라, 그 능력도 그 자리에 걸맞아야 한다는 것을.

        

       어린 마음에, 피도 섞이지 않았으면서 자기가 차지해야 할 관심을 빼앗아 가는 나를 이기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자기 나라를 사랑하고 정치에도 관심이 있던 앨리스가 마냥 그렇게만 생각하지도 않았을 거라는 걸, 나는 알 수 있다.

        

       “…….”

        

       내가 말을 마치자, 앨리스는 눈을 가늘게 뜬 채, 한동안 나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그리고 어깨를 크게 들썩이면서 보란 듯이 한숨을 쉬었다. 분명 고개를 푹 숙이고 쉰 한숨이었을 텐데도, 그 숨이 나에게 살짝 느껴질 만큼 크고 과장된 한숨이었다.

        

       후우~ 하고 길게 숨을 내뱉은 앨리스는 고개를 다시 들고 나를 보면서 말했다.

        

       “하나 물어보자.”

        

       앨리스는 평소보다도 조금 날카로운 눈매로 나를 보면서 물었다.

        

       “너, 그냥 황제 하기 싫은 거지?”

        

       아.

        

       들켰네.

        

       앨리스의 말에 나는 한동안 입을 열었다 닫았다만 반복했다.

        

       아니, 뭐, 그렇다고 그냥 평생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백수로 살 생각은 아니었다. 기왕 그럴 수 있다면 그러고 싶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게 안 된다면 그냥 아카데미 다닐 때 정도로만 바쁘면 딱 좋겠네, 하는 생각 정도는 하고 있었다.

        

       왜, 원래 황족이나 귀족은 직업이 없는 것이 미덕이라고 하지 않던가. 유럽 쪽 귀족은 조상이 물려준 부동산을 통해 들어오는 자산으로 평생 자선 파티나 돌아다니며 산다고 들었고.

        

       만약 황제가 그대로 있었다면 평생 머리가 날아가지 않을까 조심하며 살아야 했겠지만, 앨리스가 황제의 자리에 앉으면 또 이야기가 다르다. 적어도 앨리스가 나를 숙청하려 들지는 않을 거 아니야.

        

       나는 최대한 무표정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앨리스는 이미 내 표정이 다 읽힌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나도 네가 기차에서 그런 말을 했을 때는 정말로 나를 위해 그런 말을 해주는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그 뒤로 네가 움직이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까 그것만이 아닌 것 같아서.”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뛰어다녔다고 생각했는데.

        

       뭐, 최종적으로는 주연 등장인물들을 모두 살린 다음 게네랑 친목이나 다지며 평화롭게 사는 게 목표이긴 했다. 그걸 생각하면 앨리스의 말이 무조건 틀린 말은 아니긴 하다.

        

       “제가 황제가 되기 싫은 마음과는 별개로, 황제의 자리에 올라야 할 존재는 황녀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그래, 알아.”

        

       하지만 그렇게 대답하는 앨리스의 표정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설마 진짜로 황제 자리를 나한테 넘기려는 것은 아니겠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데, 나를 흘겨보던 앨리스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떠올랐다.

        

       “하긴, 황제 하기 싫다는 사람한테 억지로 시켜봐야 문제만 생길 게 뻔하지. 제국의 황제 자리는 그냥 장식이 아니니까. 그렇다고 나나 너 말고 다른 사람한테 맡기는 건 그것대로 믿음이 안 가고. 솔직히 황궁 내에 우리가 백 퍼센트 믿을 사람도 없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몰락한 황족을 찾아다가 다시 황제를 만들어봐야 문제만 생길 게 뻔하다. 그렇게 주장하는 귀족이 있다면 그 귀족이야말로 제일 먼저 제거해야 할 대상이고.

        

       “그러면, 뭐, 어쩔 수 없이 내가 다음 황제가 되긴 해야겠네.”

        

       “…….”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그렇게 말하는 앨리스를 보면서, 나는 조금 위화감을 느꼈다.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기분이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나누고 있는 대화의 중심 소재는 다름 아닌 ‘황상’이었으니까. 제국, 나아가서 대륙의 패자 자리를 두고 하는 대화가 이렇게 가벼워도 되는 건가? 게다가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단둘, 그것도 십 대 중반의 소녀들이다. 나야 내용물이 30대 아저씨를 지나선 무언가지만, 앨리스는 정말로 10대잖아.

