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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2

        

       [ 알겠습니다. 신주님 말씀대로 잘 관찰하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

         

       리세는 진성의 말에 그렇게 답했다.

       진성이 하는 말이 곧 진리이고, 그것을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는 듯한 말투였다.

         

       그것은 애완동물이 주인에게 보이는 충성과도 닮았고, 신자가 교주에게 보내는 신앙과도 닮았고, 가장을 향해 보이는 가족의 믿음과 흡사해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리세의 태도가 더없이 순종적이었기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으리라.

         

       “그럼 곧 다시 연락하겠느니라. 아마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이니라.”

         

       진성은 그렇게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계단참에 앉은 채 그대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의 눈은 허공을 보는 것처럼 초점이 없었고, 무언가 보이지 않는 것이 꿈틀거리는 것을 보기라도 하는 듯 눈동자가 좌에서 우로, 우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조금씩 움직였다. 그리고 일부러 초점을 흐트러지게 하려는 듯 눈에 힘을 주었다가 풀기를 반복하며 피로를 일부러 증가시켰다.

         

       그리고 눈이 어느 정도 피로해지자 그는 벌레들을 움직여 안구의 유리체의 형태를 바꾸기 시작했다.

       급격하지도 극단적이지도 않지만, 그 움직임은 유리체에 이상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가 움직인 벌레들은 비문증(飛蚊症)을 일으켰다.

         

       진성의 눈에는 하루살이 같은 것이 실제로 존재하기라도 하는 듯 이리저리 허공에 유영했으며, 불씨처럼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기를 반복하며 시야를 어지럽혔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기다란 궤적이나 그림자 같은 것이 드리웠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작지 않은 크기의 벌레가 눈앞을 어지럽히는 착각을 불러일으켰으며, 눈을 감았을 때도 그 궤적이 남아 감각을 어지럽혔다.

         

       어지러움.

         

       반짝이는 것과 거뭇한 것이 춤을 추었고, 하루살이가 이리저리 돌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며 시야를 어지럽힌다. 유리체의 이상 때문에 생긴 착각은 시야를 어지럽히는 것을 시작으로 다른 감각에도 영향을 주었고, 그 감각은 점차 퍼져나갔다.

         

       귓가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벌레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건물의 보일러 소리와 수도관 소리, 그리고 건물 밖에서 들려오는 자동차의 소리와 사람들이 내는 소음이 이리저리 뒤섞이며 진짜 벌레의 소리처럼 탈바꿈이 되었다.

         

       사람이라는 것은 듣고 싶은 것을 듣는 생물.

       뇌는 시야에 보이는 벌레들의 춤을 진짜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고, 귓가에 들리는 수많은 소리에서 그 벌레를 연상시키는 소리를 뽑아내어 뇌에 주입했다.

         

       그렇게 허상의 벌레는 날갯짓 소리를 내는 실재의 존재가 되었다.

         

       그다음은 미각과 후각이었다.

       입에서는 공기에서 역겨운 느낌마저 들게 했고, 평소와 똑같은 공기를 이상하게 위화감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이러한 위화감은 미각을 더더욱 예민하게 만들었고, 그 예민함은 평소와 같은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상황이 비정상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미뢰 하나하나에서 공기의 맛이 느껴졌고, 공기에 떠다니는 곰팡이의 냄새와 남아있는 향의 냄새 역시 느껴진다.

       계단참에 쌓여있는 먼지의 향도, 난간이 품은 금속 특유의 냄새도, 칠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페인트에서 나는 특유의 화학적인 맛도.

       그 모든 것이 혀와 코를 어지럽히며 감각을 교란했고, 그 예민해진 감각들은 이곳이 날벌레가 서식하기에 적합한 환경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은 촉각.

       그의 몸의 털들이 바싹 곤두서고, 아무렇지도 않게 느꼈던 공기의 감각이 그의 팔을 스친다. 벌레가 팔에 앉거나 스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그를 짜증 나게 했고, 툭툭 건드렸다가 다시 아무렇지도 않아지는 것을 반복하며 벌레가 그의 주위를 알짱거린다는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계단참에 어둠이 드리워지고, 이윽고 창문에서 흐릿하게 흘러오는 사람이 만드는 불빛에 의지할 정도가 되었을 때.

         

       그렇게 교란된 감각은 진성이 벌레 소굴 안에 맨몸으로 들어와 있다는 착각을 만들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제야 진성은 계단참에서 서서히 몸을 일으키며 주언을 읊기 시작했다.

         

       “———.”

         

       다만 그 주언은 사람의 말이라기엔 벌레의 말에 한없이 가까운 것이었다.

       귀뚜라미가 우는 소리를 여러 개를 합쳐놓은 것 같이 들리기도 했고, 매미가 우는 소리를 사람이 성대모사로 흉내 내는 것 같기도 했으며, 온갖 풀벌레들을 한군데 모아서 만든 듯한 소음을 닮은 것 같기도 했다.

         

       “——–.”

         

       주언을 읊으면 읊을수록 그 소리는 벌레의 것에 가깝게 변해갔다.

       그리고 소리가 벌레에 흡사해지는 것만큼, 진성의 모습 역시 서서히 변화했다.

