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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2

        

       

       

       

       노을 진 하늘은 사뭇 분홍빛을 띠었다.

         

       나는 수국 정원을 걸으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지켜본 바, 뷔엘은 평범하게 생활했다.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왔고, 자주 가벼운 잡담을 꺼냈다. 모두 겉치레였지만.

       

       수업 퀄리티는 훌륭했다. 겉보기엔 완벽한 시간강사였다.

         

       아마 당장에 무슨 일이 벌어지진 않을 것 같았다. 애당초 그의 목적을 생각한다면 여기서 수상한 짓을 벌이는 건 악수이기도 하다.

         

         

       ‘필립 교수한테도 별일 없는 것 같고….’

         

         

       [천리안]으로 필립 멜트런 교수의 신변에 별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메르헨의 마법 기사>에서 주요 NPC들이 어디 사는지는 대강 파악해 두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나저나, 메르헨 아카데미는 필립 교수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급하게 시간강사를 데려왔다. 이 모든 게 뷔엘의 계획일지, 아니면 그가 운 좋게 타이밍이 맞아서 들어온 것인지는 알아봐야 했다.

         

         

       ‘헤겔 마탑 일은 최대한 감춰야 해.’

         

         

       약점이 될 만한 부분은 철저히 숨겨야만 한다.

         

       뷔엘과 따로 이야기를 나눴던 날. 헤겔 마탑의 마탑주, 아리아 릴리아스에게 편지를 부쳤다. 내 사정이 어떻고, 당분간 못 찾아갈 것 같다는 내용을 담아서. 편지는 읽자마자 태우라고 끝에 적어 놨다. 편지가 잘 전달됐는지는 빙설룡-힐드가 확인했다.

       

       뷔엘을 쓰러뜨릴 때까진 긴장감을 늦춰선 안 될 터였다.

         

         

       “아이작 선배, 오셨어요?”

       “…너, 꼴이 왜 그러냐?”

         

         

       수국 정원 구석에 이른 때였다.

         

       교복 차림의 화이트는 물에 젖은 생쥐 꼴로 날 맞이했다. 그녀는 하염없이 미소를 흘렸다. 굉장히 뿌듯해 보였다.

         

         

       “어서 오십시오, 아이작 공. 잠시 사고가 있었습니다.”

         

         

       메를린은 미리 준비해 둔 담요를 꺼내 화이트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사고?”

         

         

       [바위 생성]으로 간단히 의자를 만들고 거기에 앉았다.

         

       화이트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들어보세요! 저, [쌍각풍] 성공했어요! …조금이지만!”

       “부욱, 하고 거의 티가 안 날 수준으로 나오셨고, 그 탓에 잠깐 머리에 과부하가 걸려 쓰러지다 그만 호수에 빠지셨습니다.”

       “으으…!”

         

         

       화이트는 메를린을 향해 얼굴을 붉히더니 불만스럽게 볼을 부풀리곤 두 주먹만 위아래로 격렬하게 흔들어댔다.

         

       뭐라 따지고 싶은데 험한 말을 못 하겠어서 부리는 앙탈이었다.

       

       

       “아무래도 멘토님께는 객관적인 사실을 말씀드리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메를린은 태평하게 반응했다.

       

       반면에 나는 조금 놀랐다.

       

       

       “벌써?”

       “네?”

         

         

       [쌍각풍]은 준 5성급이라 보아도 무방한 4성급 바람 원소 마법으로, 5성급 바람 마법의 진입 문턱이다.

         

       벌써 그만한 원소 마법이 방귀 수준으론 나온단 얘기였다.

         

         

       ‘생각보다 빠르네.’

       

       

       좋은 소식이었다.

       

         

       “한 번 더 해볼 수 있어?”

       “네. 딱히 마력이 많이 소모되지 않아서 괜찮을 것 같아요!”

         

         

       자신 있게 대답하는 화이트.

