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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2

    집에 돌아온 루크가 무엇보다 먼저 해야할 것은 바로 목욕이었다.

    땀을 많이 흘려서 굉장히 찝찝하기도 했을 뿐 아니라, 숲지기로 예민한 후각을 지닌 예르나가 자신의 몸에서 풍기는 시체의 향을 맡으면 대체 뭐라고 걱정스러운 반응을 할지 생각하기도 싫었기 때문이다.

     

    루크가 그렇게 어떻게든 몸을 구속하던 옷을 다 벗고 나서 느껴지는 일종의 해방감에 크게 숨을 들이쉬자, 원하는 만큼 풍부한 공기가 루크의 폐에 들어찼다.

    가슴을 눌러 숨을 방해하던 천들은 이제 없었다.

     

    “휴우, 목욕 끝나고 나면 밥 해 줄 테니까. 조금만 참거라.”

    “응!”

     

    루크는 리브와 파이리스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벗어낸 교복들을 집어 클린을 시전한 뒤에 대야에 넣어두고는 샤워실로 들어갔다.

     

    -찰칵.

     

    그렇게 들어간 샤워실에서, 루크는 모든 것이 어색하기만 했다.

     

    ‘샤워실이 이렇게 작았던가?’

     

    아, 당연히 샤워실이 작아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커진 것이겠지.

    하지만 대부분의 생활을 올려다 보며 생활해야 했던 루크에겐 현재 모든 것을 내려다보아야 하는 시선이 낮설었다.

     

    “…….”

     

    게다가 무엇보다 어색한 것은, 거울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저 여인의 시선과 표정이었다.

    거울이니 물론 저건 자신의 모습이겠지.

     

    “……내가 이런 몸으로 밖을 돌아다녔단 말인가.”

     

    루크는 샤워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어린아이의 몸일 때는 소년일 적과 신체적 라인에서 별 차이가 없어 잘 신경쓰지 않던 부분이었지만, 이렇게되어서 보면 이 몸은 확실히 여성의 몸이었다.

     

    “여러모로, 커지긴 했는데…….”

       

    동시에 굉장히 난처하기도 했다.

    언제나 빨리 성장해서 어린애 취급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있었지만, 이 정도로 커다래지기를 바란 적은 없었다.

    키도 웬만한 성인 남성만큼 커졌고, 심지어 여성의 상징적인 부위인 가슴과 골반도 급격하게 커져서 너무나 어색하다.

    달라진 신체의 중심을 잡기도 어색하고, 아래의 시야도 잘 안 보여서 답답하다.

    뭐라고 할까, 그동안 어린 몸이라 생각지도 않았던 것들을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런 것은 다른 변화에 비하면야 순한 부분이다.

     

    “……하아.”

     

    루크는 자신의 머리 옆으로 두 쌍, 총 4개로 변한 뿔을 만지작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뿔이 커진데다 수가 늘어났다.

    이것 때문에 조끼를 벗는 데 엄청나게 애를 먹었다.

    무려 리브와 파이리스가 동시에 붙어서 좌우에서 이리저리 당겨서야 간신히 벗길 수 있었으니까.

    루크는 잠시 방금 전 있었던 촌극을 떠올렸다.

    ——

    “언니도 이제 혼자서 옷 못 벗는 거야?”

    “……아무래도, 지금은 신체구조상…….”

     

    파이리스의 질문에 루크는 고개를 푹 숙이며 중얼거리듯 답했다.

     

    왜냐하면, 갑작스레 커다래진 뿔 때문에 조끼부터 벗어내기 굉장히 힘들었기 때문이다.

     

    원래 아이들은 뿔이 조끼를 입지 못 할 정도로 성장하는 경우는 드물기도 하고, 뿔의 성장이 빠르다 판단되는 경우는 미리 단추식 가디건으로 바꿔서 입기 때문에 루크의 경우 같은 불편함을 겪는 일은 일상적으로는 드물었다.

     

    게다가 뿔이 한동안 없던 생활에 익숙해져있던 루크는 지금의 상황이 더욱 난처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목욕을 하려면 옷을 벗어야 하고, 티그 아카데미의 교복은 온도 조절과 편의성, 내구성을 위해 몇가지 복합적인 인챈트도 사용되는데다 고급 원단을 사용해서 비싸다.

    심지어 직접 구매한 것이 아니라 시루드의 어머니인 세레나가 사준 것이기에 더욱 섬세하게 다뤄야만 했다.

     

    “거기, 뿔에 걸리는 부분은 없느냐?”

     

    조끼에 시야가 가려진 루크가 셔츠의 단추를 풀며 걱정스럽게 묻자, 파이리스는 염려 말라는 듯 발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응, 응. 이쪽은 괜찮아! 리브, 그쪽에서도 잘 잡아?”

    “…….”

     

    리브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나, 얼굴에 닿은 조끼로 인해 루크가 그것을 확인할 수는 없었기에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정말로 괜찮은게냐? 혹여 찢어지면 안된다?”

    “괜찮다니까! 하나, 둘…….”

