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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82

        

         “……실례했습니다. 일일 출입 허가증을 발급받으신 아나스타샤 모델님, 방금 메인 서버와 진위 여부 대조 확인 완료했습니다. 아무래도 관리 사무소나 정문에서 따로 뵌 기억이 없다 보니, 조력에 감사드리지는 못할 망정 다들 조금 과하게 경계한 것 같습니다.”

         

         “아뇨, 나머지 ‘호위’가 좀 눈에 띈다는 것도 이해하고. 저야 뭐 광고 때문에 오늘 하루만 잠깐 온 거라…… 그렇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왠지. 다른 경비원 분들의 등쌀에 마지못해 떠밀려 나오신 것 같은 기색이 강한 대표자께 서로 어색한 인사를 되돌려드리는 걸로 피아식별을 확실하게 끝마쳤다.

         

         이쪽 구성원이 눈에 안 익고 마주친 기억이 없는 건… 그건 아마 저나 쇼우의 일행이나 멀쩡한 지상 출입문 내버려두고 관계자 전용 옥상문으로 출입한 탓이 아닐까요. 네.

         

         평소라면 디렉터 급 직원분이 발급한 전자 허가증만 지닌 채로 쫄래쫄래 다녀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겠지만, 이런 긴급 상황에서는 보안 담당자의 의심 섞인 눈초리를 받는 것도 어쩔 수 없으리라.

         

         원래 제대로 된 절차를 거쳐서 들락날락 해야 하는 장소에 약식으로.

         그것도 상부 직원 권한을 적극 남용해서 좋게 좋게 행동했으면 응당 그에 따른 부작용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는 법이 아니겠나?

         

         해커 업무나 의뢰를 처리할 때를 제외하면, 나는 언제나 최대한 상식적인 선에서 행동하고 공공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자부하는 편이다. 음.

         

         그러니까 거기 뒤에 두 사람…!

         

         아니지, 한 드로이드랑 한 명!! 내가 혹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피해를 입을라 걱정해주는 건 정말 고맙고 참 든든한데, 니들이 그렇게 피 뚝뚝 흘리면서 이쪽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는 건 전혀 갈등 해소에 도움이 안 된다니까??

         

         심지어 내가 심문할 포로 하나 남겨 달랬답시고, 최후의 생존자 놈의 양팔을 하나씩 붙잡은 채 어떻게 갈라먹을까 질질 잡아 끌면서 눈치 싸움을 하고 있으면 더더욱!

         

         “…그래서, 몇이나 잡으셨소이까? 소인은 칠에서 셈이 끝났소만.”

         – 아쉽게도… 저도 일곱이군요. 굉장히 공교롭게 되었습니다. 이건. –

         

         “너희들, 그 어처구니없는 얘기를 아직도 계속하고 있었어…?”

         

         따로 내기에 포함한 물건이나 내걸만한 보상도 없던 걸로 기억한 데다가, 평가받는 전공 분야가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된 나로서는 뭐가 그렇게 중요한지 모르겠으나 아무튼지간에.

         

         사실 세련되고 압도적으로 적들이 처리… 거의 정리해버린 만큼 둘이 피칠갑을 했다는 내 묘사는 다소 과장이 심했다. 은은히 풍기는 교전의 잔열만이 직전의 격렬함을 말해주고 있을 뿐.

         

         복도에 스플래터 현장이 만들어져 있다거나 그러지도 않았고.

         내가 걸어갈 길을 만들어 터주듯, 외려 전리품처럼 두 무더기로 깔끔하게 나눠 정리된 시신 무더기는 살육 현장이라기 보단 집단 사고사가 발생한 참혹한 산업 재해를 수습한 느낌이 강했다.

         

         뭐, 아르카디아 애들 입장에서야 좋은 승부를 벌이고 있던 와중. 난데없이 옆에서 튀어나온 덤프 트럭에 우르르 치여서 패배한 상황이라 재해라는 표현이 꼭 틀린 것도 아니긴 하겠다만.

         

         ……설마 각자 얻은 포인트를 가시적으로 명확히 하기 위해 저렇게 쌓아 둔 건 아니리라 믿는다.

         

         아무리 범죄자에게 인권 개념이 희박한 세계라지만 그건 너무 비인도적인 처사잖니, 차라리 날 배려해서 그런 게 맞다고 해주렴.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히이…힉!!”

         

         그리고 이건 별로 좋지 못한 소식인데, 기괴한 신음 소리를 들으면 짐작할 수 있다시피 살아남은 남자의 상태가 좀 메롱이었다.

         

         방금 전까지 전선을 잘 유지하던 형제들이 순식간에 도륙 나는 걸 직관했으니, 총 대신 타블렛 PC끼고 드로이드 무리를 관제하던 후위 엔지니어로선 당연한 반응이 아니냐 한다면 그렇기도 한데.

         

         막상 때가 닥치니 별로 교단의 숭고한 대의를 위해 죽을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 같다고 하면 너무한 평가려나?

         

         일단 전파를 타고 생방송을 타는데 성공하기는 한만큼 대중의 흥미와 관심은 물론 오늘 여기서 죽어 나자빠질 애들보다 더 많고 폭넓은 가입 희망자들이 기웃거릴 것이기에 아르카디아는 장기적 손해가 거의 없을 것이다.