       

       마법이 제대로 터지지 않았다면 마력 소모가 적긴 했겠지만, 불필요한 마력 소모도 꽤 컸을 것이었다.

         

         

       “메를린, 잠시만요.”

         

         

       화이트는 호수 앞으로 걸어간 뒤, 오른팔을 뻗고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 손 앞에 구축되는 마법진 한 개.

         

       마법진의 구성은 봐줄 만했다. 미숙한 부분이 보이긴 했지만, 확실히 [쌍각풍]의 마법진을 제대로 연산해서 전개했다.

         

         

       “흐읍!”

         

         

       화이트는 입을 꾹 다물고 기합 소리를 냈다.

         

         

       퓌우웅…!

         

         

       화이트의 손에서 뻗어 나오는 두 갈래의 연녹빛 바람.

         

       칼날처럼 예리하게 정면으로 뻗어 나가려 했으나, 얼마 안 가 그 기세는 주춤했다. 결국, 바람 마법은 빠르게 사그라졌다.

       

       아직 실전에 써먹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준. 그러나 [쌍각풍]이 발동되었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히힛…, 흐아….”

         

         

       화이트는 내게 활짝 웃어 보였지만, 머리를 무리해서 쓴 것인지 다리에 힘이 빠져 쓰러지려 했다.

         

       메를린이 곧바로 다가가 화이트를 부축하기 전이었다. 나는 바위 의자에서 일어나 섬보를 사용했다.

         

         

       턱.

         

         

       순식간에 화이트 앞에 이른 나는 그녀를 내 품에 받쳤다.

         

       메를린의 놀란 얼굴이 보였다. 그녀의 아버지가 사용하는 기술을 따라한 것이니, 충분히 나올 법한 반응이었다.

         

         

       “괜찮냐?”

       “아이작 선배, 어느새…?”

         

         

       화이트도 당황한 눈치였다. 인기척을 못 느꼈을 뿐, 내가 진작 가까이 와 있었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어, 어쨌든, 보셨죠?”

       “응.”

         

         

       [바위 생성]을 사용해 그 자리에 등받이 있는 바위 의자를 만들었다. 그곳에 화이트를 앉혔다.

         

       화이트는 내 칭찬을 기대하며 두 눈을 반짝였다.

         

       분홍빛이 감도는 아름다운 파란색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나는 안경을 한 차례 들치고 대답했다.

         

         

       “불필요한 마력 소모가 많아. 마력 운용력 단련이 부족하다는 증거야. 신경 많이 써야 해. 마력 운용력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만 잘 단련해도 마법을 쓸 때 마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고, 비효율적인 마력 낭비가 줄어들 거야. 좀 더 먼 범위로 마법을 쏴댈 수도 있고. 위력을 강화하든, 뭘 하든 마력 운용력 단련은 필수야. 너 같은 경우엔 [돌개바람]도 이제 겨우 봐줄 만한 수준으로 끌어올렸잖아. 그 와중에 마력 운용력 단련에 시간을 더 들이기보다 [쌍각풍]부터 성급하게 익히려고 드는 건, 무작정 진도부터 나가려는 욕심이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책만 읽으면 되는 학문이면 진도부터 빠르게 나가면서 회독을 반복하는 편이 나아도, 이건 그런 거랑 결이 다르니까.”

       “…….”

         

         

       설명충에 빙의해 내 생각을 빠르고 정확하게 설명하자 화이트의 눈가에 눈물이 핑 감돌았다.

         

       몰입한 건가. 나도 모르게 훈수가 마구잡이로 튀어나왔다.

       

       

       “흐윽….”

       

         

       칭찬은커녕 꾸중을 들으니 화이트는 기분이 퍽 상했는지 우는 소리를 내뱉더니 코를 훌쩍였다.

         

         

       “뭐, 이건 그냥 가벼운 조언일 뿐이고.”

       “전혀 가볍지 않은데요오…?”

         

         

       나는 울먹이는 화이트에게 활짝 미소 지었다.