         

       꼿꼿이 서 있던 허리는 노인의 것을 보는 것처럼 굽었고, 그 굽어진 등에는 알이라도 짊어진 것처럼 불룩한 혹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진성의 손 역시 검고 찐득한 액체가 뒤덮이기 시작했다.

         

       꿀렁.

         

       액체는 진성의 손을 감싸고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애벌레의 군단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것처럼 진성의 팔을 타고 어깨를 향해 올라갔으며, 피부에 비는 공간이 없도록 꼼꼼히 자기 몸으로 진성의 피부를 모조리 덮어갔다. 그렇게 진성의 팔은 모조리 검은 액체에 감싸였다.

         

       그렇게 진성의 팔을 덮고 어깨까지 다다른 액체는 폭발적으로 온몸을 향해 움직였다.

       굽어진 등을 향해 움직였고, 갑자기 옷을 밀어내며 나타난 혹으로 향했으며, 다리로, 목으로, 얼굴로 향했다.

         

       다만 얼굴은 턱 아래까지만 나아가는 것으로 그쳤다.

         

       그렇게 진성의 온몸을 덮은 검은 액체는 딱딱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아스팔트가 굳어지는 것과 흡사했는데, 진성이 잘게 움직이자 이리저리 흔들리며 금이 쩍쩍 가기 시작했고, 이윽고 가뭄철에 땅이 갈라지는 것처럼 흉한 몰골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금에서는 찔끔찔끔 무언가가 솟아나며 쩍쩍 갈라진 표면에 광택을 만들었는데, 광택이 더해지자 진성의 모습은 마치 온몸에 비늘을 두른 괴생명체와 닮게 되었다.

         

       온몸에 물고기를 닮은 비늘을 두르고, 길쭉한 손톱을 늘어뜨린 괴물.

         

       B급 공포영화에서나 등장할법한 괴물의 모습 같기도 했다.

         

       “크-흐.”

         

       진성은 자기 몸이 비늘에 휩싸이자 성대를 조작해 소리를 내보았다.

       그러자 쇠를 긁어서 내는 것 같은 거친 음이 흘러나왔는데, 이는 성대가 박살이 나버린 노인네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와 한없이 흡사했다.

         

       진성은 자신의 주술이 제대로 작동했음을 깨닫고 만족한 듯 웃었다.

         

       “훌륭하구나, 훌륭-해.”

         

       진성이 행한 주술은 벌레를 흉내 내 몸의 형상을 바꾸는 것.

         

       하지만 그 방법은 예전에 쓰던 것과 조금은 달랐다.

       예전에 했던 것이 벌레를 흉내를 내 몸의 형상을 바꾸는 것이었다면, 지금 그가 행한 것은 자기 몸에 상징을 부여해서 바꾸는 방식이었다.

         

       지금 진성은 벌레와 한없이 닮은 존재이며, 벌레를 몸에 품은 숙주이며, 벌레의 집합체이며, 벌레의 소굴에서 숨을 쉬고 있는 사람이며, 벌레를 조종하는 머리이기도 하다.

         

       숙주이자 수뇌.

       거처이자 보물.

         

       성인식을 통해 상징이 강화된 진성은 과거보다 훨씬 효율적인 방법으로 변장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변장에 화룡점정이 되는 것이 바로 얼굴을 가리는 가면이었다.

         

       진성은 허공을 쥐어서 품 안에서 황금을 끄집어내었다.

       진성의 품 안에서 녹아내리고 있던 황금은 갑옷의 틈새 사이로 찔끔찔끔 흘러나오며 어깨를 타고 올라왔다. 그렇게 모인 황금은 진성의 목을 타고 올라가 진성의 정수리에 도달했고, 모든 황금이 모이자 빵 반죽이라도 되는 것처럼 크게 부풀었다.

         

       그리곤 자신이 슬라임이라도 되는 것처럼 몽실몽실하게 움직이다가 그 형체를 잃고 그대로 액체가 되어 쏟아져 내렸다.

       액체로 변한 금은 진성의 얼굴을 뒤덮기 시작했고, 이윽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딱딱하게 굳기를 반복하며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내었다.

         

       그 모습은 왠지 모르게 벌레를 닮아 있었다.

         

       그냥 평범한 풀벌레가 아니라, 예로부터 황충(蝗蟲)이라 불리며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메뚜기의 얼굴과 흡사한 모습이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 얼굴에는 묘하게 사람의 형상이 남아있다는 것과 왠지 모르게 뱀을 연상하게 만드는 비늘무늬가 가면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리라.

         

       진성은 가면이 완성되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곤 한쪽 손으로 난간을 잡은 채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그 모습은 불길해 보였지만, 동시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기도 했다.

         

       본래 벌레는 밤에 잘 돌아다니곤 했으니까.

         

         

         

        * * *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속이는 것을 혹세무민(惑世誣民)이라 하였다.

         

       혹(惑)은 마음을 의심케 하는 것이니 정신을 어지럽히는 것이요.

       무(誣)는 미신을 믿는 이가 무지한 자들을 세 치 혓바닥으로 농락하며 속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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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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