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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2

       엔리가 나를 이끌고서 데려간 미궁은 자연스레 생긴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천장에서 은은하게 빛이 나는 광석도 그렇고 벽의 모양새도 그렇고.

       

       뭣보다 사람의 방향감각을 뒤틀어 놓기 위한 여러 장치들을 보고 있자면 누군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서 만들었다는 게 눈에 훤하구나.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 곳을 돌아다니다가 저 스스로 걸어온 길조차 기억하지 못해 헤매게 될 터이다만 엔리는 자신감이 넘쳤다.

       

       “엔리. 이 곳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느냐?”

       “물론이죠! 제가 미궁을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아세요? 눈 감고도 길을 찾을 수 있을 정도라고요!”

       

       엔리가 이야기하길 1년 전 그녀는 이 미궁에서 살다시피 했다는 모양이다.

       

       단순히 미궁에서 시간을 보낸 것만이 아니라 미궁에 관해 연구하고 공부하며 고인물이 되었다는 엔리의 말을 듣고 있자니 되래 불안감이 증폭됐다.

       

       보통 엔리가 저리 자신감이 넘칠 때에는 헛발질을 하는 경우가 많다만.

       

       허나 본인의 불안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엔리가 무언가를 밟은 순간에 무언가가 작동되는 소리가 들려 왔으니까.

       

       엔리의 목덜미를 붙잡아 뒤로 당기자 방금 전까지 엔리의 머리가 있던 곳에 화살이 스쳐 지나갔다.

       

       본인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면 저기에 머리가 꿰뚫려 절명했겠구나.

       

       엔리는 벽에 꽂힌 화살을 흔들리는 눈동자로 바라보다가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

       

       “감… 감사합니다.”

       “이 미궁에 대해서 잘 안다 하지 않았느냐?”

       “그…랬었는데요. 어라? 1년 전에도 이런 게 있었던가?”

       

       엔리. 그대가 그런 식으로 나오니 본인의 입에서 믿음직스럽지 못하단 말이 절로 새나오는 것이다.

       

       내가 들으라는 듯 한숨을 내쉬자 엔리가 당황해서는 자신의 손을 위아래로 휘저었다.

       

       “아니에요! 너무 오랜만이라서 착각했나봐요! 이제 완전 집중할 테니까 이런 일 없을 거에요!”

       “집중한다고 무지라는 단어가 바뀌더냐?”

       

       다소 냉철한 발언일수도 있다만 집중을 한다 하여 모르는 것이 아는 것이 되지는 않는다.

       

       그리 간단하게 무지가 지식으로 바뀔 수 있다면 왜 무인들이 하루 종일 무공 서적을 뒤적이며 한탄을 하겠느냐.

       

       “이번엔 방심했을 뿐이에요! 저 다 외우고 있다고요!”

       “그래. 그래.”

       

       참. 현실에서 볼 때는 한없이 믿음직스러운 녀석인데 게임 속에 들어오기만 하면 어찌 챙겨줘야 하는 아이가 되는 것인지.

       

       방송 때문이더냐? 방송의 재미를 위해서 그런 컨셉을 잡는 것이더냐?

       

       “아니! 그런 거 아니에요! 저 진지하다구요!”

       

       자기를 좀 믿어달라 소리치는 엔리의 말을 무시하고 다른 곳에 귀를 기울였다. 미궁의 길 저 너머에서 기척이 느껴졌으니까.

       

       발소리를 따로 죽인 것도 아닌데 발소리가 너무도 가볍다. 철갑이 뼈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지만 생기는 느껴지지 않고 말이야.

       

       이전에 하늘의 끝이라는 게임을 할 적에 보았던 존재구나. 그 때에 다른 이들이 저를 부르길 스켈레톤이라 하였던가.

       

       방금 전 우리가 낸 소음을 듣고서 이 곳으로 오는 듯 하군.

       

       “엔리.”

       “그러니까 저.”

       “잠시 뒤로 물러나 있도록 하거라.”

       “…뭐 있어요?”

       “그래.”

       

       본인이야 아무런 무장이 없어도 괜찮다만 그대는 아니지 않은가.

       

       상대가 검을 휘두르면 거기에 베인 후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 것이 뻔하니 얌전히 본인의 뒤에 숨어있도록.

       

       얼마 지나지 않아 기척의 근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장을 하고 있는 해골이 셋. 방패와 검을 든 놈이 하나. 창을 든 놈이 하나. 그리고 뒤편에 지팡이를 들고 있는 녀석이 하나.

       

       전위와 중위. 그리고 뒤편에서 화력을 지원해 줄 이인가. 지성이 없는 괴물치고는 제대로 된 구성이지 않나.

       

       “벌써 조합을 짜서 미궁에 들어온 사람이 있다고요? 대체 요 1년 사이에 사람들이 얼마나 고인 거에요.”