        

       ……중간에 꽤 긴 시간이 끼어있긴 했지만, 그건 없던 일이 되어버렸으니 논외로 치고.

        

       “좋아.”

        

       앨리스는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다음 황제가 되실 생각이십니까?”

        

       “일단 아카데미는 마치고. 이름은 올려두겠지만 본격적으로 국가를 경영하지는 않을 거야. 너는 나를 그렇게 추켜세우긴 했지만, 정작 나는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은 나이거든.”

        

       그렇긴 하다만, 십 대인 본인이 그렇게 말하니 위화감 넘치는 말이었다.

        

       “그리고 명맥만 있는 의회도 정상화해야지. 아버지야 그 모든 걸 혼자서 전부 처리할 만큼 대단한 사람이었지만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니니까. 이렇게 보여도 나의 능력을 과신하지는 않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야기가 제대로 흘러가고 있어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앞으로 갈 길이 마냥 쉬운 길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가지 못할 길도 아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믿을 수 있는 동료들과 함께 걷는다면 다 극복할 수 있는 일들이겠지.

        

       “단, 조건이 있어.”

        

       “조건이라뇨?”

        

       아니, 너 말고는 맡을 사람이 없는 자리인데 조건은 무슨 조건.

        

       “너도 한자리해야 해.”

        

       “…….”

        

       앨리스의 말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야 지금 당장 황족은 너랑 나밖에 없는걸. 클레어도 내 자매라고는 하지만, 걔는 아마 나더러 언니라고 부르고 싶진 않을걸? 자존심이 꽤 강한 애잖아?”

        

       확실히, 지금 그런 말을 하면서 귀엽다는 표정을 짓는 앨리스를 보면 클레어는 분명 발끈할 것이다.

        

       앨리스는 나름대로 클레어를 자매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그 환상 속에서 앨리스는 클레어와 자매로 지냈으니까. 이쪽으로 오고 나서도 그 감정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겠지. 그런 말을 하는 앨리스의 표정을 보고 있으니, 마치 가족 이야기를 하는 것같이 편안해 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물론 그거랑은 별개로 클레어한테도 한자리 줘야지. 아니, 내 주변에서 믿을 수 있는 존재들이 모두 아카데미에서 만난 애들이니, 모두 줄 수 있는 자리를 하나씩 줄 거야. 그렇게 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

        

       음.

        

       앨리스가 자리만 줄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제대로 된 보상을 하긴 하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엄청나게 부려 먹지 않을까.

        

       샤를로트나 레나, 소피아처럼 아예 외국인인 애들은 그래도 그 마수에서 벗어나긴 하겠지만.

        

       “그리고 너. 왜 그렇게 딴생각하는 표정을 하고 있어?”

        

       먼 산 바라보는 표정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앨리스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이번 전투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 너잖아. 당연히 끝까지 내 측근으로 근처에 있어야지. 황실 내의 요직은 그 애들한테 다 나눠주고도 한참 남으니까. 그리고 공만 생각하면 작위 몇 개 정도 내려도 되지 않을까? 아니, 애초에 지금까지 작위가 없는 게 이상했지. 애초에 황족은 귀족 작위 몇 개 정도를 겸임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으니까.”

        

       그리고 그런 말을 하는 앨리스의 표정은 너무나 즐거워 보였다.

        

       여러모로 딴지 걸고 싶은 곳이 많았지만, 그 표정을 보고 있으니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 만큼.

        

       “이게 내 조건이야. 아니면 나 황제 안 할 건데, 어때?”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곳까지 물러서게 해두고, 앨리스가 물었다.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뭐…… 정 일이 힘들면 그리폰 등에 타고 어디 멀리 도망 다녀오지 뭐.

        

       그때까지 그 변덕스러운 녀석이 계속 옆에 있는다면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늦어서 죄송합니다…

    요즘들어서 본업쪽에 여러모로 번아웃을 느끼고 있어서… 글을 쓰다가도 멍하니 허공만 보고 있는 경우가 자꾸 생기네요. 전에도 이런 적이 있어서 언젠가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한동안은 계속 이런 상태일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두 편 중 한 편이라도 제시간에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최대한 빠르게 정상화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기다리게 해드려 정말 죄송합니다ㅠㅠㅠㅠ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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