         

       뿌듯함이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잘했어. 열심히 했네.”

       “조금 전이랑 말씀이 다르신데요오….”

       “[쌍각풍] 자체는 지적 안 했잖아.”

       “…아?”

         

         

       화이트가 성장할 때마다 성취감이 든다. 이렇게 사람은 자꾸만 정을 붙여가는 게 아닌가 싶다. 

         

       화이트는 내 대답에 납득했지만, 그런데도 잠시간 멍을 때렸다. 갑작스러운 분위기 전환 탓이었다.

         

         

       “보여줄 게 있어. 바람 마법은 아니지만.”

         

         

       나는 호수 앞으로 다가가 오른팔을 앞으로 뻗었다. 화이트와 메를린은 내 쪽을 쳐다보았다.

         

       처음 5성급 얼음 원소 마법 [빙결 폭발]을 익혔을 때는 단 1초의 순간도 잊혀지지 않았다.

         

       [빙결 폭발]을 사용할 땐 양손의 손가락을 모두 맞대고 양손 사이의 공간에서 마력을 응집시켜야만 했다. 안 그러면 마력의 흐름이 조절되지 않아 금세 풀어지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안 그러면 응축하는 것조차 안 됐었지.

         

       그때는 아무리 빨라도 수 초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젠 아니다.

         

         

       휘이이이.

         

         

       활짝 펼친 오른손 앞으로 얼음 마력이 응집되었다. 그 마력은 연푸른빛을 발하는 작은 광구가 되어 소용돌이쳤다.

         

       [빙결 폭발]을 시전하기 위해 한 곳에 압축되는 얼음 마력. 이리 마력을 운용하는 게 이제는 숨 쉬듯 가능해졌다.

         

       그 앞에 얼음 마법진이 전개되었다.

         

         

       “5성급부턴 단련 강도가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빡세지겠지만, 결과물은 확실해.”

         

         

       그대로 얼음 마력을 터뜨렸다.

         

         

       콰아아아아!

         

         

       귀를 찌르는 굉음.

         

       매서운 충격파가 퍼져나가 순식간에 호수를 얼려 버리고, 동시에 허공에 사나운 빙결이 범발했다.

         

       일부러 부채꼴 모양으로 깔끔하게 터뜨렸다. 차가운 폭발로 인해 호숫물은 좌우로 밀려나 팔딱 뛰어오른 형태로 얼어붙어 있었다.

         

       호수는 마치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변했다.

         

         

       “와….”

         

         

       화이트는 입을 벌리고 감탄했다.

         

         

       “이게 5성급이야. 명칭은 [빙결 폭발]. 바람 마법도 이런 위력은 충분히 돼. 마력 운용력을 단련할수록 숙련도는 빠르게 올라갈 거야.”

         

         

       화이트를 쳐다보며 가볍게 손가락을 휘저어 빙결을 풀었다. 얼음 조각이 쩌적, 하고 갈라지더니 연푸른빛 가루가 되어 고요히 비산했다.

         

       치솟았던 호숫물이 아래로 내려앉고 사방으로 물이 튀겼다. 호수는 한동안 너울지며 [빙결 폭발]의 여운을 남겼다.

         

         

       “제, 제가 그런 원소 마법을….”

       “할 수 있어. 그 속도면 2학년 1학기 이내론 충분하다고 본다.”

       “멋있어요…!”

         

         

       화이트는 5성급 바람 원소 마법을 사용하는 자기 모습이 상상되자 흥분되는 모양이었다.

         

       실전을 아름답게 보여주는 것만큼 좋은 동기 부여가 또 없다.

         

         

       “아. 아이작 선배, 5성급 얼음 마법 익혔을 때 어땠어요? 말씀해주세요, 좋았던 점 같은 거.”

       

         

       화이트는 상상 속 자기 모습을 구체화하기 위해 그런 질문을 한 듯했다.

         

       좋았던 점이라….