       “흠? 무어냐. 저 해골들은 이 미궁에서 자연스레 생겨나는 적이 아니더냐?”

       “네. 이 미궁에서 유저가 죽으면 스켈레톤이 되는 형식이거든요. 그러니까 저 파티 구성 그대로 여기에 들어왔다가 죽은 사람이 있다는 거죠.”

       

       그렇다면 구성이 단단한 것이나 장비가 좋아 보이는 것이 말이 되는 구나.

       

       우리가 여유로이 대화를 하고 있는 걸 봐줄 수 없었던 것일까. 방패를 든 스켈레톤이 내게로 달려 들어왔다.

       

       방패로 밀어서 넘어트릴 생각인가.

       

       움직임을 막으면 뒤편의 동료가 처리를 해줄 것이라 판단한 게로구나.

       

       판단은 이해하겠다만 너무 뻔하잖느냐. 지성이 없는 괴물의 한계라는 것인가.

       

       가뿐히 몸을 돌려 돌격을 피한 후 발을 걸어 넘어트리기 무섭게 내 옆으로 창끝이 날아들었으나 내게 닿지는 못했다.

       

       그보다 먼저 본인의 손이 창대를 붙잡았으니까.

       

       창대가 붙잡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해골을 창대 채로 들어 벽에 내던지자 불가사의한 힘으로 유지되고 있던 해골이 박살나며 바닥에 흩어졌다.

       

       그런 후에 바닥에 널부러졌다 일어나려는 녀석의 머리를 걷어 차주니 그 놈도 강아지에게 던져주기 적당한 모습으로 바뀌었고.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녀석은 지팡이를 든 놈뿐.

       

       녀석은 동료 둘이 당하는 와중에 자신의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놈의 머리 위에서 넘실거리는 것은 음울한 색으로 물든 미궁을 붉은 색으로 물들이는 화려한 불꽃이었다.

       

       잘은 몰라도 저 정도면 사람을 불태워 죽이기에는 적당할 듯 싶구나.

       

       “화령 씨?! 위험해요!”

       

       그것이 쏘아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더니 뒤편에 있던 엔리의 외침이 들렸다.

       

       엔리. 본인과 알고 지낸 지도 오래 되었거늘 이 상황에서 본인을 걱정하는 것이야?

       

       보고 있거라. 저는 자그마한 위협조차 되지 못할 지어니.

       

       해골이 지팡이를 움직여 화염을 쏘아낸 순간 나도 허공에다 그림을 그려냈다.

       

       저 자가 쏘아낸 화염 또한 세상에 존재하는 현상일 지언저.

       

       그를 유지하는 것이 사라진다면 어찌 될지는 뻔하지 않은가.

       

       고독의 장소에 그려져 있던 술을 사용하자 세상을 휘젓던 기운들이 자취를 감춤과 동시에 맹렬한 온도를 지니고서 날아들던 불꽃도 함께 사라졌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미궁을 빛내던 광석이 빛을 잃었고 그와 동시에 해골을 움직이게 만들던 불가사의한 기운마저도 사라져 버렸으니.

       

       본인은 도술을 펼친 것만으로도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허어. 이를 노린 것은 아니었다만.

       

       불가사의한 것으로 삶을 유지하던 것에게 기운을 빼앗아가니 이런 결과를 낳는 것인가.

       

       재밌는 활용법이군. 이 도술은 본인이 생각한 것보다 더 다재다능할지도 모르겠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세상에 빛이 돌아오자 엔리가 어이가 없단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무어냐. 왜 그런 시선인 것이냐.

       

       – 물음표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뭐임? 무슨 일이 벌어진 거임?]

       

       – 아무것도 안 보였어.

       – 슬로우모션 기능이 필요해!

       – 이게 야무치의 기분인가.

       – 방금 다시보기로 돌려보고 왔는데 그래도 안 보인다.

       – 좀 상식파괴 좀 그만 하라고!

       

       아아. 본인이 도술을 펼친 것을 모르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불이 꺼졌다가 커졌더니 모든 것이 해결된 것처럼 보이겠구나.

       

       이를 어찌 설명해주어야 할까 생각을 하다가 본인이 이를 연구하고 수련하는 일련의 과정을 모두 방송을 키지 않고 진행했음을 깨달았다.

       

       만일 이에 대해 설명한다면 시청자놈들이 또 다시 채팅창을 불태우겠지.

       

       본인의 게시판에서 벌칙게임 리스트를 올리며 또 다른 잘못을 해줬으면 좋겠단 이야기를 하는 녀석들이다.

       

       괜히 꼬투리를 잡혀주고 싶지 않아.

       

       “본래 하수들은 고수의 경지를 볼 수 없는 법이다.”

       

       – ㅡㅡ

       – 부정할 수 없는 게 짜증나.