     

    훌렁.

    조끼를 어떻게든 벗고 나자, 드디어 환한 시야가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옷이 어디에 걸리거나 찢어지는 감각은 느껴지지 않아 루크는 안도할 수 있었다.

     

    “……고맙구나.”

    “…….”

    “응! 재미있었어.”

     

    루크는 그제야 몸을 눕힌 바닥에서 일어나며 조끼를 받아들었다.

    “…….”

     

    옷 하나 벗는데도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한다니…….

    ——-

    그렇게 벗어낸 조끼는 다행히 조금 늘어나기만 했다.

     

    루크가 알기로, 뿔은 드래곤의 경지에 대한 상징이었다.

    보통의 드래곤은 뿔이 2개 정도이나, 성체가 되면 4개가 되며, 에이션트급이 되면 6~8개로 더욱 늘어난다고 하던가.

    하기사, 파르바티는 본래 성스러운 광휘를 다루던 광휘룡, 또는 ‘성휘룡’이라 불리우던 시가르마타의 자식.

    그러니 신성력과 궁합은 어느정도 있으리라 예상은 했다.

    애초에 그 때문에 그 드래곤하트를 여신을 담는 것에 사용한 것이기도 하니까.

     

    헌데, 그 궁합이 이렇게 문제를 일으킬 줄은 전혀 몰랐다.

     

    ‘그런가, 신성력에 여신과 파르바티의 비중이 동시에 높아졌던 게로군.’

     

    지금까지의 경우는 항상 마력, 서클이 먼저 성장했기 때문에 이런 변화는 없었지만, 현재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서클은 이제 간신히 5서클 끝자락을 붙잡을까 말까 하는데, 아린세이아에 남아있던 신성력 절반을 끌어와 몸으로 때려박았으니, 그 균형이 무너지지 않을 리 없었다.

     

    “내가 미쳤지…….”

     

    루크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당시에는 될 것 같아서 했을 뿐이나, 이제와 생각해보면 참으로 미친짓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자괴감에 몸부림치고 있을 수는 없는 법.

    루크는 얼른 몸을 씻기로 마음먹었다.

     

    ———–

     

    커진 몸으로 행한 목욕은 루크에겐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여성의 몸으로 씻는 것은 생각보다 불편하기도 했으며, 머리를 감으려하니 더 커진 뿔들이 거추장스러워서 자꾸만 손이 걸리고 긁혔다.

    머리카락 뿐 아니라 꼬리도 더 커지고 길어져서 일감이 두배로 뛰어버린 듯 한 느낌이었다.

    그 뿐 아니라 커진 몸을 계산하지 못하는 바람에 욕조에 받아둔 물 대부분이 넘쳐서 낭비되기도 했다.

     

    “…….”

     

    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목욕을 마친 루크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입을 옷이 없었던 것이다.

    “아.”

    루크는 아무 생각 없이 집어든 자신의 잠옷을 보고 나서야 그것을 깨달았다.

    마치 목욕을 마치고 난 후에 느껴지는 청결함에 그나마 조금 나아졌던 긍정적인 기분마저 몸에 묻은 물기와 함께 완전히 휘발되는 것 처럼 느껴졌다.

    루크는 혹시나 자신이 입을 수 있는 예르나의 옷이 있나 한참동안 뒤적거리다가, 이내 포기해버렸다.

    어떤 걸 집어도 가슴과 골반이 끼어서 제대로 입는 게 불가능했다.

     

    “……당연하겠지.”

     

    예르나는 크고 육감적이라기보다는 작고 아담한 스타일이었고, 그 외에는 작고 어린 여자아이 둘만 있을 뿐이었으니까.

    이런 체형의 옷은 당연히 있을 턱이 없다.

     

    어째서 자신이 입을 옷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일까?

    루크는 아무래도 자신이 굉장히 멍청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나가서 새로운 옷을 사올 수도 없는 노릇.

     

    루크는 다시 벗었던 목욕가운을 걸쳐입었다.

    아무래도 현재 이 집에서 루크가 적어도 몸을 제대로 가릴 수 있는 옷 비슷한 것이라곤 이것 밖에 없는 것 같았으니까.

     

    이쯤 되면 루크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제까지 이런 몸으로 있어야 하지?’

     

    이 몸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이라면 굉장히 곤란하다.

    일단 아카데미에 가는 것도 문제고(다행히 당분간 특기할 학사일정은 없어서 가지 않아도 된다지만), 마법 경시대회에 나가기 위한 서류에도 문제가 생긴다.

    베리튼은 가깝긴 해도 일단은 비행기를 타고 입국수속을 밟아야 하는 해외다.

    때문에 미리 준비해둔 서류가 좀 있는데, 그 서류에는 이미 루크가 어린 아이의 몸으로 모든 특징이 서술되어있다.

     

    그런데 이 몸으로 간다면 대체 누가 간단히 납득하겠는가?

     

    당연히 입출국 심사관이 의심을 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승인이 제대로 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딱히 감춰진 비밀이 아니다.