         

         보석상 주인은 벌써 받은 보험금으로 새 카탈로그를 들여다보고 있지만 원래 있던 상품은 망치에 맞아서 박살 난 거지. 슬프게도.

         

         “흐, 흐힉. 흐하하! 늦어도 한참 늦었다 이 기업과 기계 의지의 하수인 놈들!! 이미 방송을 막기엔 늦었을뿐더러, 우리의 동지들이 방송국 인공지능을 파괴하기 시작했을 거다!”

         

         ‘……이 새끼가?’

         

         하지만 슬픈 비유로 합리화 부문에 점수를 준 게 무색하도록 붙잡힌 남자는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말문이 트인 것처럼 묻지도 않은 걸 마구 떠들어댔으니.

         

         자연스럽게 내 이마 언저리에 힘줄인지 혈관인지 아무튼 둘 중 한 개가 빡! 하고 솟구치는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그야 전투 드로이드와 얼굴조차 안 보이는 특수 요원에게 떠들어 봤자 입만 아프겠고, 자신의 입장을 표할 거라면 책임자처럼 어슬렁어슬렁 나타난 내게 하는 게 맞겠지만….

         

         여태 생존 본능과 공포에 휩싸여 정신 못 차리던 인간이 갑자기 뭔가를 결심한 것처럼 그러면 상대를 만만하게 골라보고 눕는 것 같다는 생각이 저는 들 수밖에 없는데 말이죠. 예.

         

         “자기들이 꼭두각시 신세인 줄도 모르고! 인류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우리를 핍박하는 꼴이 참으로 가련하기 짝이 없…!”

         

         “네 네, 그러세요. 그 부분은 아무래도 됐고. 난 그냥 뉴스 룸에 쳐들어간 애들 구성이랑 순찰조 위치가 궁금한 거지, 니들이 성전을 벌이던 방송국 변기 물을 모조리 내리고 튀던 별 상관 안 하는데.”

         

         “……으어??”

         

         애꿎은 인공지능 혐오도 한편으로는 잊지 않고 저지르고 있었구나… 하는 한심한 소감은 뒤로.

         

         매몰찬 걸 넘어 들어주기 귀찮다는 듯이 말을 끊어버리자 남자가 미묘하게 저항하던 팔과 몸을 축 늘어트리며 얼빠진 표정으로 신음을 흘렸다.

         

         신념이란 이름의 갑옷으로 무장한 이를 가장 아프고 고통스럽게 찌를 송곳이 있다면 바로 무관심이 아닐까?

         

         적이 보내는 긍정은 찬사가 되고 부정은 순교로 치환되지만 완전한 무시는… 어떤 식으로든 제출한 시험지가 평가받지 못한 채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걸 봐 버리면 지독하게 고통스럽겠지.

         

         어디까지나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다시 말하지만, 공권력에 인도하던 마무리를 짓던 어차피 앞날이 어두컴컴한 인간을 굳이 더 절망시키려는 의사는 결코 없었지만!

         

         금이 간 신앙에, 안 그래도 목숨을 던졌다는 공허한 상처에 송곳을 박아 넣는 잔인한 흉내를 하게 되어 급격하게 피곤해진 나는 휘적거리는 손짓으로 제로와 마사나리에게 부탁했다.

         

         이 놈, 고개 돌리게 하고 여기 좀 칼로 잘 그어 봐.

         

         ……아니, 다짜고짜 머리를 따버리라는 게 아니라 슈트만 벗겨 보라고! 난 그냥 정보를 원하는 거지 굳이 고문하려는 게 아니라니까? 사람을 뭘로 보고.

         

         “그래도 구질구질하게 목숨 구걸은 안 해서 나도 마음이 좀 편하네. 서로 쉽게 쉽게 가자고 그럼.”

         “윽! 지금, 무슨 짓… 을…? 어, 어??

         

         찌릿!

         

         드러난 땀투성이 남자의 관자놀이 부근에 검지와 중지 손가락을 올린 채, 꽤 간단한 명령어를 담은 전기 신호를 내질렀다.

         

         사이버웨어에 접속하는 게 아니다.

         

         아직 발동 조건을 정확하게 모르는 만큼, 이렇게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고 맛탱이 간 사람의 정신과 깊게 접속될 위험을 감수할 마음은 전혀 없었으니까.

         

         그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다른 동료들에게 조목조목 우리의 행선지를 꼰지르기라도 하는 건 곤란하니까, 힘으로 찍어 누르듯 발동하려는 보안 프로토콜과 여타 기능들을 일시적으로 억압하는 것이다.

         

         급조한 별동대가 경비와 전투 중에 패배했는지 연락두절 된 것과 웬 전문 킬러에게 당했다고 최후의 단말마로 보고하는 건 엄연히 다른 레벨의 반응이 되돌아오지 않겠나?

         

         난 순식간에 몰아쳐서 슥삭 하고 끝내고 싶은 거지, 미친 놈들이랑 인질 끼고 엎치락뒤치락 하고 싶은 게 아니라고.