       – 아 ㅋㅋ 프레임 단위로 분석하고 온다. 딱 대.

       

       내가 어깨를 피며 그리 이야기를 하자 채팅창에서는 떨떠름해 하면서도 본인의 말을 인정했다.

       

       여태까지 저들의 상식을 박살낸 것이 한 두 번이 아닌지라 깊게 고민하지 않고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이래서 평소의 모습이 중요하단 것인가.

       

       “엔리. 계속 가자꾸나.”

       “아. 잠시만요. 파밍을 해야 해서.”

       

       그랬지. 결국 이 곳에 온 목적은 장비와 재료들을 모으는 것이었을 테니.

       

       “이게 스켈레톤의 뼈는 나중에 가루로 만들어서 스크롤 재료템으로 쓰이고 또 다른 재료들은…”

       

       엔리는 자신이 아는 것이 나왔다는 것에 신이 난 듯 내게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었다.

       

       대충 이해하자면 값비싸 보이는 건 다 챙기면 된다는 것인가.

       

       벌써부터 쓸만한 창이 생겼다며 기뻐하는 엔리를 데리고서 우리는 계속해서 던전을 탐색했다.

       

       그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 못했다.

       

       수많은 함정들이 발동하는 바람에 저 아래로 떨어질 뻔하기도 하고, 창에 찔릴 뻔하기도 하고, 여러 적들에게 둘러쌓이는 일도 있었으니까.

       

       심지어는 좋은 물건이 들어있는 상자가 나왔다며 거기에 다가간 엔리가 상자로 위장한 적에게 습격을 당해 죽을 뻔한 일도 있었다.

       

       중간에 포션을 구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본인은 홀로 던전을 돌아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저 멀리서 거대한 돌덩이가 굴러오고 있구나.

       

       “엔리. 대체 이것이 몇 번째더냐.”

       “죄송합니다!”

       

       처음에는 몇 번의 실수에도 당당하던 엔리였으나 그러한 행적이 반복되다보니 이제는 솔직히 고개를 숙이게 됐다.

       

       슬슬 자신이 생각해도 철판을 깔기 미안한 것이겠지.

       

       엔리. 그대는 그대의 곁에 본인이 있음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굴러오는 돌을 보며 땅을 밟았다.

       

       지금 본인이 지닌 육신은 무인보다는 일반인에 가까운만큼 아무런 피해도 없이 저를 박살낼 수는 없다.

       

       생각을 하기에 오른 팔을 내어주면 교환비가 맞지 않을까 싶구나.

       

       진각을 밟으며 그 힘을 주먹에다 실어 바위를 향해 내지르자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굴러오던 바위가 움직임을 멈췄다.

       

       이윽고 본인의 주먹이 닿은 자리를 중심으로 하여 바위에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바위가 조각이나 주변에 흩어져 버렸다.

       

       그 대가로 본인의 팔이 덜렁거리게 되었다마는 목숨값이라 생각하면 나쁘지 않지.

       

       뭣보다 이 세상은 어디까지나 게임인지라 물약을 마시면 이러한 상처도 단번에 회복이 되거든.

       

       어느새 멀쩡해진 팔을 쥐었다가 피고 있으려니 엔리가 몇 번이고 내게 고개를 숙이기에 그를 말렸다.

       

       “되었다. 일 년 새에 이 미궁에 많은 게 추가된 것이겠지.”

       “…그런가봐요. 제가 아는 거랑 많이 달라요.”

       “괜찮다. 아무리 많은 함정이 있어도 그를 해쳐나갈 수 있다면 아무 일 없는 것과 다르지 않지. 그대가 길을 알고 있으니 그것으로 족한 일이다.”

       

       본래 같았으면 조금 더 놀려주었을 터이나 실수를 연발한 탓에 기가 죽은 엔리에게 무어라 하기엔 그랬던지라 그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고마워요. 화령 씨. 그. 이제 가방도 가득 찼으니까 돌아갈까요?”

       “그러자꾸나.”

       

       이 이상 이 안을 돌아다녀봐야 득이 되진 않을 듯 하니 말이다.

       

       “왜 여기에 벽이.”

       

       그제가 되어서야 난 내가 잊고 있었던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정확하게는 외면하고 있었던 사실이 눈 앞에 나타났다고 해야겠구나.

       

       1년간 던전의 안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은 던전의 구조 자체가 바뀌었을 수도 있다는 소리다.

       

       그러니까.

       

       “…어라?”

       

       엔리의 지식이 아예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지.

       

       그녀가 출구랍시고 나를 데려온 곳에 있는 것은 회색의 벽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길을 잃었다!

    —–

    시크한크시님 응원의 후원 감사드립니다!

    아라에게 빙의하고 싶으시다고요?
    신교의 수련과 정마대전을 겪으셔야 할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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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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