         

         

       “…처음 익혔을 땐 필살기 느낌으로 쓸 수 있어서 좋았어. 4성급과는 위력이 차원이 다르니까.”

       “오오! 그럼 지금은요?”

       “지금은…, 누굴 팰 때 평타 느낌으로 쓰기 좋다는 거?”

       “오…, 오?”

         

         

       화이트는 감탄하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

         

         

         

       “다 말랐어?”

       “네!”

         

         

       화이트는 바람 마법을 써서 옷을 말렸다. 어느덧 해가 수평선 너머로 자취를 감춘 채였다.

         

       나는 화이트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뻗었다.

         

         

       “으, 역시 해야겠죠…?”

         

         

       화이트는 질색이라는 표정이었지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단련법이었기에 뭐라 못 하는 눈치였다.

       

       애당초 빚을 탕감하는 대신 하기로 한 일이었기에 그녀가 뭐라 할 입장도 아니었다.

         

       화이트는 내가 뻗은 손에 자기 손을 맞댔다.

         

         

       “뭐 해?”

         

         

       어째선지 화이트는 마력을 흘리지 않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호수에 감도는 자연 마나가 영롱한 빛을 비추어 화이트의 잔잔한 얼굴을 밝혔다.

         

         

       “아이작 선배. 만약에, 저랑 아이작 선배가 멘토링으로 못 만났으면… 저흰 어떻게 됐을까요? 그냥 아이작 선배는 엄청나신 분이니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조심스레 묻는 화이트.

         

       뜬금없긴 한데…. 뭐, 누구나 가끔 하는 상상이긴 하다. 이상할 건 없었다.

         

       왜 그런 걸 묻느냐고 굳이 묻지 않았다.

         

         

       “…멘토링으로 못 만났으면, 뭐 다른 걸로 만났을 것 같은데.”

       “다른 거?”

         

         

       어차피 시나리오 클리어를 위해서 화이트와는 어떻게든 엮였을 것이었다.

         

       이를 설명하는 건 어려울 테니, 고리타분한 거짓으로 말을 꾸몄다.

       

       

        “난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난다고 믿는 주의여서. 분명 어떻게든 엮였을 거라고 생각이 든다.”

       “…….”

       “왜 그래?”

       “의외여서요. 아이작 선배, 운명론자셨네요?”

       “왜 의외라는 건지 모르겠는데…. 너는? 너도 운명론자야?”

         

         

       아, 맞다.

         

       말해 놓고 후회가 된다. 운명이란 화이트가 좋아할 만한 단어가 아닐 테니까.

         

       친모에게 암살 시도를 당해온 과거가 운명이었다고 한다면, 꽤 잔혹한 소리처럼 들리고 만다.

         

         

       “뭐, 굳이 대답할 필요는 없긴 한데….”

       “아니었는데, 지금 생각이 바뀌었어요.”

         

         

       화이트가 나와 맞댄 손에 마력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도 마력을 흘려내 호응했다.

         

         

       “운명론도 나쁘지 않네요.”

         

         

       활짝 웃는 화이트.

         

         

       “…그러냐.”

         

         

       그 순간, 몸 안에 마력 회로가 박동하는 감각이 느껴졌다. 낯선 감각이었다.

         

       이후, 내 눈앞에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요정 닉스의 마력이 일정치 이상 당신에게 스며들었습니다!]

         

       [고유 특성 [밤의 칼날]을 획득했습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1. 늦어서 죄송합니다 ㅠㅠ 타자 오류가 있었습니다 ㅠㅠ

    2. 판나 님 1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심려 끼쳐드려서 대단히 죄송합니다ㅠㅠ

    정명근_997 님 1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우와아아!!!!

    Awab4775 님 4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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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AWBDLH,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
Score 8.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possessed the weakest character in my favorite game’s Hell Mode. I want to survive, but the way the main character is being controlled is atrocious. It can’t be helped. I have to stop the bad ending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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