    그럼 당연히 국제 마법 경시대회도 물건너가게 되고, 입상은 자연스럽게 불가능한 일이 되리라.

     

    루크는 그런 생각을 하며 몸 속에 남은 잔여 신성력이 얼마나 있는가, 그리고 그 신성력이 모두 소멸하기까지는 얼마나 남았는지를 가만히 계산해보았다.

     

    ‘추가적인 유입이 없고, 나의 자연적 회복속도와 소모속도로 미뤄보았을 때…….’

     

    대략 반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맙소사.”

     

    반년이라니?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에 루크는 순간 어지럼증을 느꼈다.

    마음같아서는 전부 소비해버리고 털어내고 싶지만, 신성력은 마력과는 달리 쓰면 쓸수록 강해진다.

    신성력은 신앙심에서 나오고, 신앙심은 본질은 믿음이다.

    그리고 믿음은 말 그대로 믿을 수록 깊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마를 짚으며 쓰러지듯 의자에 앉은 루크는 궁리하기 시작했다.

     

    “난 대체 어떻게 해야하지…….”

     

    그러던 루크가 떠올린 생각은 명확했다.

     

    ‘서클을 늘린다.’

     

    하루빨리 5서클에 도달하는 것.

    그러면 균형이 맞혀지는 속도가 조금 더 빨라지지 않을까?

    어쩌면 조금 무리하면 오늘 밤에 5서클에 도달하는 것도 가능할 지 모른다.

    반드시 그 뿐이 아니더라도, 5서클에 도달하면 기초적인 ‘셀프 폴리모프’정도는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정 안된다면 당분간 폴리모프로 이 모습을 숨길 수도 있으리라.

    ‘……뭐어, 그게 된다면 예르나에게는 내 상태에 대해 특별히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렇게 생각한 루크는 곧바로 앉은 자리에서 명상을 시작했다.

     

    ———-

     

    다음날 아침.

     

    -찰칵.

     

    “루, 언니 왔어.”

     

    예르나는 피곤하지만 그럼에도 밝은 표정으로 문을 열었다.

    리엔느 숲에서 웬 비정상적인 에너지흐름이 관측되는 바람에 갑작스레 지원을 갔다가 겪은 일에 대해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줄 생각에 꽤나 기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있었던 실종사건의 피해자들이, 이번에 대거 발견된 것이다.

    대부분 발가벗은 채였지만.

    게다가 대체 다들 뭘 하다가 여기서 제대로 된 옷도 입지 않고 이러고 있었는지 기억이 없다는 듯 하다.

     

    심지어 그들은 이상한 말도 했다.

     

    날개가 어쨌다느니, 빛이 어쨌다느니.

    결국 악인을 심판하고 관에 집어넣은 뒤, 어린 천사와 함께 하늘로 승천했다고 하던가?

     

    신기한 건 고작 한두명이 그러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의 사람들의 공통적으로 봤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천사라니, 그런게 요즘 세상에 어디 있다고!

    새로운 사이비종교 같은 것일까?

     

    하지만, 루크는 천사나 정령 같은 동화 이야기를 좋아하니 꽤나 흥미로워할 것 같다.

     

    그런데, 집안은 여전히 고요했다.

     

    “루크? 혹시 자니?”

     

    루크가 이렇게 늦게까지 잘 아이가 아닌데.

    이제보니 불도 꺼져있고…….

     

    ‘혹시 아카데미에 갔나?’

     

    하지만 시험 끝나고 친구들이랑 어디 놀러간다는 얘기는 없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무엇보다, 아까 신발정리를 하다가 루크의 신발을 보았다.

    항상 루크는 어디 나갈 때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저 구두를 신으니까, 밖에 나갔을 것 같지는 않다.

    혹시나 해서 다른 신발도 확인을 해 보았는데 없어진 건 없었다.

     

    “집에 있는 것 같은데, 이상하다…….”

     

    예르나가 의문을 품으며 거실을 바라본 순간, 예르나는 보았다.

     

    의자에 앉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한번도 본 적 없는 기괴한 뿔을 단 목욕가운의 여성을.

     

    ‘불법침입? 아니면 강도? 아니, 그러면 굳이 목욕가운을 입고 있을 리가 없잖아. 대체 뭐지?’

     

    예르나는 여차하면 제압할 생각으로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가 얼굴을 확인했다.

    그리고, 왠지 모를 기시감에 인상을 찌푸리다가, 문득 누군가가 떠올라 경악하며 외쳤다.

     

    “너, 설마 루크니?”

    “흐우음……. 어, 예, 예르나……?”

     

    예르나의 얼굴을 본 루크의 눈이 동그래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명상하다 깜빡 졸아?버린 루크…

    ps. 처음엔 저도 루크가 직접 예르나에게 ‘어른이 되어버렸다’라고 문자를 하고 ‘루크가 어른이 되었다고? 설마… 드디어 루크도 그날이 왔나?’로 시작하는 착각을 구상하긴 했습니다만… 루크였으면 굳이 말 안하다가 일 키우기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해서 그냥 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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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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