         

         “……이런 개씨발.”

         

         어디 샵에 가서 상호 동의 하에 검사를 받는 것도 아닐진대, 이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항상 당연하게 시야를 메꾸고 있던 사이버웨어의 인터페이스가 남에 의해 강제로 차단되고. 하나씩 강제로 소멸하는 체험은 생소한 모양인지 그가 나지막한 욕을 내뱉었다.

         

         원리는 모르겠지만 통신도 막혔고, 머리속을 헤집어지는 것 같아서 막 무섭고, 거기에 마지막 쐐기로.

         

         “어디, ‘이단자에게는 총알을, 이해자에게는 손을 아끼지 말라’였었나? 이 작전에 너네 팔라딘 급이랑 크루세이더 급 전투원이 몇 명씩 투입됐는지부터 낱낱이 말해볼까요? 거짓말을 하는지는 여기 전문가 둘이 즉석에서 판단해줄 테니까.”

         

         “…….”

         

         사람들을 위한 종교라는 기치를 내걸고 변명처럼 끼워 맞춘 아르카디아 교리와 직급을 적극 인용하기까지.

         

         난 너네 내부 사정을 알만큼 아는 인간이다. 어중간하게 숨겨도 소용없고 다 끝났다는 티를 팍팍 내주자, 딱 알맞게 체념한 눈빛으로 아까와는 달리 나를 괴물 보듯이 바라본 남자가 하나 둘 구성원의 정보를 토해냈다.

         

         와중에도 또 방송 화면을 힐끔거리니, 우리 에린 아나운서님께서는 격렬한 자기주장을 펼치고 손찌검을 당하는 걸 자꾸 반복하고 계셔서… 얻을 것도 다 얻었겠다 시간 낭비는 이만하고 빨리 가봐야겠다는 생각은 더 강하게 들었다.

         

         전국민이 보는 라이브 뉴스 도중에 이런 사태가 발생한만큼 그런 모습을 보여 주시면 향후 커리어가 탄탄대로로 풀리는 거야 충분히 이해하겠는데, 진짜 배짱 좀 적당히 부려요 이 사이비보다 미친 언니야.

         

         보는 사람이 더 심란해 죽겠어 아주.

         

         “……여기서 B동 계단으로 내려간 다음에 뉴스 룸까지 최단 경로로 직진. 뉴스 룸 내부에는 전 용병 출신 프로가 셋, 그 중 하나만 고개조율 사이보그 팔라딘. 다들 기억했지? 이만 가자.”

         

         포로의 신병은 이쪽이 승자의 권리를 행사하는 걸 친절히 기다려준 경비에게 실적도 드릴 겸 맡겨 놓으면 되겠다는 투로 관심을 끊고 몸을 돌렸다.

         

         그러자 우직하게 일선 전투원, 어깨 담당 역할도 수행해준 제로와 마사나리 또한 곧바로 내 뒤에 달라붙었….

         

         빠각!

         

         – 여덟. 제가 이겼습니다. 이만 승복하시지요. –

         “!? 그거야말로 정말 반칙이오! 동시에 잡은 것도 모자라, 기절시킨 걸 어찌 수급을 취했다 셈하는….”

         

         …정정하겠다. 알고 있는 모든 걸 다 토해낸 남자의 머리를 후려갈겨서 쓰러트린, 무려 추적자를 당황하게 만든다는 업적을 연달아 달성한 제로가 먼저.

         

         그리고 마사나리는 한 박자 늦게 따라붙어서 억울함을 호소해왔지만.

         

         뭐, 날 쳐다봐도 소용없어. 난 판정승 같은 걸 내려줄 생각이 없다고 이 긴장감 없는 놈들아!

         

         한데 화를 낸 게 부끄럽게, 안내받은 대로 아르카디아 놈들의 경계망 빈틈을 찔러 방송실 앞 부근까지 한달음에 접근하니. 여기서 이렇게 볼 줄은 몰랐던, 마찬가지로 약간 긴장감이 부족해 보이는 사람을 마주쳤다.

         

         멀리서 볼 때는 상황과 어울리지 않아서 바로 눈치를 못 챘는데, 곁에 익숙한 제로 1호기가 붙어있는 걸 보면… 베서니 매니저님? 뭐야, 대피 방송을 못 들으셨나?

         

         “…!!”

         

         혼이 가출한 것처럼 멍해 보이던 그녀의 얼굴이 날 보자마자 여러 바리에이션을 거쳐 극적으로 달라졌다.

         

         먼저 아는 사람을 만났는 게 반가웠는지 기쁨, 느긋하게 좋아할 상황이 아니라는 건 아는지 착잡함, 거기에 마침내 뭔가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처럼 상쾌한 눈물이 콸콸.

         

         저 언니는 또 왜 저래? 뭐시여. 무슨 일인데.

         

         “아나스타샤 아가씨! 아니, 레이디? 아나스타샤 사마(さま)?? 하여간 아까 전에는 제가 큰 실례를… 게다가 여러가지로 진짜진짜 너무 감사드리고 싶은데 얘가 너무 무서워서어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뭐야, 평범한 난장판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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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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